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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션으로 무한성장 (124)화 (124/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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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르안은 저택으로 돌아왔다. 집에 돌아온 그가 가장 먼저 확인한 것은 예드프리어의 지도. 악마들의 땅으로 가는 길이 적혀있는 지도였다. 천천히 지도를 확인한 카르안은 얼굴을 찌푸렸다.

    “생각보다 멀리 있어.”

    단순한 거리의 문제가 아니었다. 설령 멀리 떨어져 있더라도 장거리 텔레포트를 사용하면 그만. 어차피 소수 인원으로 갈 것이기에 비용도 많이 들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장거리 텔레포트가 가능한 곳으로부터의 거리. 지도에 표시된 동굴은 어느 나라에도 포함되지 않았고, 당연히 주변에는 허허벌판. 장거리 텔레포트가 가능한 마법사 길드 따위는 없었다.

    “마법사 길드는커녕 여관 하나 없겠는데.”

    어쩌면 화전민 마을 정도는 발견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 이상 뭔가 있을 것 같지는 않다. 하긴, 악마들이 들락날락 거리는 곳이다. 어지간히 대담한 사람이 아니면 그런 뒤숭숭한 곳에서 살고 싶지는 않겠지.

    “가장 가까운 곳은 베른이란 도시군.”

    카르안은 지도 한구석을 살폈다. 그나마 그 동굴에 가까운 곳은 베른이라는 도시다. 별로 큰 도시는 아니었지만, 그곳으로 장거리 텔레포트가 가능했다.베른에서 준비를 끝낸 다음 악마들의 땅으로 향한다. 그게 유일한 방법.

    “그래도 멀어.”

    카르안은 지도의 거리를 확인했다. 이 지도를 얼마나 신뢰해야 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예드프리어가 준 것인 만큼 어느 정도 정확성은 보증되어 있다.

    눈대중으로 확인한 결과, 가는 시간은 이주일이 넘게 걸린다. 가장 이상적인 상황, 마차로 아무 마찰 없이 이동할 경우에 한정되지만. 만약 강력한 몬스터들의 습격으로 말이 다치거나, 마차가 고장 나거나 한다면 더 지체될 것이다.

    악마의 진주. 그 힘을 얻을 수 있다면 두 달은 아까운 시간이 아니다. 하지만 카르안이 신경 써야 할 것은 단순히 시간 만이 아니었다. 백작 자리를 비워둬야 한다.

    “자리 좀 비운다고 해서 별 일은 없겠지.”

    가장 빠르게 움직일 경우 한 달. 하지만 아직 카르안은 베른이라는 도시조차 가보지 못했다. 저 바다 쪽 동굴로 가는 길에 뭐가 있는지도 잘 모르고. 정보가 부족하다. 이런 상황에서 모든 일이 술술 풀릴 리가 없으니, 넉넉잡아 두 달 정도로 생각해야 한다.

    알페라츠 백작가의 백작이 두 달간 자리를 비운다. 방탕한 귀족의 경우에는 특이한 일도 아니기는 하다. 그들은 먼 곳으로 여행을 즐기기도 했으니까. 다만 카르안은 그들과 경우가 다르다.

    카르안은 백작이 된지 일 년도 되지 않았다. 살얼음판처럼 위태롭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안정된 것도 아니었다. 거기에 후계자도 없다. 믿고 영지를 맡길 사람이 없는 것.

    직속 비서가 있기는 하다. 그의 비서 커로스는 처음부터 유능했고, 지금도 카르안을 도와 영지 대부분을 꾸려내고 있다. 사실 그만 있어도 영지가 별 일 없이 돌아갈 것 같기는 하다. 실제로 지금도 그렇고.

    ‘아냐.’

    카르안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커로스는 유능하고, 성실한 측면도 있다. 그리고 카르안에게 나름대로의 충성심도 있다. 자기주장이 약한 면이 있지만, 어차피 큰 일은 카르안이 결정하는 것. 비서로써 부족함 없는 A급 인력이다.

