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화. 요리 (2)
IUPC가 공생 가능한 크리처라고 부르는 것들이 큼직하게 잘린 ‘먹이’를 아주 맛있게 뜯어 먹었다.
치악력이 상당히 강한 몬스터들은 그것을 뼈째로 씹어먹기도 했다.
찰칵! 찰칵!
손에 휴대폰과 작은 카메라를 든 IUPC의 직원들이 몬스터들을 마구 찍어 댔다.
“아휴, 먹는 모습도 하나 같이 너무 이뻐라.”
“더 가져올까요?”
“과식하면 안 돼요! 이따 저녁 시간에나 주죠.”
철창 속의 녀석들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사람들.
드르륵!
그때, 공장의 입구가 열리며 승용차 한 대가 안쪽으로 들어왔다.
“부장님 오셨다.”
차량의 주인은 IUPC의 부장급 임원이었다.
머리에 검은색 중절모를 쓴 그가 승용차의 운전석에서 내렸다.
“여러분 안녕하세요!”
“어서 오세요, 부장님!”
“얘들아, 2주일 만이구나! 그동안 잘 있었지?”
그는 두 팔을 번쩍 들어 올린 만세 포즈를 취하며 몬스터들을 향해 인사를 건넸다.
철창의 몬스터들은 그를 무시한 채 먹이를 먹는 것에만 집중했다.
한 남성이 부장에게 말했다.
“지방 출장은 어떠셨어요?”
“제가 또 예쁘고 착한 친구들을 많이 데려왔죠! 바로 옆 건물에 있으니까 이따가 한번 구경 가보세요.”
“역시 부장님!”
그는 지방 지역을 순회하며 결계를 빠져나온 몬스터들을 IUPC까지 데려왔다.
자리에 있던 직원들은 부장을 향해 엄지를 치켜들었다.
정부와 길드, 그리고 세간의 시선을 피해서 몬스터를 들여오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오늘 또 제가 좋은 소식을 가져왔어요.”
“어떤 거요?”
“협력 업체에서 오랫동안 연구하던 ‘그것’의 프로토타입이 나왔답니다!”
“그것이라면, 설마!”
부장이 품속에서 리볼버 형태의 총을 꺼내 들었다.
사람들은 기대감을 담은 시선으로 그를 바라봤다.
잠시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그는 철창에 갇혀 있는 괴냥이 쪽으로 다가갔다.
“하아아악—!”
인간이 가까이 다가오자 불안감을 느낀 것인지 하악질을 하는 괴냥이.
부장은 녀석을 향해 총을 겨눴다.
탕!
방아쇠를 당기자 총구에서 발사된 것은 총알이 아니라 아주 작은 크기의 주사기였다.
“냐아아옹!!”
덜컹! 덜컹!
자기 몸에 주사기가 깊게 박히자 겁에 질린 괴냥이가 마구 날뛰었다.
그래 봤자 단단한 철창 안에 갇혀 빠져나오지는 못했다.
꿀렁—
주사기에 담겨 있던 검은 액체가 녀석의 몸으로 천천히 흡수되었다.
그리고 몇 초 후.
“캬아아아……!”
괴냥이의 몸집이 눈으로 확인될 만큼 빠른 속도로 불어났다.
동시에 발톱과 이빨의 크기도 매우 커졌다.
‘조금 아쉽군.’
그런데 머리 크기와 꼬리의 길이는 이전과 같았다.
평범한 몬스터에서 불안정한 형태의 돌연변이로 변해 버린 것이다.
“아직 개선이 더 필요하겠지만, 완벽하게 성공한 개체도 있었답니다?”
짝짝짝!
짝짝짝짝!
지켜보던 직원들은 감동의 박수를 쳤다.
IUPC의 부장은 돌연변이로 변해 버린 괴냥이를 보며 중얼거렸다.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위하여…….”
*****
가스레인지, 오븐 따위의 각종 주방 설비가 모두 갖춰진 주방.
시간당 요금을 내고 이용할 수 있는 그 공유 주방에 유지한과 김시후를 포함한 단 4명의 사람만이 들어와 있었다.
장사임은 옆에 있는 요리사에게 말했다.
“종언아. 인사해.”
“아, 안녕하십니까! 요리하는 백종언이라고 합니다!”
“꿀잼의 유지한입니다.”
“김시후입니다. 반갑습니다.”
요리사 백종언이 꿀잼의 두 사람에게 고개를 숙였다.
