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화. 잡기술
“요금 제가 낼 거예요?”
“알고 있어.”
“거, 주머니에 손 집어넣지 말고요.”
민유리에게 영입 제안을 넣은 다음 날.
유지한은 김시후와 함께 공용 훈련소에 방문했다.
김시후는 혹시라도 유지한이 훈련 요금을 내려고 할까 봐 그의 주머니를 주시하고 있었다.
묘한 곳에서 고집을 부리는 길드장이었다.
유지한은 알겠다는 듯, 그에게 손바닥을 펼쳐 보이며 말했다.
“이제 길드 카드도 나왔잖아. 이제 내 돈 안 쓸 거야.”
“그렇죠.”
김시후가 자신의 지갑에서 카드를 하나 꺼내 들었다.
카드 앞면에 멋들어진 폰트로 ‘GUILD’라는 글자가 새겨진 남색의 카드였다.
평범한 회사에는 법인 회사를 상대로 발급되는 법인 카드, 흔히 법카라고 불리는 카드가 있는데, 그것과 비슷하게 길드에는 길카라고도 불리는 길드 카드가 존재한다.
“한도가 무제한이었나?”
“그렇죠.”
장비나 기타 자질구레한 요소로 지출이 많은 길드의 특성상, 그 어떤 길카라도 공방에서 결제할 때는 결제 한도가 없었다.
설립되지 얼마 되지 않은 길드라도 1억이고 10억이고 카드 한 장으로 해결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카드 회사에서 회사로 선물 보낸대요.”
김시후는 기본 카드 혜택 외에도 카드 회사에서 선물을 보내 주겠다는 소식을 들었다.
카드 회사에게는 고액 결제가 잦은 길드들이 아주 좋은 고객인 덕분이었다.
“뭐 보내 준대?”
“두루마리 휴지요.”
“휴지? 길카 발급에 휴지는 좀 짜다.”
“그래도 이걸로 오픈 마켓에서 결제하면 금액의 0.7%까지 할인돼요.”
길드에서 몇억을 결제할지도 모르는데 겨우 휴지를 보내 주다니.
유지한은 조금 구시렁대면서 공용 훈련소의 입구로 이동했다.
저번에 마주쳤던 훈련소 직원이 그 앞에 대기하고 있었다.
“꿀잼 길드. 같은 파티원 2명이요.”
“그때 수리 요청하셨던 분들이죠?”
“어, 아직 기억하고 계시네요.”
“이름이 독특해서요. 그리고 4급으로 올라가신 것도 들었습니다.”
직원은 훈련소에 몇 번 방문했던 두 사람을 기억하고 있었다.
첫 방문 때 고장 난 기계의 수리를 요청했던 것과 특이한 길드의 이름 덕분이었다.
‘꿀잼. 생각해 보면 꽤 괜찮은 이름일지도.’
유지한은 길드명에 은근히 만족하면서 훈련소에 들어섰다.
이번에 찾아간 곳은 예약해 둔 개인 훈련실이었다.
오늘은 김시후가 유지한에게 마법을 가르쳐 주는 날.
뾰롱!
유지한은 허공에 실프를 소환했다.
정령을 소환하는 것에 완전히 적응한 지금은 생각하는 것과 동시에 실프가 등장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김시후가 실프와 유지한을 번갈아 보며 말했다.
“헤이스트 한 번만 사용해 주세요.”
[헤이스트]
요청에 따라 유지한이 마법을 사용하자 실프가 약하게 빛을 냈다.
얌전한 바람의 기운이 그의 몸을 덮었다.
앞머리가 바람에 조금씩 흩날리지만, 머리 모양이 크게 망가질 정도는 아니었다.
버프치고는 너무 거칠었던 바람이 가벼운 정도의 세기로 바뀐 것이다.
김시후가 그의 주변을 돌면서 만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몇 번 끄덕거렸다.
‘훌륭해.’
