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코미디
꿀잼 길드가 훈련을 시작하고 며칠 뒤.
김시후는 유지한과 함께 휴식을 취하던 중 영웅부로부터 메시지를 받았다.
이전에 신청했던 MA 입장 심사가 모두 완료되었다는 메시지였다.
[심사에 통과하셨습니다.]
심사 결과는 당연히 통과였다.
파티의 인원이 늘어난 데다가 추천서까지 제출했으니 절대로 거절할 수 없었으리라.
“드디어!”
휴대폰 화면에 적힌 메시지를 본 김시후가 한 손으로 입을 가리며 감격했다.
혼자 길드를 설립한 후 MA의 문을 두드린 지 벌써 2개월이 넘었지만, 그는 그때마다 항상 심사 탈락을 겪었다.
요즘 영웅들이 하는 말로는 입구컷.
문턱을 밟기도 전에 쫓겨나는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한번 심사에 통과한 이상 그 파티는 등급을 벗어나지 않는 한 MA 입장에 제한을 받지 않는다.
“이 메시지는 진짜, 진짜로 평생 보관할 거예요.”
김시후는 영웅부에서 보낸 메시지를 보관함에 저장했다.
훗날 이 메시지를 다시 보게 된다면 신입 때 느꼈던 벅찬 감정을 되새길 수 있으리라.
“아, 어쩌죠? MA 가기 전에 도시락이라도 싸야 하나?”
“산책이라도 가려고?”
“학원에 있을 때는 김밥 싸갔거든요.”
유지한이 진심으로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거기서 밥을 먹었어?”
“맛있더라고요. 진짜 꿀맛.”
“…….”
당시 먹은 김밥이 생각나는지 입맛을 다시는 김시후.
유지한은 그를 보며 놀이공원이나 산책하러 가기 전에 들뜬 어린아이를 떠올렸다.
저게 괴물이 득실거리고, 피와 살이 터져 나가는 MA를 기대하는 사람이라니.
누군가 듣는다면 경악할 모습이었다.
‘얘는 그럴 만한가.’
지금껏 심사 때문에 김시후가 느꼈을 스트레스를 생각하며 그를 이해하는 유지한이었다.
“이게 다 형 덕분이에요!”
“나보다는 이전 길드 동료 덕분이지. 따로 감사라도 드려야겠어.”
“나중에 그분 찾아가시려거든 저도 같이 데려가 주세요. ……그래서, 우리 MA는 언제 들어갈까요?”
김시후가 유지한을 향해 눈을 반짝였다.
강한 열망이 담긴 눈빛.
혼자서라도 장비를 챙겨서 MA로 달려갈 것 같았다.
유지한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너는 언제가 좋은데?”
“저는 지금 당장이라도 좋은데요?”
“그럼 더 미룰 것도 없지. 장비 챙겨!”
“넵!”
*****
유지한과 김시후는 개인 장비를 차려입고 부천에서 열린 5급 MA로 향했다.
그런데 출발 직전의 그들에게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바로 이동 수단의 부재였다.
“난 자동차 없어.”
“전 면허도 없는데요.”
“…….”
“…….”
말똥말똥한 눈으로 서로를 쳐다보는 두 사람.
유지한은 케로즈에 있을 때 항상 길드에서 제공하는 자동차를 타고 다녔기 때문에 개인 차량이 없었다.
하지만 MA에 입장을 못 하던 꿀잼에는 그런 차량이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심지어 김시후는 면허조차 따지 않았다.
예상치 못한 문제에 부딪힌 유지한이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그럼 뭐, 대중교통 타야지.”
“한국은 그게 장점이죠.”
“몬스터 사체 처리도 당분간 외부로 넘겨야겠어.”
그들은 결국 전투 장비를 착용한 채 지하철에 탑승했다.
무기가 너무 크거나 도끼처럼 주변에 위압감을 줄 수 있는 경우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힘들겠지만, 검 한 자루와 작은 지팡이를 든 그들과는 관련 없는 이야기였다.
이동하는 중간에는 평상복과는 사뭇 다른 복장을 보고 그들이 영웅이라는 걸 알아보는 사람들이 있었다.
‘얘네 영웅 아니야?’
‘돈도 많이 벌 텐데 지하철을 타는구나.’
‘짠돌이들!’
‘몰래 사진 찍어서 인터넷에 올려야지.’
하지만 얼굴이 알려지지 않은 무명 영웅인 탓에 말을 걸어오는 사람은 없었다.
유명 영웅이 아닌 이상에야 모르는 사람들이 호들갑스럽게 달려드는 경우는 드물다.
