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정령 마법
유지한은 다음 날도 김시후와 함께 훈련소에 방문했다.
“안녕하세요. 꿀잼 길드시죠?”
“네. 오늘도 수고 많으십니다.”
“어제 말씀해 주셨던 마법 훈련장의 고장 난 표적은 수리 완료했습니다.”
“그래요? 다행이네.”
“다음에도 문제 생기거든 바로 말씀해 주세요.”
입구를 지키는 직원이 이번에는 그들의 얼굴을 알아보고 반갑게 인사했다.
어제처럼 구태여 신분을 확인하는 절차도 없었다.
영웅부의 관계자를 비롯해 수천만 대한민국의 국민 중 5명도 채 안 되는 사람이 알아보는 정도.
그것이 꿀잼의 현 위치였다.
‘저번에 본 1급 영웅은 길거리에서 사람들이 졸졸 따라다녔지.’
인기가 많은 파티의 영웅들은 티비에 출연하거나 연예인처럼 활동한다.
그에 부합한 인물이 이전 파티의 리더 김현태였다.
그는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 걸 좋아하는 편으로 가끔 밖에서 마주칠 때마다 모든 옷을 고가의 명품으로 두른 것을 볼 수 있었다.
파티의 이름이 알려지고 언론에 인터뷰가 나갈 때마다 그를 알아보는 사람은 점점 더 많아졌다.
그뿐만 아니라 황준호나 임시연처럼 다른 파티원도 조금씩 주목을 받았다.
거기서 비공식 파티원이었던 유지한은 제외였지만.
‘……갑자기 그때 생각이 나네.’
과거의 기억을 떠올린 유지한이 표정을 살짝 찡그렸다.
언젠가 3급 MA에서 전투를 하던 때였다.
몬스터를 처리하던 도중 예상치 못하게 이종족인 뱀파이어가 등장해서 한바탕 난리가 났었다.
그날, 어떻게든 전투를 끝내고 파티원과 함께 입구를 향해 나가던 유지한은 케로즈의 관계자에게 지적을 받았었다.
——오늘은 밖에서 기자들이 많이 대기하고 있습니다. 지한 씨는 안쪽에서 조금 더 있다가 나와 주세요.
김현태 파티가 카메라 플래시 세례 속에서 사진을 찍으며 주목을 받는 동안, 그는 전투 도중 반파된 건물 뒤쪽에 가만히 숨어 있었다.
유지한이라는 영웅의 존재가 언론에 자주 드러나면 안 되기 때문에 다른 파티원과 함께 MA를 나갈 수 없었다.
기자들이 몰려서 평소보다 길어진 인터뷰 때문에 무려 30분 동안이나 그렇게 기다려야 했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몬스터의 사체와 함께 보냈던 그 시간은 아무리 좋게 생각하려고 해도 썩 유쾌하지 않은 시간이었다.
“후…….”
꿀잼은 설립된 지 1년도 안 된 곳이다.
이름이야 천천히 알리면 되겠지.
좋은 영웅을 보유하고 뛰어난 활약을 보여 주는 파티가 세상에 알려지는 건 시간문제다.
파티가 유명해지면 길드의 이름도 널리 퍼져나갈 것이다.
“형. 왜 그래요?”
유지한의 표정을 본 김시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무것도 아니야.”
“혹시 오늘 훈련소 요금을 제가 낸 것 때문에 그런 건 아니죠?”
“그거랑은 전혀 상관없어.”
오늘 훈련소 요금은 김시후가 지불했다.
나름 길드장으로서 체면이 있다며 고집을 부리는 탓에 이미 지갑에서 카드까지 꺼냈던 유지한도 어쩔 수 없었다.
“앞으로도 다 제가 낼 거니까요! 그렇게 아세요.”
“알았다, 알았어. 마음대로 해.”
두 사람은 훈련소 안쪽으로 들어섰다.
오늘은 공용 훈련소에 낸 요금과는 별개로 미리 예약해 둔 공간이 있었다.
[개인 훈련실]
도착한 곳은 개인 훈련실 앞.
여러 사람이 모여 있는 훈련소에서도 다른 사람의 시선이나 방해를 받지 않고 개인 훈련이 가능한 곳이다.
예약자명이 꿀잼이라고 적혀 있는 문으로 들어가자 사방이 특수한 재질의 소재로 막혀 있는 작은 체육관 같은 공간이 나왔다.
“여기가 마지막으로 남은 방이었지?”
“네. 하도 인기가 많아서 예약 못할 뻔했어요.”
훈련실의 문을 잠근 김시후가 머리에 쓰고 있던 비니 모자를 벗었다.
유지한은 주변을 훑어본 뒤 구석에 가방을 내려놓았다.
여기라면 정령을 꺼내도 문제 될 게 없었다.
“실프.”
뾰롱!
실프가 그의 부름에 응답하여 모습을 드러냈다.
그걸 본 김시후가 말했다.
“어째 소환이 더 빨라진 것 같네요.”
