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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티에서 추방된 영웅이 너무 뛰어남-5화 (5/300)

5화. 도발

지금까지 김현태 파티에 있던 유지한은 파티에서 딜러로서 활동한 경험이 없었다.

현장에서 긴급 상황이 발생할 수 있으므로 언제든지 딜러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준비는 했지만, 실전으로 들어가면 실수가 나올 수도 있는 법이다.

‘내가 김현태처럼 활약할 수 있을까.’

케로즈를 대표하는 김현태 파티의 리더, 김현태.

성인 2~3명이 함께 들어 올리기도 힘든 거대한 양손검을 제 몸처럼 자유자재로 휘두르는 그는 파티를 이끄는 메인 딜러로서 꽤 이상적인 인물이었다.

김현태 파티가 한국에서 주목받는 파티로 꼽힌 여러 가지 이유 중 김현태라는 영웅의 존재는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유지한이 케로즈에서 활동할 때부터 추방될 때까지, 다소 고압적인 태도를 보여 주던 김현태에게 크게 거스르지 않았던 건 메인 딜러인 그의 실력을 인정하고 존중했기 때문이었다.

‘……어떻게든 해 봐야지.’

유지한은 고개를 흔들며 머릿속의 잡념을 쫓아냈다.

이미 계약을 통해 꿀잼의 지분까지 받아 낸 상황이었다.

단순한 길드원이나 파티원이 아니라 길드의 주인이 된 것이다.

다시 예전처럼 파티에서 역할이 애매하고 붕 뜬 존재가 되고 싶지는 않았다.

“사무실 근처에 가끔 사용하는 공용 훈련소가 있어요.”

“그쪽으로 가자.”

유지한은 김시후와 함께 꿀잼의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영웅부에서 설립한 공용 훈련소로 이동했다.

공용 훈련소는 약간의 비용을 지불하고 다양한 시스템이 갖춰진 훈련소를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이다.

“케로즈는 사설 훈련소를 사용하죠?”

“그랬지. 길드 건물 지하 2층부터 5층까지 전부 다 훈련소였어.”

“역시 돈이 많아야 해…….”

규모가 큰 길드의 경우 해당 길드의 파티만 이용할 수 있는 사설 훈련소를 지어서 사용한다.

하지만 꿀잼같이 규모가 작은 중소 길드의 경우에는 공용 훈련소를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사설 훈련소를 돈을 받고 빌려주는 곳도 있지만 공용 훈련소보다 이용 요금이 더 비싼 편이다.

두 사람이 공용 훈련소 입구로 다가가자 훈련소 관계자가 그들에게 다가왔다.

“어느 길드에서 오셨죠?”

“꿀잼이요.”

“꿀잼?”

“네.”

“들어본 적 없는데……. 잠시만요.”

관계자가 긴가민가한 표정으로 자기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낯선 길드명을 검색하기 위함이었다.

이건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중소 길드의 설움 중 하나였다.

“시후야. 우리 길드 이름은 왜 꿀잼이야?”

“꿀잼. 허니잼(Honey jam). 매우 재미있다는 뜻이기도 하고, 꿀로 만든 잼을 뜻하기도 하죠.”

“그러니까 왜 그게 길드명인지.”

“그냥 귀엽잖아요.”

“아, 그래…….”

유지한의 예상대로 꿀잼은 거창한 의미가 있는 길드명은 아니었다.

좋은 점이라면 짧고 기억하기 쉬워서 한번 들으면 좀처럼 쉽게 까먹지 않겠다는 정도.

‘솔직히 케로즈보다는 100배 낫지.’

괜히 허세나 겉멋만 잔뜩 들어간 길드명보다야 훨씬 낫다.

그렇게 생각하며 속으로 케로즈를 욕하는 유지한이었다.

관계자는 길드 정보를 찾아내는 것에 성공하여 그들의 신분을 확인했다.

“이용 요금은 1인 기준으로 1시간당 5만 원입니다. 2인 이상일 때는 1명당 3만 원씩 추가 요금이 붙습니다.”

“길드 할인 적용되죠?”

“네. 같은 길드원인 경우 시간당 2만 원 추가, 그리고 같은 길드의 같은 파티원이면 시간당 1만원 추가 요금으로 최대 할인 적용됩니다.”

“저희는 같은 파티원이니까 시간당 6만 원 맞죠.”

“맞습니다.”

“5시간 선불 결제할게요.”

1시간 요금이 6만 원이니 5시간 이용 요금은 30만 원.

유지한은 지갑에서 카드를 꺼내어 그에게 건넸다.

비슷하게 지갑을 꺼내던 김시후가 깜짝 놀라며 말했다.

“어? 왜 훈련 요금을 형이 내요?! 길드장인 제가 내야지!”

“얼마 안 하니까 됐어. 그리고 나도 길드 지분 들고 있잖아.”

“그래도…….”

“돈이야 또 벌면 되니까.”

별것 아니라는 듯 말하는 유지한.

