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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티에서 추방된 영웅이 너무 뛰어남-16화 (16/300)

16화. 무기 교체 (3)

꿀잼이 사무실 근처에 도착했던 시각.

바닥을 내려다보며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던 김시후가 말했다.

“쓰읍……. 아무래도 아까 그 단검 너무 비싸게 주고 산 거 같아요.”

“내가 사놓고 할 말인가 싶지만, 내 생각도 그래.”

“웨어 울프 가죽도 쉽게 찢는 단검이 330만 원일 리 없잖아요.”

유지한은 왼쪽 가슴팍으로 손을 가져갔다.

그 위로 두툼하게 만져지는 것은 멀쩡한 검집조차 없어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도록 품속에 넣어 둔 단검이었다.

길드가 며칠 새 벌어들인 돈이 짭짤하긴 해도 평소라면 이런 지출 따위 하지 않았겠지.

김시후가 궁금한 듯 물었다.

“정말로 거기서 마력이 느껴지는 게 맞아요?”

“진짜야. 네가 못 느끼는 게 이상할 정도라니까?”

“아닌 거 같은데……. 생돈 날아간 거 같은데…….”

“그러면 2달 치 월급 날아갔다고 생각해야지.”

단검에서는 여전히 마력과 비슷한 힘이 감지되었다.

하지만 유지한과 달리 김시후는 그것을 알지 못했다.

곧 사무실에 들어온 그들은 들고 온 물건을 모두 탁자에 올려놓았다.

남호열이 공짜로 준 검과 낡은 단검.

그리고 덤으로 구매한 몬스터용 보따리와 자잘한 사무용품들이었다.

“잠깐 확인해 볼게요.”

팅! 팅!

김시후는 단검을 들고서 손가락으로 날 면을 튕겼다.

그러다 단검에 자신의 마력을 주입해 보기도 하고, 손잡이와 날을 분리할 것처럼 양쪽으로 당겨보기도 했다.

그런데도 어떤 일도 발생하지 않았다.

“역시 잘 모르겠어요.”

“잘못 샀더라도 예비용 무기처럼 들고 다니면 돼.”

마력이 느껴지는 걸 보면 뭐라도 특별한 효과가 있겠지.

따라서 비상시를 대비하는 무기로 사용할 생각이었다.

‘……정령은 알 수 있으려나?’

유지한은 문득 생각했다.

그 자체로 마력의 덩어리의 정령이라면, 무기에서 뿜어지는 마력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뾰롱!

그는 반신반의하면서 실프를 소환했다.

“실프. 저 단검 좀 살펴봐 줘.”

유지한의 요청에 실프가 단검을 향해 날았다.

단검 바로 위쪽에서 빙 돌던 실프는 곧 탁자에 내려앉았다.

요청대로 단검의 손잡이와 날을 건드리며 조사하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잠시 후.

토옹!

단검 손잡이, 검자루 위에 있던 실프가 갑자기 위로 점프하듯 높게 튀어 올랐다.

동시에 실프의 몸에서 빛이 밝아졌다가 어두워지기를 빠르게 반복했다.

“뭐, 뭐죠?”

“놀랐나 본데?”

김시후조차 난생처음 보는 현상.

계약자인 유지한은 그 행동이 놀라움에 가깝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정령이 감정을 드러내는 장면이다.

무언가를 눈치챈 것이 틀림없었다.

통, 통.

그 이후 실프는 검자루 위에서 점프했다.

한두 번이 아니고 총 10번이 넘도록 계속해서.

“……?”

유지한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단검을 들어 올렸다.

실프는 그걸 쫓아오며 검자루의 같은 부위를 툭툭 쳐 댔다.

“이 안에 뭐가 있어.”

“네?”

잠시 고민하던 그는 검자루가 탁자를 빠져나오도록 하여 단검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앵그리 야크의 뿔을 갈아 넣은 검으로 단검의 검자루를 내려쳤다.

이러면 단검은 망가지겠지만, 계속 커지는 궁금증을 풀기 위해서라면 별로 아깝지 않았다.

스걱!

예리한 검이 생각보다 단단하지 않은 단검의 검자루를 단번에 베어 냈다.

분리된 검자루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퉁!

그리고 바닥과 부딪힌 충격으로 절단면 안에서 무언가가 튀어나왔다.

‘보석?’

엄지손톱 크기의 둥그스름한 붉은색 돌조각.

안쪽이 살짝 비치는 것이 보석으로 추정되는 물건이었다.

저게 검자루 안쪽에 숨겨져 있었다.

“와, 씨……! 저게 뭐야?!”

김시후는 바닥에 떨어진 보석을 보며 눈을 크게 떴다.

거기서 정말로 어떤 마력이 느껴지고 있었다.

그것도 이제껏 알아보지 못한 게 놀라울 정도로 상당한 양!

