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화. 괴냥이 (2)
“괴냥이 떴다는데요?”
“거기로 가자.”
괴냥이.
평범한 고양이가 몬스터로 변한 녀석이었다.
크기는 개체마다 들쭉날쭉하지만, 보통은 다 자란 표범 성체와 비슷한 크기에 기본 성질도 사나워서 마냥 간단하지는 않은 적이다.
하지만 파티의 4급 승급을 알리는 몬스터로는 썩 나쁘지 않았다.
‘몽땅에도 말해 둬야겠네.’
꿀잼과 몽땅은 사냥이 있을 때마다 부천의 5급 MA에서 약속을 잡고 만났다.
몽땅이 미리 부천에서 대기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승급 소식과 활동할 MA를 옮기겠다고 말을 해 둬야 동선 낭비가 적을 것이었다.
“괴냥이 움직임 빠른 거 알지?”
“당연히 알죠. 유명 몬스터 정도는 저도 외우고 있어요.”
괴냥이는 도시에서 흔하게 찾아볼 수 있는 몬스터 중에 하나다.
녀석이 출현하는 MA는 새롭게 등장한 곳 말고도 이미 몇 개나 더 존재했다.
“혹시라도 발톱에 잡히면 안 돼.”
“걱정도 참……. 저 방어 마법도 쓸 줄 알아요.”
“뭐?”
유지한이 깜짝 놀라며 김시후를 바라봤다.
[실드]
촤라락!
눈으로 보일락 말락 얇은 마력의 막이 김시후의 전신을 덮었다.
전사와 비교하면 신체가 약한 편인 마법사가 적의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마법 스킬.
그중에서도 자주 사용되는 편에 속하는 실드였다.
유지한이 눈을 크게 떴다.
“나는 네가 쓰는 거 처음 보는데.”
“저도 왠지 형이 그렇게 생각할 거 같더라고요.”
김현태 파티에서 마법사 임시연은 거의 항상 실드를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항상 티가 났다.
하지만 유지한은 김시후가 실드를 사용하는 걸 본 게 이번이 처음이었다.
전투에서 맨몸으로 있는 걸 보고서 지금까지 굳이 언급하지는 않았다.
마법사들도 개인마다 특기가 다 다른 만큼, 김시후가 아직 방어 마법을 익히지 못했을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평소에는 잘 사용 안 해요.”
“왜?”
“보통 상시 유지하고 있으라고 가르치던데……. 솔직히 유지 비용이 아까우니까요. 제 마력이 무한한 것도 아니고.”
마력을 사용하는 데 있어 효율을 중시하는 김시후.
무의미한 마력 낭비는 그에게 있어 끔찍한 종류의 행동이었다.
“요새 신인 마법사 중에 실드를 한 번에 1시간도 유지 못 하는 애들은 없을걸요? 설령 중간에 마법이 취소되더라도 몇 초 내로 다시 사용 가능하고요. 제가 있던 학원에서는 그걸 꽤 중요하게 여겨서 별도의 시험도 있었어요. 시험 통과 못 하면 졸업도 안 시켜 줬고요.”
“몇 년 만에 그렇게나 변했네.”
“저는 부천에서 돌연변이 마주쳤던 상황에서만 잠깐 썼어요.”
돌연변이와의 전투에 몰입했던 탓에 김시후가 몸에 두른 마력을 눈치채지 못했던 유지한이었다.
게다가 오늘도 코앞에서 사용하는 걸 직접 봤으니까 아는 것이지, 저렇게 깔끔하게 갈무리된 마력은 멀리서 본다면 알아보기 쉽지 않았다.
‘요새 신인들은 무섭구나.’
케로즈의 사장실에서 박중섭이 했던 말들은 어쩌면 틀리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
인천에서 신규 MA가 열린 곳은 아파트 단지.
괴냥이의 발견으로 해당 아파트는 1단지부터 마지막 5단지까지 모두 다 MA로 선언되어 버렸다.
집 안에서 떨고 있다가 영웅들과 함께 무사히 밖으로 빠져나온 사람들은 아파트와 조금 떨어진 곳에서 서성거렸다.
“어휴! 이게 대체 무슨 일이람!”
“휴대폰이고 지갑이고, 다 집에 두고 나왔는데…….”
그 아파트에서 MA가 선언된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주민들은 티비나 뉴스로만 접하던 일이 자신에게도 벌어지자 크게 불안해했다.
좀처럼 안정을 되찾지 못하고 MA 입구를 가로막는 영웅부 관계자들을 억지로 비집고 들어가려는 사람도 있었다.
유지한과 김시후는 근처에서 상황을 잠시 지켜보고 있었다.
“사람이 되게 많아요.”
“MA가 발생한 지 얼마 안 지났으니까 다들 혼란스럽겠지.”
안으로 들어가는 파티가 있을 때마다 사람들의 시선이 그쪽으로 쏠렸다.
