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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션으로 무한성장 (120)화 (120/124)

<-- 이너리움 광산 -->

리치를 죽인 카르안은 곧장 밖으로 향했다. 그는 리치를 피해 라이프베슬을 노렸지만, 레이아라와 카라나리, 뮬리펜은 리치와 정면으로 싸웠다.

나쁜 선택이라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결과적으로 리치는 죽었으니까. 카르안은 바닥을 굴러다니는 리치의 뼈를 바라보았다. 그 뼈들은 남아있는 마력이 빠져나가고 있었다. 리치의 약점을 정확히 찔렀고, 그 덕에 강대한 흑 마법사는 두 번째 죽음을 맞이했다.

“별일 없으면 좋을 텐데.”

리치와 싸운 일행은 무사할까. 카르안은 낙관적으로 생각했다. 뮬리펜은 별 도움이 안 되어도, 카라나리와 레이아라는 쉽게 당할 리가 없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는 알 수 없지만, 카르안도 제법 빠르게 라이프베슬까지 도착했다. 어쩌면 전원 상처하나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잠시 후 카르안의 기대는 무너져 내렸다. 왔던 길을 그대로 되돌아간 카르안. 그는 반쯤 죽어가는 뮬리펜과 쓰러진 레이아라, 그리고 다급하게 뮬리펜에게 응급처치를 하는 카라나리를 볼 수 있었다.

“조금 늦었군.”

카르안도 황급히 뮬리펜에게 달려갔다. 부상을 당했다지만, 생각보다 리치가 강했던 것 같다. 라이프베슬을 숨긴 리치. 그는 고위 뱀파이어와 정면 승부를 해도 밀리지 않는다. 오히려 비슷한 기량이라면, 리치 쪽이 조금 더 유리하다. 그런 괴물과 싸운 것이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뮬리펜 쪽은 상태가 좋지 않았다. 카라나리가 들고 있던 지혈제와 회복 포션을 사용했지만, 상처에서 출혈이 쉽게 멈추지 않는다. 아무리 뱀파이어가 생명력이 강하다 해도, 이대로 가면 목숨까지 위험하다.

“카르안님. 뮬리펜씨가.........”

“지혈제 그만 뿌리고. 이걸 써.”

드물게 당황한 카라나리에게 카르안이 포션을 건넸다. 그가 최근 완성한 S급 회복포션. A급과 다르게, 재료값 때문에 카르안도 마음껏 만들지 못하는 포션이다.

하지만 돈이 드는 만큼 효과는 탁월하다. 포션의 한계를 뛰어넘은 포션. 라이칸스로프의 체액을 이용한 것으로, 순간적이지만 고위 라이칸스로프의 재생력을 가지게 해준다. 어지간한 회복마법보다 훨씬 효과적이다.

“이거면 충분할거야.”

몸이 거의 반쯤 잘린다해도, 일단 숨만 붙어있으면 살아날 수 있다. 아주 특별한 독이나 저주만 없다면 말이다. 카라나리는 조심스럽게 뮬리펜에게 포션을 먹였다.

“으윽........”

피가 빠져나가 더욱 창백하던 뮬리펜. 그녀의 얼굴에 조금씩 핏기가 돌기 시작한다. 그제야 카라나리의 얼굴에 초조함이 사라졌다.

“괜찮습니까?”

뮬리펜은 말하는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말을 하려해도, 몸 안쪽부터 쓰라린 느낌이 든다. 등부터 배까지 거대한 낫이 통과했다. 이정도면 대검에 몸을 관통당한 것과 아무 차이도 없다. 재생력이 강해진다 해도, 곧바로 회복되는 것은 아니다.

거기에 그녀가 찔린 대낫. 그것은 레이아라가 베인 것과 똑같은 독이 묻어있다. 그러니까 레이아라가 당한 신경독도 그대로 묻어있었던 것이다. S급 회복포션은 그마저도 해독시킬 수 있지만, 이렇게 당했으니 회복에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그나저나 레이아라는 뭐에 당한거지?”

카르안은 이번에 쓰러져있는 레이아라에게 다가갔다. 카르안은 그녀들의 싸움을 보지 못했기에, 그녀가 신경독에 당했다는 것을 알 수 없었다.

일단 호흡은 안정적이다. 큰 상처도 없고. 무엇보다 카라나리가 가장 먼저 뮬리펜부터 응급처치를 했다. 만약 레이아라의 상처가 뮬리펜보다 심각했다면, 카라나리는 레이아라부터 치료했을 것이다.

“신경독에 당하셨습니다. 리치의 대낫. 거기 독이 묻어있어서.”

“해독해야겠군.”

카르안은 해독제를 한 병 꺼냈다. 꼼짝 못하고 쓰러진 레이아라에게 해독액을 먹여주자, 잠깐 움찔거리던 레이아라는 곧 몸을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으.......리치는?”

“죽었어.”

“그렇군요.......”

레이아라는 아직 머리가 아픈지 눈을 찌푸렸다. 리치의 독이 몸에 퍼지는 순간, 손가락 하나도 움직이기 힘들었다.

