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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션으로 무한성장 (113)화 (113/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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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산 안에 피가 튀었다. 순식간에 날카로운 칼날이 몸을 훑고 지나간 기분. 뒤늦게 쓰라린 고통이 따라왔다. 병사들은 물론, 기휘해야 하는 기사까지 일순간 사고가 정지했다.

하지만 역시 기사는 기사. 모두가 당황했지만, 그는 빠르게 몸을 낮추었다. 방금 공격에 잘못했으면 목이 날아갈 뻔 했으니까.

“광부양반! 이게 어떻게 된 일이오!”

기사가 검을 뽑으며 소리쳤다. 일단 이곳을 가장 잘 아는 전문가에게 물어본 것이다. 하지만 기사는 제대로 된 대답을 들을 수 없었다.

광부는 뭐가 나오자마자 비명을 지르며 도망쳤기 때문이다. 아아아아아~ 하는 메아리가 광산 안을 서글프게 울렸다.

기사가 멍하니 사라지는 광부를 바라봤다.

“저놈 말을 믿은 내가 병신이지.......”

병사들과 함께 이너리움 광산으로 이동할 때였다. 일단 광산 근처에 가기 전까지는 별로 위험할 것도 없고, 영 심심하기도 했기에 광부는 지금까지 그가 광부 생활을 하며 겪었던 일을(허풍을 90퍼센트 정도 섞어서) 끝도 없이 풀어놨다.

용병이나 뱃사람이나 광부나, 험한 곳에서 일하는 사람의 공통점이라면 자신의 무용담 풀어놓기를 좋아한다는 것이다.

광부는 자신이 동료들과 습격한 고블린 떼와 맞서 싸운 일, 오크를 맨손으로 때려잡은 일. 거기에 곡괭이 하나로 오우거와 아슬아슬하게 싸웠던 일 등을 전부 이야기했다.

물론 습격한 고블린이 단 3마리였고(광부와 동료들은 10명이었다) 오크는 한쯤 죽어가던 놈을 때려잡은 것이고, 오우거는 한 대 맞고 의식을 잃었다가 눈을 떠보니 다른 기사들이 처리한 것이지만. 여기에 증거도 없고 증인도 없었다. 게다가 광부의 이야기 솜씨는 제법 그럴싸해서, 지루하던 기사도 흥미롭게 들었다.

전부 진짜라고 믿지는 않았다. 그래도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처럼 보이는 사나이가 그렇게 말하니 귀가 솔깃한 것도 사실이다. 적어도 경험 많고 터프한 광부로 착각할 만큼.

하지만 1초도 안돼서 도망가는 걸 보면 전부 거짓말인 것 같았다. 아니, 어차피 있어봐야 짐밖에 안 될 테니 현명한 선택일수도.

“으아악!”

병사들이 비명을 지른다. 그래도 나름대로 훈련받은 병사들답게, 광부처럼 도망치지는 않는다. 좋은 선택. 이런 곳에서 단체로 등을 보이는 것은, 죽여 달라고 광고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물러난다! 방진을 짜고 천천히 물러나!”

기사는 최대한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당황했지만, 당황한 모습을 보이지 말아야 하는 게 지휘관의 의무. 병사들도 허겁지겁 무기를 챙기고 서로를 등졌다. 곧 둥그런 형태가 완성되었다.

기사는 가장 중요하고 위험한 부분, 어두운 동굴 안쪽으로 경계하며 뒤로 물러났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광산 깊이 들어오지는 않았다는 점. 조금만 버티면 빠져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빛이 새어나오는 광산 밖으로 이동했다. 다행히 추가적인 공격은 없었다. 밖에서는 안의 소란을 눈치 챈 것일까. 동료 기사들과 병사들이 소리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대답하고 싶지만 그럴 여유가 없었다.

그와 병사들은 끝까지 자세를 유지하며, 무사히 광산 밖으로 도망치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백작령 안으로 후퇴한 것이다.

