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화. 4급 (3)
뜬금없이 유지한에 관해 묻다니.
왜 이 사람 입에서 그 이름이 나온 거지?
예상치 못한 질문에 박중섭은 조금 혼란스러워졌다.
“그야 물론 알고 있습니다. 오랫동안 케로즈에 있다가 최근에 아쉽게도 길드를 떠난 영웅이죠. 그런데 그 친구는 갑자기 왜……?”
—그분이 얼마 전 다른 길드에 들어갔는데, 이번에 그쪽에서 4급으로 승급 신청이 들어왔습니다.
“……!”
유지한이 승급 신청을 했어?
아니, 케로즈를 떠난 지 대체 얼마나 됐다고.
걔가 그럴 깜냥이나 되던가?
“…….”
하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다.
박중섭은 떠오르는 질문들을 모두 속으로 삼켰다.
여기서 개인적인 호기심을 드러내는 건 좋은 선택이라고 볼 수 없었다.
‘그래. 걔가 파티에서 마냥 놀기만 한 건 아니겠지.’
여태 케로즈에서 보고 배운 게 있을 테니 4급으로 올라가는 건 이해할 수 있었다.
그 시기가 너무 빠른 감은 있지만 말이다.
“오! 그거 정말 축하할 만한 일이네요.”
그는 살짝 들뜬 목소리를 연기했다.
길드를 떠난 영웅에게도 축하를 보내는 대인배의 이미지를 챙기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제가 이 분 정보를 조회해 보니까 이상하게도 활동 내역이 텅 비어 있네요? 그나마 최근에 MA에 들어가셔서 채워진 건 있는데 그 전 7년의 기록은 아예 보이지 않아요. 이게 어떻게 된 거죠?
“아, 그 친구 같은 경우에는 특정 파티에 소속되지 않고 자유롭게 근무했습니다. 그래서 따로 경력은 남지 않았죠. 이건 저희 내부 정책에 따른 것으로 본인도 거기에 동의하고 활동했으니 별문제는 아닙니다.”
—저희가 길드 내부의 깊은 사정까지는 고려하지 않으니까……. 일단 알겠습니다.
비공식 파티원이라는 제도는 유지한이 케로즈와 맺은 계약서에 두루뭉술하게 적혀 있었다.
변호사의 자문까지 얻어 가며 작성했기에 향후 법적인 문제로 번질 염려는 적었지만, 혹시 모르니까 완전히 감추는 편이 좋았다.
유지한 본인도 생각이란 게 있다면 계약 내용을 공개하지는 않을 것이었다.
—유지한 씨가 케로즈에서 어떤 영웅이었는지 조금만 들려주세요. 도움이 되는 정보가 있다면 심사에 참고하는 용도로 사용하려고 합니다.
“아……. 그게 말이죠.”
박중섭은 잠깐 뜸을 들이다 말했다.
“저와 길드 초기부터 함께했지만……. 솔직히 말해서 크게 아쉬운 모습을 보여 주는 친구입니다. 지한이가 전투에 들어갈 때마다 같은 파티원들이 크고 작은 불만을 드러냈죠. 케로즈에서 정식 파티원으로 올려 주지 못한 이유 중 하나가 그것이기도 하고요.”
—7년을 활동했는데 그렇게 말씀하실 정도인가요?
“케로즈를 이끄는 제 눈이 녹슬지 않았다면, 그렇습니다. 그래서 이번 승급 심사도 좀 걱정이 되는군요. 만약 실력이 아니라 운이 좋아서 승급에 성공하게 된다면 나중에 지한이가 위험해질 수도 있으니까요.”
—흐음…….
“그러니까 부디, 그 친구의 안전을 위해서 아주 ‘깐깐한’ 심사를 부탁드리겠습니다.”
박중섭은 특정 단어에 악센트까지 주며 말했다.
이전 소속 길드의 대표가 이렇게까지 언급하면 영웅부에서도 고민할 수밖에 없을 테지.
“그리고 제가 따로 연락을 못 받아서 그런데, 지한이가 속한 길드 이름이 뭔가요?”
—꿀잼이라는 길드입니다.
꿀잼이라…….
길드명을 전해 들은 박중섭은 피식 웃었다.
‘깊은 뜻도 없고, 참 저렴한 이름이네.’
딱 너에게 어울리는 길드로 갔구나, 유지한.
*****
4급 심사가 진행되는 당일.
유지한과 김시후는 영웅부 서울 지부를 방문했다.
‘변한 게 없네.’
마지막으로 서울 지부에 방문했던 때를 떠올리는 유지한이 정문 앞에서 고개를 위로 들어 올렸다.
높다란 깃대 위에 걸린 영웅부의 로고가 바람에 휘날렸다.
세종시에 본 청사가 있지만, 거기까지 내려가기에는 꽤 거리가 있기에 꿀잼은 서울 지부에서 승급 심사를 받게 되었다.
