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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션으로 무한성장 (118)화 (118/124)
  • <-- 이너리움 광산 -->

    “그러면 리치가 주먹질이라도 하나요?”

    “그럴 리는 없을 거예요. 설령 한다고 해도 별 문제는 되지 않을 것 같은데.”

    어차피 뼈밖에 안남은 놈이 주먹질을 한다고 해도 별로 위협적이지는 않을 것이다. 마법으로 움직인다고 하나, 근육이 없는데 강한 근력을 내기는 쉽지 않다. 효율이 떨어지는 것이다. 레이아라가 입을 열었다.

    “리치라는 마족이 워낙 특이한 놈이라서. 혹시 몰라요. 무슨 마법으로 무슨 일을 했을지.”

    “그냥 정신이 나가서 지랑 비슷한 신을 믿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지. 어차피 들어가기로 한거, 빨리 끝내자고.”

    “그러면 함정 해제부터 해볼게요.”

    뮬리펜이 자신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엘프의 피를 마셨다고는 해도, 쓰지 못하던 마법을 사용할 수 있게 되는 게 아니다. 지금까지 배워둔 마법의 위력이 올라갈 뿐.

    아직 함정을 보지는 못했지만, 리치가 만들어둔 마법 함정을 자신이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마법 함정을 무력화시키는 것을 배우기는 했지만 아직 초보 수준. 실전 경험도 없다.

    심지어 카르안이 구해준 마법서에 깊이 있는 마법은 없었다. 그런 고급 마법 책을 구하려면 거금을 들이거나, 마법사 협회를 털 각오정도는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럴 필요 없어. 내가 해결하지.”

    카르안은 골렘 1기를 소환했다. 육중한 골렘이 몸을 드러내자, 좁은 광산 안이 꽉 차는 것만 같았다.

    “골렘은 왜 꺼내신 거죠?”

    “나도 함정 해제 마법을 배웠거든.”

    카르안의 명령이 떨어졌다. 골렘은 양 팔로 몸을 가리고, 허리를 낮추었다. 마치 숙련된 격투가가 방어 자세를 취하는 것처럼.

    “마나 쉴드 전개.”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카르안의 아이언 골렘 위로 반투명한 막이 생겨난 것이다. 카라나리가 뮬리펜을 바라봤지만, 그녀는 고개를 붕붕 저었다. 자신이 한 게 아니다. 골렘 안에서 자체적으로 만든 방어막.

    “돌격.......그러니까 벽이 보일 때까지 쭉 가.”

    골렘의 발이 움직였다. 여전히 몸을 가린 자세다. 거대한 갑옷은 비석을 지나 어둠 속으로 거침없이 달려갔다.

    쿠쿠쿵!

    그러자 온갖 마법이 사방에서 터져 나왔다. 검은 칼날부터 머리만한 불덩이, 때론 바람이 날카로운 칼날이 되어 골렘을 사정없이 긁었다. 골렘이 몸으로 모든 함정을 발동시킨 것이다.

    “그 정도로는 어림없지.”

    골렘의 마나 쉴드는 얼마 못가 파괴되었지만, 그의 몸체는 손상되지 않았다. 리치가 직접 사용한 것도 아니고, 함정으로 만들어둔 공격 정도에 부서질 아이언 골렘이 아니다.

    “우와........”

    레이아라가 작은 입을 벌렸다. 한순간에 그 많던 함정이 전부 박살났다. 여기서부터 골렘이 헤집어놓은 곳까지는 안전하리라. 한번 발동했던 함정이 두 번 발동할 일은 없다.

    일반 함정이나 마법 함정이나 1회용인건 똑같다. 결국 마나를 다 쓰면 마법진은 사라지는 것이다. 위력을 약하게 해서 여러 번 쓸 수 있게도 만들 수 있기는 하지만, 그런 짓을 하는 마법사는 없었다.

    함정의 장점이 무엇인가. 예측하지 못하는 때에 예측하지 못하는 곳에서 공격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일반적인 공격보다 위력이 떨어져도, 실제로는 더 위협적이다.

