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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티에서 추방된 영웅이 너무 뛰어남-28화 (28/300)

28화. 정령사

—우리 길드로 와 볼래요?

윤도하는 통화 도중 유지한을 주사위의 본사로 초대했다.

직접 얼굴을 보면서 얘기하고 싶다는 의견이었다.

본인의 말에 따르면 절대 아무나 초대하지 않는다는 그의 아주 귀한 초대.

마침 길드도 휴식을 선언했고, 딱히 거절할 이유가 없었기에 유지한은 초대를 수락했다.

그런 이유로 도착한 주사위 길드의 본사 건물 앞.

그런데 그곳에는 공사장에나 있을 커다란 가림벽이 건물의 2층 높이로 설치되어 있었다.

가림벽에 크게 적혀 있는 건 사과의 메시지였다.

[공사중]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

위이잉—!

쿵! 쿵!

땅과 귀를 울리는 드릴 소리.

안전모를 쓰고 건물을 오가는 사람들.

포크레인을 포함한 각종 중장비가 건물의 뒤로 돌아서 지하 쪽으로 내려갔다.

“되게 혼잡하네.”

주사위의 본사 건물은 현재 지하 훈련장의 증축을 진행 중이었다.

이미 다 지어진 건물 아래의 지하 공간을 확장하는 것이다.

특수한 가림벽에 담긴 소량의 마력이 소음이 멀리 퍼지는 걸 억제하고 있었지만, 가까이 다가갈수록 더 크게 들렸다.

‘다른 곳이 낫지 않나?’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더니 이래서야 제대로 대화가 가능할지 의문이었다.

유지한의 옆에 있는 김시후가 말했다.

“정말 저도 같이 가도 돼요?”

“이미 윤도하 씨한테 말 해 뒀다니까.”

윤도하가 정식으로 길드에 초대한 것은 유지한뿐이었다.

하지만 그는 반드시 김시후를 데려가겠다고 못을 박아 뒀다.

‘시후가 나보다 정령을 더 잘 알잖아.’

1급 영웅인 그가 굳이 4급 영웅인 유지한에게 관심을 갖는 이유는, 분명 실프의 존재를 알아봤기 때문이리라.

그리고 유지한과 계약한 정령인 실프는 본디 김시후의 어머니, 에르나 하스의 정령.

오늘 주사위에 방문하면 정령과 관련된 이야기가 오고 갈 텐데, 현시점에서 누구보다 실프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이 자리에서 빠질 수는 없었다.

그들은 건물의 안쪽이 비치는 유리문으로 입장했다.

“어?”

“와.”

그런데 건물로 들어온 두 사람은 아주 깜짝 놀랐다.

유리문을 넘어서자마자 귀를 울리던 모든 소음과 진동이 빠르게 멎었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문이 완전히 닫히기도 전이었다.

마치 손님이 없는 고요한 카페라도 들어온 느낌.

땅을 울리던 거대한 드릴마저도 아기가 손뼉을 치는 듯한 정도로 약해졌다.

김시후는 유리문 옆의 건물 내벽을 손바닥으로 쓰다듬으며 감탄사를 냈다.

“이렇게 큰 건물에 고수준의 마력 장벽을 덮다니……!”

“어려운 거야?”

“그럼요! 난이도도 그렇지만 20층을 넘어가는 건물을 마력 장벽으로 다 덮으려면 비용이 어마어마해요. 전문 인력 인건비에, 재료비에……. 어림잡아도 이 장벽에만 200억 이상 들어갔을 거 같네요.”

외부의 가림벽과는 별개로 상당한 방음(防音)과 방진(防振)의 효과를 가진 마력 장벽.

소음과 진동을 줄이기 위해 이 건물의 가격과는 별개로 200억을 더 들였다는 말이었다.

유지한은 혀를 내둘렀다.

역시 거대 길드가 돈을 사용하는 수준은 역시 쉽게 따라갈 수가 없었다.

“그렇게 알아봐 주시니까 기쁘네요.”

1층에 있던 한 여성이 그들에게 걸어왔다.

그녀의 입가에는 작은 미소가 걸려있었다.

“마력 장벽에 관심이 많으신가 봐요? 가격도 거의 실제 금액에 가깝게 맞추시고.”

“어……. 딱히 그런 건 아니지만, 마력을 조사하다가 이것저것 알게 됐네요.”

