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괴아리 (2)
사냥을 마친 유지한은 MA 입구 밖으로 걸어 나왔다.
여전히 시민들이 지나갈 수 없도록 거리를 통제 중인 사람들이 보였다.
‘여긴 닫히려면 아직 멀었지.’
여러 파티가 MA에서 많은 괴아리를 사냥했지만, 괴아리는 이곳에서 아직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몬스터의 이유 모를 증식이 끝날 때까지 MA는 계속 유지된다.
통계상 그 기간은 짧으면 일주일 정도로 끝나는 경우도 있고, 길면 몇 달 가까이 지속되는 경우도 있었다.
한국과 달리 땅 덩어리가 넓은 해외에는 1년 넘게 유지되는 경우도 있다고 알려진다.
‘당분간은 계속 와야겠어.’
부천의 5급 MA는 생긴 지 10일 정도 된 곳이었다.
10일이면 묘하게 증식이 빠른 괴아리들이 아직 설치고 다닐 시간.
첫 출전에서 단 2명만으로 썩 괜찮은 성과를 올렸으니…….
유지한은 당분간 다른 MA를 돌아다니는 것보다는 이곳에만 집중할 예정이었다.
“끙, 꽤 무겁네요.”
“힘들어?”
“아직 괜찮아요.”
김시후가 괴아리가 담긴 보따리를 바닥에 내려놓고 어깨를 가볍게 돌렸다.
개인적으로도 체력 훈련을 진행하는 그는 비슷한 등급의 마법사 영웅보다는 체력이 더 강한 편이었다.
“이거 여기서 처리하고 나가야겠죠?”
“그냥 들고 나가려고 하면 밖으로 안 보내 줄걸.”
보따리를 어떻게든 입구까지 끌고 오긴 했으나 그것을 외부로 들고 나가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무게도 무거운 데다가 몬스터의 시체를 들고서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작은 자동차조차 없는 꿀잼은 몬스터를 옮길 수단이 없었다.
“사람 부를 테니까 잠시만 기다려 봐.”
“누구요?”
“몬스터 처리 업체.”
유지한은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괜찮은 곳이라도 있어요?”
“케로즈에서 꾸준하게 일 맡기던 데가 있어. 수수료도 적당하고 일 처리가 깔끔한 업체니까 믿을 만해.”
휴대폰 연락처에서 몬스터 처리 업체의 번호를 검색했다.
케로즈에 있었을 때부터 종종 이용하던 업체였다.
케로즈는 규모가 커지기 전에 몬스터 처리를 외주로 맡기는 경우가 잦았다.
최근까지도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외부 업체를 이용했다.
그리고 유지한은 그 업체의 관계자와 직접 통화를 나눈 적이 있었다.
김현태를 비롯한 다른 파티원들은 그런 자잘한 업무에 관심이 없었기에 그것들은 모두 그가 도맡았었다.
—여보세요? 지한 씨?
“예. 유지한입니다.”
—반가워요! 거의 1달 만이네요.
전화를 받은 업체의 남자직원이 반갑게 인사했다.
유지한이 그에게 직접 연락하는 건 거의 1달 만의 일이었다.
—오늘은 무슨 일이에요?
“제가 이번에 케로즈에서 나와서 길드를 옮겼거든요.”
—네? 길드를 옮기셨어요? 어디 길드요?
“꿀잼이라고 10명 이하의 작은 길드에요. 오늘은 급하게 처리할 몬스터가 생겨서 연락드렸어요.”
—음……. 물건은 어떤 거죠?
“괴아리 약 28마리 정도요.”
—괴아리요?
처리할 몬스터가 괴아리라는 것을 알린 순간.
직원은 조금 의아해했다.
고작 그것뿐이냐고 묻는 듯한, 그런 분위기였다.
—저기 혹시, 그게 끝인가요?
“그렇습니다만…….”
—……잠시만요.
통화가 잠시 중단되었다.
유지한은 휴대폰을 귀에 댄 채 그를 기다렸다.
직원은 약 1분 정도 지난 뒤에야 다시 돌아왔다.
—지한 씨. 괴아리는 우리 회사에서 처리하기 힘들 것 같습니다.
마치 돌처럼 딱딱해진 직원의 말투.
불과 1분 전에 반가움을 드러내던 사람과 동일 인물이 맞을까, 의심이 들 정도로 말투가 전혀 달랐다.
유지한은 본능적으로 그가 회사의 상급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또, 이 뒤에 이어질 대화도 쉽게 예상할 수 있었다.
—그리고 정말 죄송하지만, 앞으로는 이 번호로는 연락하시지 않았으면 합니다.
“……예. 알겠습니다.”