입구로 들어가자 한 직원이 그들에게 다가왔다.
“어서 오세요.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오늘 오후 2시에 예정된 4급 승급 심사를 받으러 왔습니다.”
“길드명을 말씀해 주세요.”
“꿀잼입니다.”
그들은 직원의 안내를 받으며 계단을 올랐다.
건물 3층에 도착하여 직원이 어느 문 앞으로 그들을 데려갔다.
유지한은 제2휴게실이라고 적힌 문을 열었다.
‘사람이 꽤 있구나.’
문이 열린 입구를 힐끔거리는 사람들.
꽤 많은 영웅이 휴게실 소파에 앉아 있는 게 보였다.
4명, 5명씩 모여 앉아있는 그들은 꿀잼과 마찬가지로 승급 심사를 받기 위해 방문한 다른 길드의 파티였다.
그리고 그중에 꿀잼과 같거나 그보다 적은 인원수를 가진 파티는 없었다.
“우리 이번에는 잘할 수 있겠지?”
“당연하지!”
다른 파티처럼 앉아서 잠시 대기하는 중에 주변에서 대화 소리가 들려왔다.
유지한은 휴대폰을 내려다보는 척하며 들려오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이번이 4번째 도전이잖아. 인터넷에 검색해 보니까 영웅부에서도 4급은 보통 4번 정도 시도하면 승급시켜 준댔어.”
“그치만 내 친구가 있는 파티는 겨우 2번 만에 통과했단 말이야.”
“저번에 네가 면접에서 덜덜 떨면서 대답한 거 기억 안 나? 솔직히 우리 2, 3번째 심사에서 떨어진 거 아마 다 그거 때문일걸?”
“우, 웃기시네! 전혀 안 떨었거든?”
“오늘은 진짜 떨지 마라. 내가 옆에서 계속 지켜볼 테니까.”
승급에 재도전하는 파티의 대화였다.
이미 3번이나 승급 심사에 떨어진 그들은 오늘 4번째 시도를 위해 영웅부에 방문한 것이다.
승급 심사는 영웅부에서 소속 파티원 전체와 면접을 진행하기 때문에, 면접에서 한 명이 좋지 못한 모습을 보인 것으로 승급에 떨어지는 경우가 있었다.
소문에 따르면 4급 승급 심사에 3번 정도 떨어지는 건 흔한 일이라던가.
면접을 의식한 것인지 오늘 모인 파티 중에 모든 파티원이 무척 비싸 보이는 검은색 정장을 입고 온 경우도 있었다.
‘김현태 파티가 심사에서 떨어진 적은 없었지.’
반면 김현태 파티는 단 한 번도 승급 심사에서 떨어진 적이 없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5급부터 2급에 오르는 그 심사 과정에 유지한은 단 한 번도 참여하지 못했다.
‘진짜 허무했었는데.’
그는 과거, 김현태 파티에 승급 심사가 있을 거라는 이야기를 듣고 혼자 집에서 대기했었다.
그리고 파티원이 모였을 때 4급 승급에 성공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김현태와 황준호가 기뻐하며 하이파이브를 했고…….
유지한은 옆에서 혼자 어색하게 웃었다.
승급을 위해 그가 한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때 들뜬 주변 분위기를 따라서 쳤던 박수는 자신의 파티가 아니라 마치 다른 파티를 위한 듯한 느낌이었다.
소외감이라고 표현해도 틀린 말은 아니었다.
벌컥!
휴게실의 입구가 열리며 누군가 안으로 들어왔다.
“꿀잼 길드에서 오신 파티 계십니까?”
“저희요?”
김시후는 작게 대답하며 손을 들어 올렸다.
“김시후 님, 그리고 옆에는 유지한 님. 맞으십니까?”
“맞습니다.”
“지금부터 승급 심사 시작하겠습니다. 두 분 모두 저를 따라와 주세요.”
꿀잼은 심사 첫 번째 대상으로 지정되었다.
유지한과 김시후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그의 뒤를 따랐다.
엘리베이터에 탑승한 그들이 향하는 곳은 지하 2층.
[지하 2층입니다.]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자 넓은 공간이 나왔다.
“모셔왔습니다!”
“두 분 모두 이쪽으로 오세요.”
안쪽에서 목검을 쥔 남자가 그들을 호출했다.
짧은 머리에 깐깐한 인상을 가진 그는 40대 남성으로 추측되는 사람이었다.
그가 고개를 살짝 숙이며 말했다.
“영웅부 소속 영웅, 방윤식입니다.”
길드가 아니라 영웅부에 직접 소속된 영웅.
그는 공무원 취급을 받는 영웅이었다.
나랏일을 하는 영웅은 MA에 직접 들어가는 경우가 적고, 매우 안정적인 직업으로 취급된다.
그들은 영웅부에서 홍보용 포스터 따위를 만들 때 영웅을 대표하는 모델로서 활동하기도 한다.