    그렇기에 불안한 것이다.

    “사이프카르.”

    불길한 악마의 이름. 그의 직속상관이자, 흑룡회의 지부장. 이 영지의 가장 불안한 요소이기도 했다.

    카르안은 그녀를 통제할 방법이 없다. 지금처럼 서로 견제하며, 끝없이 눈치싸움을 하는 것 외에는 말이다. 카르안이 길게 자리를 비운 사이, 그녀가 마음먹고 백작가를 차지하려 한다면 막을 수 있을까.

    어렵다. 커로스는 성실하고 착실하지만, 오히려 사이프카르에게는 그것이 약점이 된다. 그녀는 커로스의 가족이든 뭐든 붙잡고 협박을 해댈게 분명하다. 그녀에게는 그게 아주 자연스러운 방법이다.

    카르안은 사이프카르를 떠올렸다. 어째서인지 카르안에게 너무 쉽게 한방 먹기는 했지만, 여전히 그녀와 흑룡회는 위협적이다. 휴전 협상도 사이프카르가 카르안을 직접 공격할 수 없는 것 뿐. 자리를 비운 사이 암살자를 잔득 고용하기라도 하면 곤란해진다.

    “카라나리를 남겨두어야 하나.”

    그녀라면 아마 사이프카르에게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비록 영지 관리 능력은 카르안만도 못하다는 게 문제지만, 잠시 맡기는 것은 문제될게 없다.

    무엇보다 무력이 압도적이다. 사이프카르라고 해도 그녀와 싸우려면 큰 상처를 입을 각오를 해야 한다. 게다가 백작가의 기사단은 건재하다. 오히려 (오른 월급 덕분에) 사기가 더욱 올라간 모양.

    “뭘 그렇게 고민하십니까?”

    그때였다. 향긋한 꽃 내음이 화악 풍긴다. 날씨와 어울리지 않는 봄의 향기. 칙칙하던 방의 공기가 조금 가벼워지는 느낌이다.

    카르안의 표정은 변화가 없었지만. 그는 차를 들고 온 커로스를 바라보았다. 사내놈이 꽃향기를 뿌리며 와 봐야 마음이 심란하기만 할 뿐이었다.

    커로스는 들고 온 차를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전에도 몇 번 차를 가져온 적이 있었는데, 과연 그는 A급 비서답게 차타는 솜씨도 예사롭지 않았다. 카르안은 뜨거운 차를 마시면서 지도를 서랍에 넣었다.

    “별 고민 아니야.”

    “혹시 그 문제입니까?”

    “아니, 그것도 있기는 한데.”

    커로스가 말한 문제는 바로 숲의 심장. 카르안의 불치병을 치료할 묘약이었다. 그도 백작이 되자마자 그것을 구하려 했지만, 아직도 소식이 없었다.

    “지금 전국의 경매장을 다 알아보고 있는데, 상황이 안 좋습니다. 르네키르다가 반파된 일 때문에........”

    커로스도 답답한 기색이었다. 카르안이 찾던 숲의 심장. 분명 귀하디귀한 연금술 재료이긴 했지만, 이쯤 되면 경매장에 하나쯤 나와도 이상하지 않다. 오히려 그보다 더 귀한 연금술 재료들도 간간히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하지만 유독 얼굴보기 힘든 게 숲의 심장. 바로 전에 있던 엘프의 나라, 르네키르다가 알샤인 교단에 치명상을 입은 일 때문이다.

    나라가 반쪽이 날 정도로 큰 타격. 알샤인의 사도들은 그만큼 강력했다. 그 사도들이 무르짐에게 산산 조각난 이후, 르네키르다는 빠르게 상황을 복구하는데 성공했다.

    파괴된 국경을 메우고, 안에 있던 침입자들을 처단했다. 엘프 특유의 협동심 덕분에 경의로울만큼 빠른 속도로 복구를 성공한 것이다.

