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파티에서 추방된 영웅이 너무 뛰어남-30화 (30/300)

30화. 요리

“아~ 그때 말한 하프 엘프구나.”

정영욱의 파티원들은 알아들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언젠가 그에게서 김시후와 관련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그런데 둘이 친구 아니었어? 그렇게 불러도 돼?”

“친구? ……걔가요?”

정영욱이 풋, 하고 웃었다.

“같은 학원 출신의 영웅들을 모두 다 친구라고 부른다면, 걔도 친구가 맞겠죠.”

“대답이 뭐 그렇게 애매하냐.”

“야, 영욱이가 저번에 알려 줬잖아.”

“뭘?”

“그 반쪽 때문에 수석 졸업 놓쳤다고.”

두 사람은 모두 푸른 달 영웅 학원의 31기 졸업생이다.

그중에서도 정영욱은 31기 마법부 차석 졸업, 김시후는 31기 마법부 수석 졸업이었다.

‘그 새끼만 없었어도…….’

점수 단 몇 점 차이로 갈려 버린 1등과 2등.

정영욱에게 있어 김시후는 자신이 가질 수 있었던 영광을 빼앗아간 존재였다.

“걔가 그렇게 마법을 잘 써? 어디 소속인데?”

“몇 달 전에 자기 길드를 만들었어요.”

“직접 길드를 만든 걸 보면 실력에는 자신 있나 보네.”

“음, 썩 나쁘진 않은데…….”

정영욱은 말끝을 흐렸다.

“사실, 영웅 학원 다닐 때 마법 교수 중에도 이종족이 여럿 섞여 있었거든요? 그런데 그 교수들이 유독 걔한테만 점수를 조금 더 후하게 쳐주는 것 같더라고요. 다른 인간들 점수는 이런저런 핑계로 1점, 2점씩 깎으면서요.”

“……같은 이종족이라고 더 밀어준 거야?”

“와, 그거 진짜 나쁜 새끼들이다. 학생들 가르치는 교수가 그래도 돼?”

“모르죠. 생각해 보면 딱 3학년 때 깎인 점수만 아니었어도 제가 수석이었을 텐데.”

“그런 놈을 어떻게 친구라고 불러. 뭣 같은 잡종 새끼지.”

“다 지나간 일이니깐 지금은 그러려니 해요. 걔가 그런 타이틀이라도 없으면 어디 가서 대접받기 힘들 텐데, 제가 너그럽게 참고 넘어가야죠.”

마치 과거의 일을 훌훌 털어 버린 것처럼 말하는 정영욱.

그는 자신이 차석이 된 것을 실력의 문제가 아니라 형평성의 문제로 여겼다.

만약 푸른 달 영웅 학원의 교수진이 이종족이 섞이지 않은 인간뿐이었다면, 분명 자신이 수석이었을 거라고 확신하는 것이다.

파티원 중 한 명이 그를 위로하듯 그의 어깨 위에 손을 올렸다.

“영욱이는 마음이 너무 착해서 탈이야. 나였으면 그 병신같은 학원 싹 다 뒤집어엎었을걸.”

“걔넨 계속 그렇게 살다가 언젠가 쎄게 벌 한번 받을 거다.”

“야야, 잡종들 얘기 그만하고 회의실이나 가자.”

*****

“에취!”

왜인지 기침이 나온 김시후가 손등으로 코를 쓱 훔쳤다.

사무실 의자에 앉은 그의 입가에는 미소가 걸려 있었다.

“호—”

그는 손에 든 투명한 물건의 표면에 입김을 불었다.

그리고 반대쪽 손으로 쥔 부드러운 천으로 그것을 조심스럽게 닦았다.

[승급 기념패]

[꿀잼 - 제1파티]

[위 파티는 평소 책임성을 가지고 대한민국의 안전을 위해 노력하여 타의 모범이 되었으며, 4급으로의 승급에 성공하였기에 이 패를 드립니다.]

…….

…….

메시지가 적혀 있는 그것은 영웅부에서 보내온 크리스탈 상패였다.

평소에는 투명하면서도 빛을 받으면 은은하게 빛나는 아름다운 수정 전갈의 외피로 만들어진 물건.

김시후는 그것을 아주 귀한 물건처럼 다뤘다.

유지한이 그에게 물었다.

“그렇게 좋냐?”

“그럼요! 4급 파티로 올랐다니……. 사실 아직도 잘 안 믿겨요. 실제로 활동한 기간만 따지면 거의 최단 기간 승급 아닐까요?”

“돌연변이 사냥한 득을 크게 봤지.”

양지철이 꿀잼의 승급을 부추겼던 결정적인 이유는 돌연변이 사냥 때문이었다.

유지한은 영웅부 내부에서 어떤 이야기가 오고 간지 정확히 알지 못했지만, 돌연변이 사냥이 파티에 큰 도움이 됐다는 것을 확신했다.

“그 닭 이름이 뭐였죠? MU-1302였나?”

