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화. 괴냥이 (3)
칠라는 긴 수염이 달린 얼굴을 유지한에게 들이밀었다.
양쪽 코를 벌렁이며 킁킁거리는 것이 그의 냄새를 맡는 것처럼 보였다.
“형 오늘 머리 안 감았어요?”
“아침에 감고 왔는데…….”
유지한은 한쪽 팔을 들어서 옷의 냄새를 맡았다.
친칠라가 좋아하는 냄새가 장비에 밴 것일지도 몰랐다.
추측하기로는 얼마 전까지 사냥했던 괴아리의 피 냄새 정도였다.
‘그나저나 귀엽다.’
햄스터와 같은 쥐과에 속하는 친칠라였다.
크기만 커졌지 그 귀여운 외모는 어디로 사라지지 않았다.
민유리가 유지한에게 물었다.
“혹시 집에서 친칠라나 햄스터류 기르세요?”
“아니요. 동물은 안 길러요.”
“이상하네……. 얘가 이유 없이 이런 행동을 보일 리가 없는데.”
고개를 갸웃거린 민유리가 칠라의 등을 천천히 쓰다듬었다.
그러자 녀석은 기분이 좋아졌는지 눈을 감았다.
당장 녀석이 하는 행동을 보면 말 잘 듣는 강아지와 다를 게 없었다.
그만큼 주인인 민유리를 신뢰한다는 것이다.
“눈송이의 민유리입니다.”
“저는 꿀잼의 유지한. 이쪽은 길드장 김시후입니다.”
“꿀잼이요?”
“네. 꿀잼이요.”
“귀여운 이름이네요.”
민유리는 유지한에게 먼저 인사를 건네자, 유지한도 받아치듯 파티를 간단하게 소개했다.
그리고 그들이 대화하는 것이 꽤 신기하게 느껴졌는지 구경하던 사람들은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뒤늦게 주변의 시선을 의식한 민유리가 칠라의 옆구리를 쿡 하고 찔렀다.
유지한을 뚫어지게 쳐다보던 칠라는 몸을 결계 쪽으로 돌렸다.
“부담 드려서 죄송합니다. 먼저 가 볼게요.”
“예. 수고하세요.”
민유리가 결계 안쪽으로 사라졌다.
동시에 그들에게 쏠려 있던 시선이 급속도로 줄어들었다.
김시후는 유지한에게 말했다.
“저분이 4급 영웅 중에서도 꽤 유명한가 봐요.”
“그래 보이네.”
민유리가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는 유지한.
칠라가 관심을 드러낸 것 그렇다 치고…….
그는 속으로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그가 과거 눈송이와 관련된 뉴스를 본 것은 거의 3, 4년 전의 일.
1인 길드이긴 하지만, 이렇게나 영웅들의 이목이 쏠릴 정도의 영웅이라면 이미 3급으로 승급을 했어도 충분할 것 같은데.
‘내가 신경 쓸 건 아닌가.’
그도 민유리와 마찬가지로 결계를 향해 걸었다.
*****
“결계가 확실히 5급보다 두껍네요.”
결계를 넘어선 김시후가 손으로 반대쪽 팔뚝을 가볍게 쓸었다.
4급 MA의 결계를 넘을 때의 저항감이 아직 피부에 남아 있었다.
“주위에서 뭐 발견하면 바로 말해 줘.”
아파트 단지 내로 들어온 그들은 놀이터나 차량이 세워진 지상의 주차장을 먼저 살폈다.
그러나 외부에서는 괴냥이의 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어쩔 수 없네.’
이렇게 되면 건물에 직접 들어갈 수밖에 없다.
그는 아파트 1단지를 무시하고 곧바로 2단지로 이동했다.
1단지는 이미 수색 중인 파티가 여럿 보였기 때문이었다.
여기저기 부서진 건물의 외벽과 깨져 나간 유리문은 영웅들이 이미 한바탕 싸웠다는 증거.
아마도 그들은 이 MA가 선언되기 직전부터 근처에 있었던 파티일 것이다.
[풀빛아파트]
[207]
“이쯤이 좋겠어.”
유지한과 김시후는 마법이나 충격의 흔적이 거의 없는 207동 건물 안쪽으로 입장했다.
입구부터 대리석이 깔린 널찍한 복도가 보였다.
