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너리움 광산 -->
“그렇게는 안돼.”
리치가 마법을 준비한다. 전부 마법을 피할 생각을 했지만, 카라나리는 정 반대. 오히려 검을 들고 리치에게 돌격했다.
뭐가 되었건 마법사는 마법을 준비할 때가 가장 약하다. 리치라도 그 법칙에서 벗어나지는 못할 것이다. 이대로 공격을 허용하면 계속 휘둘린다. 리치는 넘치는 마나로 계속해서 공격을 퍼부을 것이다.
후욱-
카라나리가 달려들자, 리치 앞에 둥둥 떠 있던 대낫이 그녀에게 날아갔다. 마치 부메랑같이 회전하면서.
그 공격으로 리치는 가장 성가신 여검사를 처리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아무리 대단해도 허공에서 몸을 틀지는 못하고, 저 어둠의 낫은 절대로 방어할 수 없다.
생명을 제외한 모든 물체를 관통하기 때문이다. 오직 살아있는 생명만 취해가기 때문에, 살 수 있는 방법은 회피밖에 없다.
파앗!
하지만 카라나리는 허공을 차고 방향을 바꿨다. 어둠의 낫은 허무하게 빗나가 버렸다. 리치가 크게 당황했다.
“자락투스여!”
리치가 불길한 신의 이름을 외웠다. 투신의 신성마법. 전사들의 신인 자락투스의 신성마법은, 그 어떤 신보다 빠른 시전속도를 자랑한다. 괜히 전사들의 신이 아닌 것이다. 실전에 최적화된 마법.
리치의 숨은 한수다. 기습을 당하더라도, 자락투스의 마법으로 상대에게 치명상을 입힐 수 있다.
하지만 카라나리는 쉽게 당하지 않았다. 틈을 보자마자 바로 들어가는 대신, 한 박자 뒤를 노린 것이다.
“이런! 동방의 무술을 배웠나!”
리치의 비명. 카라나리는 한 번 더 허공을 박찼다. 자락투스의 신성 마법도 허무하게 빗나가 버린다. 만약 카라나리가 섣불리 리치에게 파고들었다면 지금처럼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녀는 그대로 리치의 옆구리 쪽으로 뛰었다.
카라나리도 리치가 자락투스의 신도라는 점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투신의 신도가 틈을 보인다고, 무조건 달려드는 게 옮지 않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렇게 침착하게 움직인 결과, 리치의 훤히 드러난 몸통을 벨 수 있는 위치까지 왔다.
“담화섬(淡火閃)”
“크윽!”
카라나리의 검이 리치를 빠르게 베었다. 붉은 오러가 리치를 강타한다, 유리가 깨지는 소리와 함께 방어 마법이 산산조각 난다.
“아까의 보답!”
레이아라가 소리쳤다. 동시에 화살 두 개가 리치의 문신에 박혔다. 방어 마법은 방금 박살났다. 마치 등껍질을 잃은 거북이처럼, 지금 리치의 방어력은 일반적인 스켈레톤과 별 차이 없다.
문신, 팔에 박힌 화살이 폭발해 버렸다. 문신이 그려진 뼈는 박살났고, 거의 완료되었던 어둠의 마법은 전부 엉켰다. 검은 마나가 팔을 타고 몸 안으로 역류했다.
“커억!”
검은 연기가 피처럼 터져 나온다. 단순한 공격이 아니라, 급소를 정확히 찔렸다. 리치는 유체화로 물러서려 했으나, 그 몸이 점점 얼어붙기 시작했다.
뒤에 있던 뮬리펜의 공격이다. 마나를 모두 쏟아 부은 공격. 그런 절박한 공격치고는 조금 초라해 보였지만, 리치를 잠깐 행동 불가로 만들기는 충분했다.
리치는 시야가 뿌옇게 얼어붙는 것을 느꼈다. 폭발해버린 팔. 역류한 마나 때문에 당장 마법이 발동되지도 않는다. 평소 같았으면 이런 냉각 마법쯤은 쉽게 해제했겠지만, 준비한 마법이 끊어진 게 치명적이었다.
카라나리의 검에서 오러가 사라졌다. 아니, 넓게 퍼져있던 오러가, 초고밀도로 응집된 것이다. 오러 그 이상의 경지. 같은 양의 오러지만, 극도로 응축된 오러의 절단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물체를 넘어서, 영체까지 자를 정도의 힘.
“단(斷)”
간단하지만 위력은 절대적인 살초. 극단적으로 모아낸 오러를 이용해, 가장 빠르고 단순한 동작으로 베어낸다. 힘과 속도가 결합된 기술. 지금 카라나리가 사용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검술이다.
그녀의 검이 리치를 세로로 잘랐다. 평범한 베기였지만 리치는 막을 새도 없이 당했다. 정확히 반으로 잘려나간 리치가 바닥으로 추락해 버렸다.
“........”
카라나리는 흐르는 땀을 닦았다. 아직 익힌 지 얼마 되지 않는 기술이다. 고도의 집중력을 소모했기에, 머리에 두통이 느껴질 정도. 레이아라가 리치의 뼈에 다가가며 말했다.