그는 장사임의 추천으로 오늘 괴물 닭의 요리를 맡게 된 사람이었다.
“이렇게나 좋은 기회를 제공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요리만 맛있게 해 주세요. 저희는 그거면 됩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곧 요리를 앞둔 백종언은 잔뜩 희열에 차 있었다.
‘내가 돌연변이를 요리하게 될 줄이야……!’
그는 1년 전부터 몬스터 레스토랑으로의 이직을 꿈꿨다.
그러나 몬스터 레스토랑은 신입이나 관련 경력이 없는 요리사를 잘 뽑지 않는다.
어지간한 힘으로는 다루기 힘든 고기도 많고, 장기 따위의 내부 구조가 매우 복잡한 경우도 있어서 칼질 한 번 잘못하면 귀한 식재료를 그대로 날려 버릴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 와중에 꿀잼이 그에게 무려 돌연변이 고기를 다뤄 볼 기회를 제공했다.
무척 고마워할 수밖에 없었다.
“다리가 엄청 크네요.”
김시후가 넓은 도마 위에 올려놓은 괴물 닭의 다리를 바라봤다.
두툼한 살코기 부분만 해도 사람 머리 5개를 합쳐 놓은 듯한 크기였다.
길이는 어찌나 긴지 뼈가 도마는 물론이고 싱크대 밖으로 쑥 빠져나와 있었다.
괴물 닭의 해체는 몽땅에 맡겨 두고 녹화 영상만 확인했기에 고기를 직접 보는 건 지금이 처음이었다.
‘내가 이놈한테 용케도 안 밀렸네.’
유지한은 닭발로 검을 잡고 잡아당기던 녀석을 떠올렸다.
저 무식하게 큰 닭 다리와의 힘겨루기에서 그는 밀리지 않았다.
“다리 하나로 20인분이 넘게 나오겠어요.”
“마음 같아서는 통째로 튀기고 싶은데 말이죠.”
“도저히 튀김기에 들어갈 만한 사이즈가 아니라서요. 아무래도 잘라야 할 것 같습니다.”
닭 다리를 보기 좋게 통째로 튀겨 보고 싶었던 유지한이었다.
하지만 크기가 너무 큰 탓에 마음을 접어야만 했다.
“요리는 종언 씨에게 모두 맡기겠습니다.”
“네!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팔을 걷어붙인 백종언이 재료 손질을 시작했다.
그 사이, 나머지 세 사람은 잠시 옆으로 빠져서 대화를 나눴다.
“해체한 닭은 부위별로 나눠서 대형 냉동고에 보관 중입니다.”
“경매 준비는 끝났다고 하셨죠.”
“원하신다면 당장이라도 경매 진행할 수 있습니다.”
“음! 좋네요.”
“그리고 부리는 별도로 보관 중이니 필요하실 때 가져다드리겠습니다.”
자잘하고 복잡한 절차들은 꿀잼을 대신하여 장사임이 다 처리했다.
유지한은 그의 일처리에 만족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괴물 닭 경매에서 나오는 금액 중 일부를 몽땅에 수수료로 떼어 주기로 한 만큼, 그는 그 값어치를 톡톡히 하고 있었다.
“그럼 경매 진행해 주세요.”
“네!”
장사임은 미리 준비해 둔 노트북을 열었다.
마우스를 몇 번 클릭하자 경매 사이트에 괴물 닭이 등록되었다.
‘이제 정보를 흘리면…….’
그는 경매 내용을 여러 인터넷 커뮤니티에 흘렸다.
SNS 따위를 통해서 정보가 빠르게 퍼지는 걸 기대하는 것이었다.
닭을 해체하는 영상까지 별도로 첨부했으니, 어떤 반응이 나올지 조금 두근거렸다.
그때 김시후가 말했다.
“지한이 형. 갑자기 생각난 건데요.”
“응?”
“형은 여자친구 없어요?”
“갑자기?”
여자친구라니.
뜬금없이 날아온 질문에 유지한은 따귀를 1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사임 씨는 결혼하셨댔죠?”
“네. 저랑 같이 회사 경영하고 관리하고 있어요.”
“결혼하면 좋아요?”
“서로 마음이 잘 맞으면 좋죠. 의지도 되고.”
“지한이 형은 그런 사람 없어요?”
2번째로 날아온 공격!
유지한은 고개를 살짝 옆으로 돌리며 말했다.
“……지금은 없어.”
“예전에는 있었고요?”