    그리고 지금은 완벽한 긴장상태. 엘프 외에는 출입을 엄격하게 차단하고, 가끔 교류하던 마법사들과의 인연도 끊었다. 치명상을 입은 맹수처럼, 르네키르다는 지금 털이 바싹 서 있다.

    덕분에 몰래 르네키르다를 드나들던 침입자들도 발길이 끊어졌다. 거기에 엘프들의 귀중품을 밖으로 파는 것도 국가에서 금지시켰다. 안그래도 귀한 숲의 심장은 그 뒤로 영영 사라져 버렸다.

    “하, 처음 르네키르다가 박살났을 때 뭐라도 좀 풀릴 줄 알았는데.”

    “그러게 말입니다.”

    그건 조금 이상했다. 지금은 몰라도, 르네키르다가 괴생명체의 습격을 받았을 때는 보물들이 유출되어야 했다. 그 빈집을 털러 간 것은 카르안 뿐이 아니었으니까.

    그런데 이상하게도 숲의 심장과 몇몇 연금술 재료는 그 목록에 포함되지 않았다. 즉, 카르안 뿐 아니라 다른 도굴꾼들도 그런 숲의 심장은 보지 못했다는 뜻.

    “아무튼 지금은 어쩔 수 없지.”

    처음에는 치명적인 불치병이니 뭐니 해도, 막상 치료법을 알고 나니 그렇게 신경쓰이지는 않았다. 가능하면 빨리 치료하는게 좋기는 하겠지만. 숲의 심장이 없으면 말짱 도루묵. 마음을 조급하게 먹는다고 바뀌는 것은 없었다.

    ‘그러면 여기는 카라나리에게 맡겨야 하나.’

    보통 백작이 자리를 비울 때는, 가족이나 측근이 그 자리를 맡는다. 백작의 대리가 되는 만큼 최소한의 정당성은 있어야 하니까. 뜬금없는 주정뱅이를 앉힐 수는 없지 않는가.

    하지만 카르안은 카라나리에게 그 자리를 맡기기로 하였다. 원래 적임은 비서인 커로스나 아직 살아있는 백작부인. 둘 중 하나였다.

    커로스는 불안하다. 그는 절대 사이프카르를 감당할 수 없다. 게다가 성실하기는 해도, 맹목적인 충성심을 보이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훌륭한 부하직원. 그 정도 역할. 백작부인은 말할 것도 없었다.

    물론 카라나리도 완벽하지는 않다. 검술에 천재였지, 그 외의 부분에서도 천재는 아니니까. 하지만 유일하게 믿을만한 사람이 그녀뿐이었다. 조금 억지스럽지만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다.

    표면적으로는 커로스가 맡을 것이다. 대신 백작의 권한은 전부 카라나리에게 돌린다. 커로스에게는 미리 말해두면 알아들을 것이다.

    ‘그러면 함께 움직일 사람을 구해야 하는데.’

    두 번째 문제다. 카라나리는 백작가를 지켜야 하니까 제외. 잠깐 흑룡회의 부하들이 떠올랐지만 그들의 힘을 빌릴 수는 없었다. 조직원들이 카르안을 좋아하건 말건, 결국 그들은 사이프카르의 눈과 귀가 되어줄 것이다.

    ‘기사단의 충성스러운 기사. 아니면 용병.’

    두 개의 선택지. 일단 기사단에서 실력자 몇 명을 뽑아야 했다. 남은 것은 처음 가보는 미지의 공간에서 위험에 대비할 수 있는, 경험 많고 실력 좋은 모험가. 여러 곳을 여행해본 용병이 적임자일 것이다.

    분명 기사들은 뛰어난 전력이고 야전 경험도 제법 있다. 다만 장거리 여행은 짧은 전투와 다르다. 경험 많은 용병이 필요하다…….