    그렇기에 처음 걸렸을 때, 한 번에 사냥감을 처치해야 한다. 이미 위치와 무슨 종류인지 드러난 함정은, 풋내기 용병을 활보다 위력이 떨어진다.

    “가자.”

    카르안의 명령에 일행들은 골렘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함정이란 함정은 방금 다 발동되었기에, 주변에서 매캐한 향이 올라오고 있다.

    “방금 그건 뭐에요?”

    “마나 쉴드를 연금술로 구연해봤지. 별로 쓸모 있어 보이지는 않지만.”

    레이아라의 질문. 카르안은 아이언 골렘에서 만족하지 않았다. 그보다 강력한 골렘을 위해, 아이언 골렘에 여러 무기를 부착해 봤다.

    실패도 했지만, 성공도 있었다. 몸에 오러처럼 마나를 두르는 것. 그리고 방금 전 마나쉴드를 만들어낸 것.

    효율은 떨어지지만,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낫다. 아직 초기단계였으니까 그렇게 기대하지도 않았고. 무사히 한번이라도 막아냈기에 불만은 없었다.

    “그것보다 여긴 벽이 아닌데.”

    골렘이 있는 곳에 도착한 카르안. 골렘은 두 갈래 길 앞에서 멈춰 섰다. 그리고 명령을 기다리듯 카르안을 눈을 빛내고 있었다. 벽은 아니지만, 어디로 가야할지 판단하지 못했기에 멈춰선 것.

    “어느 쪽으로........ 가야하죠?”

    “역시 그 광부를 데리고 와야 했나.”

    카르안은 고개를 저었다. 그 겁쟁이 광부는 뮬리펜이 정신제압 당할 때쯤이면 도망쳤을 것이다.

    “역시 흩어져서 찾아볼까요.”

    “그건 너무 위험해. 차라리 골렘을 잔득 풀어보자.”

    카르안은 골렘을 소환하려 했다. 골렘은 그 수가 잔득 불어나서 이제는 10기가 넘는다. 한두 기쯤 당한다고 해도 상관없을 만큼을 수.

    “아니요. 이쪽입니다.”

    카라나리가 두길 중 오른쪽을 가리켰다. 다른 이들은 눈치 채지 못하지만, 그녀는 알 수 있었다. 오른쪽에서 강한 음기가 새어나온다. 사악한 악마의 냄새. 그녀가 눈을 감고 신경을 집중했다.

    “이쪽이 더 차갑습니다.”

    “차갑다고요?”

    “오른쪽으로 가자.”

    카르안은 카라나리를 신뢰하고 있다. 만약 그녀가 지금처럼 확신 있게 말한다면, 그건 맞는 말이다. 다른 이들은 지금 상황이 못 미더웠지만, 카르안의 말을 따라 이동했다.

    “자, 한 번 더 돌격.”

    골렘은 다시 했던 일을 반복했다. 이번에는 전처럼 수십 개의 함정이 튀어나오지 않았다.

    끼이익-

    소름끼치는 소리. 쇠가 긁히는 소리가 광산 안을 울렸다. 한순간 칼날 수십 개가 골렘을 훑고 지나갔다.

    이번에도 골렘은 큰 피해가 없었다. 하지만 그 은빛 몸체에, 진한 녹색의 액체가 잔득 칠해져 있었다.

    “독이네요.”

    “독을 사용한 함정이라니, 징하기도 해라.”

    이번에는 심리적인 함정. 이쯤 되니 함정이 없구나 싶을 때, 기습적으로 강력한 함정이 튀어나온 것이다. 이렇게 독이 품어져 나오는 칼날에 한번 당하면, 어지간한 마족이라도 쓰러지고 만다.

    골렘에게는 아무 피해도 주지 못했지만. 리치도 설마 세상에 몇 없는 골렘술사가 골렘을 앞세울 줄은 몰랐던 것 같다.

    광산의 길은 일직선이 아니었다. 거기에 리치가 폐광을 더욱 꼬아놓았는지, 이상하리만큼 길이 복잡하다. 하지만 그런 길을 골라야 하는 순간마다, 카라나리는 정확한 답을 알려주었다. 카르안을 제외한 레이아라와 뮬리펜. 그녀들은 반신반의 하면서도 그 길을 따라갔다.

