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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티에서 추방된 영웅이 너무 뛰어남-29화 (29/300)

29화. 정령사 (2)

“저희 길드를 인수하고 싶으시다고요……?”

“응.”

인수.

하나의 기업이 다른 기업의 경영권을 획득하는 것.

평범한 기업과는 약간 다르지만, 주식회사와 비슷한 구조가 정립된 영웅계에도 길드가 다른 길드를 인수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되어 있다.

속된 말로는 길드를 먹어치운다고 이야기를 하기도 하는데, 보통은 큰 길드에서 다른 길드에 속한 유망한 영웅들을 데려가기 위해 인수를 선택하곤 한다.

윤도하는 그것을 꿀잼에게 제안한 것이다.

“왜요?”

“왜라니? 그건 내가 도로 묻고 싶은 말이야.”

“꿀잼은 고작 2명…….”

“이번 제안에 인원 따위는 별로 중요하지 않아. 지한 씨는 아직 정령의 가치가 얼마나 큰지 모르는 것 같네.”

지금까지 한국에 등장한 정령사는 약 20명 정도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유지한의 등장으로 1명이 더 추가되었다.

이 사실이 알려진다면 한국의 길드는 물론이고 일본이나 중국, 심지어 미국의 길드도 그에게 접촉을 시도할 가능성이 있었다.

정령사는 그만큼 희귀한 존재였으니까.

“처음에는 정령사라고 확신했던 지한 씨만 주사위로 데려오고 싶었어. 그런데 오늘 이야기를 나눠 보니까 같은 길드의 두 사람이 꽤 끈끈하게 엮여 있고, 시후 씨도 상당한 매력이 있더라. 그러니까 길드를 통째로 인수하고 싶어.”

“…….”

“이거 참고로 칭찬이야.”

“아, 감사합니다.”

윤도하의 인정을 받은 김시후가 고개를 숙여 보였다.

1급 영웅의 칭찬은 4급 영웅으로서 커다란 영광.

게다가 윤도하는 허울뿐인 말을 좋아하지 않으니, 단순히 듣는 사람 기분 좋으라고 하는 말은 아니었다.

“으음…….”

꿀잼의 길드장, 김시후는 입술을 일자로 다물고서 생각에 잠겼다.

다른 길드에서 꿀잼을 인수하겠다는 건 그가 길드를 처음 만들 때부터 상상하지도 못했던 것이었다.

‘인수되는 것을 목표로 길드를 만드는 일도 있다고 들었지만.’

신입 영웅 중에는 처음부터 거대 길드에 인수되는 것을 노리고 길드를 만드는 경우도 있었다.

그리 많지 않은 인원수로 꾸준히 두각을 드러내는 길드라면 꽤 좋은 투자 대상이기 때문이다.

인수되는 길드로서는 지분을 처분할 때 큰돈을 만질 수 있고, 평범한 신입 영웅으로 들어가는 것보다 내부에서 더 좋은 대우를 받을 가능성도 있었다.

그 과정에서 이따금 기존 영웅들의 텃세가 있기도 하지만 말이다.

“인수 조건은요?”

“조건을 묻는다는 건, 가능성이 열려 있다고 들으면 되나?”

“다른 곳도 아니고 무려 주사위니까요. 이야기 정도는 들어보고 싶어요.”

“오케이. 내가 몇 가지 생각해 둔 게 있지. 가장 중요한 돈부터 이야기하자면…….”

윤도하가 잠시 뜸을 들이고는 말했다.

“꿀잼의 모든 지분을 넘기는 조건으로 200억.”

“……200억? 진심이세요?”

“이런 거로는 농담 안 해. 서류상 복잡한 조건 따위가 더 붙겠지만, 금액은 확실할 거야. 부족하다고 생각하면 그보다 더 쳐줄 수도 있고.”

200억!

이 커다란 건물을 덮은 마력 장벽에 들어간 비용과 같았다.

‘4급 파티 하나만 있는 길드를 인수하는데 200억을 태우겠다니.’