유명 영웅이 찾아오는 걸 기대하는 것이었다.
그래 봤자 4급 중에는 그리 유명한 사람이 없겠지만.
‘그리고 저 사람들은…….’
유지한이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아파트와 크게 관련이 없는 이들이 한쪽에 우르르 몰려 있었다.
“영웅들은 죄 없는 크리처 사냥을 중단하라!”
“중단하라! 중단하라!”
“크리처는 마땅히 존중받아야 할 생명이다!”
“생명이다! 생명이다!”
커다란 글씨가 그려진 크고 작은 피켓을 들고서 모여든 사람들.
그들이 외치는 목소리가 아파트 근처에서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영웅부 직원들과 경찰 몇 명만이 그들을 감시하고 있었다.
“저거 그 사람들 맞죠?”
“IUPC.”
시위대처럼 보이는 그들은 국제 크리처 보호 연맹(International Union for the Protection of Creatures).
주로 IUPC라고 불리는 단체의 회원들이었다.
IUPC는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퍼져 있는 단체로 거기에 속한 이들은 괴물을 몬스터(Monster)라고 부르지 않고 크리처(Creature)라고 바꿔 부른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그들이 ‘괴물’이 아니라 다른 평범한 동물과 식물처럼 인간과 함께 공생할 수 있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형은 저 사람들 의견에 동의하세요?”
“그럴 리가.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역시 그렇죠?”
유지한을 포함한 대다수 영웅은 그들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
몬스터 때문에 다치고 죽어 나가는 사람들과 동료들을 떠올리면 그런 말도 안 되는 의견은 무시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IUPC의 세력은 나날이 상승세였다.
주로 영웅이 아닌 일반 시민들이 그곳에 가입한다고 알려진다.
‘막상 눈앞에 살아 있는 몬스터를 가져다 놓으면 도망치겠지.’
유지한은 어느 남성이 들고 있는 커다란 나무 피켓을 살폈다.
양지철이 선물한 몬스터 즙 박스에 인쇄된 그림과 비교될 정도로 귀여운 몬스터가 그 피켓 위에 그려져 있었다.
마냥 귀엽게 봐줄 수 없는 것이, 저 그림에는 몬스터에 대한 사람들의 적개심을 낮추려는 의도가 심어져 있기 때문이었다.
‘무시하자.’
유지한과 김시후는 소란스럽게 떠드는 사람들을 등지고 걸었다.
간단한 확인 절차를 마치고 아파트 입구 앞까지 들어섰다.
전투에 들어가기 전에 대기 중인 다른 영웅들, 그리고 펼쳐진 결계가 더 선명하게 보였다.
“지한 선배?”
“……?”
그때 누군가가 유지한의 이름을 불렀다.
광나는 갑옷과 함께 기다란 창을 들고 있는 남자였다.
“선배. 저 기억하시죠?”
“너, 케로즈의…….”
“네. 몇 달 전에도 인사드렸어요.”
“맞구나. 오랜만이다.”
유지한은 그의 얼굴을 알아보았다.
케로즈에 있던 시절, 길드 건물에서 가끔 마주쳤던 후배 영웅이었다.
그의 뒤쪽에 있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케로즈에 소속된 영웅들.
그들은 케로즈의 4급 파티였다.
“선배가 길드에서 나갔다는 소식 들었습니다.”
“……그렇게 됐네.”
“그래도 4급에 계셔서 다행입니다.”
“그러냐.”
“한참 위에 있다가 5급까지 추락하는 건 체면이 안 서잖아요.”
유지한은 씁쓸하게 미소 지었다.
길드 내부에 있던 사람들은 정식 파티원 취급을 받지 못하는 그의 사정을 대충이나마 짐작하고 있었다.
무시가 일상이었던 그때는 그나마 이 후배처럼 인사라도 오가는 게 다행인 편이었다.
“앞으로도 마주치면 종종 인사드리겠습니다.”
“그래. 너도 힘내라.”
남자는 살짝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자신의 파티로 돌아갔다.
두 사람을 배려하여 잠시 떨어져 있던 김시후가 다시 다가왔다.
“아는 사람이에요?”
“케로즈 시절 후배. 가볍게 인사만 나눈 사이라서 서로 잘 몰라.”
“흐음…….”
김시후는 남자가 돌아간 파티를 살폈다.
5명 중 2명 정도가 유지한을 힐끔거리며 손으로 입을 가리고 있었다.
웃음을 감추는 행동이었다.
그러나 파티 전체의 분위기와 눈웃음까지는 감출 수 없다.
김시후가 그들을 보며 입술을 실룩거렸다.
“쟤네 쪼개는 거 보니까 기분 나쁜데요.”
“냅둬. 신경 쓸 필요 없어.”
김현태처럼 길드 초기부터 있었던 선배 영웅이 자기들과 같은 등급에 있었다.
