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파티에서 추방된 영웅이 너무 뛰어남-8화 (8/300)

8화. 정령 마법 (2)

김시후는 유지한의 주변을 돌며 그의 몸을 덮은 마력을 샅샅이 훑었다.

‘엉성해.’

역시나 곳곳에 엉성한 마력의 흐름이 보였다.

마법을 처음 배우는 초보자들이 자주 범하는 실수도 있었다.

하지만 중요한 건 완전한 실패가 아니라 마법 발현에 필수적인 구조를 형성하는 것에는 성공했다는 것.

그것도 지금껏 마법을 써 본 적이 없다던 영웅의 첫 시도로 말이다.

이게 과연 쉽게 가능한 일인가?

“형! 한 번도 마법 써 본 적 없다는 거, 순 거짓말 아니에요?”

“진짜 거짓말 아닌데…….”

그의 물음에 유지한은 난처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태어나서 마법 스킬이라는 걸 사용해 본 건 이번이 정말로 처음이었다.

‘이게 마법을 쓰는 감각이구나.’

유지한이 자신의 손을 내려다봤다.

손과 팔, 다리의 피부를 타고 거칠게 흐르는 마력이 느껴졌다.

입고 있는 운동복은 그것의 영향을 받고 조금씩 흔들렸다.

비유하자면 사람보다 큰 선풍기 앞에서 약풍 정도의 세기로 바람을 계속 쐬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선풍기 한 대로 쐬는 바람이 아니라 360도 전 방향에서 바람으로 몸을 뒤덮는 것과 비슷했다.

당장 몸에 땀이 흐른다면 몇 초 지나지 않아서 금방 말라 버릴 듯했다.

‘내 마력과는 조금 달라.’

자연에서 부는 바람이 아닌 마력으로 생성된 바람이다.

그것도 온전히 자신의 마력을 사용한 게 아니라, 정령의 힘을 빌려 사용한 마법.

보통 타인의 마력을 받아들일 때는 어색하거나 기분이 조금 나쁠 법도 한데 지금은 그렇지 않았다.

솨아—

실프는 구체 중심에서 평상시보다 밝은 빛을 내뿜고 있었다.

계약자인 유지한에게 자신의 힘을 빌려주고 있다는 증거였다.

“잠깐 움직여 볼게.”

유지한은 가볍게 스트레칭을 하며 몸을 풀었다.

그리고 개인 훈련실의 맞은편을 향해 힘껏 달렸다.

버프의 효과를 알아보기 위함이었다.

후웅!

그가 달리는 방향을 따라 공기가 양쪽으로 갈라졌다.

‘가볍다!’

앞으로 이동하면서 움직이는 팔과 다리가 무척 가벼웠다.

깃털만큼 가볍다고는 말할 수 없었지만, 평소보다 훨씬 편하다는 느낌을 받고 있었다.

순식간에 훈련장의 벽에 도달한 그는 자리에 멈춰섰다.

‘이런 마법을 내가 직접 사용할 수 있다니…….’

그는 주먹을 꽉 쥐며 희열을 느꼈다.

일반적으로 전사 타입의 영웅이 직접 마법 스킬을 사용하는 사례는 드물다.

다 같아보이는 마력에도 성질이란 것이 존재하는데, 일부 마법을 제외하고 대다수가 전사의 마력과는 영 어우러지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령의 도움을 받는 유지한은 그 예외 대상에 포함될 수 있었다.

앞으로의 전투에 있어서 분명 적지 않은 도움이 되리라.

후웅—

그는 다시 김시후와 함께 서 있던 곳으로 돌아갔다.

가만히 그를 바라보고 있던 김시후가 말했다.

“조금 지켜보니까 실전에서 사용할 정도는 되지만……. 불안정한 상태가 계속 유지되는 거로 보아 역시 안정화 작업이 필요하겠어요.”

“그거 되게 어려운 작업처럼 들리네.”

“실제로 시간이 좀 걸릴 수도 있어요. 연구가 필요한 부분도 있고, 실프도 아직은 낯선 형의 마력에 적응해야 하니까요.”

이전 계약자인 에르나 하스는 유지한과 조건이 많이 다르다.

나이와 성별이 다르고, 보유한 마력의 성질도 다르고, 심지어 종족조차 같지 않다.

게다가 실프는 플로른으로 만들어진 지팡이에서 몇 년씩이나 쉬고 있었으니, 새로운 계약자인 유지한에게 익숙해지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 부분은 너한테 다 맡길게.”

“네. ……그런데 생각해 보니 조금 아쉽긴 하네요.”

김시후가 마법을 해제한 실프를 바라봤다.

뱉은 말처럼 아쉬움이 섞인 눈빛이었다.

“실프가 제 지팡이에 있을 때는 제가 마법을 다룰 순간에도 도움이 됐었거든요.”

“그래?”

“영웅 학원에서 실프 도움으로 높은 성적을 받았던 때도 있었어요. 아, 물론 새로운 계약자가 등장한 게 더 기분 좋은 일이지만요. 실프에게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그럼 또 도와 달라고 하면 되는 거 아니야?”