“지금부터 4급 승급을 위한 대련을 시작하겠습니다. 직접 가져오신 무기는 날이 없는 것만 사용할 수 있고, 가져온 게 없다면 이쪽에서 아무거나 골라 주세요.”
방윤식이 무기 진열대를 가리켰다.
주로 나무로 만들어진 살상력이 없는 훈련용 무기들이었다.
‘목검이 무난하겠네.’
진열대를 둘러보던 유지한은 방윤식의 목검과 똑같은 것을 골랐다.
김시후는 품속에서 자기 지팡이를 꺼내 들었다.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 의료팀이 옆쪽에서 대기할 겁니다. 준비되면 말씀해 주세요.”
방윤식은 그들과 조금 멀찍이 떨어졌다.
대련 시작 전에 준비시간을 주기 위함이었다.
‘고작 2명인가.’
방윤식이 대화를 나누는 유지한과 김시후를 눈으로 훑었다.
전달받은 내용으로는 길드 전체 인원이 2명인 데다가 이번이 첫 승급 심사인 파티.
그리고 건방지게도 고작 MA 입장 2주 만에 승급 신청을 넣은 파티이기도 하다.
‘아주 본때를 보여 줘야겠군.’
뚜두둑—
그는 스트레칭을 하며 가볍게 몸을 풀었다.
승급 심사에 포함된 대련에서 통과하는 방법은 총 두 가지.
하나는 대련 심사관의 인정을 받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대련 심사관을 완전히 쓰러뜨리는 것이다.
그리고 거의 모든 파티가 통과하는 방식은 후자가 아니라 전자다.
심사관의 수준은 심사를 신청한 파티의 등급보다 더 높게 설정되기 때문이다.
‘후딱 끝내 버리고 다음 파티로 넘어가자.’
오늘 방윤식은 어지간해서는 저 두 사람을 인정해 줄 생각이 없었다.
실력이 부족한 파티가 위로 올라가는 걸 차단하는 것이 그가 맡은 역할이었으니까.
“저희 준비 완료됐습니다!”
“먼저 공격하셔도 좋습니다! 그리고 아시다시피 대련장을 전부 덮을 정도의 광역 마법은 금지입니다. 그 외에는 다 괜찮으니까 뒤에 마법사 분도 혹여 봐줄 생각 말고 실전처럼 하세요.”
“네!”
방윤식이 너그럽게도 꿀잼에게 선공을 양보했다.
유지한은 잠시 김시후와 눈빛을 교환했다.
“바로 가겠습니다!”
타다닷!
아무런 방해물도 없이 훤하게 뚫려있는 대련장.
공격을 미리 예고한 유지한이 반대쪽에서 서 있는 방윤식을 향해 힘껏 달렸다.
‘꽤 빠른데?’
방윤식은 유지한을 보며 지난번에 치러진 대련 심사에서 통과한 파티를 떠올렸다.
그 파티에서 기습 공격을 시도했던 영웅보다도 유지한이 조금 더 빨라 보였다.
여유 부리던 그가 자세를 다시 고쳐 잡았다.
탁!
유지한이 휘두른 목검과 방윤식의 목검이 부딪쳤다.
찌이잉—
공격을 막아 낸 방윤식의 표정이 살짝 찡그려졌다.
목검을 타고 팔에서 느껴지는 충격이 예상보다 큰 탓이다.
유지한은 보기보다 상당한 힘을 보유한 영웅이었다.
탁! 타닥! 탁! 탁!
선제공격을 날린 유지한은 방윤식을 향해 쉴 새 없이 목검을 휘둘렀다.
머리, 어깨, 팔, 허리 등.
한 부위에 머무르지 않고 목표를 수시로 번갈아 가며 뒤로 물러나는 방윤식을 쫓았다.
2개의 목검이 서로 부딪칠 때마다 아주 시원한 소리가 대련장에 울려 퍼졌다.
“……?!”
자꾸 한 걸음씩 뒤로 밀려나는 방윤식은 크게 당황했다.
분명 상대는 5급 영웅이 맞을 텐데…….
압도적인 실력 차가 있는 건 아니지만, 좀처럼 반격을 할 틈이 나오지 않았다.
탁!
밀려나던 그가 억지로라도 반격을 날리며 유지한의 눈을 바라봤다.
그리고 이내 흠칫하고 놀랐다.
‘무슨?!’
빠르게 움직이는 유지한의 눈이 방윤식의 목검과 팔은 물론이고 그의 얼굴과 다리, 발 등 거의 전신을 번갈아 가며 훑었다.
쏟아내는 공격만 보자면 오로지 공격이란 행위에만 몰두한 것 같지만, 사실 그는 상대를 아주 유심히 관찰하고 있었다.
몸으로 보여 주는 뜨거운 행동과는 달리 무섭도록 차갑게 내려앉은 눈!
거기서 오는 괴리감에 방윤식은 등골이 조금 오싹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