그들이 떠나가는 길을, 오크들이 비웃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2.

“갑작스러운 공격이라.”

“아마 마법적인 공격이었을 것입니다. 공격이 너무 가벼웠으니까.”

카르안이 생각에 빠졌다. 기사의 말은 상당히 중요했다. 일반적인 함정이라면 별 문제가 되지 않지만, 마법적인 함정은 그 무게가 다르다.

물리적인 무언가에 의해 발동하는 함정은, 해체 할 수도 있고 막기도 어렵지 않다. 기껏 해봐야 검게 칠한 화살 정도가 날아오는 정도. 그 위력도 약하다.

함정이라는 특성상 오랜 기간 동안 동굴에 박혀있어야 하는데, 그 긴 시간동안 팽팽한 석궁 같은 힘을 유지할 수는 없다. 당연히 시간이 지남에 따라 함정은 느슨해지고, 때로는 작동하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마법함정은 해제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기사가 암담하게 말했다. 그 말이 맞다. 마법함정은 일반적인 함정과 다르다. 침입자를 감지하면 공격 마법이 날아오는 구조.

그 덕에 시간과 관계없이 빠르고 강하다. 막기도 어렵고, 무엇보다 물리적으로 해제가 불가능하다. 그 함정을 설치한 마법사 이상의 마법사가 필요하다.

“그 비석에 뭐라고 적혀있는지는 모르겠고.”

“난생 처음 보는 언어였습니다. 적어도 제국어나 마족의 언어는 아닐 겁니다. 그렇다고 엘프의 언어라기에는.......”

기사는 제국어 말고도 약간의 마족어를 할 줄 알았다. 엘프의 언어는 할 수 없었지만, 몇 번 본 적이 있다. 적어도 다른 언어와 구분할 수 있을 정도는 된다.

광산 안에서 봤던 비석. 그곳에 적힌 언어는 그 3가지 중 어느 것도 아니었다.

“알겠다. 고생 많았고, 일단 치료부터 받아.”

“예.”

다행히 깊게 베이지는 않았지만, 몸에 피 칠을 하고 있는 사람을 계속 두기도 뭐했다. 카르안의 말이 떨어지자, 기사는 카르안의 방 밖을 나섰다.

“미치겠네. 왜 이렇게 되는 일이 없지.”

카르안은 투명한 유리잔을 손끝으로 톡톡 두드렸다. 고급스러운 잔답게, 맑은 소리가 울려 퍼졌다.

‘원래 계획과 좀 틀어졌어.’

원래는 얼른 광산을 개발을 지시한 후, 그 사이 ‘검술 복사기’를 만들 계획이었다. 카라나리의 검술을 빨리 몸에 새기고 싶었기 때문이다.

예드프리어에게 악마의 진주 값도 지불해야 하고. 또 조종 가능한 골렘이 늘었기에 골렘 수도 불려야 했다.

틈틈이 영지 관리를 하는 것은 보너스다. 전처럼 마약 제작에 힘을 쏟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좋지만. 백작 지휘에 어울리는 일이 생겨버렸다.

“일단 광산은 있어야해.”

카르안이 중얼거렸다. 그냥 백작 지휘를 이용해서, 골렘 장인들이 쓰는 이너리움을 구해볼까 생각도 했었다.

골렘의 장인들도 이너리움 골렘은 많이 다룰 수 없기에 소수만 채취하고, 그 이유로 많이 얻지는 못할 것이다. 그래도 이너리움 골렘 한 두기 정도는 충분히 만들 수 있겠지.

전에는 많은 양이 필요한 게 아니었다. 이너리움 골렘이라고 해서 온 몸이 이너리움 덩어리인 게 아니니까. 외골격은 아이언 골렘과 같은 합금. 이너리움은 내부 관절부분에 쓰인다. 그래서 철처럼 엄청난 양이 쓰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제는 많은 골렘을 양산해야 한다.’

