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화. 무기 교체 (2)
그가 유지한에게 제안한 것은 간단했다.
검을 무료로 넘겨주는 대신, 나중에 언론과의 인터뷰 같은 상황에서 자신의 공방을 짧게 홍보해 달라는 것이었다.
연예인이나 유명 인플루언서에게 무료로 제품을 제공하는 것과 비슷한 경우였다.
‘진심인가?’
품질만 보면 5천만 원 이상의 무기다.
유지한은 그 제안에 조금 의아해했다.
“감사한 말씀이지만……. 저희는 설립된 지 1년도 지나지 않은 데다가, 인원이 고작 2명뿐인 길드입니다. 아마 사장님 생각만큼 홍보 효과가 크지는 않을 겁니다.”
홍보의 경우 어느 정도 이름이 알려진 파티에나 들어오는 것이지, 작은 규모로는 쉽게 가능한 것이 아니다.
실제로 투자한 만큼의 결과가 돌아오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이다.
하물며 저 남자는 유지한과 김시후에 대해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었다.
“괜찮습니다. 저도 이 작은 공방을 혼자 운영하는 처지인걸요?”
하지만 공방의 주인인 남자는 괜찮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유지한이 이전에 사용하던 검을 내려다봤다.
작은 기쁨이 담긴 눈빛이었다.
“꼭 홍보가 아니더라도, 제가 만든 무기를 아껴 주신 보답이라고 생각해 주세요.”
그는 자신이 제작한 무기를 소중히 다뤄 준 유지한에게 고마움을 표하고 있었다.
유지한은 입술을 다물고 검을 내려다봤다.
“진심이시죠?”
“물론입니다.”
“할부가 가능하면 나눠서 내도 괜찮은데…….”
“받지 않겠습니다.”
“적어도 검 가격의 절반이라도 내겠습니다.”
“아뇨! 그냥 가져가세요.”
끝까지 돈이 필요 없다며 손을 휘젓는 남자는 한 치의 거짓도 없이 진심이었다.
그가 유지한에게 보여 준 검을 제작한 날짜는 약 8달 전.
그런데 손질이 아니라 손님의 방문으로 검을 꺼낸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사람들은 이런 골목에 괜찮은 공방이 있다는 사실조차 모른다.
공들여 만든 검이라도 주인이 없는 검은 존재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는 그였다.
그리고.
“어차피 저는 조만간 장사를 접을지도 모릅니다.”
“예? 왜요?”
“그게 그러니까……. 처음에는 제 본업 외에 취미로만 여기던 장비 제작이었습니다. 하지만 조금씩 욕심이 생겨서 제가 가진 대부분을 투자해 이곳에 처음 자리 잡은 지 벌써 4~5년이 지났네요.”
아련한 눈빛으로 자신의 작품들을 바라보는 남자.
이 작은 공방의 주인인 그의 이름은 남호열.
그는 몇 년 전까지 대형 게임 업체에서 근무하던 디자이너였다.
회사에서 새로 개발하는 게임의 디자인 팀장 직함을 달 정도로 잘나가던 그의 직업.
그걸 포기하고 대장장이가 되었는데, 지금까지의 성적은 그리 좋다고 말할 수 없었다.
“여기 간판도 제가 직접 디자인했어요. 들어오실 때 보셨죠? 칼이랑 방패.”
“봤습니다.”
“제가 디자인 쪽에서도 나름대로 실력이 있었는데, 정말 고맙게도 지금까지 저를 찾아주는 동료들이 있거든요. 그래서 앞으로 공방을 1~2년 정도 더 유지해 보고도 일이 잘 안 풀린다면, 대장장이를 접고 그쪽으로 돌아갈 생각입니다.”
김시후가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그건……. 너무 아쉬운 일이네요.”
“아쉬워도 어쩔 수가 없는 게, 와이프가 최근에 임신을 해서…….”
맞벌이로 집안의 생활비를 벌어오던 아내의 임신.
남편의 꿈을 지지하고 뒤에서 힘껏 밀어주던 그녀였지만, 그녀는 조만간 회사에 육아 휴직을 낼 예정이었다.