바로 얼마 전까지는 매우 엉성해 보이던 마력의 흐름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초보자들이 범하는 실수가 거의 보이지 않았다.
헤이스트라는 마법을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일에 성공한 유지한이었다.
“괜찮아?”
“네. 아주 좋아요. MA에서도 잘 사용하셨잖아요.”
“그때는 그냥 본능에 따랐지.”
유지한은 급한 순간이 되면 여지없이 헤이스트를 사용했다.
대표적인 예시가 아파트의 계단 복도에서 창문을 뛰어내리던 때였다.
‘확실히 좋아지는 느낌이 있어.’
마법을 사용할 때마다 이전의 마법보다 더 나아지는 느낌은 있었다.
그러나 유지한은 김시후처럼 마력 제어에 아주 세심하게 신경 쓰거나 의식하는 편은 아니었다.
마법을 전혀 사용할 수 없던 영웅 학원에서부터 그랬듯, 그건 그의 능력 밖이었으니까.
‘마결정의 효과겠지.’
유지한이 마력을 다루는 방식은 정령과의 계약 이후로 크게 달라졌다.
실프를 소환한 이후에는 본인의 마력에다 실프의 마력을 하나로 엮는 형태로 변한다.
그 과정에서 최근 큰 변화가 일어난 부분은 단연코 실프의 마력이었다.
“형의 마력도 이제 어느 정도 안정되었으니, 슬슬 다른 마법을 배워도 좋겠어요.”
메인 딜러인 유지한이 새로운 마법을 익히는 것은 커다란 전력 상승으로 이어진다.
바로 옆에서 그의 상태를 쭉 지켜봤던 김시후는 슬슬 새로운 가르침을 내려도 좋다고 생각했다.
일반적인 정령사를 기준으로 생각하면 배움의 시기가 조금 이른 감은 있었다.
보통 계약 후 적어도 4달 간은 정령과의 친밀도를 올리는 것에 집중하지, 새로운 마법을 배운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러나 유지한이 보여 주는 모습에 계속 기대감을 갖게 되는 김시후였다.
“혹시 평소에 배우고 싶다고 생각한 마법 없어요?”
“있지.”
“어떤 거요?”
“문라이트 익스플로전(Moonlight Explosion).”
“…….”
김시후가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난이도가 너무 높아서 전세계 1급 마법사 중에서도 극히 일부만 사용할 수 있다는 신비의 마법.
달빛이 연상되는 빛깔의 거대한 폭발로 사용자에게도 큰 주의가 요구되는 그것을 언급하다니.
“레드홀의 길드장이 쓰는 걸 영상으로 봤는데 멋지더라고.”
“그건 사실상 고유마법이잖아요.”
“그렇지?”
“그분이 공개한 마법 살펴보면 완전 변태예요. 기본 익스플로전 마법에다가 단지 달빛 색깔을 입히겠다고 무슨 짓을 했는지 알면…….”
김시후는 몸서리쳤다.
자타공인 한국을 대표하는 길드 레드홀. 그곳의 길드장이자 마법사인 백강천.
파티의 등급과는 별개로 마법사들은 널리 알려지는 공용 마법 외에 자신만의 마법 스킬을 창조하곤 하는데, 그것을 고유마법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백강천은 이례적으로 자신이 만든 고유마법 일부를 세상에 공개하곤 한다.
‘이해는 했지만……. 못 써.’
그러나 공개해도 다른 마법사는 쓸 수 없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그의 마법이 너무나도 복잡하고 어렵기 때문이었다.
김시후는 백강천이 공개한 수십 장짜리 마법 설명서를 보며 마법을 ‘이해’하는 수준은 되었지만, 사용은 불가능했다.
마법에 미숙한 유지한은 사용은커녕 이해하기에도 어려운 마법이었다.
“그런 거 말고 실제로 쓸 만한 마법이요.”
“그러면 네가 사용하던 윈드 밤.”