유지한도 저들이 지금 어떤 대화를 나누고 있을지 모를 정도로 바보는 아니었다.
하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쓸모없는 일에 들이는 시간이 아까우니까.
“어어?”
“쟤 또 왔네.”
“올 줄 알았어.”
그런데 갑자기 주변에서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다들 하던 행동을 멈추고 뒤쪽을 주시했다.
이상한 분위기를 감지한 유지한도 그들을 따라 시선을 옮겼다.
‘……?!’
이름 모를 커다란 동물이 네 발로 걷고 있었다.
배는 하얗고 나머지는 온통 연회색인 털뭉치.
엉덩이에는 꼬리까지 달려 있었다.
몬스터라고 불러도 의심하지 못할 정도의 크기였다.
‘저건 테이밍이 확인된 몬스터만 받을 수 있는 물건인데.’
굵은 목에 둘러진 태극기와 영웅부의 로고가 박혀 있는 스카프는 녀석이 몬스터가 아니라는 걸 알려 주는 증거다.
테이밍이 공식적으로 확인된 개체를 몬스터로 착각하여 공격하다가는 강한 처벌을 받을 수도 있다.
녀석의 바로 옆쪽에는 등에 적당한 크기의 활을 멘 단발의 여성이 녀석을 따라 걷고 있었다.
근처에 있던 누군가가 말했다.
“너 저 사람 몰라? 눈송이의 민유리잖아.”
“……아.”
눈송이.
유지한도 한 번쯤 들어본 적 있는 길드였다.
젊은 여성이 혼자서 이끄는 1인 길드로 길드장인 민유리는 영웅이자 몬스터를 길들이는 것에 성공한 테이머였다.
‘자기 애완동물이 몬스터로 변했다고 했었어.’
그녀가 길들인 몬스터는 집에서 기르던 애완동물이었다.
명령을 잘 따르는 애완동물이 몬스터가 되어 버린 케이스였다.
‘테이밍 된 몬스터를 펫(Pet)이라고 불렀던가.’
테이머가 큰 길드에 들어가지 않고 1인 길드로 활동하는 것 또한 매우 드문 일이었기에, 유지한은 눈송이 길드가 뉴스에 언급된 걸 본 적 있었다.
“…….”
무표정의 민유리는 주변의 시선을 무시하고 결계를 향해 걸었다.
앞에 있던 사람들은 그녀와 그녀의 펫이 지나갈 수 있도록 자리를 비켜 주었다.
마찬가지로 구경 중이던 유지한과 김시후도 옆으로 살짝 물러났다.
그런데 그들이 꿀잼의 앞을 지나가던 그때였다.
홱!
앞만 보고 네발로 걸어가던 커다란 녀석이 갑자기 고개를 홱 하고 돌렸다.
하필이면 유지한이 서 있는 방향이었다.
‘……날 보는 건가?’
이유는 몰라도 초롱초롱한 검은 눈망울이 정확히 그에게 꽂혔다.
조금 당황한 유지한이 옆으로 슬쩍 움직였다.
그러자 녀석은 고개를 더 옆으로 꺾었다.
그리고는 아예 몸을 틀어 그에게 다가갔다.
“형, 조심해요!”
“괜찮으니까 가만히 있어.”
놀란 김시후가 지팡이를 꺼내 들었다.
유지한은 한쪽 팔을 뻗어서 그를 제지했다.
<—눈앞의 몬스터가 나를 공격할 확률>
<2% 미만>
샘플링까지 사용하여 확인을 마쳤다.
그리고 저 커다란 눈에 담겨 있는 것이 분노나 적의가 아니라는 건 알 수 있었다.
그의 코앞까지 다가온 녀석이 상체를 일으켜 두 발로 섰다.
‘크다!’
두 발로 일어선 녀석은 크기가 커다란 곰과 비슷했다.
아니, 많은 MA를 다녔던 그의 체감상 엔간한 곰보다 더 클 것 같았다.
몸으로 만들어진 그늘은 유지한의 전신을 다 덮을 정도였다.
“드문 일이네요.”
“예?”
커다란 펫에 가려져 있던 민유리가 옆으로 걸어 나왔다.
유지한을 바라보는 그녀는 무척 신기한 걸 발견한 표정이었다.
“칠라가 저 말고 다른 사람에게 이렇게나 관심을 가지는 건 처음이에요.”
“칠라?”
“이름은 칠라. 종은 친칠라에요.”
“……친칠라요?”
세상에, 곰보다 더 큰 친칠라라니.
“민유리가 다른 사람한테 말을 거네?”
“저 쌀쌀맞은 여자가 웬일이래. 너 저런 거 본 적 있어?”
“나도 처음 봐.”
“전에 번호 물어보려다 까였는데…….”
민유리가 유지한과 대화를 나누는 가운데.
유지한을 비웃던 케로즈의 후배를 포함하여 다른 파티까지 그들을 주목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