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파티에서 추방된 영웅이 너무 뛰어남-4화 (4/300)

4화. 추천서

유지한은 김시후의 요청으로 말을 편하게 놓기로 했다.

딱딱하고 사무적인 길드보다는 화목한 길드가 되면 좋겠다는 그의 의견 때문이었다.

“형이라고 불러도 괜찮죠?”

“당연히 괜찮지.”

유지한의 입장에서는 딱히 거리낄 게 없었기 때문에 요청을 받아들였다.

사실상 길드에서 가장 높은 사람을 동생처럼 여기게 되었지만.

같은 소속의 영웅들끼리 친목을 도모하는 건 파티의 팀워크를 위해서라도 바람직한 일이었다.

‘아차.’

문득 무언가를 떠올린 유지한이 말했다.

“이미 계약까지 다 마친 상황에 물어보는 게 이상하긴 한데, 너 내 케로즈 시절의 경력이 거의 다 비어 있는 건 알고 있지?”

“알아요. 형이 저한테 이력서 보내 줬잖아요.”

영웅으로서 활동해 온 유지한의 공식적인 경력은 단 두 줄.

- 케로즈 입사.

- 케로즈 퇴사.

정말 단순하기 짝이 없는 경력이었다.

원래대로라면 소속 파티에서 괴물을 사냥했던 기록이나 이세계의 침입자들을 물리쳤던 일들은 모두 경력으로 기록되어야 한다.

하지만 유지한은 비공식 파티원이었기 때문에 그것을 자신의 경력으로 삼는 게 불가능하다.

일일이 다 설명하기가 힘들 정도로 많은 경험을 했지만, 그는 서류상으로는 존재하지 않았던 사람과도 같았다.

“영웅으로 7년을 활동했는데 경력이 공백이야. 신경 안 쓰여?”

“형이 오시기 전에는 조금 걱정하긴 했는데 지금은 괜찮아요. 그 비공식 파티원이라는 걸 알았으니까요.”

“고맙네.”

“우리 길드에는 절대로 그런 이상한 제도가 없을 거예요.”

김시후는 유지한의 빈 경력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되레 그의 처지를 알고서 위로하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꿀잼에 들어오게 된 유지한에게는 좋은 일이었으나…….

‘얘는 어디 가서 사기 잘 당할 거 같네.’

이걸 좋게 말하면 성격이 좋은 거고, 나쁘게 말하면 길드장으로서 사람을 너무 쉽게 믿는 편이라고 할 수 있었다.

영웅계에도 사람들의 뒤통수를 치거나 돈을 들고 달아나는 사기꾼들이 많이 존재한다.

지금처럼 사람을 너무 쉽게 믿어 주는 건 나중에 가서 큰 문제가 될 여지가 있었다.

다행히 유지한은 그런 악의적인 것들에 이미 익숙하다.

먹으면 빠르게 강해지는 희귀 영약을 판매한다든지, 해외 유명 영웅이 비밀리에 사용하는 훈련법을 알려 준다든지.

예전에 케로즈에서 활동하며 그와 비슷한 사기를 당한 적이 있었다.

‘이제 내가 있으니까 괜찮겠지.’

그때의 경험들이 쌓여 지금의 유지한은 사기를 판별해 내는 안목이 생겼다.

잔뼈가 굵은 사람으로서 길드장 김시후가 그런 것들에 빠지지 않게 옆에서 도움을 줄 수 있었다.

“아직 꿀잼의 활동 이력이 없던데. 파티 등록은 해 뒀어?”

“저 혼자 등록만 해 뒀어요.”

“MA는 들어가 본 적 있어?”

“학원에서 실습 때 가봤어요.”

몬스터 에어리어(Monster Area). 줄여서 MA.

지구에서 괴물, 즉 몬스터가 등장하는 구역을 일컫는 말이다.

모종의 이유로 특정 구역에서 몬스터가 등장하면 영웅부는 해당 구역 통제를 시작하는데, 하루 이틀 내로 상황이 진압하기 힘들 경우 그곳을 MA로 선언하게 된다.

MA로 정해진 곳은 대체로 몬스터들이 수없이 등장하며 영웅이 아닌 일반인의 접근은 허락되지 않는다.

길드에서는 소속 파티를 그곳으로 보내어 몬스터 퇴치에 협조한다.

그 과정에서 얻어지는 몬스터의 사체 같은 부산물들은 길드의 소유물이다.

그것을 거래하여 돈을 버는 게 영웅들의 주요 수입 중 하나였다.

“길드 설립한 뒤에는 MA에 방문한 적이 없는 거지?”

