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파티에서 추방된 영웅이 너무 뛰어남-1화 (1/300)

1화. 추방되다

“파티에서 나가라고?”

“그래.”

동료가 내뱉은 차가운 말에 유지한은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지구의 수많은 동식물이 괴물로 변하고 이세계에서 찾아온 침입자가 날뛰는 혼돈의 시대.

그에 대항하기 위해 특별한 힘을 가진 영웅들이 모인 집단, 길드.

길드는 1개 이상의 파티로 구성되는데, 유지한은 최근 몇 년 동안 빠르게 성장한 길드인 ‘케로즈’ 소속 파티 중에서도 매번 파티 서열 1위를 놓치지 않은 김현태 파티의 일원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파티에서 나가라니.

“이유는?”

“이유? 그걸 몰라서 묻는 거야? 아니면 알면서 확인하고 싶은 거야?”

“몰라서 묻는 거야.”

“하, 정말…….”

유지한에게 추방을 명령한 파티장 김현태가 미간을 찌푸렸다.

작은 개미 따위의 하찮은 걸 보는 듯한 표정이었다.

언론에 자주 비치는 그의 모범적인 이미지와는 매우 다르다.

‘또 저러네.’

하지만 유지한은 그게 낯설지 않았다.

김현태가 그를 향해서 저런 표정을 자주 보여 줬기 때문이었다.

“유지한. 넌 진짜 끝까지 멍청하네.”

“욕하지 말고 이유를 말해.”

“이유가 뭐냐고? 당연히 쓸모가 없어서 그렇지.”

“쓸모가 없다니? 나도 내 역할 정도는.”

“네 역할? 겨우 짐꾼?”

“서브 탱커랑 적을 유인하는 일도 하고 있어. 그 외에도 너희를 지원하는 역할은 여럿 맡고 있다고.”

옆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거구의 탱커 황준호가 어이가 없다는 듯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서브 탱커? 그러시겠지. 내 옆에서 깔짝거리는 ‘서브’ 탱커! 그런데 고작 그런 거 해 놓고서 자기 할 일 다 했다고 나오는 건 너무한 거 아니냐?”

“그게 파티에서 내가 맡은 역할이었으니까.”

황준호의 비아냥에도 유지한의 대답은 담담했다.

탱커나 딜러 등 다른 주요 파티원들을 받쳐 주는 지원형 영웅.

정식 명칭은 아니나 흔히 서포터(Supporter) 라고 부르는 역할이었다.

그리고 유지한 본인은 그 역할을 7년 넘게 아주 잘 수행했다고 여겼다.

성과를 놓고 따지자면 같은 자리에 누굴 데려오더라도 밀리지 않을 자신이 있을 정도였다.

“그리고 김현태, 네가 항상 나보고 앞에 나서지 말라며.”

유지한이 서포터라는 역할 이상으로 나서려고 했을 때.

그를 막아섰던 건 다름 아닌 파티장 김현태였다.

유지한은 파티의 리더인 그의 의사를 받아들여 본래의 역할에만 충실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쓸모가 없다고, 하는 일이 없다고 말하는 건 듣는 당사자로서 조금 어이가 없었다.

“공격 스킬 하나 없는 너한테 뭘 맡겼다가 사고라도 터지면 어떡해?”

“서로 같이 활동한 게 몇 년이 넘었는데, 한 번이라도 맡겨 보고 그딴 소리를 하던가…….”

“게다가 넌 정식 파티원도 아니었잖아.”

“…….”

유지한은 마지막 말에 차마 반박하지 못했다.

실제로 그는 파티의 비공식 파티원이었다.

분명 길드에 소속되어 있지만, 파티의 공식 명단에는 빠져 있었다.

같은 일을 해도 다른 파티원보다 돈을 훨씬 적게 받을뿐더러 언론에도 그의 이름은 알려지지 않았다.

외부 행사라도 초청받아 참여하는 날에는 김현태 파티가 주목받는 자리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대기해야만 했다.

“이참에 한마디 더 하겠는데, 넌 전투에서 네 의견을 우길 때가 너무 많아. 하는 일도 없으면서 말만 많다고.”

“나는 네 생각보다 하는 일이 많고, 우기는 게 아니라 의견을 냈던 거야.”