    2.

    “아직 일을 하고 있으려나.”

    그날 저녁. 카르안은 레이아라를 찾았다. 우습게도 알페라츠 백작령에서 두 번째로 높은 등급의 용병은, 술집에서 무희로 일하고 있는 중이었다.

    분명 수도에는 그녀 정도 되는 용병도 많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용병이 알페라츠 백작가까지 찾아올 일은 없다. 여기에는 귀한 보물이 숨겨진 던전이 알려진 것도 아니고, 안정적으로 돈을 벌 수단도 별로 없었기 때문. 지금 용병 길드에 가봐야 어중이떠중이들 밖에 없다.

    ‘수락할지는 모르겠지만.’

    최소 한 달, 길게는 두 달 동안 자리를 비워야 한다. 저번 이너리움 광산 탐방처럼, 하룻밤동안 몰래 움직이고 끝날 일이 아니다. 카르안은 레이아라가 일하는 술집 안으로 들어가면서도 긴가민가하고 있었다.

    거절해도 이상하지 않다. 분명 레이아라는 카르안에게 호의를 가지고 있기는 하다. 카르안도 바보가 아니기에 그것을 알고 있고. 다만 이런 일까지 수락할지 의문이 들 뿐.

    “부딪혀 보면 알겠지.”

    카르안은 중얼거리며 문을 열었다. 그녀가 일하는 곳은 여전히 고급스러운 술집. 카르안이 문을 열고 들어가자 단정한 옷차림의 사내들이 고개를 숙였다. 그래봐야 백작령 조직의 2인자, 표두회의 건달들이지만. 이렇게 단정하게 차려입으면 그럴싸한 웨이터가 되는 것이다.

    “혼자 오셨습니까?”

    카르안에게 말을 건넨 남자의 눈에는, 약간의 긴장감과 기대감이 섞여있었다. 긴장감은 흑룡회 부 지부장이자 알페라츠 백작령의 백작을 맞이한다는 것이고, 기대감은 그런 백작이 그에게 건네줄 팁에 대한 것이었다. 카르안은 흑룡회 시절부터 유명했기에, 이들이 못 알아볼 리 없었다.

    “아니. 사람을 좀 찾으려고 하는데. 말 안 해도 알지?”

    “아.......그게........”

    남자의 표정이 잠깐 굳었다. 카르안이 찾으려는 사람을 몰라서 그런 게 아니다. 카르안이 찾는 사람. 손님들은 잘 몰라도, 이곳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전부 알고 있다.

    카르안은 다른 무희를 찾는 일이 없었다. 그가 관심을 가지는 것은 친분이 있는 레이아라뿐. 문제는 지금 그녀가........

    “오늘은 몸이 안 좋아서 쉰다고 들었습니다.”

    “그래?”

    카르안은 웃으며 말했다.

    “오늘 점심까지는 멀쩡했는데.”

    “아? 점심때 레이아라씨를 보셨습니까?”

    “당연하지. 같이 점심도 먹었는데. 뭔가 이상한가?”

    “그게.......”

    “레이아라씨가 몸이 많이 안 좋아 보여서 말입니다. 하하. 저희에게 꾀병을 부렸나 보군요.”

    우물쭈물하는 남자가 답답한지, 뒤에 서 있던 건장한 사내가 다가왔다. 주변의 다른 사람들 보다 머리 하나는 더 커보였고, 얼굴에는 복잡한 문신이 가득했다.

    얼굴만 봐도 보통사람은 얼어붙을 정도로 험악하게 생겼다. 아침 운동으로 사람 한명을 묻고 왔다고 해도 진지하게 믿을 정도로.

    카르안은 담담한 표정이었다. 그리고 방금 전까지 대화했던 남자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는 카르안과 눈이 마주치자, 얼른 어색하게 웃으며 눈을 피했다.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카르안의 이런 감은 굉장히 잘 맞는 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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