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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션으로 무한성장 (123)화 (123/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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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네의 간절함이 뮤프리드님께 닿은 것 같군.”

예드프리어가 의자에서 일어나 자세를 단정하게 했다. 신을 맞을 준비를 하는 것. 그러는 사이에도 허공의 빛이 모이며, 원숭이의 형상이 만들어지고 있다.

“정말 뮤프리드님?”

카르안이 침을 꿀꺽 삼켰다. 실제로 신을 보는 것은 처음이 아니지만, 그렇다고 신이라는 게 이렇게 쉽게 볼 수 있는 존재는 아니지 않나.

하지만 예드프리어는 그렇게 긴장하지 않았다. 교주인 만큼, 뮤프리드가 나타나는 것을 질리도록 봐 온 것이다. 뮤프리드 대신전에서 뮤프리드가 나타난다. 그에게는 신기할 것도 없었다.

“직접 이곳에 강신하신걸 보니, 자네의 의문이 풀릴 수도 있겠어.”

“저번에 뵙긴 했는데.......”

“그건 뮤프리드님의 사념체야. 당연히 대화도 제한적이지.”

과거에도 잠깐 상담을 받은 적이 있었다. 지금은 다르다. 그때처럼 의식을 복사한 인공지능같은게 소환되는 게 아니라, 뮤프리드 그 자체가 직접 나타난다.

완전한 힘을 쓰지는 못하겠지만, 싸우거나 권능을 발휘할게 아니라면 상관없는 일이다.

어느새 빛무리가 사라졌다. 응접실 안, 허공에 거대한 원숭이 한 마리가 떠 있었다.

“윽.......”

카르안이 신음을 흘렸다. 거대한 원숭이라. 모양만 보면 웃기지만, 도저히 비웃을 수 없는 위엄이 서려있다. 접근조차 불허하는 절대력. 가장 지혜롭다는 신이 자신의 대신전에 강림했다.

카르안의 다리에 힘이 빠진다. 보통 사람이라면 단숨에 무릎을 꿇을 신성력이다. 그나마 간접적으로 알샤인, 신과 싸워본 카르안이기에 버틸 수 있었다.

“너무 긴장했나 보구나.”

뮤프리드는 해탈한 노승처럼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자 몸을 누르던 공기가 확 풀렸다. 마치 몇 배의 중력에 눌려있다가, 다시 원래대로 돌아온 느낌. 몸이 붕 뜨는 기분까지 들었다.

카르안은 고개를 들었다. 뮤프리드는 새하얀 법의를 입고, 한손에는 긴 나무 봉을 쥐고있었다. 별로 화려한 복장은 아니었지만, 신의 빛을 지울수는 없었다.

“누구보다 지혜로우신 분을 뵙습니다.”

예드프리어는 방금 전 욕을 잔득하던 게 전부 거짓말인 것처럼, 의자에서 일어나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웃음기는 없었다. 신을 섬기는 교주다운 모습. 장난스럽게 말하기는 하지만, 속으로는 누구보다 신을 섬기는 것이 아닐까 싶은 모습이다.

뮤프리드는 여전히 웃는 얼굴. 정중히 고개 숙이는 예드프리어를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그러다 손에 쥐고 있던 법봉을 들어올렸다.

빠아악-!

“억!”

이어지는 곡소리. 예드프리어는 뒤통수를 붙잡고 풀썩 쓰러져 버렸다.

“어?”

카르안이 헛숨을 내뱉었다. 방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건가. 왜 뮤프리드가 자신의 신도를 공격한 거지? 여러 의문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뮤프리드는 여전히 호수처럼 평온한 얼굴로 예드프리어를 바라보았다.

“욕하는 거 다 들었다. 미친 새끼야.”

2.

“하하. 노, 농담이었습니다.”

다행히 예드프리어는 금방 정신을 차렸다. 그가 뒤통수를 벅벅 문지르며 말했다.