하지만 카르안의 해독약 덕분인지, 1분도 안돼서 몸이 회복되었다. 어질하면 머리도 거짓말처럼 맑아진다. 그녀는 베인 상처에 회복포션을 뿌렸다.

“이제야 좀 살 거 같네요. 생각보다 형편없는 독이에요.”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리치는 무서울 정도로 독액제조에 능했습니다.”

카라나리가 뮬리펜을 부축하며 다가왔다. 레이아라는 단순하게 생각하고 있다. 뮬리펜과 레이아라가 살아난 것은 단순한 행운에 불과했다.

“리치는 당신을 생포하고 싶어 했습니다. 가능하면 상처 없이.”

“그건 그렇죠.”

레이아라는 리치를 떠올리며 몸을 살짝 떨었다. 잘못하면 정말 리치의 실험재료가 될 뻔했다. 바로 죽는 것도 아니고, 리치의 장난감이 되는 것이다. 죽는 것만 못했다.

“그러니까 해독약만 먹이면 깔끔하게 회복되도록, 정확하게 약물을 조절한 겁니다.”

“그, 그런 거였나요?”

리치의 독. 세상에 신경독보다 치명적인 독은 얼마든지 있다. 그리고 그런 독을 리치가 만들지 못할 리도 없었다. 만약 레이아라가 엘프가 아니었으면, 리치가 정말로 레이아라를 죽일 생각이었으면. 뮬리펜과 레이아라는 여기서 죽을 수도 있었다.

“지나간 이야기는 그만 하지고. 일단 전부 저택으로 돌아가. 밖에 기사들과 병사들이 있을 거다.”

카르안이 이끌고 온 병력들. 그들은 아직 입구를 지키고 있다. 그들이 있는 이상, 몬스터의 공격 정도에 당할 리는 없다.

“카르안님은?”

“나는 안쪽을 좀 더 살펴봐야지. 보물 있다며?”

카르안이 씩 웃었다. 라이프베슬 쪽이 어둡기도 했고, 급하게 오느라 자세히 확인하지 못했다.

‘분명 돈 되는 물건이 있다고 했지.’

오크 대장이 분명히 말했다. 이곳은 리치가 위급한 상황에 도망치기 위한 장소. 필요한 금화와 마법 도구 등을 갖춰놨다고.

안에 뭐가 있을지는 감도 안 잡힌다. 고위 마족이 숨겨둔 물건이 무엇인지. 마족 중에서도 기괴하기 이를 데 없는 리치다. 엉뚱한 물건이 나올 수도 있지만, 반대로 굉장한 보물이 나올 수도 있다.

“저도 함께 가겠습니다.”

“백작가에서 좀 쉬어.”

“저는 다치지 않았습니다. 괜찮아요.”

카라나리가 카르안에게 다가왔다. 확실히 그녀는 목을 잡힌 것을 제외하면, 리치에게 이렇다 할 공격을 받지 않았다. 그마저도 카르안이 빠르게 리치를 죽인 덕에 금방 풀려났고. 리치와 싸운 사람들 중 가장 적게 다쳤다.

“적은 리치입니다. 혹시라도 함정이 있을 수도 있어요. 혼자서는 위험합니다.”

“그럴 수도 있기는 하겠지만.”

카라나리 말대로다. 그는 아직 리치의 방을 조사하지 못했다. 카르안은 레이아라와 뮬리펜에게 시선을 돌렸다.

뮬리펜은 간신히 몸을 일으킬 정도. 하지만 레이아라는 들어올 때처럼 쌩쌩했다. 그녀가 부축해준다면, 저택까지는 아무 문제도 없으리라.

“레이아라. 밖까지 나갈 수 있겠지?”

“예........ 뮬리펜 씨는 제가 부축할게요.”

레이아라는 어쩐지 망설이다가 말했다. 리치의 쓸데없는 배려덕분에, 그녀의 몸은 깨끗하게 회복되었다. 뮬리펜의 피도 멎었으니, 카라나리의 도움을 필요 없다.

가능하면 카라나리와 카르안을 둘만 남기기는 싫었지만 말이다. 그렇다고 물고 늘어져봐야 더 추해질 뿐이다. 게다가 리치를 한번 죽기 직전까지 몰아간 것도 카라나리. 금발의 엘프는 쉽게 손을 털었다.

“저희는 걱정 말고 즐거운 시간 보내세요.”

어쩐지 날이 선 한마디에, 카르안이 괜히 움찔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레이아라의 심기가 영 불편해 보였다.

카르안이 불편해 하거나 말거나, 레이아라는 고개를 흥 돌리고 밖으로 향했다. 뮬리펜은 아직 몸이 다 낫지 않아서, 말도 못하고 끌려갈 뿐이었다.

2.

리치의 라이프베슬이 있던 방. 광산은 두 사람이 돌아보기 힘들만큼 거대했지만, 카르안은 그곳만 살펴보면 된다고 생각했다. 뭐 하러 중요한 것을 여러 곳에 분산시키겠는가. 그냥 중요한 것은 한곳에 몰아두는 편이 신경도 쓰이지 않을 것이다.

“넌 다친 곳 없지?”

“예. 카르안님 덕분에.”