이 넓이라면 복도에서 전투에 벌일 때 큰 제약이 생기지 않을 것 같았다.
“아래부터 가 보자.”
“네.”
건물은 가장 낮은 지하 3층부터 꼭대기인 29층까지 존재했다.
높은 층수로 갈수록 내려오기도, 뒤처리도 힘들어지는 만큼 유지한은 가능한 낮은 층 위주로 움직일 생각이었다.
어차피 2명이 챙길 수 있는 몬스터는 한계가 있으니 너무 욕심을 부리지 않아도 되었다.
‘아직 전기가 있다.’
1층은 아직 전기가 나가지 않아서 조명도 멀쩡하고 엘리베이터도 정상적으로 운영 중이었다.
하지만 언제 고장 날지 모르는 엘리베이터를 사용하기는 무리다.
결정을 끝낸 두 사람은 비상용 계단으로 향했다.
“어? 당신들 뭐야!”
그런데 갑자기 그들의 뒤쪽에서 어느 남성이 소리를 질렀다.
뒤돌아본 아파트 문으로 다른 파티가 들어오고 있었다.
“너희 뭐냐니까?!”
“……?”
가장 앞에서 버럭 소리 지른 남자가 유지한을 바라봤다.
첫 만남인 그의 말투와 표정이 워낙 마음에 들지 않았기에, 유지한은 다소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쪽이야말로 갑자기 뭡니까?”
“여기 우리 길드가 맡은 장소인 거 몰라?”
“맡았다니? 그게 뭔…….”
“자리라고, 자리!”
쿵쿵!
판금 장화를 신은 발로 대리석 바닥을 내리찍는 남자.
그는 이 아파트가 자신들의 자리라고 주장했다.
유지한과 김시후는 거의 동시에 얼굴을 찡그렸다.
“자리라니. 처음 듣는 소리인데.”
“뭐라고? MA 맵 게시판에 올린 거 못 봤어?”
“그 앱에 게시판 기능도 있었나? 시후, 넌 알아?”
“저도 모르겠는데요.”
“이런 미친……! 니들 대체 어디 길드에서 나왔어?!”
“꿀잼.”
“꿀, 뭐?”
“꿀잼이라고.”
“뭐라는 거야…….”
당연하게도 남자는 두 사람의 길드를 몰랐다.
“아무튼, 여기는 207동부터 209동 아파트까지 우리 나이프 길드가 미리 찜한 자리니까 빨리 꺼져.
“싫은데.”
“뭐?”
유지한은 고민할 것도 없이 즉답했다.
나이프 길드라면 몇 번 들어본 적이 있지만.
저들이 어떤 길드에 소속되어 있든 간에 그의 요구를 들어줄 이유를 찾지 못했다.
“짜증 나게……. 말 안 들을래?”
“어. 안 들을 거야.”
“썅! 듣보잡 길드는 이래서 안 돼. 한국에서 한국말이 안 통한다니까.”
“다 통하고 있어. 안 나간다고 했잖아. 그쪽이야말로 귀가 안 들리나?”
“……이거 진짜 미친 새낀가!”
크게 분노한 남자가 욕설을 내뱉었다.
그가 앞으로 가까이 다가오려고 하자, 김시후도 입을 열었다.
“이봐요.”
“뭐 임마!”
“나는 꿀잼의 길드장입니다. 당신이 이 이상 우리에게 말을 함부로 한다면, 오늘 당장이라도 영웅부를 통해서 나이프에 정식으로 항의서한을 보내겠습니다.”
“……!”
항의라는 말에 남자가 걸음을 멈췄다.
‘저 쪼끄만 놈이 길드장이라고?’
단순히 파티 사이에서 일어나는 다툼이 아니라, 길드 간 분쟁은 그가 감당하기에 규모가 너무 커진다.
결국, 그는 자신의 파티가 있는 뒤쪽으로 물러났다.
그렇지만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유지한을 계속 노려보고 있었다.
‘노려보든 말든.’
유지한은 가볍게 콧방귀를 뀌고는 다시 계단으로 향했다.
예전이라면 몰라도 지금은 저렇게 예의 없는 사람에게 먼저 지고 들어갈 생각이 없었다.
지금의 그는 신분을 드러내지 못하고 자유롭게 활동할 수 없는 케로즈의 비공식 파티원이 아니었으니까.
옆에서 따라 걷는 김시후가 말했다.