“스노우볼 길드 알지? 그쪽 1위 파티는 짐꾼이 탱커 역할도 하는데 파티 리더보다 더 유명하잖아. 심지어 잘생기기도 했고. 그런데 넌 아무것도 없어.”

“외모는 잘 모르겠지만, 내가 지금껏 그 사람보다 못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아.”

“그건 네 생각이고.”

“임시연! 내가 현장에서 네 목숨을 대체 몇 번이나 구해 줬는지 알아?”

“난 잘 모르겠는데?”

마법사 임시연은 유지한의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그에 유지한은 입을 다물어 버렸다.

그 어떤 말을 한들, 귀를 꽉 닫고 있는 사람에게는 통할 리 없었으니까.

“요즘 나오는 신입들도 조금만 가르치면 너만큼은 하지 않을까?”

“양심이란 게 아직 남아 있으면 알아서 나가 주는 게 어때?”

리더 김현태부터 마법사 임시연, 탱커 황준호까지.

모두 유지한이 파티에서 나가는 걸 원했다.

하고 싶은 말은 많이 남아 있지만, 문득 회의감이 든 유지한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너도 그렇게 생각해?”

유지한의 시선이 우두커니 서서 대화를 듣고 있는 여성, 이미아를 향했다.

그녀는 언제나와 같은 무표정으로 그를 보며 말했다.

“넌 약해.”

“봐봐! 미아까지 저렇게 말할 정도면 진짜 심각한 거지.”

파티에서 가장 조용하지만, 거짓말을 하지 못하는 성격의 이미아.

그녀마저 유지한이 파티에 남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나마 다른 파티원과 구분되는 점이라면 비난을 하지 않는다는 정도일까.

“그래. 알았다.”

유지한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이들은 자신을 원하지 않는다.

이곳 모두가 신입 영웅이었던 시절, 언젠가 함께 최고가 되자고 다짐했지만.

그것은 이미 흘러간 과거의 일이었다.

“나는 오늘부로 파티를 탈퇴하겠어.”

*****

김현태 파티와 헤어진 유지한은 곧장 케로즈의 길드장에게 찾아갔다.

그리고 지금 파티를 탈퇴하고 길드의 다른 파티에 합류하고 싶다는 의사를 전달했다.

“그건 안 돼.”

“예?”

하지만 길드장 박중섭은 그가 파티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했다.

“당장 남는 자리가 없어.”

“그럼 신규 파티에라도…….”

“그것도 힘들다. 지한아.”

“……파티는 계속 만들고 계시잖아요?”

“네가 현태 파티에 있었다는 게 알려지면 애들 입장이 어떻게 되겠어? 1위 파티에 있던 사람이라면서 부담을 느낄 수도 있고, 그러다 네 실력을 알면 길드에 괜한 의심을 가질 수도 있잖아.”

일반적인 회사와는 너무나도 다른 일을 하는 길드라지만, 결국에는 많은 사람이 부대끼며 일하는 공간이다.

이런 곳에서 사람과 관련된 소문은 빠르게 돌 수밖에 없다.

그런데 비공식이긴 해도 무려 길드 내 1위 파티에 있었다던 인물이 겨우 신입 파티에 들어간다면?

그리고 그의 능력이 신입과 비교해도 그리 뛰어나지 않다면……?

그것은 길드 내 파티 서열에 대한 의심으로 번질 수도 있었다.

‘내가 아무리 그래도 신입들보다는…….’

속으로 울컥한 유지한은 반박을 하려고 했지만.

그런 생각을 하는 자신의 처지가 조금 처량하게 느껴져서 그만두었다.

“그럼 저보고 어떡하라는 말씀입니까.”

“길드에서 나가 줘야겠다.”

“……!”

파티에서 쫓겨난 거로도 모자라, 길드에서 나가라니.

명백한 해고선언이었다.

“길드장님!”

“네가 길드 초기부터 지금까지 많이 애써 준 건 안다. 하지만 이건 나로서도 어쩔 수 없는 일이야.”

유지한이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눈앞의 박중섭은 한번 결정한 일을 절대로 바꾸려 들지 않는 사람이었다.

지금부터 간곡하게 설득해도 아무런 소용이 없을 것이다.

“그러면 다른 길드에 추천서를 써 주실 수 있으십니까?”

“미안하지만 그럴 수는 없어.”

“……그것도 안 됩니까?”