“이젠 정말 죽었겠죠?”
“죽지는 않았겠지만........ 몸을 잃었으니 당분간은 움직이지 못할 겁니다.”
카라나리가 떨어진 리치의 시체를 확인했다. 아무리 물리 공격에 강하다 해도 이정도면 당분간 일어나지 못하리라. 확실히 리치의 몸에 있던 마나가 사라지고 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확인 사살을........”
“너무 늦었어.”
그때 늘어난 리치의 손이 카라나리의 목을 잡았다. 평소의 뼈밖에 없는 손이 아니다. 마치 악마에게 빌려온 것처럼 시뻘건 팔뚝. 악마화한 사이프카르와 비슷한 모양이다.
이미 죽어가고 있다고 생각했기에 예상치 못했다.
“아윽.......”
카라나리가 황급히 그 손을 떨치려했다. 하지만 악력이 어찌나 강한지, 손가락을 뿌리칠 수가 없다. 순간 손을 놓고 공격하려고도 해 봤지만, 지금 손을 놓는 순간 그녀의 목은 부러지리라. 양 손으로 잡고 있어서 그나마 버티고 있는 것이다.
“아직 자락투스님의 권능을 모르는군. 잘 알아둬라. 어린 검사여. 그분의 권능을 빌리는 시종들은, 절대 한 번에 죽지 않는다.”
자락투스의 권능. 몸에 심각한 이상이 생기면 신의 힘이 발동된다. 마치 광폭화하는 것처럼. 거기에도 그만한 대가가 필요하지만, 이런 위기상황에서는 엄청난 힘을 발휘한다.
레이아라와 뮬리펜도 리치를 공격했다. 그러자 리치는 카라나리를 잡고 있는 손이 아닌, 반대편 손을 살짝 휘저었다. 그러자 허공에 떠있던 예의 대낫이 둘에게 날아갔다.
빠른 속도. 레이아라는 황급히 몸을 뒤로 날렸지만, 활과 함께 팔을 깊게 베였다. 붉은 피가 하늘 위로 치솟았다.
“크윽!”
뮬리펜도 대낫을 피해 몸을 던졌다. 하지만 레이아라나 카라나리에 비해 전투적인 경험이 너무 없었다. 레이아라를 베고 날아오는 대낫. 첫 번째 공격은 몸을 날려 피했지만, 넘어진 그녀를 향해 두 번째 공격이 날아왔다. 낫이 허공에서 방향을 바꾼 것이다.
“아악!”
첫 번째 공격을 피하느라 완전히 자세가 흐트러졌다. 뮬리펜은 두 번째 공격을 피하지 못했다. 대낫의 날 부분이 등을 뚫고 튀어나왔다.
“우욱.......”
뮬리펜이 피를 토했다. 눈앞에 붉게 변하고, 몸 안에서 뭔가 빠져나가는 느낌이 든다. 낫이 배 안을 완전히 헤집어 버린 것이다.
리치는 괴로워하는 뮬리펜을 보며 낫을 회수했다. 그러자 벌어진 상처에서 피가 터져 나왔다. 인간이었다면 즉사해도 이상하지 않을 부상. 뱀파이어기에 죽지 않고 버티는 것이지만, 그것도 오래 가지 않을 것이다. 피가 너무 많이 흐르고 있다.
“하하하하하하하!”
리치가 미친 듯이 웃음을 터뜨렸다. 성대가 없기에, 흑마법으로 내는 목소리는 음산하기 그지없었다.
“아직 끝나지 않았........”
상대적으로 부상이 덜한 레이아라. 그녀가 허리에서 단검을 뽑았다. 궁술에 비해 검술은 부족하지만 이렇게 포기할 수는 없었다. 일단 목표는 카라나리의 속박을 푸는 것. 다행히 아직 카라나리는 상처가 없다. 그리고 이중에서 독보적인 전투력을 가지고 있다.
레이아라는 리치에게 돌격하려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녀는 몸에 힘이 풀려 주저앉고 말았다. 근육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마치, 독에 중독된 것처럼.
“가만히 있는 게 좋을 거야. 그 대낫에는 신경독이 흐르고 있거든. 한번 베이면, 한동안은 꼼짝도 할 수 없지.”
“으윽.......”
레이아라는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계속해서 바닥에 주저앉았다. 온몸에 퍼진 신경독은 의지로 이겨낼 수 있는 게 아니다. 리치는 그런 레이아라를 즐겁다는 듯 바라보았다.
“다친 몸을 회복하는 시간동안 너무 지루했거든. 엘프라. 당분간 재미있는 장난감이 되겠어.”
“닥......쳐........”
“기세가 등등한데. 혀는 놔두고 팔다리만 잘라볼까. 그때는 무슨 말을 할지 궁금하군.”
레이아라가 완전히 쓰러졌다. 신경독을 이기지 못한 것이다. 재미를 다 봤다는 듯, 리치는 시선을 카라나리에게 돌렸다. 그녀의 동료들이 당하는 것을 보면서도, 리치의 한 손을 막는 게 고작이었다. 자락투스의 힘으로 생겨난 팔은 실로 악마적인 힘을 가지고 있었다.