돌연변이를 사냥하긴 했지만, 아직 MA 2곳에만 입장 경험을 가진 꿀잼은 영웅계에서 제대로 검증되었다고 보기 어려운 길드다.

그런 길드를 데려가기 위해 그 정도 금액을 들인다는 건 굉장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길드에서 오로지 두 사람만을 위한 파티를 만들어 줄게. 지금처럼 계속 2인으로 유지해도 좋고, 원한다면 아직 어느 파티에도 소속되지 않은 영웅들을 조합에 맞게 골라서 파티를 더 풍성하게 꾸릴 수도 있겠지.”

윤도하는 꿀잼이 인수된 다음에도 지금의 파티를 그대로 유지시켜 준다고 말했다.

게다가 주사위에서 새로운 파티원을 구할 수도 있었다.

주사위 정도 되는 길드의 영웅이라면 아무리 못해도 평균보다 나은 능력이 보장된 인재들이다.

그 어떤 영웅을 파티에 끼워 넣더라도 쓸 만한 파티로 만들기에 무리가 없었다.

“내가 직접 지한 씨에게 정령과 관련된 노하우를 가르치는 건 물론이고 뒤에서 지원도 팍팍 해 줄 거야. 그러면서도 파티의 활동에 따로 간섭은 안 할게.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은 구두 계약이 아니라 정식 계약서의 조항으로 넣는다, 이 정도면 어때?”

“다, 다들 군침을 흘릴 만큼 매력적인 제안이네요…….”

“대답은?”

“…….”

“생각할 시간을 줄 수는 있어. 나로서는 대답이 빠를수록 좋겠지만 말이지.”

이렇게나 많은 걸 보장해 주겠다는데 쉽게 거절하지는 못할 테지.

그렇게 생각한 윤도하가 김시후를 바라봤다.

좀처럼 입을 열지 못하고 고민하던 김시후는 유지한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지한이 형도 길드 지분을 가지고 있어요.”

“그래?”

“네. 그래서 형의 의견을 듣고 싶어요. 꿀잼이 인수되는 걸 어떻게 생각하세요?”

윤도하와 김시후의 시선이 유지한을 향했다.

마치 그의 얼굴이 뚫어질 듯 쳐다보는 두 사람.

길드 인수 제안에서 가장 강력한 결정권자는 꿀잼의 지분 중 75%를 소유한 김시후였지만, 정령사인 유지한은 사실상 그보다 더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

“어서 말해 봐. 이번 인수 건은 지한 씨 의견이 가장 중요하니까.”

“저는 제안에 거절하는 쪽입니다.”

“……!”

드디어 발언 기회가 생긴 유지한!

그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제안을 거절했다.

“어…….”

윤도하는 아주 잠깐 입술을 벌렸다가 다시 다물었다.

선글라스 속에 감춰진 눈에는 조금 당혹감이 드러나고 있었다.

설마 이렇게까지 빠르게 즉답이 튀어나올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같은 길드의 김시후조차 조금 놀랐다는 반응이었다.

“이유를 들어볼 수 있을까?”

“간단합니다. 저는 꿀잼이 스스로 주사위 같은 거대 길드까지 성장할 수 있다고 믿으니까요.”

유지한은 꿀잼이라는 길드를 대상으로 샘플링을 사용했던 순간을 떠올렸다.

‘굳이 다른 길드에 인수될 필요는 없다.’

기본 인수 금액만 200억에 달하는 윤도하의 제안은 매우 매력적이다.

제안을 받은 것이 다른 길드였다면 넙죽 절이라도 하면서 승낙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평생을 벌어도 만지기 힘들 수 있는 돈이었으니까.

하지만 꿀잼은 무려 99% 확률로 미래에 거대 길드까지 성장할 가능성을 보유한 길드였다.

“당장 2명뿐인 길드를 거대 길드로 만들겠다고…….”

“예.”

“지한 씨. 혹시 주변에서 건방지다는 소리 자주 듣지 않아?”

“요새 종종 듣습니다.”

지금과는 경우가 조금 다르지만.