“추천서에는 무언가 어필할 내용이 필요해. 그런데 알다시피 지금까지 네 경력에는 뚜렷하게 드러난 활동이 없어서 추천서에 뭐라 써 줄 내용도 없다.”

“경력이 비어 있는 건 제가 비공식 파티원이기 때문이고, 그건 길드장님이 제게 제안하신 거잖아요.”

“그리고 너는 그 제안에 동의했지.”

“아니, 무슨…….”

이게 말이야 방구야.

유지한은 그에게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20대 초반부터 소규모 길드의 발전을 위해 달려온 게 자그마치 7~8년이다.

작은 사무실을 임대해서 시작한 길드가 커다란 빌딩을 통째로 사들이기까지, 소속 길드가 빠르게 성장하는 모습을 보며 뿌듯함까지 느꼈는데.

그 노력이 이런 대접으로 돌아올 줄이야.

‘설마.’

그는 불안함을 느끼며 박중섭에게 말했다.

“제 퇴직금은…….”

“미리 계산해 뒀다. 한 번 확인해 봐.”

박중섭은 자기 책상 위에 있던 서류를 앞으로 밀었다.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기 전부터 놓여있던 서류였다.

그것은 박중섭이 처음부터 유지한을 길드에서 내보내려고 했다는 걸 알려 주는 것이기도 했다.

‘이 사람이 일 처리가 이렇게 빠릿빠릿한 사람은 아니었는데.’

유지한은 찜찜한 표정으로 그 서류를 받아들었다.

권고사직서를 비롯해 실제로 퇴직금과 관련된 내용이 적힌 문서였다.

그런데…….

“이게 뭡니까?”

“보면 알잖아.”

“제 퇴직금이 고작 천만 원이라뇨?”

영웅의 퇴직금은 일반 회사원과 달리 법으로 지정되어 있지 않지만, 그 위험성과 특수성을 고려하여 적어도 한두 해 연봉에 더해 고생했다는 의미로 보너스를 챙겨 주는 것이 업계의 암묵적인 규칙이다.

그런데 서류에 적힌 퇴직금은 고작 1천만 원.

목숨 걸고 일하는 영웅의 한 달 월급도 채 되지 않는 금액이었다.

“인사팀과 충분히 이야기 나누고 결정한 금액이야.”

“이건 말도 안 되는 금액이잖아요!”

“오해하지 마라. 인사팀에서 더 낮게 책정한 걸 내가 조금이라도 올린 금액이니까.”

“어떻게 저한테 이러실 수가……!”

“너는 서류상 7년째 대기 중인 상태잖아. 그거 고려하면 금액은 얼추 맞지. 그나마 권고사직으로 실업 수당은 나올 테니 다 합하면 퇴직금으로 충분하지 않겠어?”

“……!”

“아, 참고로 인수인계는 따로 시간 들이지 않아도 돼. 지금 서류에 사인하고 떠나면 남은 절차는 길드에서 알아서 처리해 줄게. 그리고 사무실에 따로 놔둔 짐은 없지? 거기 내일모레부터 다른 신입이 들어올 자리라서…….”

노트북에 시선을 고정한 채 키보드를 두드리는 박중섭의 뻔뻔한 말에, 유지한은 들고 있던 서류를 구겨지게 쥐었다.

당장 길드에서 나가라.

그리고 너에게는 아무것도 해 줄 수 없다.

그것이 길드의 입장이었다.

“그래. 지금까지 고생 많았다.”

퇴직서에 서명을 마친 유지한.

박중섭은 그제야 한쪽 손을 앞으로 내밀며 이별의 악수를 요청했다.

하지만 유지한은 악수를 받는 대신 구겨진 서류를 책상에 던지듯이 내려놓고 사장실을 나섰다.

*****

자신의 집으로 돌아온 유지한이 냉장고에서 시원한 콜라를 꺼냈다.

캔을 따서 곧바로 들이켰는데, 항상 시원하기만 했던 콜라의 탄산이 오늘따라 목에서 유독 따갑게 느껴졌다.

절반 정도를 단숨에 마시고 난 뒤에 입에서 참을 수 없는 한숨이 튀어나왔다.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됐을까.’

유지한이 길드에 이제 막 들어왔을 때, 길드장 박중섭은 현재 준비 중인 파티에 그가 들어가는 것을 제안했다.