“방금 괜찮았어요?”
“조금은 길드장다웠다.”
“조금……?”
*****
꿀잼은 처음 예정대로 지하로 가는 대신, 빠르게 계단을 올라 곧바로 꼭대기인 29층에 도착했다.
조금 불편하겠지만 아래의 파티가 뒤쫓아와서 방해할지도 모른다는 이유에서였다.
“보일러실 문까지 다 열어 봐.”
“그렇게까지 해요?”
“가끔 좁고 어두운 곳에 숨어있는 놈들도 있더라.”
꼭대기부터 각 층에 있는 잠긴 문들을 다 뜯어내고, 집마다 안방과 화장실 욕조 안쪽 등 모두 것들을 훑으며 천천히 내려왔다.
문 대부분이 잠겨 있긴 했어도 몬스터가 숨어 있을 수도 있는 만큼 꼼꼼하게 확인해야 했다.
“찾았다.”
그리고 그들은 26층에서 복도로 나와 있는 괴냥이 2마리를 발견했다.
“냐옹.”
“냐아옹—”
찢어진 장바구니에서 흘러나온 무언가를 열심히 뜯어먹는 녀석들.
유지한이 기억하던 대로 표범과 비슷한 크기에, 주로 코가 길쭉하고 몸에 얼룩덜룩한 무늬가 있는 놈들이었다.
대체로 괴냥이는 밖에서 먹이를 주워 먹던 길고양이가 몬스터로 변한 사례가 많은데, 이번에도 비슷한 경우일 확률이 높았다.
크기만 빼면 외견은 그럭저럭 귀여운 편이지만…….
문제는 굶주린 저놈들이 사람까지도 먹어 버린다는 것이다.
한때 죽은 인간의 팔과 다리를 괴냥이가 오도독 씹어먹는 영상이 인터넷에 퍼져서 난리가 벌어진 적이 있었다.
“맞출 수 있겠어?”
“물론이죠.”
꺾어지는 길목에 몸을 숨긴 두 사람.
아직 괴냥이들은 그들이 26층에 들어온 것을 몰랐다.
스르륵.
김시후는 허공에 윈드 애로우 2발을 생성했다.
천장에 겨우 닿지 않을 정도로 높게 띄운 그것을 복도 쪽으로 천천히 이동시켰다.
피슝!
아래쪽으로 꺾인 윈드 애로우가 괴냥이를 노리고 발사됐다.
오로지 속도에만 집중하여 직선으로 올곧게 뻗어 나간 화살 한 발이 괴냥이 한 마리의 미간을 뚫어버렸다.
“하아아악—!”
“칫.”
그러나 다른 녀석은 기습당한 친구를 보고 공중으로 튀어 올라 화살을 피했다.
숨어 있던 벽에서 복도로 빠져나온 유지한이 하악질을 하는 괴냥이를 향해 달려 나갔다.
후욱!
괴냥이는 마치 스프링처럼 앞으로 뛰어올랐다.
매우 빠르게 날아가는 녀석이 유지한을 향해 사람의 손목보다 두꺼운 앞발을 휘둘렀다.
챙!
검과 괴냥이의 발톱이 부딪혀 단단한 것끼리 충돌한 듯한 소음을 냈다.
검의 강도를 버티지 못한 발톱이 조금 깎여 나가고, 발톱 사이에 생긴 상처로 핏물이 흘러내렸다.
‘묵직하네.’
공격은 막아 냈지만, 녀석의 다리에 실린 힘 자체는 얕볼 수 없었다.
만약 전에 사용하던 검을 그대로 가져왔다면 조금 전의 충돌을 버티지 못하고 부서져 버렸으리라.
유지한은 입을 벌리며 송곳니를 드러내는 녀석을 향해 검을 들어 올렸다.
서걱!
앵그리 야크의 뿔을 갈아 넣은 날카로운 검날은 괴냥이의 앞다리를 뼈까지 무리 없이 잘라 냈다.
녀석은 애써 그의 검을 막아 보려 했지만 크게 소용없었다.
“냐아앙!! 냐아아옹!”
한쪽 다리가 잘린 녀석의 목숨을 끊는 데는 단 7초도 걸리지 않았다.
괴냥이의 2마리의 몸에서 흐르는 핏물이 아파트 복도로 잔뜩 쏟아졌다.
주르륵.