‘조용하니 좋네.’
주변이 복잡해지는 걸 원치 않는 유지한에게는 썩 다행인 일이었다.
부천역에 도착한 뒤에는 택시를 잡았다.
그들에게서 목적지를 전해 들은 택시 기사가 악셀을 밟으며 말했다.
“두 분은 영웅이신가 봐요?”
“아, 예.”
“그 괴물들이 아주 무섭게 생겼던데, 참 훌륭한 일 하시네요.”
“하하……. 감사합니다.”
택시 기사와 담소를 나누는 사이 어느덧 MA 근처에 도착했다.
주변에 정장을 입고 현장을 통제 중인 사람들이 보였다.
가슴에 달린 태극 배지와 하늘색 배지는 각각 정부와 영웅부를 상징하는 로고였다.
‘여전히 고생하네.’
MA는 실제로 몬스터가 발견된 범위 이상으로 넓게 책정된다.
놈들이 찾기 힘든 어딘가에 몰래 숨어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넓은 구역을 통제하기 위해서는 상당히 많은 인력이 필요하다.
게다가 통제 기간에 MA 내에 있는 모든 가게와 사무실, 집을 이용할 수 없기 때문에 그 피해 관리까지 영웅부가 모두 도맡는다.
‘영웅부 업무가 엄청 빡세다고 하던데.’
그런 수고를 알고 있으므로, 영웅부가 영웅들에게 요구하는 심사나 깐깐한 규칙에 불만을 품는 이들도 그들을 함부로 대하지 않는 것이다.
택시에서 내린 두 사람은 사람들을 통제 중인 곳으로 다가갔다.
“잠시 정지! 영웅이십니까?”
“꿀잼 길드입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정장을 입은 남자가 휴대폰 화면을 빠르게 두드렸다.
현장에서 사용되는 프로그램에는 영웅부에 등록된 길드 정보를 바로 확인할 수 있는 기능이 탑재되어 있었다.
“길드장이자 파티장 김시후 님. 그리고 파티원 유지한 님 맞으신가요?”
“네.”
휴대폰을 내려다보는 남자의 눈이 가늘게 좁혀졌다.
꿀잼의 MA 입장 기록은 텅 비어 있었다.
“기록상으로는……. 이번이 첫 MA 입장이신가요?”
“맞습니다.”
“모쪼록 조심하시고, 건투를 빕니다.”
모든 확인 절차를 끝낸 남자는 그들을 위해 길을 비켜 주었다.
유지한은 그에게 고개를 살짝 숙여 보인 뒤 걸음을 옮겼다.
김시후가 옆에서 속삭이듯 말했다.
“입장 거부당하는 줄 알았어요.”
“이제 쫄 거 없어. 어깨 쫙 펴.”
[통제구역]
[영웅 외 출입금지]
안쪽으로 들어서자 경고문이 적힌 포스터와 옹기종기 모여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모두 평상복이 아닌 장비를 두른 영웅들이었다.
누군가는 심각한 표정으로 파티원 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고, 다른 누군가는 밝게 웃으며 옆 사람과 장난을 치기도 했다.
파티마다 추구하는 분위기가 다른 만큼 다양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오오……!”
예상하던 MA의 모습과 비슷했는지, 김시후는 작은 감탄사를 내뱉었다.
유지한은 자리에 멈춰 서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이미 사냥을 마치고 쉬고 있는 파티가 근처에 있었다.
그들의 발치에 놓여 있는 불투명한 보따리는 사냥을 마친 괴물의 시체를 넣어 둔 것.
접어 두면 부피가 매우 작아서 유지한도 몇 개 가지고 있었다.
‘역시 다들 인원이 많다.’
일반적으로 영웅 파티는 파티원간 최대한의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최소 인원으로 운영되고, 큰 규모 전투의 경우 2개 이상의 파티가 협력하여 대처하는 때도 있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 말이 있듯이 1개 파티에 너무 많은 인원이 집중되면 전투에서 혼란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높은 등급의 파티는 파티원 수가 많아 봐야 4~5명 정도의 인원을 유지한다.
하지만 지금처럼 5급 파티의 경우에는 이야기가 조금 다르다.
경험이 적은 영웅들의 경우 안전을 위해 상당히 많은 인원을 1개 파티에 몰아넣는 일이 드물지 않다.
당장 유지한의 눈에 보이는 파티는 최소 인원이 5명, 그리고 최대 12명인 경우도 있었다.
‘우리가 제일 적어.’
인원이 단 2명뿐인 꿀잼 길드는 이곳에서 가장 적은 수의 파티.