“제가 누구보다 뮤프리드님께 충성스럽다는 것을.......”

“.......”

뮤프리드는 말없이 나무 봉을 들어올렸고, 예드프리어는 입을 조용히 다물었다. 표정에 힘이 영 없는 게, 버림받은 강아지같았다. 어쩐지 카르안에게 시달리던 러슬라이를 보는 듯 했다.

뮤프리드는 카르안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러더니 고개를 갸웃했다.

“근데 자네는 여기서 뭘 하는가?”

“예?”

“뮤프리드님. 카르안의 궁금증을 풀러주러 오신 게 아니셨습니까?”

두 사람과 한명의 신이 동시에 질문했다. 가장 먼저 답한 것은 뮤프리드.

“아니, 난 니가 내 욕을 하길래 한 대 줘패러 온 거지. 혼잣말도 아니고 외부인한테 그러면 안 돼.”

“정말 그것 때문에 강신하신 겁니까?”

“그럼.”

뮤프리드가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놀랍게도 먼저 화를 낸 것은 예드프리어였다.

“난 또 중요한 일인 줄 알았네. 뮤프리드님이 강신하시면 교단에 신성력이 얼마나 날아가는지 아십니까? 예쁘장한 오우거도 바쳤는데 왜 그러시는 겁니까! 그거 잡는다고 제 고라니 전담 사냥팀까지 돌려썼는데!”

“아, 그거 농담이었는데....... 설마 내가 정말 오우거와 사랑에 빠지겠나.”

“생긴 게 원숭이니까 진짜인줄 알았지........”

카르안은 둘의 저질스러운 대화를 보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가 슬쩍 시선을 문 쪽으로 돌렸다. 응접실은 예드프리어와 카르안 둘의 대화를 위해 굳건히 닫혀있다. 다행이었다. 만약 이 대화를 신도들이 본다면, 절반 정도는 이 교단을 떠날 테니까.

“크음! 농담은 여기까지 하고. 자네!”

한참 투덕거리던 뮤프리드가 카르안을 가리켰다.

“전에도 교단을 몇 번 들린적 있었지. 특이한 운명을 가진 인간........ 아니, 잠깐만. 뭔가 좀 이상한데?”

쿵!

뮤프리드가 나무 봉으로 바닥을 찍었다. 그러자 하늘색 마법진이 생성되었다. 거기서 빛이 나와 카르안을 훑었다.

카르안은 뮤프리드가 자신을 공격하나 싶었지만, 한눈에 봐도 저건 공격마법이 아니었다. 오히려 카르안의 손등 문신과 비슷한 것. 그의 상태를 알아보는 마법이다.

“이거 참. 뭐라 해야 할지.”

뮤프리드가 말을 멈추었다. 예드프리어와 헛소리를 할 때의 가벼운 분위기는 온데간데 없었다. 그는 복잡한 표정으로 카르안을 바라보았다.

“복잡해. 이상하고. 혼란스럽군. 설마 그가 실수한 것인가. 그러면 그대로 둘 리가....... 아니야. 신의 자리에 오르지 못했으니 눈치 채지 못한 것인가.”

“무슨 말씀이십니까.”

카르안이 답답해서 물었다. 신이 강림하더니, 자기 눈앞에서 이상한 소리를 자꾸 하는데 불안할 수밖에. 어지간히 대담한 놈이라도 몸을 떨 것이다.

뮤프리드가 중얼거렸다.

“음. 상당히 중대한 일이지만, 우습게도 자네에게는 별 일이 아닐 수도 있어. 설명하려 해도 힘들군. 자네에게 건낼 수 있는 정보는 제한되어 있거든.”

카르안은 순간 그냥 말하면 안 되냐고 묻고 싶었다. 말 한마디만 하면 되는 일. 어려울 것도 없지 않나.

하지만 신도 나름대로 규율이 있을 것이다. 인간인 그가 이해하지 못할 만큼 복잡한. 카르안은 불평을 한숨으로 대신했다.