“네.”

“흠…….”

유지한은 잠시 생각에 빠졌다.

길드의 규모와는 별개로 파티에는 5급부터 1급까지 영웅부에서 관리하는 절대적인 등급이 존재한다.

지금처럼 한 번도 활동한 적 없는 파티의 경우 등급은 당연히 최하인 5급이었다.

‘가까운 지역에 5급 MA가 꽤 있던 걸로 아는데.’

파티 등급은 MA의 입장 조건이 되기도 한다.

영웅부에서 MA를 선언할 때 파티 등급과 똑같은 등급을 매기는데, 만약 파티 등급이 MA 등급보다 낮으면 입장이 불가능하다.

또, 등급이 너무 높아서 입장이 불가능한 일도 있다.

강한 파티를 보유한 길드가 MA를 독점하게 되면 소규모 파티가 성장할 발판이 사라지니까.

“당장 MA에 가지 않은 이유가 있어?”

“가지 않은 게 아니라 못 갔어요.”

“뭐?”

“입장을 계속 거부당했거든요.”

김시후는 조금 억울한 목소리로 말했다.

꿀잼이 1인 길드라는 이유로 MA 입장을 심사하는 심사관에게 걸려 지금껏 MA에 입장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1인 길드 설립 허가는 내줬으면서 입장을 거부했다고?”

“그러니까요! 이게 말이 되는 일인지.”

“항의는 안 했어?”

“하긴 했는데 씨알도 안 먹혔어요. 대신 다른 길드에서 용병으로 몇 번 활동하면 다음부터는 인정해 준다곤 했는데, 그러고 싶지는 않아서…….”

입장 자격을 얻는 건 그리 거창한 게 아니다.

이 파티가 MA에서 몬스터를 퇴치할 수준이 된다는 걸 알리기만 하면 된다.

유지한은 자신의 과거를 떠올렸다.

처음 김현태 파티에 합류했을 때, MA에 입장하기 위해 영웅부의 관계자와 연락을 취했던 기억이 있었다.

그때는 지금 같이 복잡한 문제가 없었다.

“요새 기준이 진짜 까다롭긴 한가 보구나.”

“그래도 이제 형을 파티에 등록하면 문제없지 않을까요?”

“그건 모를 일이지.”

유지한의 비어 있는 경력은 자칫 잘못하면 영웅이 아니라 길드의 사무직으로 활동한 것처럼 보일 수 있었다.

설마 이런 어처구니없는 문제로 고민을 하게 될 줄이야.

그렇게 생각하던 때였다.

우우웅—

유지한의 휴대폰에서 진동이 울렸다.

화면을 확인해 보니 케로즈 매니지먼트 부서의 총괄팀장 이현재였다.

“잠깐 전화 좀 받을게.”

유지한은 김시후에게 양해를 구하고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지한 씨!

“안녕하세요. 현재 씨.”

—길드에서 나갔다는 소식 전해 들었어요…….

“예. 그렇게 됐네요. 제가 따로 전화해서 말씀드리려고는 했는데.”

—어디 몸이 안 좋아져서 나간 건 아니죠?

“아니에요.”

이현재는 유지한의 안부를 물으며 걱정했다.

그는 케로즈의 길드원 중에서 유지한을 파티원보다도 더 아껴 주던 사람이었다.

—지금 집이에요?

“아뇨. 새로 합류한 길드 사무실에 있어요.”

—예에엑?! 벌써 길드에 들어갔어요?

이현재는 정말 크게 놀랐다.

아직 유지한이 길드를 탈퇴한 지 3일도 채 지나지 않았다.

이렇게나 빠르게 다른 길드로 갈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어떤 길드인데요?

“꿀잼이라고 설립된 지 얼마 안 된 곳이에요.”

—……꿀잼? 꿀잼이요? 그거 어디서 들어본 거 같은데. 잠시만요.

유지한의 휴대폰 너머로 이현재가 종이를 넘기는 소리가 들려왔다.

종이가 약 4~5장 정도 넘어간 뒤에,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거기 김시후라는 영웅이 만든 곳 아니에요?

“어? 맞아요. 어떻게 알았어요?”

—맞구나! 아니, 그 친구가 우리 길드 영입 후보에 올라와 있었거든요.

“아…….”

—우리 쪽에서 접촉하기 전에 길드를 만들어 버려서 영입이 결국 무산됐지만요.

놀랍게도 김시후는 케로즈에서 눈여겨보던 차세대 영웅 중 하나였다.

