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합격
“……?”
유지한은 눈앞에 떠오른 메시지를 보며 눈을 깜박였다.
그러다 손으로 눈을 비벼 보기도 하고, 혹여라도 잘못 본 게 아닌지 눈을 아주 크게 뜨고 결과를 다시 확인하기도 했다.
<99%>
그런데도 샘플링의 숫자는 변하지 않았다.
99%.
유지한이 꿀잼에 들어간다면 해당 길드가 거대 길드가 될 확률은 99%가 맞았다.
“말도 안 돼.”
그의 입이 떡 벌어졌다.
지금까지 스킬을 사용해서 나온 모든 결과 중 가장 높은 확률은 98%.
적어도 2% 확률로 정반대의 결과가 나온다는 얘기다.
물론 90% 이상만 되더라도 충분히 신뢰할 수 있는 수치였다.
하지만……. 지금 그의 눈앞에 나온 99%.
소수부를 제외하면 가장 100%에 가까운 확률!
99%와 98%은 단 1%의 차이지만 완전히 다른 확률이다.
이 정도면 단순히 확률을 벗어나 미래 예지에 가깝다고 볼 수 있었다.
“다시! 다시 한번 해보자.”
유지한은 샘플링을 사용하여 같은 질문을 반복했다.
그러나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미쳤다……!”
그는 손에 들고 있던 빈 콜라 캔을 와작 구겼다.
긴 백수 생활을 예상하였는데, 이런 정보를 얻고서는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대체 뭐 하는 길드야.”
그는 검색 사이트를 열어 꿀잼 길드에 대한 정보를 조사하기 시작했다.
비교적 최근에 설립된 길드인 만큼 인터넷에 떠도는 정보는 정말 쥐꼬리만 했다.
그나마 길드가 필수적으로 공개해야 하는 자료는 나와 있었다.
“길드 구성 인원은 딱 1명. 김시후라는 사람이 길드장이고, 아직 제대로 된 파티는 구성하지 않았어. 활동 이력도 없네.”
설립된 지 몇 달이 지났는데도 다른 사람 없이 1명뿐인 길드.
이 경우에는 사람이 많은 파티에 소속되기를 꺼리고 단독으로 활동하는 걸 원했을 가능성이 있다.
1인 길드는 세계적으로 주류는 아니어도 상당수 존재한다.
인원수를 이유로 여러 방면에서 제한을 받지만, 동시에 한없이 자유로우며 길드 내 인간관계에서 발생할 수 있는 갈등도 피할 수 있다.
고정된 직장을 가지지 않는 프리랜서처럼 활동하는 그들은 때때로 다른 길드에게 돈을 받고 용병처럼 싸우기도 한다.
“길드원 모집은 안 하나?”
유지한은 어떻게든 꿀잼에 들어가고 싶었다.
보통 길드원은 상시 모집 공고를 올려 두곤 하는데 꿀잼은 길드원 모집과 관련된 소식이 존재하지 않았다.
이렇게 되면 아쉬운 쪽에서 다가갈 수밖에 없다.
길드 공식 연락처는 공개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유일한 연락 수단은 이메일뿐.
그는 끙끙대며 메일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
정성스럽게 작성한 메일을 보낸 후 유지한은 하루 만에 답장을 받았다.
꿀잼의 대표이자 길드장인 김시후가 작성한 답장에는 개인 연락처와 함께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나눠 보고 싶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유지한은 답장을 보자마자 그에게 문자를 보냈고 다음 날 사무실에서 만나자는 약속을 잡았다.
그리하여 이튿날 도착한 꿀잼의 사무실 앞.
“옛날 생각나네.”
사람이 많은 곳에서 멀리 떨어진 낡은 빌딩.
여기저기 널려 있는 사무실 임대 문의 쪽지들.
저렴한 가격을 원하는 사람들이 주로 이용할 만한 건물이었다.
과거의 유지한도 케로즈가 크게 성장하기 전에는 이런 곳으로 출근했었다.
똑똑.
그는 꿀잼이라는 글자가 적혀 있는 문을 두드렸다.
잠시 후 안쪽에서 자물쇠가 해제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문을 열어 준 사람은 유지한보다 키가 조금 작고 검은색 비니 모자를 착용한 남자.
“유지한 님?”
“처음 뵙겠습니다. 유지한입니다.”
“안녕하세요! 김시후입니다. 안으로 들어오세요.”
꿀잼의 길드장인 김시후는 그를 반갑게 맞이했다.
‘되게 어리게 생겼네.’
꽤 긴 경력을 가진 영웅일 거라는 예상과 달리 김시후는 이제 막 성인이 된 듯한 청년이었다.
유지한은 그의 안내에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저렴해 보이는 탁자와 사무용 책상 2개가 공간을 꽉 채우고 있는 작은 사무실.
유지한을 탁자로 안내한 김시후는 머쓱하게 웃었다.