“윈드 밤이요?”
유지한이 그에게 요청한 것은 윈드 밤(Wind Bomb).
김시후가 적의 진영을 무너뜨리거나 커다란 바람을 일으킬 때 종종 사용하는 공격 마법이었다.
창문을 뛰어내렸을 때 큰 도움을 준 마법이기도 했다.
김시후는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
“그 마법을 형한테 알려 줄 수는 있어요. 저도 종종 애용하는 마법이니까 잘 가르칠 자신도 있고요. 하지만 파티의 마법사로서 말하자면, 다시 한 번 고민해 보셨으면 좋겠어요.”
김시후는 유지한에게 윈드 밤을 그 누구보다 잘 가르칠 수 있었다.
그런데 그 마법이 그에게 어울리는지는 의문이었다.
‘윈드 밤이라면 내가 사용할 수 있으니까, 굳이 형이 익힐 필요는…….’
마법 스킬을 익히는 것에는 선택과 집중이 중요하다.
이것은 김시후가 이전부터 강조하던 부분이었다.
게다가 유지한은 정령 탈진 현상까지도 고려해야 하니, 배움의 조건은 훨씬 까다로워진다.
선택에 더욱 신중할 수 밖에 없었다.
“나름대로 생각해 보고 결정했어.”
“어떤 생각이요?”
“이걸 이동 마법으로 사용해 보려고. 윈드 밤을 바로 근처에서 터트려서 반대쪽으로 이동하는 거지. 약간 잡기술 같은 거야.”
유지한은 윈드 밤을 조금 떨어진 곳까지 단숨에 이동하는 이동기로 사용할 생각이었다.
강력한 바람으로 변칙적인 움직임을 만들 수 있다면 커다란 도움이 될테니.
“하지만 이건 공격 마법인데요.”
김시후는 그를 걱정했다.
의도야 어쨌든 공격 마법으로 분류되는 것을 자기 몸 가까이에서 직접 사용하겠다는 소리였으니까.
“한번 시도는 해볼게. 위험해서 안 될 것 같으면 그냥 포기하고.”
결국, 김시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말처럼 시도는 해보고 위험해질 것 같으면 그를 말릴 생각이었다.
“여기 보세요.”
“그때 본 그거구나.”
“네.”
김시후가 지팡이 끝으로 마력을 집중했다.
이전에 헤이스트를 가르칠 때와 비슷한 구슬 형태의 마력이 그 끝에 매달렸다.
김시후 본인이 유지한에게 말하길, 그것의 이름은 배움의 구슬.
마력을 시각화하는 작은 공간을 만들어서 타인에게 보여 주는 것이었다.
“윈드 밤은 생각보다 간단해요. 우선 마력으로 다른 마력을 담을 수 있는 작은 영역을 만든 뒤에, 그 안쪽에 그보다 작은 마력의 알갱이를 여러 개 생성해서 단방향으로 회전시키세요.”
“알갱이?”
“작은 구슬 같은 거라고 보시면 돼요. 지금은 일부러 크게 보여드릴 건데 원래 이것보다 작은 편이 좋아요.”
김시후는 배움의 구슬 안쪽에 둥그스름한 마력의 알갱이를 여럿 생성했다.
그 알갱이들은 모두 한쪽으로 빠르게 회전하고 있었다.
“이 알갱이들이 폭탄의 화약을 대신한다고 생각하시면 편해요. 알갱이의 숫자가 많을수록, 그리고 알갱이의 회전이 빠를수록 위력이 커지니까 주의하시고요. 보통 회전 값은 RPM(Revolutions per minute) 단위로 계산하기도 하는데……. 너무 이론적인 부분까지는 알 필요 없으시고.”
“되게 어렵게 들리네.”
“그냥 제가 알려드리는 대로만 하시면 돼요. 자, 이제 마무리.”