그녀가 유지한과 김시후를 번갈아 보며 말했다.

“꿀잼에서 오신 분들 맞으시죠? 이쪽이 유지한 씨, 그리고 이쪽은 길드장인 김시후 씨.”

“예. 다 알고 계시네요.”

“보시다시피 큰 공사 중이라 오늘 본사로 찾아오시는 외부인은 딱 두 분밖에 없거든요.”

꿀잼과의 만남 외에는 오늘의 다른 모든 일정을 취소해 버린 윤도하였다.

하지만 그녀는 그런 자잘한 것까지 두 사람에게 알려 주지는 않았다.

“길드장님이 위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따라오시죠.”

그녀가 두 사람을 이끌고 엘리베이터로 이동했다.

다만 평범한 엘리베이터는 아니었다.

“엘리베이터는 저거 아닌가요?”

“임원 전용 엘리베이터는 이쪽에 있습니다.”

일반적인 사람들은 사용할 수 없는 주사위 길드의 고위 임원에게만 허락된 전용 엘리베이터.

유지한이 조금 당황하며 물었다.

“저희가 이런 걸 타도 되는 건가요?”

“두 분을 아주 극진히 모셔오라고 하셨습니다.”

생각보다 더 대접받는 분위기였다.

그들은 조심스럽게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위잉—

문이 닫히자 아무런 버튼을 누르지 않았는데도 엘리베이터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것도 위아래가 아니라 양옆으로 먼저 움직이며 의문의 목적지를 향해 이동했다.

잠시 후 엘리베이터가 정지했다.

“여깁니다.”

유리벽을 통해 따사로운 햇볕이 들어오는 쾌적하고 넓은 공간.

엘리베이터에서 나온 김시후가 파란 하늘이 보이는 유리를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저 유리벽에는 마력 코팅이 들어갔네요.”

“……저것도 알아보시나요?”

“들어오는 햇빛에 조금 낯선 느낌이 들어서요. 아마도 강도와 경도가 높아지는 기본 강화 코팅에……. 투명한 태양전지도 붙어 있네요. 태양에너지를 마력으로 바꿔 주는 거요.”

“……?!”

“아하! 건물을 덮은 마력 장벽은 저기서 생산되는 마력으로 유지하는 거죠? 이야, 신경을 되게 많이 쓰셨나 봐요.”

마치 처음부터 이 빌딩을 짓는 것에 관여라도 한 것처럼 자세한 설명이었다.

여성은 고개를 돌려 김시후를 돌아봤다.

‘눈으로 본 것만으로 이만큼 알아냈다고?’

강화 코팅에 태양광을 이용한 마력 발전까지.

방금 그가 말한 것들은 전부 다 맞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건물의 설계도를 직접 본 것도 아닌데 이렇게까지 파악할 줄이야.

심지어 이 정보는 인터넷이나 외부인에게 공개된 자료도 아니었다.

‘그저 그런 영웅들은 아니야.’

주사위 길드의 4급 영웅들과 비교해도 김시후의 안목은 매우 뛰어났다.

아니, 마력을 파악하는 능력만큼은 3급과 2급에도 꿀리지 않아 보였다.

낯선 외부인과의 미팅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 윤도하 길드장이 갑자기 사람을 초대한 것에는 역시 남다른 이유가 있던 것이다.

“왔구나. 꿀잼.”

“……!”

어느새 엘리베이터 옆쪽에 도착한 윤도하는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선글라스를 낀 그를 발견한 유지한은 흠칫하고 놀랐다.

‘대체 언제 온 거지?’

그가 직접 말을 꺼내기 전까지 다른 누군가가 근처에 있다는 기척조차 느끼지 못했다.

만약 이곳이 MA 따위의 전장이고 그가 적이었다면, 분명 기습을 당했으리라.

“수고했어, 재경아.”

“아닙니다.”

“그만 가 봐도 돼.”

“1층에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퇴근해도 좋다는 말을 가볍게 무시한 그녀는 가볍게 목례를 하고 다시 엘리베이터에 탑승했다.

엘리베이터의 문이 닫히자 윤도하가 말했다.

“태도가 좀 딱딱하죠? 저 친구가 우리 부길드장이에요.”

“엥? 저분이 그 박재경이었어요?!”