—위에서 내린 결정이라 제가 뭐라 드릴 말씀이 없네요. ……지한 씨가 앞으로 하시고자 하는 일이 모두 잘 풀리기를 바랍니다.
뚝.
업체와의 통화는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유지한은 휴대폰을 귀에서 천천히 내렸다.
‘이런 작은 길드랑은 거래하지 않겠다는 건가.’
방금 통화했던 몬스터 처리 업체도 과거에는 아주 작은 규모의 업체였다.
거의 케로즈와 함께 성장했다고 해도 무방하다.
대화를 나눴던 직원과 유지한은 햇수로만 따지면 4년 정도 인사를 주고받은 사이였다.
그리고, 유지한과 그곳의 인연은 오늘로써 끊겼다.
“쉽지 않네.”
“왜요? 안 된대요?”
“우리랑 거래하기가 싫은가 봐.”
“음……. 5급은 돈이 안 된다는 걸까요.”
김시후는 살짝 인상을 썼다.
하지만 자세히 생각해 보면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케로즈의 길드장 박중섭이 그 업체의 지분을 일부 인수했다는 소문이 있었으니까.
건수가 작은 것 외에도 길드를 나간 영웅의 요청을 들어주기에는 눈치가 보일 수도 있었으리라.
“뭐, 됐어. 다른 곳도 많으니까.”
안 된다는 걸 붙잡고 있을 수는 없었다.
유지한은 검색 포털에 들어가 몬스터 처리 업체를 검색했다.
그러자 검색 결과가 홍수처럼 쏟아졌다.
정말 많은 업체가 자기들이 업계 최저 수수료, 최고 서비스라며 홍보하고 있었다.
‘너무 많은데…….’
하나같이 다 똑같아 보이는 업체들이다.
보이는 것 중에서 아무거나 고르면 되려나.
그렇게 고민하던 때였다.
“형. 저기 좀 봐요.”
“……?”
김시후가 손으로 어딘가를 가리켰다.
그곳에는 정장을 입은 남성이 입구를 지나다니는 영웅들에게 허리를 숙이고 있었다.
“몬스터 처리 전문 ‘몽땅’에서 나왔습니다. 현재 처리 수수료 행사 중이니 많이 이용해 주세요…….”
그는 몬스터 처리 업체에서 나온 영업사원 같았다.
지나다니는 영웅들은 거들떠보지도 않았지만, 그는 영웅이 지나갈 때마다 허리를 깊게 숙였다.
몸집도 작고 자신감이 떨어져 보이는 모습이 영 믿음직하지 않았는데.
잠시 그를 지켜보던 김시후가 말했다.
“저 사람은 어때요?”
“조건 정도 들어보는 건 괜찮겠지.”
유지한은 그에게 다가갔다.
“저기요.”
“아, 네!”
“그쪽 업체 수수료가 얼마에요?”
“기본 수수료는 판매 대금의 10% 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행사가로 7%만 받고 있고요.”
“7%?! 길드 규모와는 상관 없이요?”
“네.”
10%면 업계 평균보다 조금 더 낮은 정도.
그리고 7%면 상당히 파격적인 조건이었다.
물건이 많이 나오지 않는 소규모 길드는 그 이상으로 수수료를 지급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업체 이력이 어떻게 돼요?”
“저희 ‘몽땅’은 1달 전에 설립되었습니다. 아직 정식 거래 이력은 없고요…….”
“1달이면 너무 짧은 거 같은데.”
“그, 그렇지만 제가 관련 업계에서 꽤 오래 근무했습니다! 한 번 믿고 맡겨만 주시면…….”
“직원 수는요?”
“대표인 저와 제 아내까지 포함해서 총 2명입니다.”
몽땅은 꿀잼과 비슷하게 직원이 2명뿐인 업체였다.
김시후는 그에게 약간의 동질감을 느꼈다.
하지만 그것만 가지고 일을 맡길 수는 없었다.
‘가족 기업인가.’
유지한은 눈을 가늘게 좁히며 그에게 물었다.
“지금 괴아리의 시세가 얼마죠?”
“최근 1달간 평균 시세는 1마리당 9만 원입니다. 여기서 부위별 손상 정도에 따라 하자가 생기는데 인기가 많은 다리 살 부위는 한쪽당 최대 2만 원, 가슴살은 최대 1만 5천 원까지 하자가 발생합니다. 반대로 하자가 없다면 추가 금액이 붙을 수도 있고요.”
“지금 당장 이 괴아리를 판다고 하면 얼마를 받아 낼 수 있을까요?”
유지한은 보따리에서 괴아리를 하나 꺼내어 그에게 내밀었다.
조심스럽게 괴아리를 받아 든 남자가 아주 날카로운 시선으로 물건을 훑기 시작했다.
