소설리스트

파티에서 추방된 영웅이 너무 뛰어남-35화 (35/300)

35화. 교류회

“부딪힌 곳은 괜찮아요?”

“삭신이 쑤셔 죽겠다.”

“조심 좀 하시지.”

길을 걷던 유지한은 손으로 뒷목을 잡았다.

어제 개인 훈련실에서 벽에 처박힌 덕분에 온몸의 관절이 쑤셔 왔다.

괴물 닭과 싸웠을 때도 이 정도의 상처는 입지 않았는데.

인생 최대의 적은 자기 자신이라더니, 딱 지금의 그에게 어울리는 말이었다.

“제대로 쓰려면 연습을 많이 해야겠어.”

“이거나 받으세요.”

“이건……. 마력 파스네?”

“이론상으로는 꽤 훌륭한 물건이죠.”

김시후는 유지한에게 하얀색 파스를 건넸다.

아픈 부위에 붙이면 치유계 영웅의 산뜻한 마력이 살과 뼛속 깊은 곳까지 스며든다고 광고하는 물건이었다.

과대광고로 조금 논란이 있긴 했지만, 나잇대와 상관없이 평범한 일반인에게도 잘 팔리는 품목 중의 하나였다.

유지한은 파스를 가장 뻐근함이 느껴지는 목덜미에 붙였다.

“그렇게 무리하시면 안 됐어요. 오늘 교류회 있는 것도 아시면서.”

“이렇게 될 줄 몰랐지.”

사복을 입은 그들이 향하는 곳은 영웅부의 서울 지부.

승급 심사 때 잠깐 방문했던 곳이었다.

영웅부의 건물이 보이자 김시후가 조금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도 저, 이런 행사 참여하는 건 처음이에요.”

영웅부에서는 영웅과 관련된 각종 행사를 개최한다.

때로는 거대 길드와의 협력으로 일반인들도 뒤섞여 즐길 수 있는 축제를 주관하기도 한다.

거기서 가장 많은 이득을 보는 것은 당연히 행사의 주역인 영웅들이다.

영웅부의 역할에는 심사나 처벌 등 영웅들이 불만을 가질 요소들이 꽤 많으므로 그들을 대우해 주며 평소의 불만을 달래 주는 것이다.

요약하자면 영웅들을 위한 복지 정책의 일부라고 할 수 있었다.

“나도 좀 낯설다.”

그리고 그런 행사에 익숙하지 않은 것은 유지한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는 공식적으로 이런 자리에 초대받은 적은 한 번도 없었으니까.

‘교류회가 엄청 큰 행사는 아니지만.’

언젠가 2개 이상의 길드 사이에 커다란 갈등이 발생하여 그들이 갈등을 풀고자 한자리에 모인 적이 있었다.

처음에는 모두가 열린 마음으로 참석한 자리였으나, 대화가 진행될수록 그 자리에서 문제가 해결되기는커녕 더 커다란 갈등으로 번졌다.

갈등은 커지다 못해 결국에는 길드 간 패싸움으로 이어졌다.

그들이 어찌나 화려하게 싸웠는지 근처에 지나가던 민간인까지 휘말릴 정도였다.

결국, 싸움에 가담한 파티는 모두 한 단계 이상의 등급 하락, 강등이라는 불명예를 받고 어마어마한 배상금까지 뱉어 내야 했다.

교류회는 그 사건 이후로 영웅들이 서로 사이좋게 지내라는 취지에서 생겨난 것이다.

*****

모든 확인 절차를 마친 유지한과 김시후가 행사장에 들어섰다.

주변에서 휴대폰을 보거나 침묵하고 있던 이들은 두 사람을 힐끔거렸다.

자기가 아는 얼굴인지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처음 보는 얼굴에 모두 다시 고개를 돌렸다.

“잘 꾸며 놨네.”

유지한은 행사장을 가볍게 둘러보았다.

천장이 높고 넓은 강당 같은 공간에 둥근 원형의 테이블이 여럿 놓여 있고, 그 위에는 글자가 적힌 종이 팻말이 하나씩 올라가 있었다.

팻말에 검은 글씨로 적혀 있는 것은 각 길드명과 파티명.

파티마다 미리 자리가 지정된 것이다.

‘우리 자리는 저기구나.’

유지한과 김시후는 팻말에 꿀잼이라고 적혀있는 테이블에 앉았다.

신기한 표정으로 이곳저곳을 살피던 김시후가 소곤거렸다.

“저쪽에 레드홀이랑 주사위, 워리어즈도 있어요.”

“그러게. 심지어 레드홀은 파티가 4개야.”

교류회에 참석하는 파티 중에는 거대 길드의 파티도 포함되어 있었다.

유지한도 잘 알고 있는 이름의 파티들이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돋보이는 건 레드홀.

이미 자리에 앉은 3개 파티를 포함해 비어있는 테이블까지, 총 4개의 테이블에 모두 레드홀의 이름이 들어가 있었다.

