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화. 괴냥이 (5)
깨진 창문의 유리 파편이 공중으로 흩어졌다.
평소보다 훨씬 가까워진 파란 하늘과 구름, 뜨거운 햇살.
창문을 깨고 밖으로 나온 순간, 김시후는 잠깐이나마 시간이 멈춘 듯한 착각이 들었다.
하지만 착각은 착각에 불과했다.
질량을 가진 두 사람의 몸은 중력을 이겨 내지 못하고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화아악—
정령 강화로 김시후의 지팡이가 초록빛을 뿜어냈다.
생존 본능으로 전신에 실드를 겹겹이 두른 김시후는 몸을 버둥거렸다.
유지한은 그에게 외쳤다.
“레비테이션!!”
레비테이션(Levitation).
허공에서 떨어지는 물체의 낙하 속도를 줄이는 마법이었다.
<—나와 김시후가 아파트 20층에서 떨어질 때 마법으로 안전하게 착지할 확률>
이전과 마찬가지로 확률은 나오지 않았다.
하필이면 필요한 순간에 도움이 안 되는 능력이었다.
하지만 유지한은 자신의 감을 믿었다.
[레비테이션]
“안 그래도 쓰려고 했어요!”
김시후는 유지한이 외치기 전부터 준비 중이던 마법을 사용했다.
그러자 두 사람의 추락 속도가 빠르게 줄어들었다.
‘이대로 떨어지면 팔이나 다리 하나는 부러지겠는데.’
하지만 그 속도가 일정하지 않고 불안정하여, 유지한이 원하던 만큼의 장면은 나오지 않았다.
김시후는 하늘이 떠나가랴 소리 질렀다.
“근데 저 아직 중력 마법은 미숙하단 말이에요!!”
중력 마법은 기본 원소 마법과는 구조나 형식이 많이 다르다.
원소 마법에는 상당히 능통한 김시후지만, 그 외적으로는 아직 미숙한 부분이 남아 있었다.
4급 영웅인 그가 동급 마법사의 평균보다는 뛰어나도 당장 임시연과 같은 2급이나 경험 많은 고위 마법사와 비교하기에는 무리가 있던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미리 염두에 뒀었던 유지한이었다.
“바닥으로 윈드 밤!”
“……!!”
“1개 말고 중첩으로!”
입술을 깨문 김시후는 점점 가까워지는 바닥을 바라보며 마법을 사용했다.
[윈드 밤]
[윈드 밤]
[윈드 밤]
…….
…….
커다란 마력의 구체가 지팡이 끝에서 비엔나 소세지처럼 줄줄이 엮였다.
총 30개가 넘어가는 그것이 유지한과 김시후의 몸보다 빠르게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그리고 지면과 닿아서 충돌하는 순간……!
후우우웅—!
후우우우웅——!
윈드 밤이 한꺼번에 터져 버리며 형용하기 힘들 정도의 커다란 바람이 일었다.
바람의 세기가 너무 커서 근처의 나무가 휠 듯이 흔들리고, 주차돼있던 차들의 바퀴가 위로 조금씩 들리기도 했다.
“우오오……!”
허공에 떠다니는 먼지처럼 이리저리 흔들리는 두 사람의 몸.
김시후는 날아가려는 모자를 붙잡고 야단을 떨었다.
유지한은 발과 다리에 마력을 집중하고, 김시후를 꽉 붙든 채 보폭을 어깨너비로 벌렸다.
윈드 밤으로 일으킨 바람이 점점 약해지기 시작했다.
쿵!
잠시 후, 유지한은 마치 높은 곳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고양이처럼 놀랄 만큼 안정적으로 지면에 착지했다.
“후, 후아아……!”
“수고했어.”
털썩!
김시후가 바닥에 무릎을 꿇고 엎드렸다.
심장이 아주 빠르게 뛰고, 다리는 후들거렸다.
하지만 다행히 두 사람 모두 상처를 입었다거나 큰 충격은 없었다.
유지한은 발바닥과 무릎에 살짝 시큰한 느낌이 있었지만 딱 그 정도였다.
‘벌써 효과를 본 건가.’
가볍게 넘어지는 일조차 없었으니, 균형 감각이 상승하는 괴냥이 수염차를 마신 게 벌써 효과가 나온 것일지도 몰랐다.
하루 이틀 마신 것으로 효과를 볼 수 있는지는 의문이지만.
결국 다치지 않았으니 어떻게 생각하든 좋았다.
“다음부터는 미리 말 좀 하고 뛰세요……!”