김시후가 신기하다는 눈빛으로 닫힌 엘리베이터를 바라봤다.

전사 타입의 영웅이자 주사위의 부길드장 박재경.

그녀는 언론이나 외부 활동을 선호하지 않아서 세간에 얼굴이 덜 알려진 영웅이었다.

‘단순한 안내원인 줄 알았는데.’

윤도하의 1급 파티에 들어가 있지만, 보통 2급으로 취급되는 그녀.

그렇게 뛰어난 사람이 단지 길 안내를 하기 위해 꿀잼을 기다리고 있었다.

“저쪽에 좀 앉아요.”

윤도하는 두 사람을 소파 쪽으로 안내했다.

어디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흔한 외형의 소파였다.

하지만 유지한은 거기에 앉자마자 생각을 바꿔야만 했다.

‘이거 몬스터 가죽이잖아…….’

묘하게 익숙하면서도 이질감이 느껴지는 표면.

바로 몬스터의 가죽으로 만들어진 소파였기 때문이었다.

“말 좀 편하게 해도 되죠?”

“아, 물론입니다.”

“아시아권 밖으로 나갈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존댓말은 신경 쓸 게 너무 많아서 답답하더라고. 지한 씨도 원하면 나한테 반말 써.”

“저는 괜찮습니다…….”

윤도하는 격식을 따지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같은 길드원에게도 반말을 사용하라고 종종 말하곤 하는데, 실제로 그 말을 따르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내가 오늘 지한 씨를 왜 부른지는 알고 있나?”

“정령 때문이 아닌가요?”

“빙고.”

쿠구구궁—

윤도하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모두가 앉아 있는 소파의 앞쪽 바닥에서 무언가가 땅을 뚫고 올라왔다.

온몸이 황색으로 빛나는 작은 두더지처럼 생긴 그것은…….

“무무.”

윤도하와 계약한 땅의 정령, 무무였다.

유지한은 조금 감탄했다.

티비나 뉴스로만 보던 정령을 실제로 보게 될 줄이야.

‘바닥이 멀쩡하네?’

신기하게도 무무가 뚫고 나온 바닥에는 구멍이 뚫리지 않았다.

따라서 뚫는다는 표현보다는 마치 건물이나 땅속을 자유롭게 통과한다는 것이 더 어울렸다.

게다가 무무는 단순한 구체인 실프보다 훨씬 생물에 가까운 복잡한 몸을 가지고 있었다.

같은 정령임에도 여러모로 차이점이 있는 것이다.

윤도하는 무무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지하 공사 잘 돕고 있어?”

“무무. 도와. 공사.”

“잠깐 할 얘기가 있어서 불렀어.”

“바빠. 바빠.”

“얀마, 잠깐이면 돼.”

지하 공사를 돕던 중에 불려와서 작은 목소리로 불만을 토하는 무무.

녀석은 아주 짧게나마 자신의 의사를 말로 표현할 수 있었다.

뛰어난 정령사는 계약한 정령과 대화를 나눌 수 있다고 하는데, 그것에 성공한 케이스가 바로 유지한의 눈앞에 있었다.

“손님?”

“그래. 손님이야.”

“음음…….”

땅에서 솟아난 무무는 김시후의 얼굴을 잠깐 살펴보고는.

이내 유지한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눈을 껌벅거렸다.

“왜 그래, 무무?”

“음믐믐……. 음믐믐……?”

귀여운 목소리를 내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무무.

처음 보는 정령사를 발견해서일까?

하지만 그렇다기에는 조금 묘한 행동에 윤도하는 의문을 가졌다.

“……아무튼. 두 사람은 전에 공용 훈련소에 들른 적이 있었지?”

“예.”

“그때 개인 훈련실에 정령의 흔적이 남아있더라고. 내가 그것 때문에 지한 씨를 계속 찾아다녔어.”

“정령을 사용하면 흔적이 남는 건가요?”

“그 부분은 내가 조금 특이한 경우긴 해. 코가 남들보다 더 좋거든. 다른 정령사였다면 발견하지 못했을지도? 하여튼, 영웅부에서 개인정보와 관련된 건 쉽게 넘겨줄 수 없다고 해서 찾아내는데 시간이 좀 걸렸네.”

유지한과 김시후가 공용 훈련소를 이용한 당일, 윤도하는 영웅부에 그날 훈련소 이용객 명단을 요구했다.

