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괴아리
부천에서 5급 MA가 열린 구역은 비교적 층수가 낮은 건물이 밀집된 빌라촌이었다.
운 나쁘게 사람들이 거주하는 구역에서 몬스터가 등장한 탓에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대피 명령을 듣고 모두 빠져나갔다.
사람들은 다들 지금쯤 자기 집이 부서지지 않을까 발을 동동 구르고 있을 것이다.
“형. 결계에요.”
유지한과 몇 걸음 떨어진 앞쪽에 보이는 푸르스름한 막.
반투명하여 안쪽이 훤히 비치는 그것은 마력으로 생성된 결계였다.
첫 등장으로부터 수많은 인간의 목숨을 지켜 낸 현대 마공학(魔工學)의 정수.
대량의 마력이 담긴 마석을 사용하여 공간을 나누는 기술로, 몬스터가 바깥으로 빠져나갈 수 없도록 영웅부에서 미리 펼쳐 둔 것이다.
‘오랜만에 보니까 더 얇아 보이네.’
유지한이 마지막으로 봤던 것은 2급 MA의 결계였다.
MA의 등급이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결계의 강도도 점점 강해지는데, 5급 MA에 설치된 결계는 비교적 얇은 편이었다.
강력한 몬스터가 날뛴다면 저런 결계는 금방 부서지고 남겠으나 지금 단계에서는 상관이 없었다.
‘이 정도면 바깥이랑 다를 게 없지.’
3급 또는 2급 MA의 결계는 어찌나 두꺼운지 안쪽에서 단순히 숨을 쉬는 것에도 불편함을 느끼는 영웅들이 있다.
국가 위기 급이라도 불리는 1급은 그의 몇 배나 더 두껍다고 하니, 마력에 미숙한 영웅들은 그 안으로 입장조차 불가능하다고 알려진다.
파지지직—
유지한과 김시후가 결계 안쪽으로 들어섰다.
푸르스름한 막이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그들의 피부를 스쳤다.
“윽…….”
결계와 닿은 느낌이 이상한지 몸을 부르르 떠는 김시후였다.
그래도 안으로 들어온 뒤에는 그런 느낌이 덜했다.
‘어디 보자.’
유지한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문이 활짝 열려있는 편의점.
커다란 유리문에는 쩌적 금이 갔고, 내부에 진열된 물건들은 와르르 쏟아져 있었다.
아르바이트생이 본다면 크게 분노할 장면이었다.
유지한은 편의점 앞으로 다가가 안쪽을 더 자세히 살폈다.
“뜯어진 상품들이 전부 다 채소류야.”
“그래요?”
바닥에 떨어진 다양한 물건 중에서도 유독 배추나 고구마 따위의 채소와 관련된 상품의 포장지가 많이 비어 있는 게 눈에 띄었다.
반면 달걀이나 닭고기류는 아주 멀쩡했다.
이건 내부로 들어온 영웅이 아니라 몬스터들의 소행이었다.
“영웅부에서 공지한 내용처럼 괴아리가 맞나 보네.”
괴아리.
보통 괴물 병아리라 불리는 것을 줄여서 부르는 말이다.
뉴스 기사에 따르면 2주 전쯤 이 근처에서 대량의 병아리를 운송하던 트럭이 전복됐다.
그때 트럭을 탈출한 병아리가 여기저기로 흩어졌다.
병아리는 이전에도 몇 번씩이나 몬스터로 변했던 기록이 있었기에 영웅부에서는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 병아리 수색 작전을 펼쳤다.
덕분에 100마리가 넘는 병아리를 찾아냈지만, 그때 사람의 손이 닿지 않는 곳까지 들어간 놈들이 있던 모양이었다.
결국, 녀석들은 알 수 없는 이유로 몬스터가 되었고 이곳에 MA가 선언된 것이다.
김시후는 신기한 표정으로 말했다.
