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화. 4급 (4)
이번 대련은 유지한이 실프와의 계약 이후 처음으로 진행하는 대련이었다.
‘몸이 가볍다?’
실프는 아직 소환하지 않은 상황.
그런데도 유지한은 자기 몸의 근력이나 속도 따위가 전보다 더 좋아졌다고 생각했다.
처음부터 심사관을 쓰러뜨리겠다는 생각으로 달려들었지만.
그는 스스로 예상했던 것 이상으로 선전하고 있었다.
길드에 소속된 영웅과 비교하자면 3급에 해당하는 방윤식이 당황할 만한 실력을 보여 주는 그였다.
탁! 타탁!
그래도 방윤식은 노련한 심사관답게 어떻게든 공격을 잘 막아 내는 모양새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의 적은 한 명이 아니었다.
피슝!
머리보다 훨씬 높게 떠오른 곳에서 대기하던 여러 발의 윈드 애로우 중 하나가 방윤식을 향해 빠르게 떨어져 내렸다.
그는 뒤로 크게 물러나며 화살을 피했다.
그러나 화살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땅에 박히지 않고 공중에 확 멈춰 서더니, 각도를 틀어서 다시금 그를 노렸다.
탁!
그는 결국 목검으로 화살을 쳐낼 수밖에 없었다.
그와 동시에 또다시 아래로 떨어지는 화살들!
‘목검을 노리고 있어.’
방윤식은 목검에서 화살을 쳐낸 부위를 확인했다.
화살과 여러 번 부딪힌 충격으로 표면 여기저기에 흠집이 생겼다.
심지어 안쪽으로 작게 파인 부분도 있었다.
대련 시작 전에 연습이 아니라 실전처럼 공격해 오라고 했거늘, 김시후의 마법은 방윤식의 몸이 아니라 목검을 노리고 있었다.
그 이유는 아마도 상대의 안전을 위해서겠지.
‘신입에게 무시당하다니……!’
문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법이 꽤 위협적이라는 것에 있었다.
빗겨 내거나 쳐내지 않으면 높은 확률로 몸에 직격할 것처럼 자유롭게 움직이는 화살!
계속 막아 내는 것도 훌륭한 선택지는 아니다.
마력을 담아내기가 힘든 평범한 목검은 마법 스킬을 막기에 적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자칫 방심했다가는 방어는커녕 목검이 부서질 확률이 높았다.
‘이놈 때문에 가까이 다가갈 수가 없잖아.’
시선을 김시후가 있는 방향으로 돌리자, 또다시 거머리처럼 달라붙는 유지한.
여유 부리는 마법사를 처리하기 위해 접근을 시도하지만, 앞에서 이놈이 계속 막고 있으므로 불가능했다.
지치지도 않는 것인지 검을 휘두르는 속도가 통 줄어들지를 않는다.
갑자기 확 짜증이 난 방윤식은 유지한을 향해 목검을 크게 휘둘렀다.
그리고.
‘아차!’
그가 크게 실수했다는 걸 깨달은 것은, 유지한과 목검이 서로 교차하기 직전이었다.
우직!
2개의 목검이 닿은 순간.
방윤식의 목검이 소리를 내며 반으로 부서졌다.
화살로 인해 푹 파인 부분을 유지한이 제대로 가격한 것이다.
투둑.
부서진 목검의 절반이 검 끝에 잠시 매달려 있다가 결국에는 땅으로 떨어졌다.
반 토막 난 목검을 든 방윤식은 땅에 떨어진 나뭇조각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잡고 있던 손잡이를 놓으며 말했다.
“항복! 항복입니다.”
양팔을 어깨높이로 들어 올린 방윤식이 자신의 패배를 선언했다.
유지한은 앞으로 겨누던 목검을 아래로 늘어트렸다.
“후우……. 수고하셨습니다.”
“안 힘들어요? 쉬지도 않고 공격하시던데.”
“아직 괜찮습니다.”
“젊어서 그런가, 튼튼하시네.”