“여긴 임시로 사용 중인 곳인데, 불편하셔도 양해 부탁드려요.”
“아뇨, 괜찮습니다. 제가 예전에 있던 곳보다 낫네요.”
유지한의 대답에 김시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전에 있던 곳이라면 케로즈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맞습니다.”
“하지만 케로즈는 엄청 큰 길드잖아요?”
중소 길드를 벗어나 중견 길드가 되어 상당한 입지를 다진 케로즈.
김시후는 그런 곳에서 이렇게 작은 사무실을 사용한다는 걸 믿을 수 없었다.
“그거야 최근의 일이고 7, 8년 전에는 여기보다 작은 사무실에 있었어요.”
“아……. 정말로 초창기 멤버이신가 보네요.”
“예, 뭐.”
“혹시 길드에서 나오신 이유를 알 수 있을까요?”
사무실에 도착하자마자 면접 비슷한 것이 진행되었다.
잠시 고민하던 유지한은 김시후에게 케로즈에만 존재하는 비공식 파티원이라는 제도를 알려 주었다.
그러자 김시후가 황당한 목소리로 말했다.
“세상에! 그런 게 있다는 것도 처음 들었지만, 오랜 기간을 함께 해온 사람한테 너무한 거 아니에요?”
“제가 계약을 그렇게 했으니까……. 위에서 까라면 까야죠.”
“케로즈의 박중섭 길드장 관련 뉴스 찾아보니까 소속 길드원을 되게 아껴 주는 사람처럼 보이던데……. 다 뻥인가 봐요.”
“친한 기자들한테 돈 주고 쓴 기사라서 그래요.”
“그래요? 소문이랑 진짜 다르네.”
유지한은 진심으로 놀란 반응을 보이는 김시후를 살폈다.
잠깐 대화를 나눠 보니 그는 일반적인 길드의 내부 사정과 관련된 정보를 잘 모르는 듯했다.
“길드장님은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올해로 22살입니다.”
“되게 젊으시네요. 그 나이에 길드 설립 허가 따내기도 힘드셨을 텐데.”
몇 년 전, 신입 영웅끼리 뭉쳐서 만들어진 길드가 불의의 사고로 전멸한 이후 길드 설립은 조금 더 까다로워졌다.
다른 길드에서 활동한 경력처럼 무언가 자신을 증명할 수단이 없다면 신규 길드 설립에 제한이 걸릴 수 있다.
따라서 저렇게 어린 나이에 신규 길드를 세웠다는 건 꽤 놀라운 일이었다.
“제가 다니던 영웅 학원에서 특혜를 받았거든요.”
“특혜라뇨?”
“마법 성적 1위로 수석 졸업하니까 길드 설립은 쉽게 해 주더라고요.”
영웅을 육성하는 학원에서는 영웅의 능력을 구분하여 반을 나눈다.
마법 계열의 능력을 가진 김시후는 그곳에서 가장 높은 성적으로 졸업하여 특혜를 받았다 말하고 있었다.
“수석 졸업이시면 다른 길드에서 영입 제안도 많이 들어왔겠어요.”
“길드에 사람이 많은 건 제가 좀 불편해서……. 저는 이 꿀잼도 소수 정예 길드로 꾸려나갈 예정이에요.”
“그렇군요.”
“그리고 여기까지 오신 김에 한 가지 더 말씀드려야 할 게 있는데.”
“……?”
무언가 할 말이 있는 듯 우물쭈물하는 김시후.
그는 곧 결심한 표정으로 머리에 쓰고 있던 검은색 모자를 벗었다.
모자 속에서 감춰져 있던 그의 회색빛 머리칼과 두 귀가 드러났다.
특이한 점이라면 한쪽 귀가 끝이 둥글지 않고 뾰족하다는 것.
마치 다른 세계에서 지구로 넘어온 엘프처럼 말이다.
“저는 인간이 아니라 하프 엘프입니다.”
“……아.”
“돌아가신 제 어머니가 엘프셨고 아버지는 인간이에요.”
조금 긴장한 듯한 그의 설명에 유지한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세계에서 지구로 침입하는 사건이 늘어나면서 세간에 이종족의 존재가 공개됐는데, 그 대표적인 종족 중 하나가 바로 엘프다.
지구를 침략하겠다는 식으로 적대적인 경우에 그들은 퇴치해야 할 적으로 간주된다.
하지만 평화를 원하는 경우도 존재하여 인간 사회로 합류하는 사례가 있다.
그 과정에서 인간과 사랑에 빠져 아이를 낳게 되면 이종족과의 혼혈이 탄생한다.
‘다른 길드로 들어가지 않은 건 이것 때문인가.’
그가 다른 길드에 들어가지 않은 이유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현대에는 인종 차별을 넘어선 종족 차별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종족 차별은 이종족의 등장에서 발생한 대표적인 사회 문제.