아직 신입 영웅인 입장에서 그게 평범한 제안이었다면 기쁘게 받아들였겠지.

그런데 박중섭이 제안한 것은 비공식 파티원이었다.

역할 또한 주로 다른 파티원을 보조하는 것으로 공식적으로는 파티에 없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그땐 그게 좋은 선택인 줄 알았지.’

그는 고민 끝에 제안을 받아들였다.

제안을 거절하고 다른 길드에 갈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공식이든 비공식이든 상관없이, 유지한이 길드에 들어가기만 하면 케로즈는 굉장히 수준 높은 길드가 될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단순히 포부나 감으로 말하는 게 아니었다.

‘고유 스킬, 샘플링.’

본인 외에는 그 누구도 알지 못하는 유지한의 고유 스킬.

샘플링(Sampling).

질문이나 어떤 조건을 제시하면 그것이 달성될 가능성이나 확률을 미리 알려 주는 스킬.

‘만능은 아니지만.’

얼핏 들으면 굉장한 능력처럼 들리겠지만 그렇지는 않다.

이 스킬이 모든 일에 답변을 주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미래에 굉장한 부자가 될 확률, 1급 영웅이 될 확률같이 너무 막연한 것들은 불가능하다.

서로 다른 대상을 두고 같은 질문을 한다면 답변이 오는 경우도 있고, 오지 않는 경우도 있다.

단순히 스킬 시도 횟수로 따진다면 대략 7번 중 1번 정도의 성공률.

샘플링을 처음 얻었던 때부터 지금까지도 답변이 오는 정확한 기준은 알 수 없었다.

<—내가 이 우유를 먹으면 배가 아플 확률>

<98%>

일상생활에서 유용한 점이라면 냉장고에서 상한 음식을 골라내는 정도일까.

영웅이 된 다음에는 상황 판단에 꽤 도움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그게 파티에 큰 도움이 되었냐 묻는다면 자신 있게 그렇다고 말하기가 어려웠다.

너무 애매한 능력인 탓에 스킬의 존재를 철저히 감춰 뒀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예전에는 그만한 선택지가 없었어.’

영웅 학원을 졸업한 유지한이 신입 영웅으로 막 데뷔했던 시기.

그는 대한민국 길드 명단을 살피며 샘플링을 사용했다.

<—내가 레드홀 길드에 들어갈 확률을 알려 줘.>

<—워리어즈 길드에 들어가면 1급 영웅이 될 수 있을까?>

<—주사위 길드에 들어가면 부자가 될 확률!>

유명 길드에 들어갈 수 있는지 묻거나, 뛰어난 영웅이 될 수 있냐는 등, 하나같이 속물적인 질문들이었다.

솔직히 대답이 돌아오길 기대하지 않았다.

그저 가끔 도움이 되는 정보를 던져 주는 샘플링을 사용하는 건 유지한의 오랜 습관이었다.

[케로즈]

오늘 탈퇴한 케로즈는 그렇게 신입 시절에 길드 명단을 살펴보던 중 발견한 길드였다.

<—내가 케로즈 길드에 들어갈 수 있을까?>

<들어갈 수 있음.>

200개가 넘는 시도에 처음으로 돌아온 대답.

그 당시의 신입 영웅 유지한은 깜짝 놀라 해당 길드에 대해 연이어 질문을 날렸다.

<—케로즈가 1위 길드인 레드홀처럼 거대 길드로 성장할 확률>

<20%>

<—만약 내가 케로즈로 들어간다면, 케로즈가 거대 길드로 성장할 확률은?>

<60%>

줄줄이 나오는 답변에 유지한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었다.

향후 엄청난 길드로 성장할 가능성이 있는 곳에 내가 들어갈 수 있다니!

게다가 자신이 들어가면 그 가능성이 커진다고 한다.

따라서 이 길드의 초기 멤버로 들어가 입지를 다진다면…….

언젠가 미래의 출셋길이 열릴 거로 생각했었다.

“이젠 다 의미 없네.”

신입이 아닌 7년 차 영웅 유지한은 캔에 남은 콜라를 홀짝였다.

길드에서 쫓겨나듯 나온 지금.

이제 그 길드의 미래가 어떻게 되든지 전혀 상관없는 일이 되어 버렸다.

‘한국 길드랍시고 앞에 K 붙이는 거부터 구렸어.’