방윤식은 검을 들고 있던 오른쪽 어깨를 돌렸다.
공격을 막아 낸 충격이 어깨와 팔 쪽에 아직 남아 있었다.
“꿀잼의 유지한 씨. 그리고 김시후 씨라고 했죠?”
“예.”
“당신들 정말로 5급 파티 맞죠?”
“……그러니까 여기에 왔겠죠?”
“아니, 제가 여기서 4급 대련 심사를 맡은 게 거의 2년째인데, 이만큼의 실력을 가진 파티는 처음 봅니다. 정말로 놀랐어요.”
처음에 속으로 무시하던 때와 360도 달라진 방윤식의 태도.
그도 그럴 것이, 방윤식은 최근 2년간 200개도 더 넘는 5급 파티와 전투를 치렀다.
그중에 심사받는 파티를 크게 인정하며 패배를 선언한 횟수는 한 손으로 꼽을 정도.
그리고 오늘 그 횟수가 늘어났다.
2인 파티 상대로서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대련 심사는 통과입니다. 두 분 정말로 멋졌어요.”
“감사합니다.”
“큰 문제가 없다면 면접도 충분히 통과하실 것 같네요. 화이팅하세요!”
방윤식은 웃으며 꿀잼의 두 사람과 악수를 나눴다.
‘아주 괜찮은 파티야.’
마음속으로도 꿀잼을 인정하는 방윤식이었다.
만약 대련이 아니라 서로 제대로 된 장비를 두르고 실전처럼 싸웠다면 어땠을까.
‘……어렵군.’
모르긴 몰라도 그것이 절대 쉽지 않은 싸움이 될 거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이들은 단순히 인원수나 등급으로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으니까.
*****
유지한과 김시후는 다시 휴게실로 돌아왔다.
영웅들이 앉아있던 소파는 여기저기 비어 있었다.
다른 파티들도 꿀잼처럼 심사를 위해 이동한 모양이었다.
“읏차.”
유지한은 심사가 시작되기 전에 대기하던 곳으로 돌아와 앉았다.
그리고 김시후에게 물었다.
“시후야. 너 아까 왜 그랬어.”
“뭘요?”
“사람이 아니라 무기를 노렸잖아.”
김시후가 마법으로 방윤식이 아니라 목검을 노린 것은 유지한과 사전에 합의가 되지 않은 내용이었다.
유지한은 그의 의도를 눈치채고 목검을 부숴 버리긴 했지만, 그 이유를 듣고 싶었다.
“아, 그거요? 그분이 다칠까 봐요.”
“본인이 직접 봐주지 말라고 하지 않았어?”
“그치만……. 그분한테 빈틈이 계속 보이는데 어떡해요! 심장이나 머리를 공격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랬다가는 정말로 심하게 다칠 수도 있었어요.”
김시후는 방윤식과의 전투 도중 심장이나 머리처럼 흔히 인간의 약점으로 분류되는 부위를 공격할 수 있었다.
어림잡아 적어도 3번 이상 그런 기회가 있었다.
실제 행동으로 옮기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김시후는 변명하듯 말했다.
“형은 진검 대신 목검을 쓰면 되지만, 마법은 훈련과 실전의 경계가 너무 모호해요. 치명상을 입을 수도 있다고요.”
“옆에 의료팀도 있었잖아.”
“치유 마법도 만능이 아닌 걸 아시잖아요.”
대련 중에는 수준 높은 의사와 치유 마법을 사용하는 영웅이 포함된 의료팀이 옆에서 대기한다.
하지만 치유 마법은 그리 드라마틱한 효과를 보이지 않는다.
치명상을 입은 사람을 살릴 수 있다고는 장담할 수 없었다.
“그 사람 그렇게 약한 영웅은 아니었어. 본인이 위험해질 걸 알면 바로 항복 선언했을 거야.”
“싸움이 잘 풀리지 않았다면 저도 봐주지는 않았을 거예요. 그런데 형이 혼자서도 잘 하시니까.”
