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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션으로 무한성장 (116)화 (116/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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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오크대장을 죽이지 않은 것은 두 가지 이유였다. 제국어를 능통하게 할 수 있고, 또 대장이기에 많은 것을 알고 있기 때문. 카르안은 바로 본론을 꺼냈다.

    “저 광산 안에는 뭐가 들어있지?”

    “나도 잘 모른다!”

    “그러면 죽어야지.”

    카르안이 오크의 목을 움켜쥐었다. 강화된 그의 악력이 오크의 숨통을 조여 온다. 위협 따위가 아니다. 카르안은 사정없이 목구멍을 비틀려했다.

    이쯤 되면 순순히 이야기할 만도 했지만, 오크대장은 컥컥거리며 억울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취- 커억- 저, 정말 모르는걸 어쩌라고!”

    “거짓말이 아닌 것 같습니다.”

    카라나리는 오크의 얼굴을 읽었다. 저 표정은, 뭔가를 각오하거나 그런 게 아니다. 정말로 모르는데 억울하게 잡힌 표정.

    카라나리에게 저 오크를 살려야 된다는 불살의 정신같은게 있을 리 없었다. 단지 쓸데없는 시간낭비를 피하고 싶을 뿐. 카르안도 그녀를 잘 알고 있기에, 오크의 목을 놔주었다.

    “그러면 여기서 옹기종기 모여있다는 게 말이 돼? 여기서 오크들끼리 다과회라도 열 생각이었나.”

    “뭐가 들어있는지는 정말 모른다. 다만, 이 안에 부상당한 리치(Lich)가 살고 있다는 정보만 알고 있을 뿐이야!”

    “리치?”

    오크의 말에 레이아라와 카라나리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리치는 최상위권의 실력을 가진 흑마법사가, 자신의 육신을 버리고 변한 괴물중의 괴물.

    마나가 응집된 뼈를 제외하고는 남아있는 장기가 없다. 근육도 내장도 전부 필요 없어지기 때문이다. 단지 사고를 위해 없어져서는 안 되는 부위, 뇌만은 비밀스러운 장소에 숨겨둔다. 카라나리가 말했다.

    “리치는 너무 위험합니다.”

    그 뇌를 보관하는 곳이 바로 리치의 라이프베슬. 사실 그 라이프베슬이 리치의 본체이다. 리치는 그곳에 마나와 뇌를 강력한 마법으로 보존한다. 그리고 그 곳에서 뼈만 남은 자신의 시체를 조종한다. 일종의 원격 조종이다.

    따라서 이 라이프베슬이 파괴되지 않으면, 리치를 완전히 소멸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만 리치가 조종하는 자신의 시체에도 강력한 마나가 응집되어있다. 따라서 라이프베슬이 아니라, 움직이는 시체를 파괴하는 것 만으로도 어느 정도 타격을 줄 수는 있다.

    “놈이 그렇게 위험한가?”

    “예. 잘못하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리치는 어지간한 로드(Lord)급 뱀파이어와 비슷한 전투력을 가졌으니까요.”

    카라나리가 침을 삼켰다. 평소에 과장을 하지 않는 그녀가 저렇게 말한다면, 정말로 위험한 것이다. 그녀는 지금 이 전력으로는, 리치를 상대하기 힘들다고 생각하고 있다.

    뱀파이어 로드. 그러니까 고위 뱀파이어와 동등한 실력이라면, 일반 병사가 아니라 기사들에게도 재양을 일으킬 수 있다. 기사단 하나 둘 쯤은 손도발도 못써보게 하고 박살낼 전력의 일인군단.

    “그놈은 약점 같은 거 없으려나.”

    “예? 설마 들어가실 생각은 아니죠?”

    레이아라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오크들이야 장난감처럼 다룰 수 있지만, 리치를 어떻게 상대할 생각일까. 레이아라는 용병시절 자신을 떠올렸다. 그때 그녀도 리치를 실제로 본 적이 있다.