“그냥 괴물 닭이라고 불러.”

“몽땅에서는 전달받았대요?”

“받아서 잘 보관 중이래.”

꿀잼은 영웅부의 연구소로부터 괴물 닭의 사체를 되돌려받았다.

다른 길드가 끼어들 여지가 없이 기여도 100%.

괴물 닭은 오로지 꿀잼의 소유였다.

김시후가 상패를 책상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사실 아까 저한테 연락 왔어요. 우리 보고 돌연변이를 팔 생각이 없냐고.”

“응? 언론에 사냥한 길드 이름은 공개 안 됐잖아.”

“물어보니까 영웅부 연구소 내부에서 이야기가 조금 샜나 봐요.”

“그건……. 양지철 씨한테 나중에 따로 말을 해 둬야겠네.”

영웅부에서 유출된 정보를 이용해 미리 접근하기까지.

벌써부터 꿀잼에게서 돌연변이를 구입하려는 사람들이 나오고 있었다.

지금껏 나타난 적 없던 녀석인 만큼 다들 큰 호기심을 갖는 것이었다.

“그래서 연락 온 사람은 얼마에 사겠대?”

“처음 전화한 사람은 1억. 그다음은 8천만 원이요. 저는 한 3억, 5억 정도를 기대했는데 그렇게까지는 안 부르더라고요.”

“돌연변이더라도 결국 괴아리에서 변한 거니까. 아무래도 기대치에 한계가 있겠지.”

돌연변이도 돌연변이 나름이었다.

괴물 닭의 오리지널인 괴아리는 1마리당 평균 가격이 10만 원쯤.

보통 몬스터마다 기대하는 수준이 있기 때문에, 괴아리의 돌연변이에 1억을 제시하는 것도 상당하다고 볼 수 있었다.

게다가 영웅부 연구소에서 밝힌 내용에 따르면, 괴물 닭은 그렇게까지 특별한 개체는 아니었다.

몸 안에 독은 없었고, 털이나 뼈도 기존 장비의 소재로 많이 사용되는 것들에 비교해 그리 품질이 뛰어나진 않았다.

“예정대로 해체할 거죠?”

“응. 해체하는 영상은 몽땅에서 따로 찍어 두겠대. 부리만 장비로 만들어서 우리가 쓰자.”

“남호열 씨 찾아가야겠네요.”

유지한은 괴물 닭의 몸에서 그나마 쓸 만한 부리를 장비로 만들 계획을 세웠다.

단단한 부리를 평평하게 펼 수 있다면 작은 방패로 만들거나 방어구에 덧대는 용도로 사용할 수 있을 테니까.

“그런데 그걸 그냥 팔기에는 아쉽지.”

“네?”

“괴물 닭도 결국 닭(Chicken)이잖아.”

“그런데요?”

“닭고기는 직접 먹어 봐야 하지 않겠어?”

“……진심으로 말씀하시는 거예요?”

김시후는 입을 벌리며 경악했다.

설마 돌연변이를 먹어보고 싶다는 의견이 나올 줄은 몰랐다.

“후기에 따르면 돌연변이로 변한 몬스터의 고기가 그렇게 맛있다더라. 게다가 닭고기는 옛날부터 보양식으로 먹던 거니까 좋은 효과가 있을지도 몰라.”

“그, 그래요?”

괴물 닭을 먹겠다는 유지한은 진심이었다.

일례로 몬스터로 변한 인삼, 속칭 괴삼은 보통 귀한 영약으로 취급되는데, 보양식 중 하나로 꼽히는 닭고기 또한 어쩌면 비슷한 효과가 나올 수 있기 때문이었다.

녀석의 몸에 아무런 독이 없는 게 확인된 만큼 시도해 볼 가치는 충분했다.

“너만 괜찮다면 조금만 먹어 보려는데, 어때?”

“형의 뜻이 그렇다면야…….”

“너 치킨에서 가장 좋아하는 부위가 어디야?”

“당연히 닭 다리죠.”

“닭 다리, 콜.”

유지한은 곧바로 몽땅의 장사임에게 연락을 넣었다.

그리고 괴물 닭 해체 시 다리 하나만 별도로 포장해 달라는 요청을 했다.

그러자 장사임이 그에게 말했다.

“지한 씨. 혹시나 해서 여쭤보는 거지만……. 이걸 직접 드시려고요?”

“예. 먹어 보려고 합니다.”

“제가 솜씨 좋은 요리사를 알고 있거든요. 괜찮으시면 소개해 드릴까요?”

“요리사요?”

“저랑 친한 친구인데 예전부터 몬스터 레스토랑으로 이직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녀석이 돌연변이를 요리하게 된다면 장차 요리사 커리어에 큰 도움이 될 것 같아서요. 물론, 요리 솜씨가 훌륭하다는 건 제가 보장하겠습니다.”

장사임은 꿀잼에게 괴물 닭을 요리할 요리사를 연결해 주겠다고 말했다.