규모 있는 길드는 여러 영웅 학원과 교류하며 인재에 대한 정보를 미리 얻고는 하는데, 그중에 김시후가 포함되어 있던 것이다.

이건 김시후 본인조차 모르고 있던 정보였다.

—새로 시작하는 길드에 들어가는 게 쉬운 선택은 아니었을 텐데. 괜찮은 사람을 만난 것 같아서 그나마 다행이네요.

“그렇죠. ……그리고 현재 씨.”

—네?

“이렇게 연락이 닿은 김에 작은 부탁 하나만 드려도 될까요?”

통화를 이어 가던 유지한은 생각했다.

어쩌면 영웅계에 발이 넓은 이현재에게 도움을 받을 수도 있겠다고.

—어떤 거요?

“예전에 꿀잼이 5급 MA에 들어가려고 했을 때 1인 길드라는 이유로 심사에서 탈락했나 봐요. 제가 합류하긴 했지만 경력이 비어 있어서 걱정되는데, 조금 도움을 받을 수 없을까요?”

유지한의 입에서 나온 말에 옆에서 가만히 기다리고 있던 김시후까지 그의 통화에 귀를 기울였다.

혹시나 하는 기대감이었다.

그리고 돌아온 대답은 기대를 100% 충족시키는 것이었다.

—그 정도야 아주 쉬운 일이죠.

“정말로요?!”

—입장 심사에는 추천 제도가 있거든요. 케로즈 이름으로 써 주는 건 어렵겠지만, 제가 아는 길드한테 부탁해서 추천서를 받으면 5급 MA 정도는 입장에 무리가 없을 거예요.

“오오…….”

—지금 통화 끝나면 그쪽에 바로 연락해서 추천서 부탁할게요. 제 휴대폰으로 김시후 씨 연락처 보내 주세요.

“알겠습니다. 정말 감사해요.”

—에이, 겨우 이런 거로 감사를 들을 수는 없죠.

유지한은 휴대폰 너머 이현재에게 감사를 전했다.

곧 통화가 끝나고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잘 됐어요?”

김시후는 마치 먹이를 기다리는 강아지처럼 크고 반짝거리는 눈으로 유지한을 바라봤다.

유지한은 씩 웃으며 말했다.

“곧 너한테 연락 올 거야. 그거 받고서 고맙다고 하면 돼.”

“우오오!”

이것이 인맥이라는 것인가!

김시후는 거친 감탄사를 내뱉으며 기뻐했다.

유지한 덕분에 최근 그의 가장 큰 고민거리 중 하나가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

“왔다!”

다른 길드에서 작성한 추천서가 꿀잼으로 도착하는 데는 1시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이현재는 그만큼 유지한의 부탁을 매우 빠르게 들어주었다.

“얼마 전에 부천에서 열린 5급 MA가 있어요. 거기에 입장을 요청해 볼게요.”

“얼마나 걸릴 것 같아?”

“4일은 걸리지 않을까요? 마지막으로 넣었을 때 그 정도 걸렸어요.”

MA 참여 경력이 없는 파티의 입장 심사가 완료되기까지는 다소 시간이 소요된다.

예상 소요 시간은 4일.

다만 운이 좋게도 케로즈의 협력 길드에서 2급 파티의 추천서를 따냈으니까 4일보다 짧아질 수도 있었다.

유지한은 김시후에게 물었다.

“그때까지 뭐할래?”

“……딱히 계획해 둔 건 없네요.”

고개를 갸웃거리는 김시후.

오늘 받아 낸 추천서도 유지한이 아니었다면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었기에, 이후에 정해 둔 일정은 없었다.

하지만 그들이 사무실에서 마냥 심사가 끝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필요도 없었다.

“나랑 같이 훈련소나 가자.”

“훈련소요?”

유지한은 그에게 영웅 훈련소에 가자고 제안했다.

영웅을 위한 여러 훈련이 준비된 그곳은 목숨을 위협받지 않는 상황에서 자신의 능력을 시험하고 기르기 좋은 공간이었다.

‘2명으로 화력을 얼마나 낼 수 있을지…….’

훈련을 제안한 것은 MA로 들어가기에 앞서 실전 감각을 끌어올리고 꿀잼의 전력을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이곳에는 김현태나 탱커 황준호처럼 지금까지 함께 합을 맞췄던 파티원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제부터는 내가 메인 딜러가 되어야 해.’

꿀잼의 구성원은 마법사 김시후와 유지한, 단 두 명뿐.

새로운 길드에 들어온 이상 유지한은 파티의 핵심 중 하나인 메인 딜러 역할을 맡아야 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