그렇게 되면 집안의 수입이 크게 줄어든다.
앞으로 아이를 키우는 것에도 적지 않은 돈이 들어갈 텐데, 재료비도 많이 들고 파리만 날리는 공방을 언제까지고 유지하기는 힘들다.
“그래서 공방에 도움이 될 만한 것들은 뭐든 해볼 생각이에요. 망할 때 망하더라도 마지막 발버둥은 쳐 봐야죠.”
남호열은 유지한에게서 검을 돌려받았다.
그리고 검집에 꽂아서 다시 그에게 건넸다.
“음…….”
돈 한 푼 내지 않고 그것을 받아 드는 유지한은 무거운 책임감을 느꼈다.
단순히 쓸 만한 무기를 건진 게 아니라 남호열이 짊어진 무거운 짐을 나눠 드는 기분이었다.
“……알겠습니다.”
유지한은 결국 그의 호의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남호열은 밝게 웃었다.
새로운 검을 만지작거리던 유지한이 말했다.
“이번 결정, 꼭 후회 없도록 만들어드리겠습니다.”
“하하, 그러면 정말 좋겠네요. 아직 대장장이로서 이루고 싶은 꿈이 남아 있거든요.”
“그게 뭔가요?”
“아티팩트를 만드는 겁니다.”
아티팩트.
겉보기로는 장비와 다를 게 없지만, 마력이나 별도로 특수한 효과가 붙어서 평범한 장비와는 달리 분류되는 물건.
유지한은 지팡이 아티팩트를 가진 김시후를 곁눈질했다.
“처음에는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적당히 먹고살 정도로 벌면 좋겠다고만 생각했었는데 말이죠. 지금은 그 목표이자 미련 하나 때문에 포기를 못 하고 있네요.”
현존하는 아티팩트는 이세계에서 넘어온 경우도 많고, 지구에서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아티팩트를 만들고 싶다고 해서 만들 수 있는 건 아니다.
그것은 좋은 재료와 뛰어난 장인, 그리고 마법사로 분류되는 영웅의 도움까지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현재 아티팩트를 제작할 수 있다고 알려지는 공방은 거대 길드의 공방을 포함해 전 세계에 300개도 채 넘지 않는다.
“분명 가능하실 겁니다.”
“감사합니다.”
“너무 일찍 포기하지는 마세요. 저희도 조만간 좋은 소식 들려드릴 테니.”
유지한과 김시후는 남호열의 배웅을 받으며 그의 공방을 빠져나왔다.
다시 큰 길가로 나온 뒤에 김시후가 말했다.
“돈 굳었네요.”
“그러게.”
무기를 이렇게 공짜로 구할 줄이야.
엄연히 따지고 보면 홍보 목적이니 마냥 공짜는 아니었지만 말이다.
‘한번 확인해 보자.’
유지한은 샘플링을 사용했다.
<—대장장이 남호열이 아티팩트를 만드는 데 성공할 확률>
남호열이 자기 목표를 이룰 수 있을까.
샘플링은 답변을 들려주지 않았다.
하지만 유지한은 그것이 다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에게 무궁무진한 가능성이 남아 있다고 생각할 수 있었으니까.
“몽땅도 그렇고 이번 공방도 그렇고. 앞으로 되게 열심히 해야겠어요.”
“우리만 잘하면 주변 사람들도 같이 잘 되겠지.”
몬스터 처리 업체나 영웅의 장비를 제작하는 공방이나, 결국 모두 영웅의 활동을 기반으로 생겨난 것들이다.
엮여있는 길드가 성장하면 그것들도 덩달아 성장할 수밖에 없다.
과거의 많은 길드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여긴 나중에 다시 방문하는 거로 하고……. 오늘은 이만 그만 돌아갈까?”
“네. MA, 아니면 훈련소라도 가죠.”
남호열과 대화를 나눈 덕분인지 더 열의를 불태우는 김시후였다.
그들은 처음 오픈 마켓에 들어왔던 방향으로 걸었다.
‘적당한 중고차라도 하나 구하는 게 좋을지도.’
유지한이 오픈 마켓 앞에서 택시를 잡아야겠다고 생각하던 때였다.