비슷한 시기에 4급으로 승급한 파티가 4개나 된다는 뜻이었다.

과연, 1000개가 넘어가는 수의 파티가 있는 거대 길드다웠다.

“안녕하세요?”

“……?”

주변을 구경하던 중에 어떤 남자가 유지한에게 말을 걸어왔다.

바로 옆쪽 테이블에 앉아있던 사람이었다.

“오늘 교류회 참가하는 파티시죠?”

“예. 맞습니다.”

“저는 ‘우정’의 길드장 신우정이라고 합니다.”

“……우정 길드?”

길드명을 들은 김시후가 긴가민가한 표정을 지었다.

“얼마 전에 4급으로 승급하신 곳 아닌가요?”

“맞아요! 꿀잼도 그렇죠?”

“네!”

우정은 꿀잼과 함께 4급 승급에 성공한 파티였다.

그때는 마주치지 못했지만, 그들은 서로 같은 장소에서 심사를 치렀었다.

신우정은 꿀잼의 이름을 알아보고 인사를 건넨 것이었다.

“저는 꿀잼의 유지한, 이쪽은 저희 길드장 김시후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입가에 미소를 띤 그가 아주 밝게 인사했다.

“여기 잘 아는 사람도 없고, 가만히만 앉아 있으니까 심심해서 말 걸어 봤어요.”

“저희랑 비슷하시네요.”

“어쩐지! 비슷할 거 같더라고요.”

행사장에 가장 일찍 도착했다는 신우정은 행사 시작을 기다리는 것이 심심했는지 계속 말을 걸었다.

길드명이 길드장 본인의 이름을 딴 것이라든지, 동시에 친구 사이의 정을 뜻하기도 한다든지.

그는 유지한과 김시후가 물어보지도 않은 내용을 여럿 들려주었다.

상당히 말이 많은 사람이었다.

“파티에 두 분만 계시는 건가요?”

“네. 이제 시작하는 단계라서요.”

“우와, 저희도 약간은 비슷한 게 활동 시작한 지 반년도 안 됐거든요.”

우정도 꿀잼과 마찬가지로 거의 신생 길드에 가까웠다.

이야기를 듣고 있던 김시후는 그에게서 약간의 동질감을 느꼈다.

소규모 길드를 이끄는 길드장은 이제껏 자주 만나 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요새 길드를 만든다는 게 좀처럼 쉬운 결정은 아니잖아요.”

“그렇죠.”

“저는 파티에 제 친동생이랑 같이 있어요. 나머지 3명은 같은 영웅 학원에서 데려온 친구들이고.”

가족과 친구들을 모아 하나의 파티, 길드를 설립한 신우정이었다.

주변 지인들을 모아 길드를 만드는 건 흔히들 있는 일이다.

“저쪽에 거대 길드 모여 있는 거 보이세요?”

계속 이야기를 이어 나가던 그는 턱짓으로 어느 테이블을 가리켰다.

레드홀과 워리어즈의 파티가 있는 구역이었는데, 그 중 하나는 교류회가 끝나면 곧바로 사냥에라도 나설 것처럼 길드의 엠블렘까지 박은 장비로 완전 무장을 한 상태였다.

“저기도 말을 걸어 보려고 했는데, 어째 다가가기가 너무 힘들더라고요. 괜히 쫄린달까?”

신우정은 꿀잼보다 먼저 자리에 참석한 거대 길드에게는 말을 걸지 못했다.

길드의 체급 차이에서 오는 무게감 따위가 느껴져서 선뜻 다가가기가 어려운 것이다.

그리고 아직 자리에 참석하지 않은 주사위의 4급 파티를 제외하면, 거대 길드는 대부분 2개 이상의 파티가 자리에 앉았기에 인원 수가 꽤 많은 그들의 대화에 끼어들기도 내키지 않았다.

“오빠, 거기서 뭐 하고 있어!”

“뭐하긴! 대화하고 있지.”

“민폐 끼치지 말고 그냥 돌아와서 앉아.”

신우정의 동생으로 추측되는 여성이 옆 테이블에서 그를 호출했다.

그러자 그는 어쩔 수 없겠다는 듯, 어깨를 으쓱거리며 말했다.

“나중에 MA에서 만나시면 인사라도 해요.”

“그럼요. 보이면 언제든지 말 걸어 주세요.”

유지한과 김시후는 그와 가볍게 악수했다.

동급의 길드와 안면을 트는 건 바람직한 일이다.

서로 성장하면서 언제 어디서 도움을 주고받을지 모르는 일이니까.

‘슬슬 자리가 채워지네.’

예정된 시간이 다가오자 행사장에 도착한 파티들이 비어있는 자리를 채우기 시작했다.

조금 시끌벅적해진 행사장에 비어있는 테이블은 이제 1, 2개에 불과했다.