“집에서 계속 연습했거든.”
“네? 연습이요?”
“소환 연습.”
계속 소환과 소환 해제를 반복하며 연습을 한 덕분에 이제 유지한이 정령을 소환하는 것에 걸리는 시간은 단 3초도 걸리지 않았다.
다른 정령사였다면 마음처럼 따라주지 않는 정령 때문에 애를 먹을 시기에 숙련자처럼 소환 시간을 단축시키는 연습을 한다니.
경이로울 만큼 빠른 성장이었다.
“대체 실프를 몇 번이나 소환한 거예요?”
“어제 집에서만 소환하고 해제한 게 못해도 100번은 넘을걸?”
“헉! 100번이나……! 실프가 거부는 안 했어요?”
“60번을 넘길 때부터 부들부들 떨긴 하더라. 그래도 거부는 안 했어.”
“허…….”
체력이 많고 사람을 잘 따르는 강아지도 똑같은 훈련을 휴식 없이 100번이나 반복하려 들면 잘 따라주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계약자의 모든 요구에 100% 충성하는 정령이라니.
많은 정령사의 꿈이나 다름없었다.
“잘 따라주는 건 좋은데, 정령을 너무 그렇게 혹독하게 대하지는 마세요. 실프가 아닌 다른 정령이었다면 이 시기에 친해지기 위해서 더 노력했어도 모자랐을 거예요.”
“알았어. 그래서……. 오늘은 네가 정령 마법을 알려 준다고.”
“네! 어머니가 사용하시던 마법은 제가 모두 다 외우고 있어요.”
김시후가 검지 손가락을 살짝 굽혀 자기 옆머리를 톡톡 건드렸다.
마법과 관련된 지식이라면 끝까지 물고 늘어지며 모조리 자신의 지식으로 삼는 그의 성격상, 정령이 없어서 사용하지 못하는 어머니의 마법까지도 기억하고 있었다.
게다가 최근에는 단순히 기억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기존 마법을 분석하고 재창조하는 작업에도 공을 들였다.
영웅 학원 수석 졸업은 단순히 필기 성적만 높아서 따낸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영웅 학원에 있을 때부터 마법 스킬에 재능이 없었어.”
반면, 유지한은 학생 때부터 사용할 수 있는 마법이 하나도 없었다.
분명 몸 안에 마력은 있지만 아주 작은 마법조차 사용하는 것에 실패했다.
전형적인 마법 부적합자.
이런 경우에는 마법 대신 육체 능력이 뛰어나 적과 직접 마주하고 싸우는 탱커나 전사 타입의 영웅이 되는 경우가 많다.
영웅 중에서도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무난한 계열의 영웅이었다.
“제가 해외 사례를 많이 조사해 봤는데, 마력이 아예 없었던 일반인 정령사도 정령과 계약한 이후에는 마법을 다루게 된 사례가 있어요.”
“나도 들어는 봤지만…….”
김시후는 유지한이 마법을 배울 수 있을 거라고 확신했다.
영웅이 아닌 평범한 사람도 정령과 계약한 뒤에 마법을 사용한다는데, 유지한처럼 이미 마력을 다루고 현장에서 몇 년씩이나 활동했던 사람이 불가능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정령 마법이라는 게 따로 존재하는 거야?”
“정령이라는 존재와 그들의 힘에 대해서는 아직도 계속 연구가 진행 중이라 정확하게 ‘정령 마법’이라고 정의된 건 없어요.”
인간의 신체를 구성하는 주요 성분으로는 물과 단백질, 지방 등이 있다.
그와 다르게 정령을 구성하는 건 98% 이상이 퓨어 마나(Pure Mana), 또는 순수한 마력이라고 알려져 있다.
어떻게 단순한 마력의 덩어리가 생물로서 존재할 수 있는지는 정령이라는 것이 처음 알려진 때부터 수수께끼였다.
다만 확실한 건 계약자가 그 정령의 힘을 이용할 수 있다는 것.
“정령사가 정령의 도움을 받아서 마법을 사용하면 기존의 마법과 똑같은 마법이라도 정령 마법이라고 부르고 있죠. 마법을 구성하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비슷한 마법도 위력에 조금씩 차이가 나기도 하고요.”
“그렇구나.”
“오늘 형에게 알려드릴 건 제 어머니인 에르나 하스가 사용하던 정령 마법이에요.”
이세계에서 지구로 넘어온 여성 엘프.
그리고 아들인 김시후의 말에 따르면 정령술로는 2급 영웅과도 견줄 수 있었다던 뛰어난 정령사.
에르나 하스.
“제가 기억하는 것들을 오늘 전부 알려드리지는 않을 거예요. 형의 능력을 의심하는 건 아니지만, 음식도 급하게 먹으려고 하면 쉽게 탈이 나는 법이니까요. 마법도 음식과 마찬가지로 천천히 소화하는 시간이 필요해요. 특히 형 같은 경우에는 기존에 마법을 사용하던 영웅이 아니었으니까 더더욱 그렇고요.”