“그것보다 잠깐 집중해 봐. 주변이 이상해.”
1층으로 내려온 유지한이 주변 상황을 살폈다.
아파트 단지 내 여기저기서 사람들의 비명과 충돌음, 괴냥이의 하악질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MA 내에서 몬스터와의 전투는 매우 흔한 일이지만, 문제는 지금 그것이 동시다발적이고 수가 너무 많다는 것.
두 사람이 있던 209동 아파트에서만 사고가 터진 게 아니었다.
“저쪽으로 가자.”
“저 지금 마력 절반 이하로 떨어졌어요.”
“내 뒤로 바짝 붙어 있어.”
두 사람은 괴냥이의 울음소리가 들려오는 가장 가까운 곳으로 움직였다.
쿵! 쿵!
걸음을 옮길 때마다 점점 커지는 진동과 소음들.
그들이 도착한 장소에서 마주친 건 의외의 인물이었다.
‘민유리?!’
30마리가 넘는 괴냥이가 외부에 주차된 차량을 둘러싼 상황.
입구에서 마주쳤던 민유리가 차량 위에서 수많은 괴냥이와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심지어 괴냥이는 어디선가 더 튀어나와 실시간으로 늘어나기까지 했다.
김시후가 질린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뭐 이리 많아……. 진짜 징글징글하다.”
텅!
승용차 지붕에 있던 민유리는 그 위로 올라오는 괴냥이를 피해 커다란 SUV의 지붕으로 뛰어올랐다.
그 위에 서서 아래쪽으로 활을 겨냥했다.
실제 화살을 대신하여 시위에 매긴 것은 그녀의 마력을 엮어 낸 반투명한 마력 화살이었다.
“찍! 찍!”
밑에서 혼자 괴냥이를 막아서고 있는 것은 칠라였다.
사실상 같은 몬스터끼리의 싸움!
하지만 더 우위에 있는 것은 칠라 쪽이었다.
기다란 꼬리로 괴냥이의 몸을 구속한 녀석이 바닥을 향해 그것을 세게 내려찍었다.
퍽! 퍽! 퍼억—!
반복되는 내려찍기로 인해 괴냥이는 순식간에 고깃덩이로 변해 버렸다.
남아 있는 다른 녀석들은 칠라의 몸으로 달려들었다.
하지만 털과 가죽이 상당히 질긴지 괴냥이가 몸을 물거나 발톱을 휘둘러도 크게 티가 나지 않았다.
움직임 또한 야생의 동물처럼 날렵하여 민유리에게 뛰어오르는 것들은 녀석이 다 막아서고 있었다.
친칠라는 쥐과에 속하니, 어느 미국의 만화 영화처럼 쥐가 고양이를 때려눕히는 격이었다.
‘날렵한 탱커와 원거리 딜러의 조합이구나.’
눈송이는 탱커가 적의 주의를 끄는 사이에 원거리 딜러가 공격을 가하는 유형의 조합이었다.
영웅과 영웅이 아니라 영웅과 테이밍 된 펫이라는 것이 조금 다르지만, 조합 자체는 상당히 안정적으로 보였다.
그런데 그들에게 달려드는 적의 숫자가 너무 많았다.
아무리 칠라의 가죽이 두껍다지만 눈이나 얇은 귀를 공격당한다면 큰 피해를 입을 것이다.
‘저기에 우리가 들어간다면…….’
<—나와 김시후가 민유리와 함께 싸운다면, 눈앞의 괴냥이들에게 승리할 확률>
<84%>
완벽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가능성은 충분하다.
“직선으로 뚫는다. 내 뒤로 바짝 붙어.”
“그냥 등에 업히면 안 돼요?”
“움직일 때 걸리적거려서 싫어.”
새로운 인간의 등장에 뒤를 돌아보는 몇몇 괴냥이들.
유지한은 차량을 둘러싼 녀석들에게 달려들었다.
“냐아아옹!”
어느덧 익숙해진 녀석들의 움직임.
앞발을 휘두르는 녀석을 보며, 유지한은 검의 궤도를 살짝 비틀었다.
서걱!
괴냥이의 발톱과 발톱 사이로 들어간 검날이 녀석의 발바닥을 두 갈래로 쪼개 버렸다.
등 뒤로 바짝 붙은 김시후의 보조를 받으며, 그는 앞쪽으로 거침없이 길을 뚫어 냈다.
“냐아앙?!”
검을 휘두를 때마다 괴냥이가 괴성을 지르며 쓰러져 나갔다.
괴냥이에게 익숙해진 그의 공격은 발톱에 막히는 경우가 현저히 줄었다.