    약 1시간 후. 또다시 세 갈래 길이 나왔다. 카르안은 카라나리에게 웃으며 물었다.

    “자, 카라나리 도사님. 이번에는 어느 쪽이죠?”

    하지만 카라나리는 말하지 않았다. 대신 손에 들고 있던 횃불을, 벽에 힘껏 꽂았다. 그녀는 양손으로 검을 잡았다.

    “중간일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처리해야 할 게 있네요.”

    “이런, 골렘술사라니. 상상도 못했어.”

    스산한 목소리가 들린다. 허공에서 검은 안개가 한곳에 뭉치더니, 곧 검은 로브를 뒤집어쓴 사신의 형태를 완성했다.

    리치의 등장. 일행은 전부 전투태세에 들어갔다.

    “리치!”

    레이아라가 단궁에 화살을 먹이고, 활시위를 당겼다. 그리고 마법을 건 다음, 허공에 둥둥 떠 있는 리치를 향해 발사했다. 모두 1초도 되지 않은 순간 일어난 일. 여전히 레이아라는 능숙한 궁수였다.

    “흠. 엘프 숲의 고목으로 만든 활이군. 그 정도로는 부족해.”

    날아가던 화살은 단단한 방어막에 튕겨나갔다. 레이아라는 연달아 화살을 발사했지만, 전부 막혔다. 튕겨나간 화살은 광산 벽에 단단히 박혔다.

    “쓸데없는 짓.”

    리치가 손을 뻗었다. 그러자 그의 손바닥에서 검은색 낫이 소환되었다. 붉은 빛이 흐르는 대낫은, 한눈에 봐도 보통 무기가 아니었다.

    “오늘은 아주 좋은 날이군. 엘프라. 희귀한 실험재료야.”

    리치가 웃으며 달려들었다. 놀랍게도 리치는 대낫을 들고 일행들에게 돌격한다. 보통 원거리 싸움을 고집하는 리치들과는 정 반대. 카라나리는 검을 세우며 반격을 준비했고, 카르안은 옆으로 빠졌다. 반면 뮬리펜은.

    ‘어어........’

    아쉽게도 실전 경험이 전혀 없었다. 그런 소녀의 첫 번째 싸움 상대로, 리치는 너무 과했던 것일까. 리치가 어둠을 흩뿌리며 달려들자, 뮬리펜은 순간적으로 패닉에 빠졌다.

    “난 쓸데없는 짓은 안하거든.”

    그때였다. 하얀 빛의 실들이 리치의 몸을 봉쇄했다. 마치 거대한 턱에 걸린 것처럼, 리치의 움직임이 덜컥 멈췄다.

    “이런!”

    리치는 깜짝 놀라 자신의 몸을 살폈다. 자신을 구속한 실들, 그 실들은 전부 튕겨나갔던 화살과 연결되어 있었다.

    “다음부터는 엘프의 마법도 꼭 배워보세요.”

    레이아라가 씩 리치에게 달려갔다. 손에는 활에 화살을 장전하며.

    그러자 예의 그 불꽃, 엘프의 푸른 불꽃이 화살 끝에 맺혔다. 옛날 르네키르다에서 레이아라가 보여줬던 엘프의 마법이었다.

    “다음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레이아라가 움직임이 멈춘 리치의 바로 앞, 미간에 대로 화살을 발사했다. 바로 코앞에서 발사한 공격.

    불이 타오르는 소리와 함께 레이아라의 공격이 리치에게 적중했다. 무쇠도 녹여버리는 불꽃이다. 처음에 작았던 불꽃은 곧 불기둥이 되어 리치를 관통했다. 그것도 모자라 탄광의 돌 벽을 녹이면서, 거대한 구멍을 만들었다.

    주변에 모든 것들이 증발한다. 그 때문인지, 불쾌한 향의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났다. 레이아라는 유연하게 공중에서 한 바퀴 돈 다음 땅에 착지했다.

    “리치도 별거 없네.”

    “위험합니다!”

    “어?”