당장 얼마 전에만 하더라도 승급 면접에서 이동호에게 비슷한 말을 들었던 유지한이었다.

윤도하는 김시후에게 말했다.

“시후 씨 의견은 어때?”

“저는 지한이 형 의견에 따를게요.”

“지한 씨는 길드원이고 시후 씨는 길드장이잖아. 조직의 리더가 구성원에게 휘둘리는 건 별로 좋지 않은데…….”

윤도하는 내심 김시후가 길드 인수에 동의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가장 많은 지분을 가진 리더가 인수에 동의한다면 지분을 가진 유지한도 함께 따라올 가능성이 있으니까.

그러나 김시후는 마음을 굳힌 듯 고개를 저었다.

“리더가 직원에게 숙이고 들어갈 줄도 알아야죠. 저희는 수평적인 조직문화를 추구합니다.”

“크…….”

윤도하는 양손을 위로 들어 올렸다.

“그래. 졌다, 졌어. 인수 포기!”

깔끔한 포기 선언!

주사위의 역사상 가장 파격적이라고도 말할 수 있었던 200억의 딜은 10분도 지나지 않아서 와장창 깨져 버렸다.

‘아쉽다.’

길드 인수에 더 많은 돈을 제시해도 만족하지 못할 테고.

주사위에서 가장 좋은 대우를 보장해 준다고 한들, 쉽게 넘어오지 않겠지.

이들의 확고한 마음을 주사위 쪽으로 돌릴 방법이 없었다.

“이것도 예상은 했었지. 3인도 아니고 2인 파티로 활동한다는 게 처음부터 쉬운 결정이 아니었을 테니까.”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해? 예상은 했지만, 이해는 못 했어. 과거의 나라면 이런 제안은 덥석 받아들였을걸.”

어깨를 으쓱이는 윤도하.

그도 언젠가 두 사람처럼 4급 영웅이었던 때가 있었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길드가 10곳이 아니라 아직 4대, 5대 길드로 불렸던 시기였다.

“그래도 기왕 여기까지 온 거……. 줄 건 줘야지.”

“예?”

윤도하가 자신의 품속을 뒤적였다.

잠시 후 그가 꺼내 든 것은 반지 상자 같은 조그마한 크기의 상자였다.

그 상자의 덮개를 열자 안쪽에서 새끼손톱 크기의 푸르스름한 보석이 공개되었다.

“어!”

“그거!”

유지한과 김시후는 그것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요전의 오픈 마켓에서 구매했던 단검에서 나온 붉은 보석.

그것과 비슷한 마력이 느껴지는 물건이었다.

덮개를 열자마자 마력이 느껴지는 것으로 보아, 저 상자도 마력 차단 작업이 들어간 물건이 분명했다.

“이걸 본 적이 있어?”

“얼마 전에 오픈 마켓에서 비슷한 걸 하나 얻었는데, 실프가 먹어 버렸어요.”

“운이 엄청 좋았나 보네.”

“그게 대체 뭐죠?”

“마결정.”

마결정.

인간이 마력을 담아 내기 위해 인위적으로 생성한 마석과는 별개의 물건.

그것은 극히 일부 침입자들에게서만 발견된 것으로, 아직 그 존재가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윤도하는 그 존재를 알고 있는 소수의 인원 중의 하나였다.

“정령은 이 마결정에 담긴 마력을 흡수해서 성장할 수 있어.”

유명한 정령사들은 마력이 담긴 보석과 관련된 정보를 이미 알고 있지 않을까.

그렇게 추측했었던 유지한의 생각은 맞아떨어졌다.

“자, 이건 지한 씨 선물.”

“……?!”

유지한은 그가 손으로 튕긴 보석을 손으로 잡았다.

“그냥 주시는 겁니까?”

“선배 정령사로서 후배에게 선물 하나 정도는 줘도 괜찮잖아?”

“그러면……. 감사히 받겠습니다.”

유지한은 그의 호의를 거절하지 않았다.

작은 마결정을 들고 이리저리 살피던 그가 실프를 향해 그것을 내밀었다.