김시후는 유지한의 보호를 받으며 몸에 남은 마력으로 마법을 난사했다.
“……꿀잼?”
조금씩 앞으로 다가오는 유지한을 발견한 민유리가 눈을 크게 떴다.
이내 그들이 칠라와 함께 싸운다는 것을 인식한 그녀는 조금 더 자신 있게 활시위를 잡아당겼다.
피슈웅!
두 영웅의 참전으로 사냥이 더 안정적으로 변했다.
다분히 갑작스럽게 뛰어든 것임에도 꿀잼과 눈송이는 의외로 조합이 잘 맞았다.
따로 연습한 것도 아닌데 연계 공격까지 가능할 정도였다.
“냐아아옹!”
“하아악—!!”
약 8분 뒤.
살아남은 놈들은 영웅들을 도저히 감당하지 못할 것을 예감하고 모두 뒤로 줄행랑쳤다.
민유리는 그제야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하아아…….”
오늘처럼 수적 열세에 놓인 것은 그녀의 영웅 생활 중 이번이 처음이었다.
두 번 다시 경험하기 싫은 위기였다.
“아, 현기증…….”
많은 마력의 사용으로 머리가 띵한지 관자놀이를 누르는 김시후.
유지한은 지붕 위에 드러누운 민유리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유리 씨! 괜찮으세요?”
“아!”
민유리가 급하게 차 지붕에서 내려왔다.
그리고 유지한과 김시후를 향해 꾸벅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두 분 모두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친 곳은 없어 보여서 다행이네요.”
“대체 밖에서 무슨 일이 있던 거에요?”
“저도 잘 모르겠어요. 다 지하에서 올라온 거 같은데…….”
이 많은 괴냥이들이 다 지하 주차장에 숨어 있던 것일까.
자세한 사정은 밖에 있던 그녀도 잘 모르고 있었다.
“왈왈!”
“……?!”
그때, 자동차 아래에서 앙칼진 울음소리가 들렸다.
조그만 갈색 푸들이 그 아래에서 걸어 나오고 있었다.
“일로 오렴.”
민유리의 손짓에 푸들이 꼬리를 흔들며 그녀에게 달려갔다.
“그 강아지, 밖에서 주인이 찾고 있던…….”
“네. 주인분이 찾고 있더라고요.”
“저희도 들었습니다. 이름이 초코라고.”
“혼자 1층에서 헤매고 있던 걸 발견했어요.”
“1층이요? 집이 21층이라고 들었는데.”
유지한은 푸들이 21층에서 1층까지 혼자서 내려온 걸 신기하게 여겼다.
“남은 놈들은 도망간 모양이고……. 일단 나갈까요.”
괴냥이와 영웅 중 어느 누가 승자인지는 모르겠으나, 주변이 상당히 조용해졌다.
다른 건물에서 들려오던 소음도 더 들려오지 않았다.
“이것들은 나중에 가지러 오죠.”
바닥에는 다 들고 가지도 못할 만큼 괴냥이의 시체가 가득했다.
그들은 괴냥이를 챙기지 않고 MA 밖으로 빠져나왔다.
밖에 대기 중인 영웅부를 통해 상황을 알리는 편이 먼저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무사하셨군요!”
영웅부는 이미 사고가 터졌다는 걸 인지하고 있었다.
그들은 급하게 주위에 있던 3급 영웅까지 끌어 모아다 아파트로 투입했다.
원래대로라면 상위 등급의 영웅은 출입이 제한되지만, 지금처럼 비상시에는 예외였다.
가능하면 더 뛰어난 영웅의 손을 빌리는 편이 좋으니까 말이다.
“정말, 정말로 감사합니다……!”
“왈!”
초코는 무사히 주인에게 돌아갔다.
초코를 안은 여성은 눈물과 콧물을 쏟아내며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오늘 처리한 괴냥이는 제가 다 정리해서 연락드릴게요.”
“진짜요? 뒤처리 되게 귀찮으실 텐데.”
“도와주신 보답이에요.”
민유리는 자신이 SUV 근처 괴냥이의 처리를 맡겠다고 자처했다.
기여도도 2명인 꿀잼에게 더 높게 쳐주어 절반 이상을 양보하겠다고 말했다.
설마 그녀가 이렇게까지 양보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던 유지한이었다.
“지한 씨 전화번호 좀 주세요.”
“제 번호요?”
“네.”
번호를 요청하는 민유리.
유지한은 그녀의 휴대폰을 받아 자신의 번호를 입력했다.
