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화. 4급 (6)
“…….”
“…….”
순식간에 차갑게 얼어붙은 분위기.
여러 질문과 답변이 오가던 면접장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어느 누구도 쉽게 말을 꺼내지 못하는 상황에 유지한은 가만히 이동호를 주시했다.
표정을 굳힌 이동호도 마찬가지로 그를 강하게 노려봤다.
서로 시선이 교차하는 그들 사이에서 보이지 않는 불꽃이 파바박 튀고 있었다.
먼저 입을 연 것은 면접관인 이동호였다.
“유지한 씨. 내가 방금 당신한테 뭐라고 했냐고 물었습니다?”
“요새 워리어즈에서는 길드원 교육을 이런 식으로 하냐고 물었습니다.”
“……잘못 들은 게 아니었네. 그거 대체 무슨 뜻으로 한 말입니까.”
“문장 그대로의 뜻입니다.”
유지한의 말에 이동호가 한쪽 눈을 꿈틀거렸다.
고작 5급 영웅에게 이런 시건방진 소리를 듣게 되다니.
게다가 저 작은 흔들림조차 없는 눈빛!
자신에게 확신을 가지는 자만이 보일 수 있는, 그런 종류의 눈빛이었다.
너무 심기에 거슬렸다.
‘참자, 참아……!’
크응!
이동호는 코로 숨을 세게 내뿜었다.
치솟은 분노를 속으로 꾹꾹 눌러 담고 있었다.
그의 숨소리를 듣는 옆의 면접관들은 안절부절못했다.
‘형, 갑자기 왜 그래……!’
가만히 있던 김시후조차 크게 당황하여 유지한과 이동호를 번갈아 봤다.
대신해서 나서준 유지한이 고맙긴 한데, 상황이 좋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지한 씨. 눈에 힘 좀 푸시죠?”
“…….”
“그래서 방금 하신 말씀은 즉, 내가 교육을 잘못 받았다?”
“시후가 모자를 벗었을 때 말씀하신 것도 그렇고 침입자와 인간 중 누구의 편을 들겠냐는 질문도 그렇고. 모두 이번 4급 승급 심사와 관련된 내용으로는 들리지 않았습니다. 면접관의 입에서 나오기에는 매우 부적절한 발언이라고 생각합니다.”
“부적절하다? ……거, 참.”
그의 대답에 이동호가 잔뜩 인상을 쓰며 소리쳤다.
“그건 면접을 받는 당신이 아니라 내가 판단합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는 면접을 받는 처지입니다만, 사회를 살아가는 것에 있어 필요한 기본 상식은 갖추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미 상식에서 벗어난 발언이 본인의 입에서 나왔는데도 판단이 더 필요합니까? 그건 제가 면접관님의 상식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너 이 자식!”
결국, 화를 참지 못한 이동호가 꽉 쥔 주먹으로 책상을 세게 내려쳤다.
콰아앙—!
상당한 힘으로 두들겨진 책상은 아래층과 면접장 밖에서도 들릴 만큼 커다란 굉음을 냈다.
책상 위에 놓인 볼펜 따위의 물건들이 아주 잠깐 공중으로 떠올랐다가 다시 아래로 떨어졌다.
‘뭣!’
‘깜짝이야!’
다행히 튼튼하게 제작된 책상이 부서지지는 않았지만, 이동호의 바로 옆자리에 앉아 있던 면접관들의 심장은 요동쳤다.
혹시라도 저 분노한 주먹이 자신을 향하는 건 아닐까 걱정되었다.
그런데 분노의 원인을 제공한 유지한은 눈 하나 깜박하지 않았다.
스스스—
주먹을 책상에 붙인 이동호의 몸에서 눈으로 확인하기 힘들 정도로 소량의 마력이 안개처럼 흘러나왔다.
감정의 변화로 인해 체내의 마력이 밖으로 빠져나올 만큼, 그가 높은 재능을 가졌다는 뜻이었다.
그것을 알아차린 김시후는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 마법을 사용할 준비를 했다.
설마 이런 장소에서 싸우려 들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당신, 태도가 너무 시건방져!”
씩씩거리는 이동호가 검지 손가락을 일자로 길게 뻗어서 유지한을 가리켰다.
“오늘 여기가 무슨 자리인지는 알고 있어?”
“4급 승급 심사. 잘 알고 있습니다.”
“알아? 아는 사람이 그따위 소리를 해? 내가 보기에는 지금 자기 처지를 모르는 것 같은데? 정말로 승급을 원했다면 내 앞에서 이딴 식으로 나올 수가 없어!”
“제가 아무리 건방진들 면접관님만 하겠습니까?”
“와, 우와! 아주 그냥 말 하나하나 질 생각을 안 하네……!”