유지한이 언급한 마력이 저것이었을까?

쪼르르—

공중에서 대기하던 실프는 붉은 보석을 향해 돌진했다.

화아악!

잠시 후, 보석과 맞닿은 실프에게서 아주 밝은 빛이 뿜어져 나왔다.

보석의 붉은빛과 실프의 초록빛이 섞여 살짝 노란빛을 띠는 모습이었다.

지켜보던 두 사람은 눈부심을 견디지 못하고 눈을 찌푸렸다.

후웅!

잠시 후, 빛이 빠르게 사그라들고 실프가 다시금 공중에 떠올랐다.

떨어져 있던 보석은 회색의 가루가 되어 버렸다.

바닥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은 김시후는 가루로 변한 보석을 손가락으로 집어서 비볐다.

그리고 이 기묘한 현상에 대해 결론을 내렸다.

“실프가 보석의 마력을 먹었어요.”

“먹었어? 진짜로?”

“하나도 남김없이, 깔끔하게.”

보석의 마력은 완전히 사라졌다.

그 대신 사무실 내 실프의 존재감은 조금 커졌다.

실프가 보석이 품은 마력을 흡수한 것이 틀림없었다.

유지한은 가루를 만지작거리는 김시후에게 물었다.

“그게 뭔지 알아보겠어?”

“글쎄요……. 이게 지구에서 나온 물건이 맞나? 정확하지는 않아도 어느 고위 몬스터의 일부, 아니면 플로른처럼 마력을 품은 이세계의 물건이 아닐까 생각되네요. 형도 활동하면서 이런 거 본 적 없어요?”

“본 적 없어.”

김시후가 바닥에 떨어진 검자루를 잡았다.

보석이 숨겨져 있던 구멍을 살펴보던 그는 안쪽으로 마력을 천천히 흘려 넣었다.

그런데 마력의 흐름이 좀처럼 매끄럽지가 않았다.

무언가를 깨달은 그가 소리쳤다.

“마력 차단 코팅! 손잡이 안쪽에 그 코팅이 되어 있어요! 이러니까 내가 눈치를 못 챘지. 누가 여기다 이런 코팅을 하냐……!”

놀랍게도 검자루 안에는 마력을 차단하는 코팅이 붙어 있었다.

유지한은 아주 멀리 떨어진 거리에서 그것을 감지했는데 말이다.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본 건지 모르겠다.”

“정령과 계약한 덕분이겠죠. 실프도 소환되고 나서 단검을 알아봤으니까요.”

김시후는 기묘할 정도로 명령을 잘 따르는 정령이 유지한의 마력에도 어떤 영향을 끼친 것으로 추정했다.

그 외의 이유는 떠오르지 않았다.

“그리고 아마…….”

김시후가 검자루를 탁자에 올려놓으며 말했다.

“이 단검은 오래전에 아티팩트였거나, 처음부터 이 정체불명의 보석을 숨기기 위한 위장용 무기였을 가능성이 있어요.”

시간이 흘러 제힘을 잃은 아티팩트.

혹은 처음부터 특수한 보석을 운반하는 목적으로 제작된 무기.

김시후는 단검을 그중 하나라고 여겼다.

<—이 부러진 단검이 아티팩트였을 확률>

유지한이 사용한 샘플링에 답변은 돌아오지 않았다.

이럴 때는 참 도움이 안 되는 스킬이었다.

“네가 가진 플로른도 마력을 담고 있는 소재잖아. 그건 이제껏 멀쩡했는데 보석은 가루가 되어 버렸네.”

“마력이라고 해서 다 같은 마력이 아니니까요. 플로른은 재료로 사용되는 것 중에서도 아주 특별한 경우에요.”

정령이 모든 종류의 마력을 흡수할 수 있었다면, 정령사들은 진작에 자신의 마력이나 각종 소재에서 마력을 추출해서 정령에게 먹였을 것이다.

까다로운 취향 문제인지, 정령들은 자기의 마력을 계약자에게 빌려주면서도 외부의 마력은 좀처럼 쉽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럼 시험해 볼까.”

“뭘요?”

“정령 강화.”

유지한은 실프를 바라봤다.

실프는 아주 작은 흔들림조차 없이 공중에 뜬 채로 그의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실프. 저 지팡이를 강화해 줘.”

화아악!

명령, 혹은 요청을 내리기가 무섭게 초록색 빛이 지팡이를 감쌌다.

유지한의 착각인지 전보다 더 밝아 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정령 강화를 사용한 채로 5초, 10초…….

20초가 더 흘렀다.

“30초!”

“대박.”

어제까지만 하더라도 20초 남짓 유지되던 능력이다.

그러나 지금은 30초가 넘었음에도 실프의 상태가 멀쩡했다.

하루 만에 또다시 최고 기록을 달성한 셈이다.

스륵—

유지한은 대략 1분 20초쯤 되었을 때 마법을 취소했다.