“형은 어떻게 걔네가 먹는 것까지 다 알고 계시네요.”
“몬스터에 따라 다르지만, 괴아리는 행동 양식이 병아리랑 크게 다를 게 없어.”
몬스터 도감에 등록됐거나 인터넷 기사에 몇 번 언급된 놈들이라면 대부분 기억하고 있는 유지한이었다.
정보는 언제 어디서 도움이 될지 모르는 법이니까.
‘트럭 기사는 벌금 엄청 나오겠다.’
이 시대에 동식물이 갑작스럽게 몬스터화 되는 것은 제법 흔한 일이다.
다만 그 과정에서 누군가의 관리 소홀이 드러날 경우, 어마어마한 벌금이 매겨지는 때가 있다.
지금이 딱 그런 경우였다.
“가자.”
지금부터는 전장이다.
언제든지 피가 튀고 살이 찢길 수 있는 그런 전장.
영웅들은 그 피와 살이 인간의 것이 아니길 바란다.
스릉!
유지한은 검집에 꽂혀 있던 검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주변을 경계하며 평소보다 느릿하게 걸었다.
지나치게 느리다고 싶을 정도의 속도.
평범하게 걸어도 큰 문제는 없겠지만, 지금의 역할이 조금 낯설었기 때문이었다.
‘잘 해야 한다.’
단 2명뿐인 파티의 메인 딜러.
적의 공격으로부터 파티를 지켜 줄 탱커나 시선을 끌어 줄 인원이 없고, 제법 화력이 나올 법한 마법사와 전사뿐.
그가 영웅 학원에서 수업을 듣던 시절의 과거를 돌아봐도 지금처럼 파티를 구성한 적은 드물었다.
인원이 적은 만큼 막중한 책임감이 필요하다.
‘탱커 역할도 어느 정도 해내야 해.’
이전과 비교하면 5급은 낮은 등급이지만, 파티의 유일한 전위로서 홀로 여러 역할을 겸해야 하는 만큼 유지한은 긴장하고 있었다.
특히 마법사인 김시후는 든든한 탱커나 전사가 앞에서 지켜 주지 못하면 힘을 100% 내보일 수 없다.
첫 출전이니만큼 좋은 모습을 보여야 김시후도 앞으로 안심하고 싸울 수 있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빌라 사이를 이동하던 때였다.
“저쪽 주차장에 뭔가 있다.”
어느 빌라 1층에 마련된 주차장.
유지한의 예민한 감각이 그 안쪽에서 작은 소음을 잡아냈다.
두 사람은 초록색 방수 페인트가 깔린 주차장으로 다가갔다.
다가갈수록 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뺘악.”
“뺙, 뺘악.”
예상대로 온몸의 털이 노란색인 몬스터, 괴아리 3마리가 주차장에 있었다.
손바닥만 한 크기의 일반 병아리와 달리 몸집이 엔간한 강아지보다도 더 크고, 키는 사람 무릎에 닿을 정도.
부리는 마치 작은 드릴처럼 단단하고 뾰족하여 인간의 몸을 뚫어내는 일도 가능해 보였다.
“뺘악?”
평화롭게 서로의 털을 골라 주던 녀석들은 인기척을 느꼈는지 유지한을 돌아봤다.
“뺘아아악!”
“뺙! 뺘아악!”
갑자기 괴아리가 인간들을 향해 크고 날카로운 소리를 질러 댔다.
병아리의 목에서 나왔다고는 믿기 힘들 정도의 음량이었다.
귓속을 괴롭히는 울음소리에 인상을 쓴 김시후는 곧바로 마법을 준비했다.
[헤이스트]
어느새 정령을 소환한 유지한이 자신의 몸에 헤이스트를 사용했다.
처음 마법을 배웠을 때와 비교해 조금 더 얌전한 바람이 불었다.
마력이 점차 안정되어 가고 있다는 증거였다.
“뺙!”
괴아리 하나가 뾰족한 부리를 벌리며 소리 질렀다.