    답이 없다. 리치를 만나면 무사히 도망칠 생각이나 하는 게 옮다. 아군이 여러 명이면 뒤도 돌아보지 말고 도망가고, 홀로 움직이다 만났으면 활로 시간을 벌며 도망친다. 결국 방식만 다를 뿐 목적은 똑같았다.

    도주만이 살길이다.

    “리치의 약점은 라이프베슬 뿐입니다. 그리고 리치를 직접 상대할 때에는, 마법사가 리치의 방어마법을 해체한 다음 물리적인 공격으로 뼈를 부수는 것이 좋습니다.”

    “잠깐만요.”

    레이아라가 이상하다는 눈으로 카라나리를 바라봤다. 저 여자는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인가. 리치의 약점을 알려줄게 아니라, 어떻게든 카르안을 말려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카라나리의 눈은 변하지 않았다. 경고는 이미 했다. 카르안이 정보를 원하면, 그녀는 최대한 정확한 정보를 전해줄 뿐. 결정은 카르안이 할 것이다. 그리고 그 결정에 몸을 던지는 것은 자신. 그것으로 좋았다.

    “으흠. 다 좋은데 마법사가 없군. 뮬리펜씨 정도면 가능하려나.”

    “저, 저요?”

    뮬리펜이 화들짝 놀랐다. 지금까지는 회복 마법만 사용해왔고, 피튀기는 싸움 한복판에 끼어든 적은 한 번도 없다. 무엇보다 평생 수련한 신성마법과 다르게, 뱀파이어의 흑마법과 원소마법은 익힌 지 한 달도 되지 않았다.

    “저, 잘 못할 것 같은데에....... 마법도 기본적인 것 밖에는 못해요오......”

    기어들어가는 목소리. 뮬리펜은 기본적인 공격마법과, 약간의 해제마법 정도를 익히고 있었다. 모두 카르안이 구해준 마법서에 처음 나오는 내용. 검술로 치면 단순 베기와 찌르기 정도였다.

    카르안도 대충 예상한 상황이다. 뮬리펜이 큰 전력이 되지 못한다는 것. 별로 놀랍지는 않았다. 아무리 뱀파이어로 변했다지만, 벌써부터 뮬리펜이 고급 마법을 난사한다면 그게 더 무서울 것 같다.

    “그러면 그냥 힘으로 때려 부수지. 일단 카라나리가 앞에 서고, 내가 중간. 맨 뒤에서는 뮬리펜 씨와 레이아라가........”

    “저는 왜? 전 간다고 한적 없는데요?”

    레이아라가 온 몸으로 거부감을 표현했다. 차라리 거대한 오우거 떼와 싸우는 편이 낫지. 공격을 예측하기도 힘든 리치와 싸움은 질색이다.

    하지만 카르안은 레이아라를 무시하며 오크대장에게 물었다.

    “그나저나 저 리치. 부상당했다고 했지? 자세히 말해봐.”

    “원래 그 리치는 오펜바흐의 귀족이었다. 영지는 작았지만, 어차피 마법에 미쳐있던 리치에게는 별 문제가 되지 않았지. 놈의 문제는 단 하나. 마법에 너무 심취했다는 것이다.”

    오크대장이 눈치를 보며 말했다.

    “놈은 항상 쓸 만한 실험체들을 찾아다녔고. 한 라이칸스로프 병사를 납치해 재생력에 관련된 실험을 했지........ 그리고 작살이 났어.”

    “고작 해봐야 라이칸스로프 병사 아닌가.”

    카르안은 이해할 수 없었다. 일반 병사가 고위 라이칸스로프일리도 없다. 반면 그 리치는 귀족. 귀족이 사병 하나를 죽였다고 큰 문제가 되겠는가.

    “일반 병사라면 문제될게 없지. 다만 그 라이칸스로프가 하필 오펜바흐 제국의 대장군(大將軍), 라이칸스로프의 군주 아울렉스의 호위병이었던 거다.”

    “제국의 대장군?”