카라나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카라나리는 손으로 목을 잠깐 문질렸다. 조금 멍이 들기는 했다. 하지만 움직이는 데는 아무 문제없다.

“그보다 라이프베슬을 노린 것, 훌륭한 판단이셨습니다.”

“당연한 일이야. 약점을 노리는 건 기본중의 기본이니까.”

리치의 약점은 라이프베슬. 그렇기에 약점을 노린다. 하품 나올 만큼 당연한 귀결. 굳이 전술이랄 것도 없다.

“실전에서 그렇게 판단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실전에서, 몰래 빠져나가는 것은 실로 대담한 행동이었다. 잘못했다가는 오히려 각개격파 당하는 그림이 나올 수도 있으니까. 카라나리가 눈을 가늘게 떴다.

“만약 라이프베슬과 싸우던 곳의 거리가 멀었다면........ 정말 위험했을지도 모르겠어요.”

라이프베슬과의 거리. 거리가 멀면 가는데 많은 시간이 걸린다. 그 사이 일행이 전멸당하고 리치와 1대1 구도가 된다면, 차라리 같이 싸운 것만 못한 게 된다.

“그럴 리 없어. 분명 리치는 라이프베슬 근처에서 싸운다.”

카르안은 확답했다. 만약 리치가 몸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었으면, 진작 광산 밖에서 일행을 맞이했을 것이다. 리치는 좁은 곳보다 넓은 평원에서 제 힘을 발휘하는 법이다.

끝도 없는 공터. 그곳을 높이 비행하며 마법을 퍼붓는다. 그 순간 리치는 적이 아니라, 날아다니는 자연재해가 된다.

비행을 하는 순간 병사들은 손가락만 빨아야 하고, 기사들의 뛰어난 검술도 무력화된다. 카라나리쯤 된다면 허공을 박차고 싸워보겠지만,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인가. 지상에서보다는 전투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에 맞서려면 카라나리 같은 뛰어난 검사, 혹은 일정 수준 이상의 마법사나 궁수가 있어야 한다. 카르안의 기사단에는 없는 인재들이다.

그럼에도 굳이 광산 안에서 싸운다? 그것은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놈이 안쪽에서 싸운 이유는 밖으로 나가지 못했기 때문이야. 큰 부상을 당해서 움직이는데 문제가 생겼겠지.”

카르안의 예상대로였다. 리치는 어찌어찌 몸을 수복했지만, 아직 불완전한 수준. 그 덕에 라이프베슬 근처로 움직임이 제한되었다. 멀리 나갈 수가 없는 것이다.

카르안은 그때의 상황을 떠올렸다. 리치는 간만에 싸움에 몸이 달아올라 있었다. 그 사이, 카르안은 카라나리가 마지막으로 알려준 길, 가운데 길로 조용히 달려갔다. 그 안쪽은 리치의 행동범위 안이라 그런지 함정조차 없었다.

몰래 들어간다. 결과는 리치의 죽음이었다. 물론 리치도 아주 바보는 아니었다. 라이프베슬이 보관된 방, 그 입구에는 함정 뿐 아니라, 경보 마법이 걸려있었다. 그곳을 지나가면 바로 리치가 눈치 챌 수 있도록.

함정은 치명적이었다. 전처럼 불이나 독 같은 단순한 마법이 아니다. 지나가는 순간 필사(必死)의 저주가 걸리는 마법 함정. 그 저주에 걸리는 순간, 온 몸에 피가 역류하여 즉사하게 된다.

물론 골렘에는 피가 없지만. 카르안의 골렘은 정교한 함정을 죄다 잡아 뜯어버렸고, 카르안은 10초 만에 리치의 공든 함정을 돌파했다. 리치는 연금술사, 그 중에서도 희귀하다는 골렘술사의 침입까지는 예상하지 못했다.

카르안은 가는 동안 있었던 일을 간단하게 설명했다. 그러자 카라나리는 작게 감탄했다. 카르안의 행동보다는, 리치의 멍청함에.

“바보 같은 리치로군요. 대마법사라서 똑똑할 줄 알았는데.”

마족의 언어뿐 아니라, 제국어까지 유창하다. 거기에 흑마법은 최상위 수준. 그야말로 마족의 엘리트중의 엘리트다. 그런데 골렘 하나에 방어체계가 무력화 되다니.

“골렘을 막는 함정을 만드는 것도 힘드니까 말이지....... 그보다 도착한 것 같군.”

카르안은 한쪽 방을 가리켰다. 직사각형의 문. 안에는 차가운 공기가 새어나온다. 광산 안에서 유일하게 이질적인 공간. 절대 광산에 있을 것 같지 않은 방이었다.

둘은 방 안쪽으로 들어갔다. 터져버린 라이프베슬. 그곳에서 악취가 풍기고 있었다.

“냄새 한번 끝내주는군. 제발 쓸모 있는 것이 있었으면 좋겠는데.”

“그건 걱정 안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카라나리가 방 한구석을 보며 말했다. 그녀의 눈이 반짝였다.

“벌써 하나 찾았거든요. 쓸만한 물건.”

========== 작품 후기 ==========

늦어서 죄송합니다아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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