놈의 입 안쪽에 하얀 이가 드러났다.
뾰족하고도 날카로운 괴아리의 이빨은 혀 천장과 혓바닥 전체에 자라나 있었다.
한 번이라도 물린다면 살점이 뜯겨나갈 것이 분명하다.
괴아리와 근거리에서 싸울 때는 녀석들의 유일한 무기인 부리로 쿡 찌르는 것은 물론, 이빨에 물리는 일까지 경계하며 싸워야 한다.
경험이 적은 초보자에게는 그것도 쉽지 않은 일이지만…….
<—내가 눈앞의 괴아리 사냥에 성공할 확률>
<97%>
유지한의 능력, 샘플링은 말했다.
네가 사냥에 실패할 확률은 겨우 3%에 불과하다고.
준비를 마친 그가 괴아리를 향해 돌진했다.
토옹!
그가 달려오는 것을 보고 맨 앞에 있던 괴아리가 앞쪽으로 튀어 올랐다.
높이는 대략 유지한의 머리에 가까울 정도.
“뺙!”
입을 활짝 벌린 녀석은 유지한의 얼굴이나 목을 이빨로 확 물어 버릴 기세였다.
직선으로 돌진하는 상대의 힘을 이용한 상당히 영리한 공격이었다.
어디까지나 괴아리치고는 말이지만.
“어딜!”
유지한은 괴아리와 닿기 바로 직전에 자동차가 급제동하듯이 자리에 멈춰 섰다.
변변찮은 공격 스킬조차 가진 것이 없어 김현태를 비롯한 다른 파티원에게 잔소리를 들었지만, 자기 몸을 다루는 일에는 크게 자신 있는 그였다.
고개를 힘껏 앞으로 내민 괴아리는 손가락 한 뼘조차 안 되는 거리에서 그를 물지 못하고 땅으로 떨어져 내렸다.
<—괴아리의 정수리에 내 공격이 들어갈 확률>
<95%>
“뺘, 뺘악……!”
절망하는 괴아리의 눈에 얇은 검이 떨어지는 것이 보였다.
콰직!
검날이 괴아리의 정수리에 깊게 박혔다.
단순히 뼈에 박히는 것에 그치지 않고 녀석의 뇌를 반으로 쪼갰다.
단단한 부리와 달리 머리뼈는 괴아리의 가장 큰 약점이었다.
“뺘…….”
정수리가 반으로 갈라진 녀석의 눈이 회까닥 뒤집혔다.
“뺘아아악—!”
“뺙, 뺙!!”
놈이 당하는 모습을 보고 옆에 있던 동료가 울부짖었다.
분노하여 그에게 달려드는 괴아리들.
하지만 녀석들의 미래도 그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푹! 푹! 푹! 푹!
뒤에서 날아온 바람의 화살이 한 괴아리의 몸통에 무려 4발이나 꽂혔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뒤에서 3발이 더 날아와 몸 여기저기에 박혔다.
충격을 이겨 내지 못한 괴아리가 그대로 절명했다.
남은 한 놈은 그대로 유지한에게 달려들었으나.
서걱!
그는 괴아리의 부리 바로 아래쪽, 목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뺘…….”
목에서 피를 흘리는 괴아리.
유지한이 다시금 목에 검을 꽂아 넣자 녀석의 몸이 앞으로 고꾸라졌다.
“후우.”
주변을 살펴봐도 다른 녀석은 보이지 않았다.
안전이 확인되자 유지한은 허공에 검을 크게 휘둘러 묻은 핏물을 털어 냈다.
뒤에 있던 김시후가 그에게 걸어왔다.
“생각 이상으로 순조롭네요……?”
“그러게 말이다.”
두 사람은 바닥에 축 늘어진 괴아리의 사체들을 내려다봤다.
별로 힘을 쓸 것도 없이 첫 사냥에 성공해 버렸다.