“오케이. 마법 쪽은 나도 잘 모르니까 네가 알아서 관리해 줘.”
“좋아요.”
가르침을 내리기에 앞서 기본 설명을 마친 김시후가 지팡이를 꺼내 들었다.
“며칠 내로 MA에 들어가게 될 것 같으니까 오늘은 기본 마법에 해당되기도 하는 실용적인 마법을 알려드릴게요.”
“어떤 건데?”
“술자의 몸을 가볍게 해 주는 신속의 마법, 헤이스트(Haste).”
[헤이스트]
김시후가 마법을 사용하자 사방이 막혀 있는 공간인데도 바람이 부는 것처럼 그의 앞머리가 살짝 흔들렸다.
눈으로는 확인하기 힘든 바람의 기운이 그의 몸을 감싸고 있었다.
“형은 검을 다룬다고 하셨죠? 이건 근접 계열에 해당하는 영웅도 아주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마법이에요. 신체 강화 마법이나 버프라고 부르기도 하죠.”
“버프라면 이전 파티의 마법사가 비슷한 마법을 사용하는 걸 본 적이 있어.”
케로즈에서 마법사 임시연이 김현태와 황준호에게만 걸어 주던 버프가 있었다.
근력 따위의 신체 능력이 약간 증가하는 버프였다.
유지한은 같은 파티원이었지만, 정말 필요할 때가 아니면 그런 버프를 받을 수 없었다.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사용하면 효과가 반감되기에 저는 그리 선호하지 않지만……. 파티원을 지원하기에 쓸 만한 마법이죠.”
“내가 어떻게 하면 돼?”
“이 지팡이 끝을 잘 보세요.”
헤이스트를 해제한 김시후가 지팡이 끝으로 마력을 집중했다.
곧 주먹만 한 구슬 크기의 마력이 그 끝에 매달렸다.
원래는 눈에 잘 보이지 않지만, 초보자인 유지한이 보기 쉽도록 배려하는 것이다.
김시후는 그럴 만한 실력이 있었다.
“이 구체 속에서 흐르는 마력의 흐름을 기억하세요. 헤이스트는 그 흐름의 크기를 크게 키워서 전신에 두른다고 생각하면 돼요.”
유지한은 투명한 마력의 구체 안쪽을 들여다봤다.
고오오—
마력이 마치 작은 파도처럼 요동치고 있었다.
언뜻 보면 마구잡이로 움직이는 것 같았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특정한 패턴을 유지하며 움직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현존하는 버프 대부분이 이런 일정한 마력의 패턴을 몸에 두르는 방식이에요.”
“처음 알았어. 마법 교재에는 이런 식으로 안 쓰여 있던데.”
“……!”
유지한이 마법 교재를 언급하자 김시후가 미간을 찌푸렸다.
“마법 교재……. 제가 예전 10개 이상의 마법 교재들을 직접 구매해서 확인했는데, 그거 죄다 적폐예요.”
“적폐?”
“교재를 만드는 기업에서 영웅 학원에 최대한 비싸게 팔아먹기 위해 실제 마법 사용과 관련된 내용보다는 이론적인 내용을 길고 장황하게 써놓은 거죠. 하여간, 다들 돈독이 올라서……!”
마법과 관련된 주제라서 그런지 드물게 화를 내는 김시후였다.
‘위, 아래, 위, 위, 아래…….’
유지한은 실프를 머리 위에 올려놓은 채 구체 속 마나의 흐름에 집중했다.
솔직히 말해서 당장 마법을 사용할 자신은 없었다.
영웅 학원에서도 마법 과목은 항상 포기했을 정도니까.
그래도 실프의 도움을 받으면 가능하지 않을까, 라는 희망은 있었다.
“실프. 내려와.”
마법을 시도하기 위해 유지한이 실프를 호출했다.
그의 머리에서 내려온 실프가 얼굴 앞으로 다가왔다.
“오늘 잘 안 돼도 너무 상심하지는 마세요. 처음은 다 그런 거니까요.”
지금까지 한 번도 마법 스킬을 사용한 적 없는 유지한이다.
그 누구도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는 법.
실패는 예견된 결과이니 그것에 굴복하지 않고 도전을 반복하면 된다.
“제 예상으로는 한 일주일 정도 노력하면 사용할 수 있을…….”
[헤이스트]
후우웅—!
거친 바람이 불어닥치며 그것이 유지한의 전신을 뒤흔들었다.
공격 마법이라기에는 부족하고, 버프라기에는 조금 난폭하다고 생각될 정도의 마법.
조금 불안정하기는 해도 그 형태는 신속의 마법 헤이스트가 틀림없었다.
“……옴마나?”
김시후는 동그랗게 뜬 눈으로 마법을 한 번에 성공시킨 유지한을 바라봤다.
이 사람, 정말로 마법 처음 쓰는 거 맞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