    “그렇다. 실질적으로 오펜바흐 제국의 군대는 전부 그의 손 안에 있지. 황제가 지시한 토벌 임무 때문에 잠시 머무는 중이었는데 하필........ 아무튼 그 리치 놈은 운도 없었어.”

    그러니까 납치를 했는데 납치한 게....... 제국 최강의 장군의 부하란 말인가. 정말 안타까운 상황이다.

    “그래도 리치라면 라이칸스로프와 싸워볼만 할 텐데.”

    카라나라의 말을 들어보면, 리치는 물리공격에 강했다. 그리고 라이칸스로프는 전사. 리치를 공격하지 쉽지 않을 것이다.

    카르안의 생각이 맞았다. 일반적으로 마법사는 1:1상황에서 동실력의 전사를 상대하기 힘들다. 리치라는 특수한 마법괴물을 제외하면 말이다. 리치는 몸에 온갖 방어마법을 걸어놓기 때문에, 그 방어력은 움직이는 성이라고 해도 믿을만할 정도다.

    오크대장의 코웃음을 쳤다.

    “싸워보기는 개뿔이. 분노한 대장군은 홀로 리치의 집으로 쳐들어왔고, 리치는 단 1초도 버티지 못했다. 단 한방.”

    오크가 악몽을 떠올리듯 말했다.

    “단 한방에 리치의 모든 방어마법과 뼈가 파괴되었다. 심지어 아울렉스는 오러조차 사용하지 않았어. 순수한 물리력. 주먹 한방에 리치는 전신이 가루로 변해버렸지.”

    “거짓말. 말도 안돼요!”

    레이아라가 어처구니없다는 듯 소리쳤다. 리치가 그냥 맨주먹 한방에 나가떨어지는 놈이면 누가 무서워하겠는가. 최상급의 오러가 실린 전투도끼로, 힘껏 찍어야 흠집이나 날까 싶은 게 리치의 방어 마법이다.

    카르안이 오크대장의 머리를 툭툭 두들겼다. 상당히 기분 나쁜 제스처지만, 오크대장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나도 좀 의심스럽군. 일단 리치가 한주먹에 밀가루가 된 건 그렇다 치더라도, 너는 그걸 어떻게 다 알고 있지?”

    지금 오크는 마치 모든 상황을 직접 본 것처럼 말하고 있다. 어디서 주워들었다면 이정도로 정확하게 알고 있을 리가 없다. 하지만 오크는 코웃음을 쳤다.

    “당연히 잘 알 수밖에. 내가 바로 그 리치의 사병이었으니까!”

    “아.”

    정말로 직접 본 것이었군. 카르안이 머리를 긁적였다. 오크는 아직도 그때의 공포가 떠오르는지, 몸을 살짝 떨고 있었다.

    “젠장. 그때 대장군이 나에게 아무 관심도 없어서 다행이었지. 정말 죽을 뻔했어. 하지만 운 좋게 살아서 도망칠 수 있었지.”

    “그건....... 행운이군.”

    카르안은 애매한 표정으로 말했다. 어차피 잠시 후면 이놈은 죽을 건데. 그것 운이 좋다고 해야 하나.

    카르안이 고민에 빠지건 말건, 오크는 계속해서 말했다.

    “그리고 아울렉스는 대체 무슨 수를 썼는지 모르겠지만, 단숨에 리치의 라이프베슬을 찾아냈어. 걸어갈 필요도 없었지. 고함을 한번 지르니까 그 방향으로 모든 벽이 박살났거든. 숨겨져있던 라이프 베슬의 맨살이 드러난 거야.”

    “그리고?”

    “리치의 숨통을 끊으려고 성큼성큼 걸어가는데, 라이프베슬이 사라졌다. 내가 본 것은 거기까지야.”

    “그러면 리치가 지금 여기 있다는 사실은 어떻게.......”

    “말했잖아. 나는 그놈의 사병이었다고. 나는 그놈이 비상시 라이프베슬을 텔레포트 시킨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1년간 고생한 끝에, 그 위치를 알아내는데 성공했거든. 바로 여기라는 것을!”