뮤턴트, 돌연변이를 요리할 기회는 아무 요리사나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괴물 요리 업계에서는 오히려 돈을 주고서 요리를 하는 일도 있었다.

‘진짜 세상은 넓구나.’

처음으로 알게 된 정보에 유지한은 신기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영웅의 활동에서 파생되는 시장은 그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크고 넓었다.

“그 친구가 요리에 나서는 비용으로 아마 1천만 원 정도는 준비할 수 있을 겁니다.”

1천만 원.

돌연변이를 요리해서 먹는 게 아니라, 단지 요리한다는 경험을 얻는 것으로 꿀잼에 돈을 내겠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유지한은 김시후와의 상의 후 돈을 거절하기로 했다.

평범한 요리사가 무리하게 끌어오는 돈은 별로 받고 싶지 않았다.

“그냥 요리만 맛있게 해 주시면 됩니다.”

“네! 그렇게 전달하겠습니다.”

*****

뚜루루—!

“네, 여기는 국제 크리처 보호 연맹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수화기를 들자마자 여성의 친절한 응대가 이어진다.

하얀색 셔츠와 정장, 그리고 사원증을 목에 건 직원들.

파티션이 나누어진 사무실에서 그들은 열심히 일하고 있었다.

평범한 회사처럼 보이는 이곳은 국제 크리처 보호 연맹, IUPC의 한국 지부.

“진곡 씨. 어제 말한 홍보용 포스터 작업 얼마나 걸릴 거 같아?”

“앞으로 3시간 정도면 완성될 것 같아요.”

“알았어. 다 되면 알려 줘.”

적지 않은 수의 네티즌들은 IUPC가 벌이는 시위나 각종 사건 사고들 때문에 그들에게 꽤 부정적인 인식을 갖는다.

그런데 사람들이 머릿속으로 상상하는 것과 달리, 실제 그들의 사무실은 평범한 회사와 다를 바가 없었다.

그 안에서 진행되는 일도 정상적인 활동뿐이었다.

연맹을 널리 알리기 위해 노력하는 홍보팀, 각종 포스터뿐만 아니라 연맹의 이미지를 만들어 가는 디자이너들, 그리고 연맹으로 들어오는 기부금을 관리하는 부서 등이 주로 이곳에서 근무한다.

“자기, 우리 다음 봉사 활동은 언제더라?”

“이번 달 21일이요.”

“저번에 봉사 갔을 때 생필품을 전달해 드렸던 할머님이 날 꼬옥 안아 주시는데, 마음이 너무 짠하더라고.”

“회사에서 정말 좋은 일 하는 거죠.”

“난 항상 아쉬워. 사람들이 이렇게 좋은 모습을 더 알아 줘야 할 텐데.”

IUPC는 때때로 봉사 활동을 계획하기도 하고, 들어온 기부금 중 일부를 불우이웃돕기에 사용하기도 한다.

그것들 모두가 연맹의 인식을 개선시키기 위한 활동들이었다.

실제로 효과가 있었는지 조금씩 IUPC를 옹호하는 세력도 늘어나고 있었다.

하지만, IUPC에는 소속 직원들에게조차 알려지지 않은 정보가 있었으니.

외부에 공개된 IUPC 사무실 주소와는 완전히 동떨어진 위치의 한 건물.

주위에 지나다니는 사람도 없고 마치 운영을 중단한 공장처럼 보이는 그곳에, IUPC 한국 지부의 일부 직원들이 모여 있었다.

“캬아악!”

“꾸루룩! 꾸룩!”

“이히히힝—!”

건물 안에는 크고 작은 철창이 여러 개 설치되어 있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아주 다양한 종류의 몬스터들이 그 안에 갇혀 있었다.

IUPC가 표현하기로는 사악한 영웅들로부터 크리처를 ‘보호’하는 것이었다.

쾅! 쾅! 쾅!

괴성과 함께 철창을 거칠게 두드리는 몬스터들!

철창 앞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던 어느 남성이 미소 지었다.

“많이 배고프니, 얘들아?”

“벌써 아이들 간식 먹을 시간이네요.”

“간식 꺼낼까요?”

“적당한 거로 하나만 주세요.”

한 여성이 건물 구석에 놓인 여러 개의 마대자루를 눈으로 훑었다.

“제일 싱싱한 게 뭘까…….”

그녀는 몬스터의 먹이를 두고서 고민에 빠졌다.

다른 곳에서 보호 중인 몬스터와는 달리, 이곳에 있는 녀석들은 오로지 신선한 먹이만 찾는 까다로운 놈들이기 때문에 직접 선별하는 작업을 거쳐야만 했다.

그때, 어느 커다란 자루 하나가 살짝 흔들렸다.

“저게 좋겠다!”

그녀는 활짝 미소 지으며 마대자루를 꽉 묶은 끈을 풀었다.

그리고 잠시 후…….

끈이 완전히 풀린 자루 안쪽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온몸이 꽁꽁 구속당한 채 두려움에 떨고 있는 늙은 노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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