“아무튼 걱정하지 말게. 자네에게 나쁠 게 없는 일이니까.”

“알겠습니다.”

카르안은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뮤프리드가 한 말이니 신뢰감이 들기는 했다. 대체 뭐가 좋은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신이 보증하는데 적어도 나쁜 일은 아닐 것이다.

“이대로 사라지기는 섭섭하니까, 자네에게 도움이 될 만한 뭐라도 해줘야겠군. 옜다.”

뮤프리드가 카르안에게 들고 있던 나무봉을 던졌다. 카르안이 손을 뻗어 그 봉을 받았다. 툭 소리와 함께 묵직한 나무의 감촉이 느껴졌다. 카르안은 신이 던져준 나무막대기를 살펴보았다.

나무 끝에 작은 글자로 뭐가 각인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건 뮤프리드가 사용하는 신성한 언어. 카르안은 읽을 수 없었다.

“이 나무봉은.......”

“악마의 진주. 그 진짜 힘을 얻고 싶겠지? 그러면 지옥에서 직접 불을 구하는 수밖에 없어. 다른 방법도 있기는 한데. 그게 가장 편하거든.”

악마의 진주를 지옥불에 녹이면 액체가 된다. 그 액체를 삼키면 무한한 마나를 얻게 된다. 예드프리어가 말한 것이다.

당연히 카르안도 그 힘을 얻고 싶었다. 지금 상태로도 충분히 쓸만했지만, 무한한 마나를 얻는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셈이다.

“그곳에는 악마들이 있을 것 아닙니까. 게다가 거기에 가는 법도 모르는데.”

“일단 악마들은 걱정 마라. 그 나무봉을 들이대면 악마들은 자네를 건드릴 수 없을 거야. 일종의 통행증같은 것이지.”

카르안은 손의 나무봉을 다시 한 번 살폈다. 신이 직접 건네준 거라 대단한 무언가가 있을 줄 알았는데. 딱히 대단한 기운은 느껴지지 않았다. 차라리 허리춤의 마법검이 더 강한 존재감을 뿜고 있다.

‘아니, 그 정도가 아니라.’

아예 아무 느낌도 없다. 신성력도 마나도. 그냥 평범한 나무봉같다.

“그리고 지옥으로 가는 길은. 예드프리어. 굳이 내가 설명할 필요는 없겠지.”

그러면서 뮤프리드는 예드프리어를 흘쩍 바라보았다. 무슨 뜻인지 눈치 챈 교주가 고개를 숙였다.

“예.”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나는 이만 물러나 보겠네.”

뮤프리드의 몸이 사라진다. 형체를 유지하던 몸은, 작은 빛의 알갱이가 되어서 주변으로 흩뿌려졌다. 그가 사라지기 전에, 카르안이 말했다.

“이런 도움을 그냥 받아도 되는지......”

“호의라고 생각하게. 자네 덕에 알샤인에게 한방 먹인 것도 있고.”

알샤인 교단을 한번 흔든 것. 뮤프리드는 그게 상당히 마음에 든 것 같았다. 그는 처음 왔을 때처럼 방긋 웃으며, 곧 완전히 모습을 감추었다.

“하, 뭐라는지 하나도 모르겠군. 지 혼자 중얼대다가 사라지고 말이야.”

“그래도 이런 귀한 보물까지 받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카르안이 나무봉을 들어올렸다. 신이 직접 그에게 하사한 나무봉. 신물(神物)이라고 해도 부족한 물건이다. 신이 인간에게 직접 뭔가를 주는 일은 드물었으니까.

“그다지 대단한건 아닐 거다. 그분께서 직접 말했으니 악마는 확실히 다가오지 못하겠지만. 그 외에 다른 용도는 없을 거야.”

예드프리어가 보기에도 나무봉에 신성력은 없었다. 대신 악마와 뮤프리드만이 알 수 있는 표식 같은 것을 해 두었을 것이다. 다른 뭔가가 있었다면 신성력이 느껴졌겠지.