‘케로즈에서도 왔나.’

유지한은 케로즈의 이름이 적힌 테이블을 바라봤다.

저번에 마주친 후배는 아니었지만, 몇 번쯤 마주친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그들 중에서도 유지한을 알아보고 속닥거리는 사람이 있었다.

‘하나 같이 똑같구만.’

주변의 목소리에 묻혀 그들의 대화가 귀에 들리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들이 꿀잼의 테이블을 힐끔거리고 피식하고 웃는 태도로 보아, 그다지 유쾌한 내용이 아닐 거라는 건 확신할 수 있었다.

그때의 후배 녀석과 다를 게 없는 모습이었다.

“지한 씨!”

“……양지철 씨?”

행사장 입구 쪽에서 갑자기 양지철이 유지한에게 달려왔다.

반갑게 인사를 하려던 유지한은 그의 얼굴을 보고 멈칫했다.

뭔가 굉장히 급한 사람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지철 씨, 무슨 일 있어요?”

“후우…….”

양지철이 이마의 땀을 닦으며 말했다.

“정말 죄송한데 지금 당장 부탁 하나만 드려도 되겠습니까?”

“무슨 부탁이요?”

“오늘 교류회에 예상치 못한 추가 인원이 생겼는데, 테이블이 모자라서 앉을 자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가능하면 합석을 부탁드리려고…….”

예정된 인원 이상의 파티가 참석하게 된 교류회.

그는 가장 인원이 적은 꿀잼에게 합석을 요청하는 것이었다.

서로를 바라본 유지한과 김시후가 고개를 끄덕였다.

8명도 앉을 수 있는 테이블에 2명만 앉아있으니, 굳이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들어보니까 그쪽에서 꿀잼을 알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누가요?”

“눈송이의 민유리 씨입니다.”

“예?”

“저희 쪽 담당자의 실수로 저도 방금에서야 소식을 접했는데……. 아, 마침 저기 오시네요.”

행사장 입구에 한 여성이 등장했다.

칠라는 보이지 않지만, 양지철의 말처럼 정말로 민유리가 맞았다.

김시후가 입구를 바라보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진짜 오셨다.”

“오늘 교류회는 최근에 승급한 파티만 참여하는 거 아니었어요?”

“민유리 씨는 승급 후 당시 교류회에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오늘 자리에 오고 싶다는 의사를 보이셔서…….”

행사장에 들어와서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민유리.

그때 입구 근처 테이블에 앉아 있던 포동포동한 남성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그녀에게 다가갔다.

“오오! 민유리 씨!”

“……?”

“나이스 길드의 민주용입니다. 몇 달 전에 저희 길드 본사에서 한번 뵀었지요?”

“아! 기억나요. 그때 저한테 녹차 가져다주신 분.”

“기억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는 과거에 민유리의 영입을 시도했던 나이스 길드의 영웅이었다.

당시 그녀는 그 제안을 거절했었다.

“으흠! 유리 씨. 제가 얼마 전에 기존 파티에서 탈퇴하고 새로 만든 파티를 4급까지 끌어 올렸습니다.”

“음……. 축하드려요?”

“파티장으로서 유리 씨와 이야기를 나눠 보고 싶은데, 나중에 따로 시간을 내주실 수 있을까요?”

“저랑요?”

“네!”

“죄송하지만 부담스러운 이야기라면 별로 듣고 싶지 않아요.”

“전혀 부담스럽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까, 예전에 저희 길드에서 제시했던 조건이 너무 별로였지요? 제가 몇 달 동안 길드장님을 설득해서 훨씬 더 업그레이드된 조건으로 유리 씨를 모실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것과 관련된 이야기인데…….”

나이스 길드장의 아들인 민주용은 예전부터 민유리의 영입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었다.

홀로 활동하는 그녀에게 지극히 개인적인 호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우린 하늘에서 내려준 운명이 아닐까!’

한참 그녀를 생각하던 때, 그녀를 만나게 되다니.

이것은 어쩌면 하늘이 내려준 운명과도 같은 일!

“지금은 보는 눈이 많으니 나중에 다시 말씀드리죠.”

“네, 뭐…….”

어색하게 미소 짓는 민유리는 그를 냉정하게 뿌리치지 못했다.

그의 말처럼 보는 눈이 너무 많은 탓이었다.

“유리 씨, 여기요!”

그때 유지한이 민유리를 향해 팔을 위로 번쩍 들어 올렸다.

그녀의 시선이 팔을 좌우로 흔드는 유지한과 그 옆에 있는 김시후에게 향했다.

’저기 있다.‘

그들이 앉아 있는 쪽으로 걸어가는 민유리의 입가에 가식이 아닌 진심의 미소가 걸렸다.

‘……저 새끼들은 뭐야?’

반면, 유지한을 바라보는 민주용의 얼굴은 돌처럼 딱딱하게 굳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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