느낌상 더 버틸 수 있을 것 같았으나 당장 무리는 하지 않는 게 옳았다.

마력을 흡수한 당일 실프에게 어떤 부담이 갈지 모르니까 말이다.

“유지 시간이 어제보다 4배는 더 늘었어요!”

“그 보석이 정말로 효과가 있었나 봐.”

“이렇게나 빨리 성장하다니…….”

정령의 힘은 계약자의 물리적, 정신적 성장이나 계약 기간이 오래될수록, 그리고 많은 경험을 쌓을 때 강해진다고 알려진다.

지금처럼 어느 물건에 담긴 마력을 강제로 흡수하는 일은 공식적으로는 알려지지 않은 내용이었다.

‘어쩌면 유명 정령사들은 이미 알고 있었을지도.’

정령사는 종종 연구 결과 따위가 발표되긴 하지만, 적은 인원만큼이나 세간에 공개된 내용은 한정적이다.

서로 간 교류할 기회가 따로 존재하는 것도 아니니, 자기 정령을 성장시키는 건 오로지 자신의 몫.

세계적으로 유명한 정령사의 정령은 지금 실프가 보석을 흡수하는 것과 비슷한 방법으로 성장했을지도 모른다.

김시후는 호들갑을 떨며 말했다.

“아티팩트 급 장비를 단돈 330만 원에 판매한 그는 정녕 엔젤? 천사인가?”

*****

이 시대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국가 행정조직, 영웅부.

그곳은 오래전 국방부와 행정안전부에서 영웅을 관리하는 권한이 자기들에게 있어야 한다며 계속 주장하는 탓에, 결국 해외처럼 기존의 조직에서 분리하여 새롭게 창설된 조직이다.

“아, 아. 마이크 테스트.”

영웅부의 3층 회의실.

가운데가 길게 뚫려있는 U자 모양의 책상에 영웅부의 중진들이 여럿 모여 앉아 있었다.

다만 예정된 인원수대로 준비된 의자가 모두 채워지지는 않고, 장관이나 차관급이 앉는 상석을 비롯하여 이곳저곳이 비어 있었다.

지이잉—

벽에서 내려온 커다란 하얀색 스크린 위에 빔프로젝터가 화면을 띄웠다.

스크린 옆에 서 있는 발표자는 마이크가 정상으로 작동하는 걸 확인하고, 작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지금부터 회의를 시작하겠습니다.”

회의 시작을 알리기가 무섭게 의자에 앉아있던 누군가가 손을 위로 번쩍 들어 올렸다.

발표자가 그를 가리키자, 그가 입을 열었다.

“내가 이 뒤에 다음 일정이 있어서 그런데, 주요 안건만 빠르게 말해 주겠나?”

“네. 오늘은 회의에 참석하지 못할 만큼 바쁜 분들이 많이 계시지요. 본부장님이 말씀하신 대로 크게 중요한 내용만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회의가 끝나면 인트라넷에 발표 자료를 올려드릴 테니 자세한 내용을 원하시는 분들은 그때 확인하시면 되겠습니다.”

발표자가 리모컨을 조종하며 발표 화면을 여러 장 넘겼다.

그리 중요하지 않은 내용은 다 넘겨 버리는 것이다.

그러다가 화면에 이름을 알 수 없는 동물과 괴상한 식물들의 사진이 여럿 떠올랐다.

그것들의 공통점은 대부분이 익숙하지 않은, 세간에 잘 알려지지 않은 생명체라는 것.

“첫 번째 안건은 최근 한국에 급증하는 돌연변이에 대한 문제입니다.”

“한국이 아닌 해외 쪽은 어떤가?”

“일본과 중국, 그리고 미국 등 현지에 있는 소식통에 따르면 전 세계가 한국과 별반 다르지 않은 상황이라고 합니다.”

전 세계적인 돌연변이의 급증.

회의실의 누군가가 짧게 한숨을 뱉었다.

“나, 참……. 평범한 몬스터가 생기는 것도 골치 아픈데 뮤턴트는 갑자기 왜 늘어나는 거야.”

“현재 레드홀을 비롯한 주요 길드의 연구소와 저희 자체 연구소에서도 조사 중이지만, 아직 뚜렷한 발생 원인은 찾지 못했습니다. 현재까지 수집된 개체의 조사가 마무리되려면 최소 2주일 이상이 더 소요될 것으로 보입니다.”

“듣기로는 5급 MA에서도 나왔다지? 닭이라고 했나?”

“네. 바로 며칠 전, 부천의 5급 MA에서 괴아리의 돌연변이가 발견되었습니다.”

발표자가 리모컨의 버튼을 누르자 스크린을 꽉 채울 듯이 커다란 닭이 화면에 표시되었다.

유지한이 검으로 목과 양쪽 다리를 도려낸 녀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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