영웅을 의미하는 히어로즈(Heroes)에서 H대신 K를 넣어, 코리아 히어로즈라는 의미의 케로즈(Keroes).

생각해보면 길드명부터 촌티가 팍팍 나는 길드였다.

그래도 길드장 박중섭이나 김현태나, 과거에는 동료를 모질게 내칠 성격이 아니었던 거 같은데.

성공하면 다들 그렇게 변해 버리는 것인지…….

사람 마음은 역시 알 수가 없었다.

‘경력직으로 이직하긴 힘들 거야.’

무려 7년이나 공란으로 비어 있는 경력을 인정받기는 무리다.

아마도 신입 영웅으로 들어가야 하겠지.

그러나 솔직히 다른 길드에서 나이가 30에 가까워진 중고 영웅을 반길 것 같지 않았다.

해가 지날수록 뛰어나고 발전 가능성도 큰 어린 영웅이 늘어나는 상황에, 뚜렷하게 드러난 활동 없이 나이만 차 버린 영웅을 누가 좋아하겠는가.

‘당장 생활에 문제는 없다.’

영웅은 길드 중심의 시장이다.

소속된 길드와 파티가 없으면 합법적인 괴물 사냥이 불가능하고 영웅으로서 누릴 수 있는 것들 대부분에 제한이 걸린다.

따라서 유지한은 이번 백수 생활이 길게 이어지는 것도 예상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직업의 특성상 백수가 되기 전에 돈을 꽤 많이 벌어두었으니 경제적인 문제 따위는 없었다.

“두고 봐라. 내가 기필코 다시 성공한다.”

언젠가 그들이 날 추방한 걸 후회하도록 만들겠다.

유지한은 그리 다짐했다.

‘확 그냥 내가 길드를 만들어버려?’

냉장고에서 콜라를 한 캔 더 꺼낸 그가 샘플링을 사용했다.

<—내가 설립한 길드가 세계적인 길드로 성장할 확률은?>

<2% 미만.>

“……이건 너무한 거 아니냐고.”

2%라니.

정말 제대로 나온 수치가 맞을까?

그는 이젠 스킬에게도 무시당하는 처지였다.

자존심이 있어서라도 저 확률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지만, 살짝 힘이 빠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올해 생긴 길드가 몇 개더라.”

문득 궁금증이 생긴 유지한은 컴퓨터를 켜서 대한민국 영웅부 사이트에 들어갔다.

영웅부는 국방부, 환경부, 교통부와 같은 대한민국의 행정조직으로 영웅과 관련된 일을 총괄하는 조직이었다.

그곳의 공식 홈페이지에 들어가자 공지사항에 보이는 것은 몇 달 전에 등록된 신규 설립 길드 명단.

그는 명단 파일을 내려 받아서 열었다.

“신규 길드가 38개? 꽤 적구나.”

올해 새로 등록된 길드는 겨우 38개뿐.

과거와 비교하면 확 줄어든 수치다.

요즘은 새로운 길드를 설립하기보다는 대우가 좋은 기존 길드로 들어가려는 사람이 많은 편이라 그렇다.

유지한은 오징어 다리를 질겅질겅 씹으며 가나다순으로 정렬된 명단을 훑었다.

물론 샘플링을 사용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길드 이름이 ‘헬조센’이네? 저걸 나라에서 허가해 준 거야? 어떻게 길드 이름이 헬조센…….”

낄낄대며 명단을 살피던 그때였다.

<—내가 꿀잼 길드에 들어갈 수 있을까?>

<들어갈 수 있음>

31번째 길드명으로 던진 질문에서 갑자기 답변이 날아왔다.

유지한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시 질문을 던졌다.

<—꿀잼이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길드로 성장할 수 있을까?>

<성장할 수 있음>

<—꿀잼이 미래에 거대 길드로 성장할 확률>

<50%>

“대단하네…….”

꿀잼이라는 길드가 향후 거대 길드로 성장할 확률은 무려 50%.

길드의 미래를 묻는 질문에 별다른 조건 없이 이 정도의 확률이 나온 것은 처음이었다.

어쩌면 머지않은 미래에 아주 훌륭한 길드가 탄생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만약 내가 꿀잼 길드로 들어간다면, 꿀잼이 미래에 거대 길드로 성장할 확률은?>

<99%>

“뭐?”

유지한에게도 새로운 기회가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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