우웅!
“……뭐지?”
주변에서 무언가를 감지한 그가 황급히 뒤를 돌아봤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건 걸어 다니는 사람들뿐이었다.
다소 뜬금없는 그의 행동에 옆에서 걷던 김시후가 물었다.
“뭐해요?”
“너 방금 아무것도 못 느꼈어?”
“네? 뭘요?”
“무슨, 마력 비슷한 힘이 느껴졌는데…….”
“딱히요.”
김시후의 대답에 유지한이 머리를 긁적였다.
분명 무언가를 느낀 듯한데, 그보다 마력에 훨씬 익숙한 김시후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지나가는 영웅들 마력 아니에요?”
“그런가?”
“저도 가끔 다른 영웅들 마력에 민감해지는 때가 있어요.”
김시후는 최근에 유지한이 정령과 계약하고 마력에 익숙해지는 훈련을 한 것 때문이라고 추측했다.
유지한은 그에 수긍하며 다시 몸을 돌렸다.
우웅!
그러나 다시금 느껴지는 수상한 기운!
게다가 조금 전보다 그 강도가 셌다.
착각이 아니라 정말로 마력에 가까운 힘이었다.
‘뭔가 있다.’
다시금 감지한 그것은 평범한 인간의 마력과는 비슷한 느낌이 들면서도 달랐다.
마치 실프에게서 느껴지는 정령의 마력처럼 말이다.
그렇다고 다른 정령이 나타난 건 아닌듯한데…….
“잠깐 따라와 봐.”
유지한은 방향을 틀어서 무언가를 감지한 방향으로 걸었다.
그 기운이 가까워질수록 사람들의 대화 소리도 커지기 시작했다.
“각종 몬스터로 만든 수제 육포가 쌉니다, 싸!”
“2년 정도 사용한 중고 장비 보고 가세요!”
“3급 MA에서 상처 하나 없이 생존한 노하우 알려드립니다! 온라인 강의도 팔아요!”
도착한 곳은 오픈 마켓에서 개인 간 거래가 가능한 구역이었다.
유지한은 경험상 이곳에 품질이 보증되지 않는 물건이 많았기에 일부러 방문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곳 어딘가에서 무언가가 느껴지고 있었다.
‘저기구나.’
쫓아온 마력의 발생지는 바닥에 커다란 회색 천을 펼쳐 놓고 그 위에 물건을 올려 놓은 곳.
길거리 상인의 물건 중 하나였다.
“중고 장비 전문 판매합니다! 뭘 드릴까요?”
“저 단검은 뭔가요?”
유지한은 손가락으로 천 위의 단검을 가리켰다.
그러자 상인이 눈을 빛내며 말했다.
“캬, 안목이 좋으시네요! 이건 제 예전 동료가 사용하던 단검입니다! 조금 낡긴 했지만 아직까지 쓸 만한 물건이죠.”
“파는 거죠?”
“물론입니다.”
“……얼마죠?”
“원하시는 가격을 말씀해 주세요! 최대한 거기에 맞춰 드리겠습니다. 참고로 저건 그 웨어 울프의 질긴 가죽을 찢을 정도로 예리한 녀석으로…….”
웨어 울프라는 말에 김시후가 깜짝 놀라며 말했다.
“웨어 울프요?! 한국에는 아직 발견되지 않은 거로 아는데?”
“맞습니다! 이건 외국에서 가져온 물건이거든요.”
“해외파셨구나.”
“얼마 전까지는 유럽에 있었죠. 아무튼, 설명을 계속하자면…….”
그는 이 단검이 얼마나 좋은지에 대해 설명했다.
특히 웨어 울프를 강조하는 모습이었다.
다만 유지한은 그의 설명에 흥미를 갖기보다는 단검에서 느껴지는 마력에 계속 집중했다.
“가격을 부르면 되는 거죠?”
“네!”
“그럼 300만 원 드리겠습니다.”
300만 원.
출처도 검증되지 않은 장비에 지불하는 가격치곤 높은 가격대다.
“300만 원은 쪼오금, 그렇네요. 이건 못해도 400은 받아야…….”