거기에 더해 조금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요즘 5급들은 장비도 잘 입고 다니네.’
그는 어느 젊은 남자 영웅이 착용한 은색 갑옷을 바라봤다.
흠집이나 작은 때 하나 묻어 있지 않은 신상 갑옷이었다.
등에 박힌 로고로 보아 영웅 장비를 제작하는 중에서도 브랜드 인지도가 있는 일본의 ‘라이쿠’ 사 장비가 분명했다.
5급 영웅이 사용하기에는 비싼 감이 있는 물건인데, 아무래도 꽤 좋은 길드에서 지원을 받은 듯했다.
‘그에 비교하면…….’
유지한이 자신이 입은 경갑옷을 살폈다.
어느 몬스터의 가죽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갑옷은 오래돼서 낡았고, 자세히 보면 이곳저곳 파이고 긁힌 자국이 있었다.
예전에 어느 낡은 공방에서 구매했던 것으로 체감상 가성비가 좋은 물건이었다.
케로즈의 예산으로 구매하여 사용하던 장비는 아쉽게도 퇴사하던 때 모두 반납했다.
MA에 오기 전에 다른 개인 장비를 구매할 수도 있었겠지만, 당장 그의 예산 안에서 장비를 구하려면 이 낡은 경갑옷을 뛰어넘는 것이 별로 없었다.
‘시후도 나랑 비슷하고.’
김시후의 마법사 장비는 상한 곳이 없었으나 역시나 저렴한 물건이었다.
평범한 무기를 뛰어넘는 지팡이 아티팩트를 소유했으나 지팡이조차 외관은 지극히 평범했다.
요약하자면 딱 돈 없어 보이는 소규모 길드였다.
은근히 따가운 시선이 느껴지는 것은 그것 때문이리라.
“그만 들어가자.”
“네.”
유지한은 김시후와 함께 발걸음을 재촉했다.
자리에 가만히 있어 봤자 구경거리만 될 뿐이었으니까.
그런데 그때였다.
“어이, 거기 2명!”
“……?”
어디선가 들려온 외침에 유지한은 자리에 멈춰 섰다.
여기서 2명을 부른다면 해당되는 파티가 딱 하나뿐.
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검을 든 남자가 그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30대에서 40대 사이로 보이는 그는 입가에 미소를 짓고 있었는데, 유지한의 기분 탓인지 비웃음처럼 보이기도 했다.
앞으로 다가온 그가 가장 만만해 보이는 김시후를 향해 말했다.
“너희 뭐야? 파티가 2명이야?”
“네. 2명이에요.”
“겨우 2명이 MA로 들어가려고?”
“……그럼 안 되나요?”
“안 되는 법은 없지. 단지 너희만으로는 위험하지 않겠냐는 거야.”
남자는 어깨를 으쓱였다.
파티장으로 보이는 그의 뒤에는 8명 정도의 인원이 대기하고 있었다.
“이미 알고 있겠지만, MA에 들어간 파티가 실종되거나 죽으면 현장의 다른 파티가 대신 찾으러 가야 한단 말이지. 굉장한 민폐라고.”
“절대 안 죽을 거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아니, 그건 모르는 일이니까.”
그가 김시후와 유지한을 위아래로 훑자, 김시후는 눈살을 크게 찌푸렸다.
잘 알지도 못하는 남자가 다가와 죽음을 언급하는 것이 크게 거슬렸다.
세계적으로 MA에 들어간 5급 파티에서 죽는 사례가 심심찮게 나오긴 한다지만, 고작 인원수를 가지고 무시를 하다니.
“그러지 말고 파티원 더 뽑아서 오는 게 낫지 않겠어?”
“됐습니다.”
“나중에 후회할 텐데? 너무 깊게는 들어가지 말라고!”
남자는 키득키득 웃으며 파티에게 돌아갔다.
김시후는 기분이 나빠졌는지 몸을 홱 돌리고는 다시 유지한을 따라 걸었다.
“오지랖이 되게 넓은 사람이네요.”
“크흠, 체감상 저런 애들이 꼭 일찍 죽더라.”
자꾸만 씰룩거리는 유지한의 입꼬리.
그는 웃음이 터지려는 걸 애써 참고 있었다.
‘대체 누가 누구에게 충고하는 건지.’
아무리 못해도 유지한은 2급 MA에서 활동했던 영웅이었다.
그런데 30살이 넘도록 5급에 머무는 영웅에게 충고를 듣는다라…….
사정을 아는 사람들이 들으면 크게 폭소할 만한 코미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