“그런데 악마가 그렇게 강한가요?”

카르안은 악마를 직접 본 적이 없었다. 무르짐의 지식에도 누락이 있는지, 악마의 힘에 관해서는 텅 비어있다. 그저 막연히 강하다고 들었을 뿐. 예드프리어가 피식 웃었다.

“같은 인간이라도 힘이 다르듯이, 그놈들도 힘의 차이가 있지. 하지만 행여나 싸울 생각은 하지 마라. 대부분은 인간을 아득히 뛰어넘을 정도로 강력하니까.”

예드프리어가 중얼거렸다. 악마와 직접 싸워본 적은 없다. 다만 성기사 시절, 악마의 수하들과 검을 섞은 적은 있었다.

치열한 전투였다. 뮤프리드의 신성력을 짜내며 싸워도, 쉽게 상처를 낼 수 없었다. 베어도 금방 회복되는 재생력, 불길한 숨 쉬듯 뿜어낸다.

결과는 그의 승리였다. 하지만 쉽지 않은 전투였다. 만약 강력한 악마와 직접 싸운다면....... 목숨을 챙길 수 있을지 알수가 없다.

“아무튼 이런 일로 장난할 사람은 아니니까. 그 나무봉만 잘 챙겨. 그리고 지옥으로 가는 길은.”

예드프리어가 책상에서 지도를 꺼냈다. 전 세계의 모습이 그려진 세계지도. 아주 세밀하지는 않지만 상당히 완성도 있는 지도였다. 그는 깃펜에 붉은 잉크를 찍어 지도에 표시해 주었다.

“여기다. 이건 원래 교단의 기밀이야. 뮤프리드께서 명령하셨으니 알려주는 것이지.”

예드프리어가 지목한 곳. 알펜왕국과도 한참 떨어진 곳이었다. 어느 나라에도 포함되지 않은 땅.

“보다시피 바다 쪽이다. 찾다보면 엄청나게 커다란 동굴이 보일거야. 구멍의 높이만 수십 미터가 넘는다.”

“그 안에 지옥으로 가는 길이 있는 것이군요.”

“그래. 안쪽으로 계속 들어가다 보면 음산해 보이는 마법진이 있을 거다. 별건 없고, 거기 서서 마나를 조금 주입하면 돼. 그러면 알아서 마법진이 발동된다.”

“엄청 간단하네요. 복잡한 절차라도 있을 줄 알았는데.”

“악마 놈들은 복잡한 것을 싫어하니까.”

예드프리어는 지도를 카르안의 손에 쥐어 주었다.

“뮤프리드님은 말하지 않으셨지만, 이 정보를 팔거나 하면 안 된다. 정보도 교단의 재산이니까.”

“물론입니다.”

“좋아.”

더 나눌 말도 없었다. 카르안이 떠나기 전에, 예드프리어는 며칠 더 쉬다 가지 않겠냐고 제안했다. 카르안은 정중히 거절했다. 할 일이 많이 있었기 때문. 카르안은 최대한 빠르게 가기 위해, 이번에도 장거리 텔레포트를 이용했다.

“어렵군.”

백작 령으로 돌아가는 길. 카르안은 고민에 빠졌다. 뮤프리드를 만나면 뭐라도 좋은 정보를 얻을 수 있을줄 알았다. 하지만 혼란만 더해질 뿐이었다.

“그가 눈치 채지 못했다라........무르짐을 말하는 건가.”

그를 무르짐이라고 생각하고 뮤프리드의 말의 해석해보면, 무르짐이 뭔가 실수했고 그것을 눈치 채지 못했다. 이런 느낌이었다. 이마저도 뮤프리드의 혼잣말에 불과하다. 정확히는 알 수 없었다.

“일단 할 수 있는 일부터 해야지.”

카르안은 위를 올려다보았다. 거대한 알페라츠의 저택이 보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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