두 사람의 대화가 이어질 때마다 상황은 더 악화되기만 했다.
이러다 진짜 싸움으로 번지는 건 아닐까.
보다 못한 양지철이 다시금 손뼉을 치며 말했다.
“두 분! 거기까지만 하시죠! 오늘 여기에 싸우러 오셨습니까?!”
“아니, 저놈이…….”
“동호 씨도 적당히 해 주세요. 아무리 영웅부에서 바쁜 동호 씨를 초청했다고 한들, 면접자들에게 어떤 말이든 해도 좋다는 게 아닙니다. 저희도 그냥 지켜보는 것에 한계가 있어요.”
“…….”
“그리고 유지한 씨!”
“예.”
양지철이 면접자인 유지한에게는 조금 더 화난 표정과 음성으로 말했다.
“지한 씨 지금 제정신 맞아요? 면접 전에 어디서 술 드시고 오신 건 아니고요?”
“……아닙니다.”
“이동호 씨는 다른 면접관과 마찬가지로 오늘 승급 심사의 면접을 담당하는 분이십니다. 본인 일정도 빡빡하실 텐데 심사에 기꺼이 참석해 주셨어요! 그런데 세상에, 시대와 분야를 막론하고 어느 면접자가 면접관에게 그런 태도를 보입니까?!”
“…….”
“조금 전 지한 씨가 하신 말씀은 이동호 씨 개인이 아니라 워리어즈와 꿀잼 간 길드 분쟁으로 번질 수도 있는 내용입니다. 지한 씨가 앞으로도 영웅계에서 활동하실 거라면 언동에 조금 더 주의해 주세요!”
양지철의 꾸중에 유지한은 시선을 바닥으로 내리깔며 입을 다물었다.
이동호도 썩 만족스러운 얼굴은 아니었으나 말싸움을 더 이어 가지는 않았다.
양지철이 그를 대변해 준 것이 조금 효과가 있던 것이다.
“면접 계속 진행하겠습니다.”
남은 면접 시간에는 어느 일반 기업의 면접에서도 물어볼 법한 자질구레한 질문들이 이어졌다.
“시후 씨는 아버지가 계시죠?”
“일본 교토에서 몬스터 연구를 진행하고 계십니다.”
“교토몬스터연구소 소속 한국인 연구원, 김건오 연구원님! 예전에 그분이 한국 신문사에 기고하신 글 잘 봤습니다. 한국의 MA와 일본의 MA에서 발생하는 몬스터의 종이 절반 이상 같다는 것과 그 원인에 대해 몇 가지 가설을 제기한 글이었죠.”
“아, 그거 저도 본 적 있어요.”
과거에는 영웅으로 활동하던 김시후의 아버지 김건오.
그는 현역에서 은퇴 후 몬스터 연구에 뛰어든 사람이었다.
아내가 떠난 지금은 일본에 자리를 잡고 연구에만 집중하는 연구원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그러면 유지한 씨…….”
몇 차례 더 질문과 답변이 오간 뒤에 꿀잼의 면접은 종료되었다.
*****
유지한과 김시후가 면접장을 떠난 시각.
자리에 남은 면접관들은 다른 파티의 면접을 더 진행하고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앞으로 몇 팀 더 남았죠?”
“10팀 조금 넘을걸요.”
“얼마 안 남았네요.”
호로록—
커피를 마시거나 과자를 하나씩 집어 먹는 면접관들.
면접자뿐만 아니라 면접관도 사람인만큼 쉬지 않으면 판단력이 크게 떨어질 수 있었다.
혹시라도 면접관의 실수로 실력이 없는 파티를 승급시키거나, 충분한 자격을 가진 파티를 떨어뜨리는 일이 발생해서는 안 되었다.
“흠…….”
그런 가운데 의자에 앉아서 팔짱을 낀 이동호가 혼자 책상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양지철은 새콤달콤한 향이 느껴지는 사과 파이를 그의 앞으로 가져갔다.
다른 면접관들은 이동호를 내심 불편해했기에 그가 직접 나서는 것이었다.
“드시면서 하세요. 쉴 땐 쉬면서 해야죠.”
“아, 감사합니다.”
“뭘 그렇게 열심히 보고 계세요?”
양지철이 그의 앞에 몇 분째 놓여 있던 서류를 훑었다.
[꿀잼 - 제1파티]
1. 김시후 (파티장, 길드장)
2. 유지한
꿀잼의 정보가 적혀 있는 서류였다.
‘뭐 하는 거지?’
이 남자가 지금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이동호의 얼굴을 힐끔거리며 눈치를 살피던 양지철이 아주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분들 거네요?”