“자, 그러면 인간 검사. 너를 어떻게 죽여줄까. 응?”
리치는 카라나리의 목을 쥐고 있는 손에 힘을 주었다. 숨이 막히는지, 카라나리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나에게 이정도 상처를 입힌 것은........ 개 같은 짐승새끼를 제외하면 네가 처음이다. 칭찬으로 들어도 좋아.”
리치의 안색이 잠깐 어두워졌다. 아울렉스. 마치 농담 같은 힘들 가진 라이칸스로프였다. 신성력이 발동하기도 전에 온 몸이 부서졌다. 나중에 복수하려 했지만, 도저히 그 방법이 떠오르지가 않을 정도.
“죽일거면........빨리 죽여.”
카라나리가 독한 눈으로 리치를 노려봤다.
“흐흐. 그런 말을 들으면 절대로 빨리 죽일 수가 없지.”
치리가 남은 손으로 카라나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마치 귀여운 애완동물을 만지는 것처럼. 카라나리는 굴욕에 몸이 떨렸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좋은 표정이야. 그래. 그 표정으로 죽어라.”
치리의 손이 복부로 내려갔다. 이대로 머리를 으깨버릴 수도 있지만, 그녀의 바람대로 쉽게 죽여줄 수는 없다. 그는 사람을 고통스럽게 죽이는 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카라나리는 방어를 포기하고, 한손을 검으로 옮기려했다. 이렇게 비참하게 죽을 바에는, 마지막 일격이라도 날려볼 참이다. 목이 잡힌 이상 통할 것 같지는 않지만. 어차피 이대로 있어도 죽는다.
“가만. 그런데 그 연금술사 놈이 보이질 않는군. 도망간 건가?”
리치가 이상하다는 듯 말했다. 이제야 눈치 챘지만, 본격적인 싸움이 시작되고 나서부터 도통 보이지가 않았다. 자신이 도움이 되지 않으니까. 포기하고 밖으로 나간 것일까.
“어느 쪽이든 상관없어. 나중에 이년들의 시체를 눈앞에 던져주지.”
리치는 자신이 힘을 회복했을 때를 상상하며, 즐겁게 카라나리의 배를 가르려했다. 그 순간. 리치의 팔이 멈추었다.
“잠깐.”
리치의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졌다. 비록 얼굴 근육은 없지만, 한눈에 봐도 당황했음을 알 수 있을 정도다. 리치가 이를 악물었다.
“빌어먹을 새끼!”
2.
그 시간 카르안. 그는 커다란 석실 안에 있었다. 평범한 탄광이 아닌, 인위적으로 만들어놓은 듯한 장소. 그 한중간에는 마법진이 은은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리고 마법진 한중간.
“이게 라이프베슬인가 하는 그거냐?”
마치 고치 같은 고깃덩이가 박동하고 있었다. 흉해 보일 것만 같지만, 안에 흐르는 마나덕분인지 제법 멋지게 빛나고 있다. 오히려 신성한 느낌까지 주는 덩어리.
카르안은 그 고깃덩이를 향해 공격을 명령했다. 그의 옆에 서 있던 골렘이 라이프베슬에게 걸어가, 주먹으로 라이프베슬을 내리찍었다.
꽈직-!
고기 으깨지는 소리와 함께 라이프베슬이 터져나갔다. 안에 들어있던 검은 피가 넘쳐흐르기 시작했다.
“윽, 육즙이 흘러넘치는군.”
카르안의 불쾌한 감정을 느끼기라도 한 듯, 골렘은 더욱 날뛰기 시작했다. 쇠로 된 손바닥이 연약한 고깃조각을 갈기갈기 찢었다.
“멈춰라!”
비명소리와 함께 리치가 나타났다. 급하게 한 텔레포트. 하지만 그 모습에 과거와 같은 여유는 없었다. 그의 몸체는 막 사라질 것처럼 흐릿했고, 몸에서는 검은 연기가 불안하게 흐르고 있었다.
“그, 그만둬!”
“설마. 내가 정말 그 말을 들을 거라 생각하지는 않겠지?”
골렘이 힘껏 라이프베슬의 정중앙을 찍었다. 정확히 말하면 리치의 뇌가 보관되고 있던 공간. 리치는 마지막으로 발악하듯 카르안에게 달려들었지만, 카르안에게 손이 닿는 순간 리치의 의식이 사라졌다.
“아아아악!”
비명을 끝으로, 뼈들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몸을 제어하지 못하게 된 것. 뇌가 파괴된 이상, 리치는 다시 살아나지 못한다. 몸체는 엄청난 재생력을 가졌지만, 약점인 라이프베슬은 연약하기 그지없었다.
카르안은 죽어버린 리치를 한심하다는 듯 바라봤다.
“별 것도 아닌게 더럽게 시끄럽네.”
========== 작품 후기 ==========
오늘도 봐주셔서 감사해요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