유지한은 품속에 넣어 둔 액체 형태의 몬스터용 지혈제를 꺼내서 괴냥이 위로 뿌렸다.
마력이 담긴 지혈제는 혈액을 빠르게 응고시켜 사냥 후 몬스터를 챙겨갈 때 편하게 해 준다.
괴아리는 몸집도 작고 혈액량도 적어서 신경을 덜 썼지만, 괴냥이는 조금 달랐다.
‘보따리도 새 걸로 사 왔지.’
오늘 챙겨온 보따리는 무게가 가벼워지는 경량화 마법에 더해, 영웅의 마력에 반응하여 허공에 떠오르는 소재를 사용한 물건이었다.
몬스터를 사용한 특수 소재로 가장 작은 스몰 사이즈가 개당 500만 원이 넘어갈 정도로 가격이 비싸지만, 편의성을 위해서라면 돈을 과감하게 투자하는 편이 낫다.
이렇듯 4급쯤 되면 5급보다는 더 신경 써 줘야 할 게 많다.
그리고 김현태 파티에서 모든 잡무를 담당했던 유지한은 그런 것들에 빠삭했다.
“계단 내려가는 것도 일이겠네요.”
“가능하면 2, 3마리만 더 잡고 쭉 내려가자.”
아파트의 구조상 높은 층수에서 커다란 짐을 들고 내려가는 건 성가신 일이다.
하지만 당장은 어쩔 수 없으니, 그들은 바닥에서 살짝 위로 떠 오른 보따리를 이끌고 비상구 계단을 내려갔다.
한참을 그렇게 내려오던 중이었다.
“냐아옹!”
17층을 지나가는 시점.
아래쪽 16층 계단에서 괴냥이 한 마리가 그들을 노려봤다.
“뭣……!”
유지한과 김시후는 황급히 보따리를 내려놓았다.
다다다다!
재빠르게 계단을 뛰어오른 괴냥이가 높게 점프했다.
어깨보다 높게 들어 올린 앞발로 유지한을 노리는 녀석이었다.
유지한은 침착하게 가슴팍으로 날아드는 그 공격을 검으로 받아 냈다.
[윈드 커터]
그보다 살짝 더 높은 계단에 있었던 김시후는 위에서 아래로 바람의 칼날을 날렸다.
한번 조준한 방향으로만 날아가고 관통력도 화살보다 떨어지지만, 시전 속도는 매우 빨라서 급한 상황에 사용하기 좋은 마법 스킬이었다.
“하아아악!”
날카로운 바람에 허리를 베인 괴냥이가 비틀거렸다.
그럼에도 기세를 잃지 않고 사납고 독살스러운 표정으로 유지한을 노려봤다.
인간을 해치는 몬스터에게 동정심은 사치다.
유지한은 허리의 상처 부위에 검을 깊게 찔러 넣음으로써 마무리했다.
“갑자기 튀어나와서 놀랐잖아.”
그는 다시금 지혈제를 꺼냈다.
그런데 죽었다고 생각한 괴냥이의 수염이 갑자기 꿈틀거렸다.
반사적으로 검을 들이미는 유지한!
그때, 그의 머릿속에 무언가가 번뜩였다.
“저 수염, 뭔가…….”
자세히 보니 죽은 고양이의 얼굴에서 유독 굵고 긴 수염 하나가 빠르게 진동하고 있었다.
그는 황급히 검 대신 손을 고양이의 얼굴 쪽으로 가져가서 그 수염을 확 뽑아 버렸다.
몸에서 떨어진 기다란 수염은 색깔이 점점 옅어지며 반투명하게 변했다.
김시후도 뭔가 눈치챈 듯이 눈을 크게 떴다.
“형, 그거 설마!”
“럭키 위스커(Lucky whisker)!”
“……!”
럭키 위스커.
큰 행운을 불러온다는 괴냥이의 수염.
업계 정보에 따르면 매우매우 낮은 확률로 발견된다는 귀한 물건이었다.
여기서 이런 걸 얻게 될 줄이야.
“뭐? 럭키 위스커라고?!”
타이밍 좋게 16층의 문을 열고 나오는 사람들.
입구에서 마주쳤던 나이프의 파티였다.
유지한의 생각대로 그들은 이 건물을 올라가고 있었다.
그대로 한 층씩 올라갔었다면 방해를 받았으리라.