김시후가 마무리로 구슬 안쪽에 마력의 트리거를 만들었다.
윈드 밤을 시전한 마법사가 마력으로 그 트리거를 건드리는 순간, 알갱이를 감싼 영역이 깨짐과 동시에 그것들이 폭발하며 커다란 바람을 일으키는 것이었다.
“옆에서 봐 드릴 테니까 한 번 해보세요.”
유지한은 그의 가르침을 떠올리며 윈드 밤을 사용했다.
그리고 잠시 후.
[윈드 밤]
고오오—
그의 눈앞에 윈드 밤이 생성되었다.
실수인지 폭탄 안쪽에 반대 방향으로 회전하는 알갱이도 있었으나, 마법이 완성됐다는 것 하나만큼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예상은 했지만, 역시 놀랍다.’
김시후는 그가 못해도 2~3번 정도의 시도로 윈드 밤을 사용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었다.
저번 헤이스트를 가르칠 때도 고작 1번 만에 성공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걸 직접 눈으로 보고 있자니 자연스럽게 감탄사가 나왔다.
저번에도 생각한 것이지만, 그가 이제껏 마법을 사용하지 못했다는 게 다 거짓말처럼 느껴졌다.
“해볼까.”
유지한은 완성된 윈드 밤을 자신의 등 뒤로 배치했다.
처음의 의도대로 짧은 거리를 이동할 추진력을 얻기 위함이었다.
“형? 그거 잠깐…….”
김시후는 황급히 유지한을 말렸다.
원하는 대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세밀하게 조정해도 모자를 판에, 저렇게 엉성한 구조로는 생각만큼 잘 동작할 리가 없었다.
하지만 그는 이미 윈드 밤의 트리거를 건드린 뒤였다.
부웅—!
쾅!
바람에 떠밀려 앞으로 쭉 날아간 유지한이 개인 훈련실의 벽과 충돌했다.
김시후는 마치 못 볼 꼴을 본 사람처럼 손바닥으로 눈을 가렸다.
‘……저걸 두고 기뻐해야 하나.’
원하는 마법을 매우 빠르게 배우긴 했으니 기뻐하는 편이 맞을 터였다.
*****
나른한 오후.
MA로 가기 전에 장비를 챙겨 입은 민유리는 책상에 올려둔 휴대폰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톡. 톡. 톡.
검지 손가락으로 책상을 두드리는 그녀.
화면이 켜진 휴대폰에 떠오른 건 영웅부의 번호였다.
이제 통화 버튼만 누르면 곧바로 전화가 연결될 것이다.
“음…….”
이 전화를 걸까, 말까.
그녀는 입술을 오물거리며 계속 책상을 두드렸다.
그러다가 이내 결심한 표정으로 통화 버튼을 누르고 휴대폰의 스피커를 귀에 가져다 댔다.
—네. 영웅부입니다.
“저 눈송이 길드의 민유리라고 합니다.”
—아, 네! 안녕하세요!
“조금 여쭤보고 싶은 게 있어서요.”
—어떤 거요?
“제가 아주 예전에 초대받았던 4급 교류회에 가지 않았는데요……. 혹시 이제 와서 참석하기는 어려울까요?”
—어, 잠시만요.
전화를 받은 남성은 키보드를 두드리며 그녀의 말이 사실인지를 확인했다.
그리고는 가벼운 어조로 말했다.
—참석하셔도 돼요.
“정말로요?”
—네. 딱히 어려운 일은 아닌 것 같네요. 원하시면 바로 초대 목록에 넣어드릴게요.
“그 전에 하나만 더 물어볼게요.”
—말씀하세요.
“이번 교류회에 초대받은 영웅 중에서 꿀잼이라는 길드에 소속된 분들도 있나요?”
민유리는 그렇게 말하고서 가만히 대답을 기다렸다.
만약 유지한과 김시후가 없는 교류회라면 그녀가 굳이 참가할 이유가 없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