“네?”

“실프! 얘가 좀 도와 달래.”

유지한의 요청이 떨어지자 실프가 김시후에게 날아갔다.

그리고…….

화악—!

김시후가 들고 있는 지팡이에서 연한 초록빛이 발생했다.

그러자 유지한이 얼떨떨한 표정으로 말했다.

“……진짜 됐나?”

“……?”

잠시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김시후의 뇌가 정지하고.

지팡이에서 익숙한 힘을 느낀 그가 이내 눈을 부릅떴다.

플로른에 정령의 힘이 더해진 것이다.

유지한과의 계약으로 인해 사라졌던 힘이 다시 지팡이에 맴돌고 있었다.

‘조금 전의 대화를 알아들었어?!’

유지한은 명확한 지시를 내리지 않았다.

단지 도움을 달라는 말을 했을 뿐이다.

그런데 실프는 정확히 원하는 결과를 내놓았다.

마치 김시후와 유지한이 나눈 모든 대화를 이해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대체 어떻게?’

말해도 듣지 않는 정령 때문에 골머리를 썩이는 정령사가 대체 몇 명이던가.

그런데 눈앞의 실프는 너무 달랐다.

예전에도 어머니의 정령인 실프가 꽤 강하다는 생각을 했지만, 이 정도로 똑똑하고 협조적인 정령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잘 된 거 맞아?”

“어, 네! 힘이 돌아왔어요.”

“거 참, 신기하네…….”

유지한이 실프를 돌아봤다.

“너 대단한 놈이구나?”

그의 칭찬을 들은 실프가 360도로 빙글빙글 돌았다.

기쁜 마음을 드러내는 것 같았다.

그런데 곧 실프가 내뿜어내던 빛이 조금씩 약해지더니 초록색 구체가 반투명하게 변했다.

깜짝 놀란 유지한이 말했다.

“얘 왜 이래?”

“이건 정령이 마력을 지나치게 많이 사용했을 때 보이는 탈진 현상이에요. 계약 후 일주일도 지나지 않았는데 우리가 너무 무리를 시킨 것 같네요.”

“괜찮은 거지?”

“정령계에서 하루 정도 쉬고 나면 괜찮을 거예요.”

유지한을 재빨리 실프를 소환 해제했다.

당분간은 소환 훈련도 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후우, 오늘 진짜 많이 놀라게 되네요.”

“나도 내가 마법을 사용하게 될 줄은…….”

정령을 통해 드디어 마법을 사용하게 된 유지한이었다.

다소 불안정하지만, 안정화 작업을 거치면 분명 지금보다 잘 사용할 수 있을 것이었다.

거기에 더해 김시후의 지팡이를 이전처럼 강화할 수 있다는, 전혀 예상치 못한 수확까지.

두 사람이 개인 훈련실에 들어선 지 몇 분 만에 얻어 낸 것이라기에는 믿기 힘들 정도였다.

‘이런 사람이 그런 수모를 당했었다고.’

김시후가 유지한을 힐끗 바라봤다.

현존하는 여러 길드 중에서 거의 아무런 정보도 공개되지 않은 신규 길드 꿀잼을 왜 선택했는지 도통 이해할 수 없는 사람.

그리고 계약한 정령을 떼놓고 보더라도 상당한 재능을 가진 영웅이었다.

만약 김시후가 케로즈의 길드장이었다면 절대로 놔주고 싶지 않을 정도의 그런 인재.

아직 영웅 경력이 많이 부족한 김시후였지만, 비공식 파티원 같은 비정상적인 제도로 기회를 막아버리기에는 유지한이라는 영웅은 가능성이 정말 넘쳐 보였다.

‘박중섭 길드장에게는 언젠가 따로 감사를 전해야겠어.’

김시후는 케로즈의 박중섭 길드장에게 속으로 감사를 전했다.

이런 잠재력 높은 영웅을 보내줬으니 말이다.

“당분간은 마법 안정화 작업에 집중할게요.”

“좋아.”

“우선 형은 마법을 생성할 때 마력을 사용하는 방법부터 교정할 필요가 있는데…….”

유지한은 그 후 몇 시간 동안 김시후로부터 마력에 대한 수업을 들었다.

*****

유지한과 김시후가 은행과 관련된 업무 등, 서로 다른 개인 일정 때문에 훈련소를 완전히 떠난 시각.

사람이 적어진 공용 훈련소에 검은색 선글라스를 착용한 한 남자가 등장했다.

이마를 훤히 드러낸 리젠트 머리에 찢어진 청바지, 검은색 반팔 티를 입은 그가 껄렁껄렁한 걸음으로 훈련소 입구로 다가갔다.

멀리서 봐도 눈에 띄는 그를 발견하고 한걸음에 달려간 훈련소 직원이 그를 향해 허리를 90도로 숙였다.

“오, 오셨습니까!!”

“많이 기다렸어요?”

“아닙니다!”