“네. 아주 건방진 친구가 포함된 2인조.”
“하하…….”
“지철 씨. 아까 이 파티가 미확인된 돌연변이를 잡았다고 했죠?”
“맞아요. 아마 며칠 뒤에 공식적으로 발표가 될 겁니다.”
꿀잼이 사냥한 괴물 닭은 내부 조사가 거의 끝난 상태.
영웅부에서는 외부에 발표할 시기를 조율하고 있었다.
어쩌면 큰 값어치가 있을 닭의 시체 또한 그들에게 돌려줄 준비를 해야 했다.
“다른 파티에서는 중상자가 나올 정도였는데, 다행히 이분들이 합류해서 사냥에 성공했죠.”
“좀 친다, 이건가.”
이동호가 책상에 놓인 볼펜을 잡았다.
그리고 딸각딸각, 볼펜의 버튼을 눌러 댔다.
무의미한 행동의 반복.
생각에 잠긴 것이다.
“…….”
잠시 후.
그는 볼펜의 심이 밖으로 나온 상태로 손을 멈췄다.
그대로 볼펜을 서류로 가져가서 꿀잼의 이름이 적힌 부분에 크게 동그라미를 그렸다.
그걸 본 양지철이 눈을 크게 떴다.
“동호 씨. 설마…….”
“이 녀석들, 4급으로 승급시키죠.”
“……!”
대화를 듣고 있던 다른 면접관들이 놀란 얼굴로 이동호를 바라봤다.
오늘 면접을 본 파티 대다수를 탈락시킨 그가 직접 승급을 원한다고 말한 건 지금이 처음이었다.
심지어 면접에서 유지한과 큰 충돌이 있었는데도 말이다.
양지철이 사과 파이를 집어 먹는 이동호에게 물었다.
“저야 환영이지만, 그런 일도 있었는데 정말 괜찮으시겠어요?”
“자격은 충분해 보입니다. 게다가 따박따박 말대답하던 놈 말대로 제가 어느 정도 실수한 부분도 있으니까요.”
“음…….”
“그리고 아까 소란 피워서 죄송했습니다.”
그는 나름 인정할 건 인정하고 넘어가는 사람이었다.
하프 엘프인 김시후에게는 본인이 생각해도 조금 심한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혼혈이 아니라 그냥 인간이었다면 절대로 하지 않았을 질문이었다.
“개인적으로도 조금 궁금해졌습니다.”
“어떤게요?”
“이 파티가 과연 어디까지 성장할 수 있을지.”
와삭!
이동호가 바삭한 사과 파이를 한 입 크게 베어 물었다.
파이의 작은 부스러기가 꿀잼의 서류 위로 떨어져 내렸다.
‘건방진 자식들.’
할 수 있다면 어디 한번 계속 올라와 봐라.
위에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
다음 날.
사무실로 출근한 유지한은 김시후와 함께 컴퓨터로 영웅부 홈페이지에 접속했다.
오전 11시에 홈페이지를 통해 승급 심사 발표가 예정되어 있었다.
“분명 떨어졌을걸요…….”
힘없는 목소리로 말하는 김시후는 심사 결과에 별로 기대하지 않았다.
어제 면접에서 그런 난리를 쳤으니까 승급은 물 건너갔다고 생각했다.
“말은 그렇게 하면서 손은 왜 자꾸 새로 고침을 누르는데?”
“그냥, 누가 통과했는지 보려고요.”
오전 11시 정각.
제시간에 심사 발표 공지가 올라오지 않자 김시후는 영웅부 홈페이지에서 2초 간격으로 새로 고침을 눌러 댔다.
말은 부정적으로 하지만 결과는 눈으로 보고 싶어 하는 것이었다.
“어차피 떨어져도 상관없어.”
“그렇긴 해요.”
그들은 승급에 연연하지 않았다.
어차피 기회는 다음에도 있을 테니까.
‘다시 도전하면 되지.’
한 번 승급에 실패한 파티가 다시 승급에 도전하려면 2달을 더 기다려야 한다.
유지한은 그 정도야 충분히 기다릴 수 있었다.
그리고 다음번에는 워리어즈에서 온 이동호가 아니라 다른 외부인과 면접을 치를 테니, 오히려 더 자신 있었다.
면접에서 벌어진 일로 이동호가 큰 앙심을 품는다면 또 모르겠지만…….
“떴다.”
곧 홈페이지에 새로운 공지가 올라왔다.
기다리던 승급 심사 발표였다.
김시후가 재빨리 그것을 클릭했다.
그리고.
“4급 승급에 성공한 파티가……. 어?”
“……?”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모니터를 확인하는 두 사람.
총 3개밖에 안 되는 승급 파티 명단에는 그들이 포함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