불만스러운 표정의 김시후가 지갑을 다시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30만 원 정도는 아주 작은 투자야.’

유지한은 자신이 영웅으로서 성장하는 것에 사용하는 돈을 아낄 생각이 없었다.

항상 투자하는 것 이상으로 돌아오는 게 있다고 믿었다.

결코 부자라고 말할 수는 없었지만, 그가 몇만 원 쓰는 정도로 안타까워 할 만큼 쩨쩨한 사람은 아니었다.

잠시 후 그들은 관계자의 안내에 따라 공용 훈련소 안쪽으로 입장했다.

천장이 높고 가로세로 폭이 매우 넓은 공간.

다양한 훈련용 기계가 영웅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사람이 꽤 있네.”

꿀잼과 비슷한 처지인 사람들은 이미 공용 훈련소를 이용하고 있었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김시후가 말했다.

“뭐부터 해볼까요?”

“그 전에 잠깐만.”

유지한은 입고 있던 외투 안쪽을 살짝 들췄다.

아까 소환했던 실프가 아직 그의 품속에 있었다.

‘들키면 조금 시끄러워지겠지.’

정령과 계약했다는 사실은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공개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당장 훈련소에서 사람들의 이목을 끌고 싶지는 않았다.

돈 내고 받는 훈련에 방해가 되니까.

“실프. 그만 돌아가.”

드르르르!

초록색 구체가 약간 불만을 표하듯이 진동하고는 곧 사라졌다.

정령계로 돌아간 정령은 다시 소환하기 전까지 그곳에서 대기하고 있을 것이다.

‘소환 해제까지 저렇게 간단하게 하다니…….’

김시후는 유지한에게 조금 감탄했다.

정령사가 정령과 계약을 맺은 당일에 소환부터 소환 해제까지 작은 실수 없이 한 번에 해냈다는 건 이제껏 들어보지 못했다.

계약 초기에는 좀처럼 말을 듣지 않는 아기를 키우는 것과 같다고 알려지는 정령인데 말이다.

‘실프가 특이한 걸까.’

방금 정령계로 돌아간 바람의 정령 실프는 유지한과 계약하기 이전에 김시후의 어머니와 계약을 맺었었다.

어머니의 죽음 이후 계약은 강제로 풀렸지만, 실프는 당시에 익혔던 명령들을 지금까지 기억하는 걸 수도 있었다.

만약 그렇다면 아주 반가운 소식이다.

김시후는 어머니가 사용하던 정령 마법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기억하고 있었기에 유지한에게 그대로 전수해 줄 수 있었다.

“몸풀기로 저것부터 해보자.”

유지한이 손가락으로 가리킨 것은 훈련소 한쪽에 마련된 AR 훈련장.

특수한 고글을 착용하면 현실 위에 홀로그램 같은 것이 겹쳐서 보이는 훈련이었다.

“앞에 한 팀 대기 중이에요.”

“금방 끝날 거야.”

AR 훈련장은 이미 다른 사람들이 사용하고 있었다.

이용객이 많은 공용 훈련장은 마치 놀이공원처럼 자기 차례가 오기를 기다려야 하는 점이 아쉬운 점이다.

유지한은 차례를 기다리며 앞서 훈련을 하는 사람을 구경했다.

“헛! 헛! 허엇!”

안쪽이 훤히 비치는 마법 강화 유리로 둘러싸인 공간.

아무것도 없이 비어 있는 그곳에서 검은 고글을 착용한 남자가 기합을 지르며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AR 훈련을 모르는 누군가가 본다면 미친놈 취급할 장면이었다.

그러나 준비된 모니터로 보게 되면 비로소 그 장면을 이해할 수 있다.

화면 속 남자가 서 있는 곳은 해가 머리 위에 떠 오른 드넓은 초원 위.

슈우욱!

슈우우욱—!

멀리서 남자에게 나무 화살이 여러 발 떨어지고 있었다.

이것은 날아오는 공격을 회피하는 훈련.

화살이나 마법 따위의 원거리 공격을 하는 적을 대비하는 훈련이었다.

“허억, 허억……!”

고글을 쓴 남자는 전신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화살을 피해 다녔다.

비록 시스템을 통해서 만들어진 가짜 화살이라고는 하지만, 진짜 화살이라고 가정하고서 훈련에 참여하는 것이다.

‘케로즈 훈련소는 이것보다 더 좋았지.’

최신 훈련소는 특수 안경이나 고글을 쓰지 않고도 현실에 홀로그램을 투영하는 기술을 사용한다.

이곳, 공용 훈련소의 시스템은 비교적 구식이었다.

하지만 회피 훈련 정도는 구식이어도 문제 될 것 없었다.

‘저건 못 피한다.’

기다리는 동안 화면 속에서 날아오는 화살을 유심히 지켜보던 유지한은 생각했다.

앞쪽 화살에 정신이 팔린 남자의 뒤에서 날아오는 화살 한 발.

힘이 잔뜩 빠진 남자의 사각지대였다.