“에이, 너무 그렇게 딱딱하게 대할 필요 없어요. 잠깐 구경만 하러 온 거니까.”

“예!”

대답은 그렇게 했지만, 직원은 계속 안절부절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눈앞에 있는 남자는 대한민국에 총 10명밖에 되지 않는 1급 영웅.

대한민국 10대 길드 중 하나인 주사위 길드의 길드장, 윤도하.

세계적으로도 주목을 받는 그는 어딜 가더라도 극진히 대접받을 인물.

고작 공용 훈련소를 들락거릴 수준의 영웅이 아니었다.

“듣기로는 훈련소 확장을 계획 중이시라고.”

“어어, 맞아요. 길드 내부에서 좁아터졌다고 불만이 계속 나와서 이번에 새로 지으려고요.”

주사위 길드는 낡은 훈련소를 대신할 신축 훈련소를 지으려고 준비 중이었다.

길드장인 그는 직접 다른 훈련소를 탐방하며 어떤 구조로 만드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지 알아보기 위해 돌아다니고 있었다.

“물어보기 조심스럽습니다만, 도하님이라면 다른 사설 훈련소도 충분히 이용 가능하시지 않습니까? 굳이 공용 훈련소에 방문하신 이유라도……?”

“다른 길드 훈련소는 이미 몇 군데 찾아갔었죠. 그런데 다들 너무 최신 기계만 사용하더라고.”

“조, 좋은 거 아닙니까?”

“뭔가 이상한 기능이 덕지덕지 붙어 있는 게 나는 좀 별로였어요.”

윤도하가 못마땅한 듯 입술을 비죽였다.

훈련에 큰 도움이 되기보다는 편리함을 강조하며 별 이상한 기능만 붙여 놓은 훈련 기계들.

과거의 그는 그런 해괴한 기능들 없이도 문제없이 훈련할 수 있었다.

“가장 중요한 건 훈련을 하는 당사자란 말이죠. 즉, 도구 탓을 하면 안 된다는 겁니다.”

“아, 예.”

“저희 기계는 이전에 사용하던 거랑 비슷하게 갈 거예요. 오늘 여기는 내부 배치 구조를 확인하려고 왔어요. 이쪽은 소규모 길드가 많이 사용하는데도 혼선이 적다면서요?”

“예. 몇 년간 이용객 데이터를 수집하여 가장 인기 있는 훈련장의 비중을 늘리고, 이동하는 영웅 간 동선이 꼬이지 않도록 최적화시켰습니다.”

“오, 빅데이터……!”

많은 대형마트에서는 매장 입구에 채소와 과일, 수산물 같은 신선식품을 배치한다.

그것들이 소비자가 가장 많이 구입하는 품목이기 때문이다.

다양한 길드에서 이용하는 공용 훈련소도 대형마트와 비슷하게 특정한 법칙에 따라 훈련장을 적절히 배치하고, 영웅 편의를 위해 여러 방면에서 노력하는 편이다.

윤도하는 바로 그런 노하우를 배우기 위해 찾아온 것이다.

“요금은 이걸로 24시간 결제해 주세요.”

“아뇨! 훈련소장님께서 도하님이 오시거든 요금은 절대 받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음……. 알았어요. 고맙다고 전해 주세요.”

윤도하가 훈련소 안으로 들어섰다.

대화를 나누던 남자 직원은 그의 뒤를 졸졸 따라다녔다.

훈련소 관리자인 그는 윤도하를 위해 파견된 인물이었다.

“어? 저거 윤도하 아니야?”

“그럴 리가……. 주사위 길드가 왜 여기 있어.”

“비슷하지 않나?”

“누가 비슷한 컨셉 잡고 따라 하는 거겠지.”

수군수군.

사람들은 멀리서 윤도하를 힐끔거리며 떠들었다.

윤도하에게는 하나같이 익숙한 시선들이었다.

“우리 길드에 있는 거랑 비슷한 기계도 많네요.”

“많이 사용하는 데는 이유가 있는 법이죠.”

“그렇죠?”

그렇게 훈련소 내부를 구경하며 돌아다니던 때였다.

개인 훈련실 앞을 지나가던 윤도하가 갑자기 발걸음을 멈췄다.

따라가던 직원이 그에게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

묘한 표정으로 훈련장을 바라보는 윤도하.

그가 문을 열고 들어서자 텅 비어 있는 공간이 나왔다.

“여기 지금 누가 사용하는 거죠?”

“길드명이 적혀 있지 않으면 지금은 이용객이 없는 공간입니다.”

“그러면 오늘 이 훈련장을 사용한 길드 명단을 확인할 수 있을까요?”

“예? 그건 갑자기 왜…….”

“스읍.”

윤도하가 훈련장의 공기를 깊게 들이마셨다.

그리고 다시 숨을 내뱉고는 말했다.

“……이 훈련장에서 낯선 정령의 향기가 납니다.”

이제껏 맡아보지 못한 정령의 잔향.

강한 소유욕이 생길 만큼 아주 매력적인 향기였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