계속 목검만을 노렸던 김시후였지만…….
만약 유지한이 대치 구도에서 밀렸다면 용서 없이 싸울 생각이었다.
그러나 유지한은 방윤식에게서 혼자서도 잘 버텼다.
도리어 상대를 몰아붙이는 모습까지도 나왔으니, 조금 떨어진 거리에서 여유가 생긴 마법사로서는 고민이 될 수밖에 없었다.
“아니, 뭐…….”
할 말이 사라진 유지한은 머리를 긁적였다.
김시후의 태도가 아주 이해가 가지 않는 건 아니었다.
‘실프와 계약한 뒤에 조금 달라진 것 같기도 하고.’
심사관을 혼자서도 무리 없이 몰아붙인 것은 유지한 본인조차 조금 놀랄 정도의 일이었다.
그 원인으로 추정되는 것은 바로 실프와의 계약.
정령과 계약을 맺은 정령사는 정령의 성장과 함께 자기 자신도 성장한다고 한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그와 비슷한 일이 벌어진 것일 수도 있었다.
게다가 얼마 전에는 실프가 정체불명의 보석을 흡수하는 일까지 겪었으니까.
“이제 면접만 남았죠?”
“그렇지.”
대련 심사를 깔끔하게 통과했으니 남은 것은 영웅부 임원 면접뿐이다.
그런데 면접장에 들어가서 과연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알려진 정보가 없어.’
일반 기업의 면접을 볼 때 도움이 되는 정보들은 인터넷에 많이 널려있지만, 파티 승급 심사에 포함된 면접과 관련된 정보는 그리 많지 않았다.
그리고 유지한은 주변에 마땅히 조언을 구할 영웅도 없었다.
김현태 파티에 오랫동안 있긴 했으나 거기서 같은 파티원과 사적인 연락을 나눈 적은 매우 드물다.
그나마 이미아의 요구로 전화번호를 교환한 적은 있지만, 현실에서 만나는 걸 제외하고 그녀에게 연락한 건 3년 전이 마지막이었다.
참으로 가난한 인간관계였다.
“파티원 전부 정장을 입은 곳도 있었죠.”
“나도 봤어. 우리도 갈아입을 옷 따로 챙겨올 걸 그랬나…….”
한 번도 관련 경험이 없었던 유지한과 김시후는 조금 긴장한 채 면접이 시작되기만을 기다렸다.
면접은 대련에서의 순서와 달라지기에 30분 이상을 더 기다려야만 했다.
******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가, 감사합니다!”
영웅부의 면접장.
같은 파티에 소속된 4명의 영웅이 면접관들을 향해 허리를 거의 90도로 숙여 인사하고 문을 나섰다.
양지철은 옆쪽에 일렬로 앉은 다른 3명의 면접관을 향해 말했다.
“이 파티, 전보다 훨씬 나아졌죠?”
“그러게요. 나쁘지 않아요.”
“준비를 많이 해 왔나 봐요.”
자리에 남은 면접관들은 각자 볼펜으로 하얀 서류에 무언가를 끄적였다.
면접을 끝낸 파티의 특이사항이나 면접 점수와 관련된 내용이었다.
그때, 영웅들이 빠져나간 문을 주시하던 어느 면접관이 말했다.
“방금 나간 파티, 탈락시키죠.”
“……네?”
“정말로요?”
“네. 탈락입니다.”
갑작스러운 남자의 말에 다른 면접관들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방금 나간 이들은 승급 심사에 도전하는 게 이번이 4번째인 파티다.
대련 심사에서 충분히 통과할 만한 점수를 얻었고, 면접에서도 썩 괜찮은 인상을 보여 주었다.
4급 파티로 승급하기에는 충분할 정도였다.
하지만 남자는 자기 뜻을 굽히지 않았다.
“탱커 포지션에 있는 영웅이 답변도 느리게 하고 자꾸 우물쭈물한 모습을 보여 주는 게 너무 마음에 안 듭니다. 4급으로 올려 주고 싶지 않아요.”