긴장을 했던 것이 허무하게 느껴질 만큼 압도적인 결과.
계산상 이 정도라면 몸에 버프를 두를 것도 없었다.
오히려 힘을 너무 과하게 주고 싸운 느낌이었다.
“그런데 저건 좀 개선할 필요가 있겠어.”
“네?”
유지한은 손가락으로 괴아리 시체 하나를 가리켰다.
몸에 뚫린 여러 구멍에서 피를 왈칵 쏟아 내는 그것은 김시후가 마법으로 공격한 괴아리였다.
“무슨 문제가 있나요?”
“저렇게 살점이 너덜너덜한 건 판매할 때 가격이 크게 떨어져.”
“아…….”
“괴아리는 주로 몬스터 레스토랑에서 식용으로 판매되니까, 다른 부위보다는 약점이자 제일 인기 없는 부위인 머리를 공격하는 게 좋아.”
몬스터의 등장에서 새로 생겨난 시장 중 하나가 그것들을 먹는 일이다.
기존에 없던 새로운 식재료의 등장은 평범한 음식에 지친 미식가와 요리사들의 가슴을 뛰게 했다.
그리고 괴아리는 몬스터 고기를 판매하는 곳에서 다루는 주요 식재료 중 하나.
찜이나 구이 등으로 만들었을 때 감칠맛이 매우 커진다고 한다.
따라서 식재료로서 최대한 좋은 값을 받아 내기 위해서는 살점을 온전히 지켜 낼 필요가 있었다.
“그런 꿀팁이 있었군요.”
“당장 머리를 노리기 힘들면 방금 한 말은 신경 쓰지 말고.”
“아뇨. 그 정도는 어렵지 않죠.”
김시후가 자신 있는 표정으로 손을 쥐었다 피기를 반복했다.
*****
약 2시간 후.
유지한과 김시후는 괴아리가 한가득 담긴 보따리를 들고 입구로 향했다.
양손에 2개씩, 총 4개의 보따리를 바닥에 질질 끌며 걷던 김시후가 말했다.
“너무 많이 잡은 걸까요…….”
“첫 사냥에다가 2명치고는 많이 잡긴 했지.”
사냥이 순조롭게 풀린 나머지 두 사람은 너무 욕심을 냈다.
지금 들고 가는 보따리는 너무 많이 담아서 제대로 닫히지 않을 정도였다.
입구에 조금씩 가까워지자 그들처럼 사냥을 끝낸 파티가 보였다.
유지한은 그 근처로 이동했다.
“야, 저기 봐봐.”
“저 안에 든게 다 괴아리야?”
곧 주변 영웅들의 시선이 유지한과 김시후가 들고 있는 보따리로 모였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단 2명이 사냥한 괴아리의 숫자가 다른 파티의 것보다 더 많았기 때문이었다.
“우리보다 많이 잡은 거 같은데…….”
인원이 12명이나 되는 파티가 사냥한 괴아리와 2명인 꿀잼이 사냥한 정도가 거의 비슷했다.
“어? 아까 그 사람이다.”
MA에 입장하기 전에 충고를 했던 남자가 근처에 있었다.
지쳐서 쉬고 있던 그는 몹시 당황한 얼굴로 유지한과 김시후를 바라봤다.
이내 그가 유지한의 보따리를 힐끔거렸는데, 아무리 봐도 그의 파티가 사냥한 것보다 꿀잼의 것이 더 많았다.
심지어 남자의 파티에는 전투 도중 부상자가 발생했으니 그들 사이에는 큰 격차가 존재하는 것과 다름없었다.
유지한과 김시후는 씨익 웃으며 소리쳤다.
“저기요!”
“저희 아직 살아 있어요!”
“……윽!”
두 사람은 남자를 향해 손까지 흔들었다.
자연스럽게 그들에게 모이는 주변의 시선들.
결국, 얼굴이 새빨개진 남자는 몸을 돌려 도망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