“……비선호 부위인 머리 외에는 아주 깔끔하군요. 머리마저도 딱 반으로 갈라진 것이, 거의 상한 곳도 없고 아주 훌륭한 물건입니다. 이놈은 거의 10만 원까지도 받을 수 있겠습니다. 요리사들이 아주 좋아하겠어요.”
“확실해요?”
“물건 가격으로는 절대 거짓말하지 않습니다.”
“괴아리 말고 다른 몬스터도 받죠?”
“회사 이름처럼 몽땅 받습니다.”
“처리하기 힘든 몬스터도요?”
“네. 찾아보면 전 세계 어디에든 수요가 있으니까요.”
유지한은 그에게 조금 감탄했다.
몬스터 관련 지식은 기본이고 괴아리의 최근 시장가와 하자에 따른 가격까지 막힘없이 술술 풀어 내다니.
단순히 가격을 외웠다고 말하기에는 어렵고, 평소에 그쪽 시장에 꾸준히 관심을 가지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게다가 다른 업체와 달리 몬스터를 가리지 않고 몽땅 받는다는 저 자신감.
그에게서 장차 크게 될 싹을 보았다.
김시후도 만족하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희 길드와 거래하시죠.”
“오! 가, 감사합니다!”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장사임입니다.”
“명함 한 장만 넘겨주시고, 지금 바로 작업도 가능하시죠?”
“네!”
“그럼 이것부터 부탁드릴게요.”
유지한과 김시후가 들고 있던 보따리를 모두 그에게 건넸다.
하나씩 받아서 자기 옆에 내려놓은 장사임이 말했다.
“읏차, 물건 잘 받았습니다.”
“팔리려면 얼마나 걸릴까요?”
“방금 본 물건 정도라면 원하는 곳이 많아서 하루 이틀 내로 다 팔려나갈 겁니다.”
“부탁 좀 드리겠습니다.”
“맡겨만 주세요.”
풀려있던 보따리를 끈으로 깔끔하게 묶은 장사임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런데 다른 파티원은 어디에 계신가요?”
“이게 답니다.”
“네?”
“저희도 아직 2명뿐인 파티이자 길드거든요.”
“……!”
유지한의 대답에 장사임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5급 맞으시죠?”
“네.”
“두 분이 이만큼 잡으셨다고요?”
“맞아요.”
“MA에서 대체 얼마나 계셨던 거죠?”
“한 2시간쯤 됐나?”
“찾아내는 것도 일이었을 텐데, 대단하시네…….”
꿀잼의 활약에 혀를 내두르는 장사임.
그는 영웅 인원 수에 따른 평균 사냥 속도까지도 파악하고 있었다.
유지한은 그런 그를 가만히 지켜보다가 말했다.
“우리 앞으로 자주 봅시다.”
앞으로 당신이 처리할 일이 아주 많을 테니.
*****
“선배. 진짜로 유지한 씨 이렇게 넘겨 버려도 돼요?”
“야. 바로 위에서 지랄하는 걸 나보고 어쩌라고.”
케로즈의 협력 업체 모팔.
아까 전 유지한과 통화를 했던 남자와 그의 선배 직원은 휴게실에서 커피를 마시며 대화를 나눴다.
남자는 꽤 아쉬운 목소리였다.
“영웅 중에서 그렇게 협조적이고 물건 꼼꼼하게 체크해서 넘겨주는 사람 보기 드문데……. 그분이랑 일 할 때는 다른 사람보다 훨씬 편했단 말이에요. 그냥 받아 주면 안 되려나?”
“네가 전부 다 책임지는 조건으로 받을래?”
“아, 그건 좀.”
남자는 고개를 저었다.
유지한과 거래하는 것으로 어쩌면 가장 큰 거래처인 케로즈와의 관계에 금이 생길 수도 있었다.
회사에서 그것을 한 사람의 책임으로 몰아간다면 해고는 물론이고, 배상금을 뱉어 내거나 소문이 퍼져서 업계에서 완전히 매장당할 수도 있다.
최근에 케로즈와의 인수 합병까지도 얘기가 나오는 상황에 그런 위험 부담을 떠안고 싶지는 않았다.
“겨우 괴아리 몇 마리 받아서 뭐 하려고. 여기가 이제 5급이나 처리하는 거지 같은 회사도 아니잖아.”
“그래도 조금 아쉬움이 남네요.”
“듣자 하니 그 사람은 길드에서도 버려진 것 같던데, 뭘 그렇게 신경 써?”
“혹시 모르죠. 나중에 엄청 거물이 될지.”
“퍽이나 그러겠다.”
유지한이 보여 준 좋은 매너 덕분일까.
남자는 어쩐지 계속 미련이 남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회사가 언젠가 이번 결정을 후회하게 될지도 모르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