“……흠흠! 조만간 연락드릴게요.”
“예.”
말을 꺼내는 그녀가 긴장한 것처럼 보인 건 유지한의 착각이었을까.
적어도 유지한 본인은 착각이었다고 여겼다.
*****
하루가 지난 다음 날.
다소 격한 전투를 치렀던 유지한과 김시후는 며칠 간의 휴식을 선언했다.
그럼에도 사무실에 나온 두 사람이 인터넷 뉴스를 훑었다.
- [충격! 인천의 4급 MA에서 영웅 8명 사망.]
- [<히어로 논평> 현 MA 등급제, 개선이 시급하다.]
- [영웅부 “괴냥이의 등급 상승은 더 많은 논의가 필요”]
어제의 MA에서는 사망자가 8명이나 발생했다.
관련 뉴스 기사의 첫 줄은 사건이 터진 당시 지하 주차장에 있던 4인 파티가 전멸했다는 내용이었다.
‘어째 느낌이 안 좋아.’
최초로 괴아리의 돌연변이가 등장했던 부천.
그리고 갑작스럽게 수가 불어난 괴냥이까지.
연속된 사고에 유지한은 조금 좋지 못한 느낌을 받았다.
“8명이나 죽었대요.”
“어제 그 전사도 숫자에 포함되겠지.”
사망자 중 하나는 유지한에게 달려들었던 나이프의 전사였다.
굳이 샘플링을 사용해 보지 않아도, 조만간 자세한 상황을 확인하고자 나이프에서 꿀잼으로 연락을 취해 올 확률이 상당히 높았다.
후룹—
김시후가 머그잔에 담긴 괴냥이 수염차를 마시며 말했다.
“흥, 그 사람 죽은 건 그쪽 파티 잘못이죠.”
“네 말이 맞아.”
두 사람은 그다지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다.
싸움이 벌어진 원인은 어디까지나 상대 파티에게 책임이 있었으니까.
MA에서 몬스터가 아니라 같은 영웅을 공격하는 행위는 금기로 여겨진다.
잘잘못을 가리자면 그들에게 할 말이 너무나도 많았다.
지금은 되레 꿀잼에서 먼저 말을 꺼내야 할 판이었다.
- [속보! 괴아리 돌연변이 공개!]
- [영웅부 “전세계 최초로 한국에서 괴아리의 돌연변이를 발견”]
…….
…….
괴냥이와는 별개로 아주 반가운 소식도 하나 있었다.
바로 부천에서 사냥했던 돌연변이가 드디어 외부에 공개된 것이다.
길드장으로서 먼저 연락을 받았던 김시후가 말했다.
“돌연변이는 이번 주 내로 보내 준대요.”
“몽땅은 이미 닭 들여올 준비를 다 해 뒀다더라.”
“해체도 할 거래요?”
“우리가 원하면 도축업자 불러 주겠대.”
“음, 원형 그대로 파는 것도 좋으려나…….”
두 사람은 경매에 부칠 예정인 돌연변이를 어떻게 팔아야 할지에 대해 고민했다.
지금의 온전한 형체를 유지할 것인지, 아니면 닭가슴살, 다리 살 등 닭의 부위별로 해체하여 나누어 팔 것인지…….
이전에 비슷한 사례가 거의 없고, 한번 정하면 되돌릴 수 없는 만큼 반드시 잘 결정해야 했다.
“아 참! 주사위에 연락은 해봤어요?”
“아직.”
“그것도 빨리 처리해야죠. 다른 사람도 아니고 1급 영웅의 요청이잖아요…….”
“그건 그렇지.”
유지한이 휴대폰과 윤도하의 명함을 함께 꺼냈다.
그는 아직 윤도하의 번호조차 연락처에 저장해 두지 않았다.
<—이 명함에 적힌 전화번호가 진짜 1급 영웅 윤도하의 것일 확률>
받은 명함이 진품인지에 관한 확률은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직접 걸어 보면 알겠지.
뚜루루—
명함에 적힌 번호로 전화를 걸자 익숙한 신호음이 들렸다.
전화는 약 5초 뒤에 연결되었다.
—윤도하입니다.
“저 꿀잼의 유지한입니다.”
—오! 지한 씨. 드디어 연락을 주셨구만.
“…….”
휴대폰 너머의 윤도하가 이제야 연락을 했냐며 히죽거렸다.
‘1급 영웅한테 미운털 박히면 한국에서 살기 힘들 텐데…….’
명함을 받은 날에 바로 연락을 할 걸 그랬나, 라고 생각하는 유지한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