안타깝지만 저건 피할 수 없다.

“윽!”

남자가 짧은 신음을 토하며 뒤를 바라봤다.

유지한의 예상대로 그는 뒤에서 날아온 화살에 등을 맞았다.

[GAME OVER]

그가 화살을 맞자마자 훈련이 종료되었다.

훈련 난이도 중에서 1번이라도 공격을 당하면 훈련이 바로 종료되는 지옥 난이도였다.

고통은 없을 테지만 얼굴에 큰 아쉬움을 드러내는 남자였다.

“조금 더 버틸 수 있었는데……!”

“예전보다는 훨씬 많이 버텼어.”

고글을 벗은 남자가 훈련장에서 나왔다.

옆에서 그를 위로하는 동료가 있었다.

“딱 한 번만 더 한다!”

투지를 불태우는 그는 김시후의 뒤쪽에 섰다.

다시 훈련에 도전하려는 것이다.

“뭐가 좋을까…….”

자기 차례가 된 유지한은 AR 훈련장에 준비된 프로그램 목록을 살폈다.

조금 전 남자가 보여 줬던 회피 훈련 말고도 널리 알려진 몬스터들과의 모의 전투나 아군이 전멸한 극한의 상황에서 살아남는 훈련 따위도 준비되어 있었다.

뭘 선택할까 계속 고민하던 중에 뒤에 있던 남자가 말했다.

“그쪽도 회피 훈련하러 왔어요?”

“딱히 그런 건 아닌데요.”

“한번 도전해 보지 그래요?”

“음…….”

“뭐, 그래 봤자 저보다는 못하시겠지만.”

싱긋 웃는 얼굴의 그는 깐족거리며 유지한을 도발했다.

자기보다 실력이 떨어질 것이라는 무시가 깔린 발언이었다.

‘이것 봐라?’

유지한은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남자를 바라봤다.

그의 속셈은 이미 알고 있었다.

회피 훈련은 다른 훈련보다 일찍 끝날 가능성이 큰데, 유지한이 훈련을 빨리 끝내면 그의 차례도 더 빨리 돌아오기 때문이었다.

“좋습니다. 한번 해 보죠.”

[회피 훈련]

유지한은 목록에서 회피 훈련을 선택했다.

저런 귀여운 도발을 하면 받아 줄 수밖에 없었다.

김시후는 유지한에게 고글을 넘겨주며 물었다.

“형, 이거 잘해요?”

“어느 정도는 해.”

유지한은 고글을 머리에 착용했다.

[난이도를 선택하세요]

[쉬움 / 보통 / 어려움 / 지옥]

고글을 통해서 보이는 선택지.

유지한은 당연히 지옥 난이도를 골랐다.

그러자 훈련장 밖에서 그를 도발한 남자가 소리 내며 웃었다.

“하하! 화끈하시네!”

눈앞에 홀로그램이 생성되기 시작했다.

점점 모습을 갖춰 가던 그것은 조금 전 화면으로 봤던 초록색 초원이 되었다.

유지한이 가볍게 몸을 푸는 사이 공격을 개시하는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었다.

[3]

[2]

[1]

[시작!]

훈련이 시작되자 유지한의 정면에서 주먹만 한 돌덩이 하나가 날아왔다.

지옥 난이도답게 초심자라면 피하기 어려운 수준의 속도였다.

스윽.

그는 양발을 땅에서 떼지도 않고 허리를 비트는 것만으로 돌을 피했다.

다음에 날아온 돌덩이도, 그다음에 날아온 더 큰 돌덩이도.

허리를 숙이고 비트는 것만으로 모두 피해 버렸다.

“……조금 하는 놈인가?”

화면으로 그를 지켜보던 남자가 낮게 중얼거렸다.

예상하지 못한 실력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시작일 뿐이다.

슈슉!

슈슈슉!

돌덩이 패턴이 끝나자 은색 표창이 등장했다.

빛에 반사되어 반짝이는 그것이 유지한의 몸을 노리고 빠르게 날아들었다.

그러나 표창이 그의 몸을 스치는 일은 없었다.

여전히 발은 땅에서 떼지 않은 상황이었다.

‘저게 가능하다고?!’

유지한을 도발한 남성의 표정이 실시간으로 굳어져 갔다.

그조차도 쉽사리 시도하기 힘든 행동이었다.

하지만 유지한은 그것이 가능했다.

<—허리를 왼쪽으로 비틀면 저 표창을 피할 확률>

<20%>

<—고개를 뒤로 젖히면 저 표창을 피할 확률>

<90%>

<—상체를 완전히 숙이면 저 표창을 피할 확률>

<98%>

바로 날아오는 공격을 향해서 쉴 새 없이 샘플링을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떤 선택이 필요한 순간, 취할 수 있는 다양한 행동을 가정하여 가장 최적의 선택을 하는 것은 그에게 매우 익숙한 일.

김현태 파티에서도 온갖 위험한 전투를 경험했었기에 이렇게 뻔한 공격을 피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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