    “너도 참 괴상한 취미를 가졌군. 주인이 도망갈 곳을 일부러 알아내다니.”

    카르안이 한심하다는 듯 말했다. 저놈이 지금 말하는 것을 봐서, 위험에 빠진 주인을 구하기 위해 그 장소를 알아낸 것은 아닌 것 같았다.

    “귀족이 그런 은신처에 뭘 준비해두겠어? 당연히 비상용 금화와 각종 마법도구들이지! 나는 나중에 이 사병 일을 그만두면 그 곳에 가려고 했다. 거기서 리치가 미리 준비해둔 금화를 전부 가져갈 생각이었어.”

    리치의 삶은 끔찍하게 길다. 오크 사병이 은퇴할 때까지라고 해 봐야, 리치에게는 찰나의 순간. 특별한 일이 없으면 비상용 탈출 위치가 바뀌지 않는다.

    “정말 대단한 인내심이네.”

    레이아라가 팔짱을 꼈다. 리치의 재산 일부를 얻자고 그렇게까지 기다리다니. 물론 오펜바흐와 이곳은 상당히 떨어져 있기에, 어떻게 휴가를 낸다고 해도 이곳까지 오기는 힘드리라. 그렇다고 오크 기준으로 노년까지 그것 하나만 바라보다니.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묻자. 대장군 아울렉스. 그놈은 대체 얼마나 강하지?”

    “.......나도 잘 모른다. 직접 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고.”

    오크대장이 한숨을 쉬었다.

    “단지 그의 싸움을 본 감상으로는, 도저히 막을 수 없는 무언 가였다. 그놈은 단순한 생명체가 아니야. 그냥 자연재해. 지진과 싸워 이기려는 놈은 없지 않나.”

    “그렇군.”

    한마디로 더럽게 강하다. 정도로 요약이 되는 것 같다. 카르안은 오크대장에게 등을 돌렸다.

    “야, 약속대로 살려주는 거 맞지?”

    “미안.”

    콰직-

    카르안의 대답이 끝나기 무섭게, 거대한 쇳덩이가 오크대장의 몸을 찍어버렸다. 놈은 비명 지를 새도 없이 짓뭉개졌다.

    “꺄악!”

    갑작스러운 공격에 뮬리펜이 비명을 질렀다. 그녀는 당연히 카르안이 오크대장을 살려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착각. 오크대장은 순식간에 다진 고기가 되어버렸다. 뮬리펜은 잠시 몸을 떨다가, 카르안에게 소리쳤다.

    “분명 살려주신다고!”

    “그렇게 말하지 않으면 이놈이 순순히 다 불지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어차피 저는 이놈을 살려줄 생각이 없었어요. 이래죽으나 저래죽으나 똑같은데, 제 입장에서는 정보라도 얻는 편이 좋지 않겠습니까?”

    뮬리펜은 고개를 푹 숙였다. 주변에서 기사들과 병사들은 포획한 오크들을 줄로 묶고 있었다. 카라나리와 레이아라는 뮬리펜을 바라보고 있다.

    “저도, 그렇게 이용할 생각인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카르안은 진지한 목소리였다. 그리고 다리를 쪼그리고 앉아, 뮬리펜과 눈을 맞췄다. 카르안이 말했다.

    “이미 뮬리펜 씨는 들인 돈에 비해 효율이 바닥이라....... 그다지 이용할 만하지는.......”

    “이잇!”

    뮬리펜이 분한 듯 카르안을 째려봤지만, 카르안은 귀엽다는 듯 한번 웃어줄 뿐이었다. 그리고 몸을 일으켰다.

    “만약 리치가 무사했다면 다음 기회를 노리려했는데, 마침 부상을 당했다는군. 게다가 라이프베슬도 여기에 있고. 쓸 만한 보물들과 함께 말이야.”

    카르안의 입 꼬리가 올라갔다.

    “저 오크 놈은 우리와 리치의 어부지리를 노리려 했던 것 같은데. 그렇게는 안 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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