엘프를 비롯한 다른 이종족에게 공격당해 죽은 인간의 수가 적지 않다 보니 그들을 미워하는 사람들도 많이 생겨났다.
구성원이 대부분 인간인 길드에 들어가면 그런 차별적인 시선을 견뎌 내야 하는데, 그것은 절대 쉽게 여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종족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딱히 부정적이지는 않아요. 영웅으로 활동하면서 종종 봤지만 평범한 사람이랑 다를 게 없었거든요.”
“휴우……. 다행이네요.”
김시후가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그는 이전에 만난 사람 중에 이종족에 대해 큰 거부감을 가지는 사람이 많았다.
평소에 모자를 써서 귀를 감추는 것은 그 때문이었다.
“그런데 길드장님.”
“네?”
유지한의 시선이 책상 위에 놓인 마법 지팡이로 향했다.
사무실에 들어왔을 때부터 계속 기묘한 느낌을 주던 물건이었다.
“저 지팡이, 혹시 플로른으로 만든 건가요?”
“네. 맞아요. 저희 어머니 유품이에요.”
“오! 직접 보는 건 처음이에요.”
신비로운 마력이 깃들어 있어 마법과 관련된 아티팩트를 만드는 것에 최고의 소재 중 하나로 꼽히는 플로른(Florn).
플로른은 지구에는 원래 존재하지 않았던 나무로 극히 적은 수의 엘프가 이세계에서 넘어올 때 씨앗을 챙겨왔다고 알려진다.
‘한번 만져 보고 싶다.’
수가 많지 않아 값이 천문학적으로 비싸고 지구에 정착한 엘프들이 비밀리에 관리하는 신비의 나무다.
영웅으로 몇 년간 활동했던 유지한조차 직접 보게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실례가 아니라면 잠깐 만져 봐도 될까요?”
“물론이죠.”
김시후는 그의 요청을 기꺼이 승낙했다.
유지한은 그가 건네는 지팡이를 최대한 조심스럽게 받아들었다.
어머니의 유품이라는 소중한 물건에 흠집을 내고 싶지는 않았다.
‘은근히 무겁네.’
손가락보다도 가는 굵기의 지팡이.
길이도 30cm 정도밖에 되지 않지만 단순한 나무 작대기의 무게가 아니었다.
안에 무거운 철근이라도 심어 놓은 것처럼 상당한 무게가 있었다.
마법 없이 그냥 휘두르기만 해도 적에게 강한 타격을 줄 수 있으리라.
그렇게 유지한이 감탄한 눈빛으로 지팡이를 만져 보던 때였다.
뾰롱!
갑자기 지팡이 끝에서 귀여운 소리와 함께 무언가가 튀어나왔다.
“응?”
“실프?! 네가 갑자기 왜?”
초록색으로 은은하게 빛나는 구체가 공중에 떠올랐다.
그리고는 유지한의 머리 위에서 빙 돌기 시작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이후에 한 번도 밖으로 나온 적이 없는데……!’
김시후는 지금 눈앞의 광경을 믿을 수가 없었다.
지팡이에 깃들어 있는 정령이 모습을 드러낸 것은 거의 6년 만의 일.
그런데 그 뒤에 벌어진 일은 더 믿기 힘든 것이었다.
“……어? 어?”
초록색 구체가 유지한의 이마에 닿았다.
깜짝 놀란 그가 고개를 이리저리 흔들어 봐도 실프는 접착제라도 묻은 것처럼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 상태로 7초 후.
실프는 공기에 녹아들듯 스르륵 사라져 버렸다.
정령의 그 행동의 무엇인지 알고 있는 김시후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경악했다.
“계약이라니!!”
“계약이요?”
“방금 당신이 실프랑 계약을 했잖아요!”
김시후는 크게 흥분하며 유지한이 들고 있던 지팡이를 거의 뺏듯이 가져왔다.
그리고 눈을 감고 지팡이를 잡은 손끝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저, 정말로 사라졌어…….”
김시후의 손이 덜덜 떨려왔다.
지팡이 안쪽에 잠들어 있던 정령의 힘이 느껴지지 않았다.
실프가 김시후의 어머니 때부터 자기 집처럼 사용하던 아티팩트를 버리고 떠난 것이다.
‘이게 무슨 일이래.’
유지한은 마른 입술을 혀로 핥았다.
본의는 아니었으나 무언가 큰 실수를 저지른 것만 같았다.
조금 전까지는 분위기가 상당히 괜찮았는데…….
자칫 잘못하면 일이 좋지 못한 방향으로 꼬일지도 모른다.
“저기……. 저기요?”
“합격.”
“예?”
“합격! 면접 합격이라고요! 당신 앞으로 내 길드원이야! 다른 길드 가기만 해봐요, 내가 절대 가만히 안 있을 거야……!”
억울한 표정으로 유지한을 노려보는 김시후.
두 사람의 만남은 지원자를 평가해야 하는 사람이 합격을 부르짖는 요상한 사태가 되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