하지만 영웅부에서는 개인정보 보호 차원에서 정보를 넘겨주지 않았고, 윤도하는 결국 길드의 힘까지 동원하여 두 사람을 찾아냈다.

“지한 씨가 오늘 이 자리에 한 명을 더 데려오겠다고 했었는데.”

윤도하가 김시후를 곁눈질했다.

“벽 보고 말하는 거 보니까 엄청 똘똘해 보이긴 하네.”

“…….”

소파에 가만히 앉아 있던 김시후가 긴장하며 침을 꿀꺽 삼켰다.

1급 영웅의 시선을 받는다면 누구라도 그럴 수밖에 없었다.

유지한은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이 자리에 꼭 필요한 사람입니다.”

“왜? 2명뿐인 길드의 길드장이라서?”

“김시후 길드장은 저와 계약한 정령의 이전 계약자의 아들이에요.”

“……이전 계약자?”

유지한은 에르나 하스와 관련된 이야기를 짧게 들려주었다.

그러자 윤도하기 아주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기존에 계약이 파기된 정령과 계약을 했다는 건가?”

“예.”

“지금껏 그런 사례가 없었을 텐데……! 여기서 정령 보여 줄 수 있어?”

“어렵지 않죠.”

뾰롱!

실프가 자리에 모습을 드러냈다.

“저거. 정령.”

땅에 있던 무무는 고개를 들어 실프를 올려다봤다.

자신과 같은 정령을 알아보는 것이었다.

실프도 무무를 알아본 듯 그 위쪽에서 둥둥 떠다녔다.

“바람의 정령이구나. 이름은?”

“실프에요.”

“실프와 시후 씨 어머니와의 계약 기간이 총 몇 년이었는지 알 수 있을까?”

“적어도 50년은 넘었을 거예요.”

“뭐? 50년? 그렇게나 길다고? ……아! 수명이 긴 엘프니까 말이 되는구나. 이해했어.”

인간이 아니라 이종족을 기준으로 생각하자 이해가 더 빨라진 윤도하였다.

그는 우울한 목소리로 말했다.

“50년 경력의 정령사라니……. 너무 아쉽다, 아쉬워! 내가 그 에르나 하스라는 엘프를 만났다면 지구의 모든 정령사들에게 혁신의 바람이 불었을 수도 있었을 텐데.”

“…….”

“예전에는 모습을 바꾸는 게 가능했었어?”

“생물의 모습으로 변하는 걸 말씀하시는 건가요?”

“맞아.”

“실프는 예전부터 쭉 구체의 모습이었어요. 말을 알아듣기는 했지만, 무무처럼 직접 대화를 나눈 적도 없고요.”

“흠, 이세계의 정령은 지구의 정령과 또 다를 수도 있는 건가? 아니면 그냥 정령 간 성향이 다른 걸 수도…….”

대한민국의 1급 영웅이자 크게 인정받는 정령사인 윤도하.

그는 정령과의 계약으로부터 17년 이상이 흐른 지금도 정령이라는 존재에 대해서 완전히 파악하지 못했다.

그들이 대체 어떻게 탄생했으며, 그들의 성장 한계는 어디까지인지, 소환을 해제했을 때 그들이 돌아간다고 하는 정령계는 과연 어떤 곳인지.

연구를 계속 진행해도 몇 가지 사실 외에는 그리 명확해진 것이 없었다.

‘또 새로운 걸 알게 되는구나.’

윤도하가 유지한을 초대한 것은 그것 때문이기도 했다.

새로운 정령과의 만남은 새로운 지식을 얻는 기회가 되기도 하니까.

그리고 초대 이유는 한 가지 더 있었다.

“궁금증은 여기까지만 풀고, 슬슬 오늘의 본론으로 들어가 볼까.”

“정령이 본론 아니었나요?”

“그것도 맞는 말이지. 그런데 본론이 처음부터 2개였거든.”

“2개요?”

“그리고 이야기를 나눠 보니까 시후 씨도 이 자리에 있는 게 다행인 것 같네.”

“네?”

고개를 갸웃거리는 두 사람을 보며 윤도하가 빙긋 웃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할게. 나는 주사위의 길드장으로서 꿀잼을 인수하고 싶어.”

“……!”

이 거대 길드의 총수는 꿀잼을 원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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