    다음 순간. 연기 속에서 검은 낫이 튀어나왔다. 그리고 그 낫은 레이아라의 목을 베려는 것처럼 빠르게 움직였다.

    “아!”

    뒤를 돌아본 레이아라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녀를 비웃는 듯한 리치의 얼굴이, 어둠속에서 보이는 것 같았다. 피하기는 너무 늦었다!

    치익!

    타들어가는 소리와 함께 리치의 낫이 튕겨나갔다. 순식간에 달려든 카라나리. 그녀가 오러 실린 검으로 리치의 낫을 튕겨냈다. 바람 같은 움직임. 오러와 검은 낫이 부딪히며 타들어가는 소리를 내었다.

    “빠르군.”

    리치가 감탄했다. 레이아라의 공격에 입고 있던 검은색 로브가 전부 타버렸지만, 몸에는 별 부상이 없어보였다. 로브가 사라지자 하얀 뼈가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비틀어라.”

    허공에서 마법진이 생기며, 골렘의 양 팔이 소환되었다. 골렘들은 마나가 흐르는지 푸른빛을 뿜고 있다. 그 골렘들이 리치의 몸을 감싸듯이 쥐려했다.

    하지만 리치도 바보가 아니었다. 그는 의외로 날렵하게 그 손들을 피했다. 하지만 그가 피한 장소에도 주먹이 생겨났다.

    “이놈은 골렘을 몇 기나 소환하는 거지!”

    리치가 소리침과 동시에, 주먹이 그의 턱을 강타했다. 피하지 못한 리치가 허공으로 붕 떠올랐다. 이어지는 공격. 주먹들이 리치의 몸을 움켜쥐려했다. 저 뼈들을 으스러뜨릴 생각이었다.

    “골렘의 손에 마나를 흐르게 만든 건가. 오러를 따라했군. 대단해.”

    하지만 첫 번째 주먹이 먹힌 것과 다르게, 그 손들은 리치를 잡지 못했다. 마치 허공을 휘젓는 것처럼. 리치가 비웃듯이 말했다.

    “하지만 진짜 오러에 피하면 밀도가 턱없이 부족해....... 그런 장난질로 나를 쓰러뜨릴 수는 없지 않겠나.”

    리치가 허공에 떠서 카르안 일행을 살펴봤다. 예상 외로 강한 것은 엘프를 구한 여검사. 연금술사는 뛰어나지만, 자신에게 치명타를 가할 수 없다. 그리고 떨고 있는 뱀파이어는 마법사지만, 실전이 한참 부족해 보인다.

    “짜증나는군.”

    카르안이 중얼거렸다. 리치의 가장 강력한 점이 드러나고 있다.

    흐물거리는 유체화 덕분에 물리적인 충격에 매우 강하다. 거기에 최상급 흑마법사라, 마법 공격도 전부 막아내는 것이다. 그다지 약점이랄 게 없는 최악의 적.

    ‘대체 아울렉스라는 놈은 어떻게 된 놈이지?’

    그나마 지금 리치는 부상을 당한 상태다. 오크대장의 말에 따르면, 그 오펜바흐의 대장군은 완벽한 컨디션의 리치를 한 번에 박살냈다. 아무런 기교도 없이 오직 힘으로.

    “후.”

    카르안은 자세를 다잡았다. 리치가 강하기는 하지만, 아직 싸움은 시작도 안했다. 오히려 지금 유리한 것은 자신이다. 라고 카르안은 생각하고 있었다.

    리치는 레이아라의 공격을 견디고 여유가 생겼는지, 지금 상황을 즐기듯 말했다.

    “그러고 보니 연금술사. 너는 악마의 진주를 가지고 있군. 아주 귀한 보물을........”

    “알아봐줘서 고맙군. 네 목을 준다면 선물해줄 수도 있어.”

    “흐흐. 하지만 사용법은 전혀 모르고 있어. 아니, 그편이 나에게는 다행인가.”

    “뭐?”

    하지만 리치는 더 말하지 않았다. 대신 대낫을 허공에 던졌다. 양 손이 자유로워진 리치의 손바닥에, 검은 문신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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