“그 정도는 개인마다 성격이 다른 것으로 이해할 수 있는…….”
“아니요. 탱커는 파티를 지탱하는 뿌리! 전투 상황이든, 일상생활이든 절대로 그런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됩니다. 저래서야 자기 파티원이 공격당할 때도 방패만 들고서 우물쭈물하고 있겠지요.”
찍!
남자는 새빨간 볼펜으로 서류에 적힌 파티의 길드명에 가로줄을 쫙 그었다.
심사에 탈락했다는 의미였다.
다른 면접관들은 석연치 않은 표정을 지었으나, 이내 그의 뜻을 받아들이고 서류를 한 장 뒤로 넘겼다.
면접을 진행하던 중에 이것저것 메모해 놓은 내용은 모두 쓸모가 없게 되었다.
“흥, 쓸 만한 파티가 영 보이지 않네요.”
파티를 탈락시킨 남자는 영웅부의 직원이 아니었다.
[워리어즈 - 이동호]
서류 앞쪽에 놓인 종이 명패처럼, 그는 워리어즈 길드에 소속된 영웅.
4급 승급 심사를 도와주기 위해 외부에서 특별히 파견된 인물이었다.
승급 심사 시 영웅부의 의견으로만 심사하면 공정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이유에서 필수로 외부인을 들이게 되어 있는데, 그는 오늘 그것을 위해 참여한 것이다.
어느 면접관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동호 씨. 혹시 오늘 어디 기분이라도 안 좋으신 건…….”
“아니요? 파릇파릇한 신인들 보니까 굉장히 기분 좋은데요?”
“…….”
“저는 절대로, 원래 예정에도 없던 심사 일정이 잡혀서, 짜증이 난 게 아니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십쇼?”
“아, 네…….”
단어를 하나하나 강조하듯이 끊어서 말하는 이동호였다.
마치 화를 꾹 참고 있는 듯한 그 모습에 다른 면접관들은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너무 깐깐한 거 아니야?’
‘심사받는 파티들 불쌍하다.’
‘오늘은 진짜 잘못 걸렸네.’
외부에서 파견된 면접관의 힘은 상당하다.
다른 면접관이 모두 승급에 동의하더라도 이동호가 반대한다면 그 파티는 승급에 탈락한다.
양지철은 별 의미 없이 손가락으로 볼펜을 툭툭 쳐 댔다.
오늘처럼 이 볼펜으로 적은 메모가 의미가 없는 날은 드물었다.
‘이러다가는 이번에 승급하는 파티가 3개도 안 되겠어.’
아마도 최근 진행된 승급 심사 중 최저 기록이 아닐까.
양지철이 그렇게 걱정하던 순간이었다.
‘다음은 드디어 꿀잼…….’
양지철이 내려다보는 서류에 적힌 길드명은 꿀잼.
그가 직접 사무실에 찾아가서 승급을 부추겼던 곳이었다.
그래도 여기는 조금 다른 결과를 기대해도 좋지 않을까.
똑똑.
“들어오세요!”
이윽고 면접장의 문이 열렸다.
조금 긴장한 얼굴의 유지한과 김시후가 안으로 들어왔다.
비어있는 의자 앞까지 다가온 그들이 면접관들을 향해 말했다.
“안녕하세요. 저희는 꿀잼…….”
“잠깐, 거기! 머리에 쓴 모자부터 벗죠.”
인사가 제대로 끝나기도 전에 이동호가 김시후의 모자를 지적했다.
잔뜩 긴장한 모습이 역력한 김시후가 바로 옆의 유지한을 바라봤다.
그와 눈을 마주친 유지한은 말없이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네.”
김시후가 아주 짧게 대답하며 천천히 모자를 벗었다.
검은 비니 모자 속에 감춰져 있던 회색의 잿빛 머리칼과 서로 모양이 다른 그의 양쪽 귀가 밖으로 드러났다.
그러자 지켜보고 있던 이동호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뭐야, 반쪽짜리였잖아?”
“……?”
이 개새끼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