“있긴 있었지.”
과거 유지한이 영웅 학원에 다니던 시절.
상대방으로부터 먼저 고백받아서 여자친구를 사귀었던 적이 있긴 했었다.
비록 사귀기로 시작한 당일 저녁에 상대방이 잘못된 감정이었다며 문자를 통보하는 것으로 헤어졌지만 말이다.
‘그날부터 여자친구가 생길 확률을 알아보는 건 봉인했었지.’
유지한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샘플링에 사용할 조건으로 봉인했던 것들이 꽤 있었다.
이를테면 [내가 1급 영웅이 될 확률], [내가 세계 1위 영웅이 될 확률] 같은 것 말이다.
영웅 학원을 막 졸업했을 때까지는 그런 질문을 많이 던졌지만, 어느덧 나이가 30에 가까워진 어른이 되어 버린 입장.
조건에 약간의 변화를 주면서 능력을 반복 사용해도 확률이 나오지 않거나 스스로 생각하기에 부끄러운 것들은 하나씩 봉인한 것이다.
‘생각난 김에 잠깐 해볼까.’
<—내가 꿀잼에서 1급 영웅이 될 확률>
“…….”
당연하게도 확률은 나오지 않았다.
유지한은 역시 의미 없는 짓이었다고 생각하며 피식 웃었다.
언제나 그렇듯 샘플링의 발동 조건은 미스터리로만 남아 있었다.
‘고유 스킬에 관해서도 연구가 진행 중이라고 하던가.’
적은 수의 인간들만 보유하고 있다는 고유 스킬.
스킬의 이름과 사용방법은 능력이 처음 주어진 순간 모두 유지한의 뇌에 새겨졌다.
우연의 일치인지 그 당시 그는 샘플링(Sampling) 기법으로 제작된 힙합 음악을 듣고 있었는데…….
연구가 진행 중이라니, 언젠가는 능력의 비밀을 풀 수 있을지도 몰랐다.
“약 10분 내로 음식 준비해드리겠습니다.”
여하튼 약 40분 후.
백종언이 준비하는 요리들이 조금씩 완성되어 갈 즈음…….
[상품명 : 괴아리(돌연변이)의 닭 다리]
[현재 입찰가 : $44,000]
경매 시작가 1만 달러부터 시작한 괴물 닭의 닭 다리가 벌써 4만 달러, 한국 돈으로는 4천만 원을 훌쩍 넘어섰다.
호기심에라도 경매 사이트에 접속하는 사람들, 그리고 한 번도 접해 보지 못한 식재료를 자기 손에 넣으려는 사람들은 생각보다 많았다.
누구나 참여 가능한 글로벌 경매 사이트인 만큼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소식을 듣고 경매에 뛰어드는 사람도 있었다.
덕분에 가격은 쉬지 않고 계속해서 상승했다.
노트북으로 현황을 지켜보는 장사임이 침을 꿀꺽 삼켰다.
“새, 생각보다 더 비싸게 팔리겠는데요…….”
닭 다리뿐만 아니라 날개, 가슴살, 염통 등 부위 별로 경매를 진행 중이었다.
경매가 모두 끝나봐야 알겠지만, 전부 합쳐서 2억 이상은 되겠다는 게 그의 의견이었다.
“요리 완성되었습니다!”
전신에서 땀을 뻘뻘 흘린 백종언이 식탁으로 그릇들을 가져왔다.
닭튀김과 구이, 볶음 등 매우 다양한 종류의 요리였다.
김시후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요리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4천만 원이 넘는 닭 다리…….”
“후회돼?”
“한 입당 10만 원이라고 생각하면, 조금은요?”
식재료의 값만 4천만 원 이상!
만약 이 음식들을 고급 식당에서 판매한다고 하면, 어마어마한 가격을 지불해야 할 것이다.
“아주 좋은 경험 한다고 생각해.”
유지한은 씨익 웃었다.
어떤 의미에서는 돈 주고 먹기도 힘든 음식이었다.
그는 식탁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백종언과 장사임을 바라보며 말했다.
“여러분도 와서 드세요.”
“아닙니다!”
“저희가 어떻게…….”
휘휘 고개를 젓는 두 사람.
혹시라도 귀한 식재료를 망칠까 봐 노심초사했던 백종언과 장사임이었다.
감히 그것을 먹는다는 건 선택지에 없었다.
하지만 유지한은 그들에게 계속 권유했다.
“만들었으니 맛은 봐야죠.”