그리고 실프는 마치 평생 이 순간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 마냥, 쏜살같이 마결정에 달려들었다.

화악!

실프가 보석에 닿자 이전에 붉은 마결정 때보다는 조금 약한 정도의 빛이 터져 나왔다.

아주 단단한 마결정이 회색의 가루로 변하는 데는 단 3초도 걸리지 않았다.

보석이 순식간에 가루가 되어 땅으로 떨어지자, 윤도하가 박장대소를 하며 말했다.

“으하하! 되게 욕심 많은 정령이네? 우리 무무는 저렇게까지 환장하지 않던데!”

“…….”

“…….”

실프의 행동으로 인한 부끄러움은 유지한과 김시후의 몫이었다.

*****

“기회가 되면 다음에 또 보자고.”

꿀잼이 윤도하와의 대화를 끝내고 주사위의 본사를 나오는 길.

“……김시후?”

“응?”

김시후는 입구에서 낯익은 얼굴을 발견했다.

“정영욱? 영욱이 맞지?”

“시후 맞구나! 진짜 오랜만이다.”

그는 주사위에 합류한 김시후의 영웅 학원 동기였다.

김시후는 어쩌면 이곳에서 그와 마주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진짜로 만나게 되었다.

모든 볼일을 마친 유지한은 먼저 건물을 떠나고, 김시후는 재회한 친구와 잠시 이야기를 나눴다.

“졸업하고 만나는 건 처음이지?”

“맞아.”

마법부 수석 졸업인 김시후에 이어 차석으로 졸업한 정영욱.

두 사람은 같은 영웅 학원에서 선의의 경쟁을 하던 친구였다.

“오늘 여긴 왜 온 거야?”

“어……. 건물 구경?”

“구경?”

“공사 중이라서 사람이 없길래 허락받고 잠깐 들어와 봤어.”

“그렇구나.”

김시후는 오늘 주사위를 방문한 이유에 대해 솔직하게 이야기하지 않았다.

질문을 파고 들어가면 길드 인수에 관련된 내용이나, 유지한이 정령사라는 정보까지 알려 줘야 때문이었다.

둘 다 외부에는 공개하지 못하는 대외비에 가까운 정보이니만큼 함부로 언급할 수 없었다.

“내 파티 며칠 전에 4급으로 승급했다?”

“축하해. 네가 만든 길드명이 꿀……. 뭐였더라?”

“꿀잼.”

“그래, 꿀잼. 그런데 너라면 진작에 4급이 됐을 줄 알았어.”

“으응. 내가 조금 늦긴 했지.”

“나도 4급으로 승급한 지 벌써 일 년이 넘었거든.”

“다른 친구 통해서 들었어. 동기 중에는 네가 제일 빠르다며?”

정영욱이 소속된 주사위의 파티는 약 1년 전에 4급으로 승급했다.

그들은 4급을 넘어 이제는 3급을 노리고 있었다.

4급으로 오른 지 고작 1년 만에 3급을 바라본다는 건, 그만큼 파티가 상당한 솜씨를 가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야, 영욱아! 빨리 안 오냐!”

멀리서 정영욱을 호출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와 같은 파티에 소속된 파티원들이었다.

손목에 두른 명품 시계를 확인한 정영욱이 말했다.

“2분 뒤에 회의가 있어서 그만 가 볼게.”

“어어, 바쁜데 잡아서 미안하다.”

“다음에 약속 잡고 다른 동기들이랑 같이 얼굴 보자.”

“알았어. 어서 가 봐.”

친구에게 인사를 한 김시후는 건물을 떠났다.

그리고 정영욱은 자신을 호출한 파티원들에게 달려갔다.

“영욱아. 방금 너랑 대화하던 사람 누구야?”

“아, 쟤요?”

같은 파티원의 물음에 정영욱이 김시후가 빠져나간 유리문을 바라봤다.

“저번에 형들한테 말했을걸요?”

“뭘?”

“저랑 같은 영웅 학원 다녔던 반쪽짜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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