하지만 상인은 가격에 조금 불만을 느끼는 듯했다.
그러자 유지한은 단검을 내려다보는 상태로 팔짱을 끼며 말했다.
“마지막으로 사용한 게 언제인지는 몰라도 날이 많이 상했네요.”
“맞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380으로…….”
“저기 봐요. 녹도 조금 슬은 거 같죠? 제대로 사용하려거든 수리 비용도 만만찮게 들어가겠어요. 요 앞 공방에 가면 기본 수리비만 40만 원 이상일 텐데.”
“……370.”
“그리고 웨어 울프의 가죽을 찢었다고 하셨나요? 제가 조금 수고를 들이면 손바닥만 한 크기의 웨어 울프 가죽 정도는 해외에서 들여올 수 있어요. 거기에 실제로 테스트를 해보면 결과가 어떨까요?”
“340! 340만 원에 드리겠습니다!”
말이 끝날 때마다 다급하게 가격을 내리는 상인이었다.
유지한의 예상대로 그가 웨어 울프를 언급한 건 무기를 비싸게 팔기 위한 거짓말에 가까웠다.
그렇게나 좋은 무기였다면 이런 장소에서 팔지 않을 테니까.
실제로 해외파 영웅이 맞는지도 의심스러울 지경이었다.
“에에잇! 340만 원! 이 이상은 못 깎아드립니다.”
“그러지 말고 330에 주세요. 이 정도로 팔아도 충분히 남기는 거 다 압니다.”
“……좋습니다!”
결심한 듯,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는 상인.
단검의 가격은 330만 원으로 최종 합의되었다.
*****
쾅!
자동차 트렁크에 커다란 보따리를 욱여넣은 남자가 운전석에 앉았다.
그리고 지갑에서 다량의 지폐를 꺼냈다.
돈을 세는 그의 입가에는 환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킥킥! 호구 새끼들!”
그는 유지한을 비롯한 영웅들에게 중고 장비를 판매한 상인이었다.
오늘 팔아넘긴 장비는 해외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주워온 것들.
당연히 웨어 울프 같은 얘기들도 떠돌던 소문을 조합해서 지어낸 이야기다.
딱 해외를 돌아다니며 활동한다는 것 하나만 사실이었다.
“영웅이라고 해서 목숨 걸고 일 할 필요가 없지. 이렇게 편한걸!”
MA를 비롯한 여러 현장에서 영웅들이 회수하지 않은 장비, 몬스터의 시체 등 찌꺼기를 주워다가 몰래 팔아넘기는 사람.
그가 바로 영웅계의 하이에나였다.
굳이 위험하게 적과 맞서 싸우는 것보다는 적당한 돈으로 인생을 즐기는 게 그의 인생 모토.
출처가 불분명한 물건만 골라서 팔면 걸리기도 쉽지 않았다.
“비행기 예약이 저녁 8시였나? 하여간 빨리 튀어야지.”
환불 요구를 대비하여 돈은 오로지 현금으로만 받았다.
만약 경찰이나 영웅부에 사기죄로 신고하더라도 소용없다.
찾을 수도 없을뿐더러, 내일이면 다른 나라에 있을 테니까.
그리고 나라에 항상 인력이 모자라기 때문에 이런 작은 사기 건수는 쉽게 잊혀지기 마련이다.
“마지막에 그 새끼는 뭔가 아는 것 같던데…….”
그는 오늘 마지막으로 거래를 했던 유지한을 떠올렸다.
괘씸하게도 흥정을 시도하던 녀석이었다.
하지만 결국 공짜로 주운 물건을 비싸게 팔아넘겼으니 소중하신 호갱님으로 부를 수밖에!
“정말 싸랑한다, 대한민국! 나중에 또 올게!”
부릉!
오픈 마켓에 들어왔을 때와 번호판이 달라진 남자의 자동차가 출발했다.
또 다른 현장과 호구를 찾아 떠나는 것이었다.
*****
한편, 새로운 장비와 함께 사무실에 도착한 유지한과 김시후.
“엇?!”
“와, 씨……! 저게 뭐야?!”
단검을 조사하던 그들은 화들짝 놀라고야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