“그래도…….”
“빨리 오세요.”
네 사람은 결국 함께 식사를 진행했다.
“우와!”
“녹는다, 녹아!”
이빨로 씹을 때마다 느껴지는 새하얀 살결의 부드러움.
닭 뼈에서 우러난 국물의 농후한 감칠맛!
세상 처음 느껴 보는 깊은 풍미가 네 사람의 혀를 강타하고, 음식에 담겨 있는 온기가 빠르게 전신으로 퍼졌다.
과연, 괴물 닭은 유지한의 기대만큼 맛이 매우 뛰어났다.
바삭!
“따흐흑! 왜이리 맛있어……!”
백종언은 자신이 튀긴 닭튀김 하나를 입에 넣자마자 울음을 터트렸다.
그가 몬스터 레스토랑으로 이직을 마음먹은 이유가 바로 눈앞에 있었다.
수많은 음식을 접해 봤을 요리사가 저런 반응을 보이다니.
유지한은 감탄하는 사람들을 보며 생각했다.
‘우리는 경험을 산 거다.’
돈과 경험.
둘 다 그 무엇 하나 빼놓을 수 없을 정도로 중요한 것이지만.
딱 한 가지를 골라야 한다면 유지한은 경험(Experience)을 선택하는 쪽이었다.
경매와 더불어 오늘의 식사는 그 두 가지 요소를 모두 고려한, 나름 합리적인 결정이었다.
‘이제 시작이지.’
이번 괴물 닭은 길드의 시작 단계에 불과하다.
앞으로도 기회가 된다면 그는 기꺼이 새로운 경험에 도전할 생각이 있었다.
“닭꼬치가 맛있네.”
“닭갈비도 드셔 보세요.”
띠리링!
열심히 음식을 먹던 중 유지한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한 손에 젓가락을 들고 있던 그는 발신인을 보지도 않고 통화를 수락했다.
“쩝쩝, 여보세요.”
—지한 씨?
“누구시죠?”
—…….
누구냐는 질문에 잠깐 침묵이 이어졌다.
—제 번호 저장 안 해 뒀어요?
“누구신데요?”
—눈송이의 민유리입니다.
“……!”
우뚝.
입으로 향하던 유지한의 젓가락이 허공에서 정지했다.
휴대폰 화면을 확인해 보니 진짜로 민유리의 번호가 맞았다.
‘뜬금없이 여자 목소리가 들리더라니…….’
그는 조용히 젓가락을 자신의 앞접시에 내려놓았다.
“안녕하세요. 유리 씨.”
—…….
“번호 저장해 뒀습니다. 지금 밥 먹던 중이라서 그래요.”
—아, 그런 거였어요?
“예, 예.”
유지한의 해명에 민유리의 목소리가 조금 밝아졌다.
한숨을 돌린 그가 그녀에게 물었다.
“그런데 무슨 일이세요?”
—얼마 전에 사냥한 괴냥이 처리 때문에 연락드렸어요. 꿀잼에서는 따로 이용하시는 업체가 있다고 하셨죠?
“예. 마침 그쪽 대표님이 한 자리에 있네요.”
—번호 알려 주시면 잘 이야기해서 보내드릴게요.
“고생 많으셨습니다. 혼자서 처리하기 힘드셨을 텐데.”
—아니에요. 거의 다 칠라가 옮겨 줘서.
눈송이에서는 힘 좋은 칠라가 짐꾼 역할을 대신한다.
대부분의 짐을 녀석이 옮겨 주었기에 실제로 민유리가 한 일은 거의 없었다.
칠라를 참 쓸 만한 녀석이라고 생각하는 유지한이었다.
—그때 도와주신 거, 다시 한번 감사드려요.
“음……. 그냥 말로만요?”
—네?
“가능하시면 만나서 밥이라도 한 끼 사주시죠.”
—앗, 네! 밥 정도야 얼마든지 사드릴 수 있죠!
유지한은 그녀의 감사를 핑계로 점심 식사 약속을 잡았다.
다만, 정말로 밥을 먹고 싶어서 잡은 약속은 아니었다.
맛있는 음식이라면 지금도 먹고 있었으니까.
‘민유리를 꿀잼으로 데려올 수 있을까.’
너무 큰 욕심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는 칠라와 민유리를 꿀잼으로 데려오고 싶었다.
날렵한 탱커와 실력 좋은 원거리 딜러!
그냥 넘겨 버리기에는 너무나 탐나는 조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