“진짜잖아!”
“말도 안 돼!”
그들은 반투명한 수염을 보고 입을 쩍하고 벌렸다.
유지한은 일부러 주위에 잘 보이게끔, 수염에 묻은 먼지를 툭툭 털어 내는 척 했다.
‘저 새끼들만 없었어도 우리가 잡았을 텐데……!’
파티의 리더이자 아파트 입구에서 소리를 질렀던 남성이 매우 분한 표정으로 그를 노려봤다.
*****
“하늘도 우리가 승급한 걸 축하해 주나 보다.”
“오늘은 진짜 되는 날인가 봐요.”
유지한과 김시후가 히죽거리며 결계를 빠져나왔다.
짧은 사냥으로 획득한 괴냥이는 5마리.
하지만 오늘 얻어 낸 물건은 그것을 몇 배로 곱한 것보다 더 값어치가 있었다.
게다가 마지막에 다시 마주친 파티의 표정을 보고 통쾌함마저 느꼈다.
“사임 씨가 몇 분에 도착하신다고 했지?”
“10분 정도 남았어요.”
10분 뒤에 몽땅에서 이곳을 방문할 예정이었다.
유지한은 모든 짐을 잠시 벽에 기대어 놓고 장사임의 연락을 기다렸다.
“넘어가시면 안 됩니다!”
“안 되긴 뭘 안 돼!”
“다들 조금만 더 힘을 내요!”
“소중한 아이들을 위해!”
한편, MA 입구 앞에서는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시위 중이던 IUPC가 길을 가로막는 영웅부를 뚫으려고 시도하는 것이었다.
쿵!
“아, 안 돼!”
그러다 누군가가 넘어짐으로 인해 영웅부의 방어선이 무너졌다.
IUPC 회원 모두가 길이 뚫린 방향으로 달렸다.
“저기 영웅들이 있다!”
“놓치지 마요!”
“잡아라!”
“……?”
갑자기 안으로 달려 나온 그들은 유지한과 김시후를 둥글게 둘러쌌다.
“아아악!! 여러분 저것 좀 보세요!”
어느 여성이 벽에 기대어둔 유지한의 보따리를 가리켰다.
그녀는 겁도 없이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가서 보따리의 끈을 확 풀어 재꼈다.
“뭐…….”
너무 뜬금없이 벌어진 일에 유지한은 잠시 몸이 굳어 버렸다.
사람이 큰 충격을 받으면 신체가 얼어붙는 때가 있다더니, 그게 딱 지금이었다.
“어떻게 이리 잔인한 짓을!”
“으흐흑! 야옹아, 인간이 미안해!”
여성이 괴냥이의 사체를 바닥으로 꺼내놓자마자 IUPC 회원들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슬픔이라는 감정이 호수 위의 물결처럼 그들 사이로 빠르게 퍼져 나갔다.
심지어 바닥에 무릎을 꿇고 우는 사람도 있었다.
그리고 그 슬픔은 곧 분노가 되었고, 분노는 바로 눈앞에 있는 영웅들에게 향했다.
“니들이 그러고도 영웅이야!”
“영웅? 이딴 놈들은 영웅이 아니야! 그냥 살인마지!”
“당신들 지금…….”
“뭐! 왜! 뭐! 변명이라도 하려고?!”
“억울하게 죽은 우리 아이들을 위해 기도합시다!”
10명이 넘는 인원이 유지한과 김시후를 향해 맹비난에 가까운 말을 쏟아 냈다.
그야말로 개판, 난장판이 되어 버린 상황!
‘귀찮게.’
영웅이 일반인에게 직접 손을 댈 수는 없었고.
할 수 없이 영웅부에서 지원군이 오기만을 기다리던 순간이었다.
“거기 좀 비켜 주지? 내가 그쪽에 볼일이 있는데.”
선글라스를 착용한 남자가 옆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유지한을 향해 손가락질하던 남성이 날카롭게 소리쳤다.
“당신은 또 뭐야!”
“나?”
남자는 쓰고 있던 선글라스를 벗었다.
그의 얼굴을 알아본 IUPC 회원들의 표정이 하얗게 질렸다.
“서울에서 제일 못 된 남자.”
그는 영웅부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한 1급 영웅.
대한민국의 10대 길드 중 하나인 주사위의 길드장.
악동(惡童) 윤도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