악마의 진주를 얻었다. 그것은 전보다 압도적일 정도로 많은 골렘을 운용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리고 지금의 마나량을 계속 늘려간다면, 지금 이상의 골렘도 감당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다른 골렘 장인들에게서 구할 수 있는 이너리움 가지고는 한참 모자라다. 이너리움 골렘 수십 기를 만들 양. 대량의 이너리움이 필요하다.

안정적인 이너리움 채굴장소가 필요하다. 그리고 백작령 안에는 질 좋은 이너리움 광산이 있다. 그걸 캐낼 수만 있다면 최고의 상황이다.

“음.”

그나저나 기사가 봤다는 그 문자. 해석할 만한 사람이 있을까. 카르안은 종이 한 장을 펼쳤다. 백작령의 내부에 대해, 카르안 스스로 간단하게 정리한 종이다.

알페라츠 백작령

영지 내 인구 약 7천여 명

기사 45명, 전문 군인 약 250명 (비상시 농민들과 시민들 소집. 2천 명 정도의 병력 유지 가능)

마법사 길드, 연금술 길드가 있음. 그곳의 전문 마법사와 연금술사는 10명 정도. 협력관계.

백작가 내 마법사 2명(백마법사, 원소술사), 회계사 4명, 연금술사 없음

“대충 이렇군.”

대충 중요한 부분만 파악했다. 회계사의 수가 좀 많았는데, 원래 이 세계의 회계사라는 것은 재정관리 뿐 아니라 여러 잡학을 익혀, 귀족을 보조해 주기도 하였다. 그러니 조금 더 고용해야 영지 관리가 매끄러워질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언어에 능통한 사람이......”

카르안은 백작가 내의 마법사 명단을 확인했다. 한명은 백작 가족의 치료를 위한 백마법사, 한명은 영지 관리와 전쟁을 대비해 고용한 원소술사.

백작가에서 월급을 받는 고용인 들이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백작가 안에서 대기한다. 당장이라도 부를 수 있다. 카르안은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언어에 능통한지, 한번 물어볼 수도 있는 것이다.

카르안은 그렇게 생각하며 ‘백작가 내 마법사’ 옆에 뮬리펜을 추가했다. 아직은 미숙하지만, 곧 전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무의식적인 행동. 카르안은 그녀의 이름을 적어놓고, 뭔가 떠오른 듯한 곳을 응시했다.

“아, 등잔 밑이 어두웠네.”

카르안은 황금으로 장식된 펜을 책상 위에 던졌다. 고급스러운 펜은 검은 잉크를 토해내며 보관함 안에 정확히 들어갔다.

3.

그날 저녁. 카르안은 백작가의 지하실로 내려갔다. 본래 지하실이라는 곳이 그러하듯, 이 백작가의 지하실도 좋은 의미로 사용되지는 않았다.

깊은 지하는 비명도 진실도 전부 묻어버리는, 은밀한 공간이었다. 귀족들은 자신에게 저항한 자들을 지하에 가두거나 고문했다. 대부분을 두 가지 모두를 병행했지만.

알페라츠 백작령도 마찬가지였다. 지하로 내려갈수록, 습한 기운이 피부를 축축하게 만들었다. 횃불을 든 카르안. 그가 지하실에 도착하자 비릿한 피냄새가 확 풍겼다.

“음.”

카르안은 지하실 구석을 향해 걸어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무로 된 문 하나가 나왔다. 음침한 피냄새의 근원도 이곳이었다. 보통 사람이 본다면 기겁하며 물러날 만큼 진득한 혈향(血香). 카르안은 한숨을 깊게 내쉰 뒤, 두꺼운 나무문을 두드렸다.

똑똑-

대답은 없었다. 카르안은 망설이지 않고 문을 열었다.

끼이익 하는 불길한 소리와 함께 깨끗한 방 하나가 나왔다. 그리고 그 방 한 가운데, 누군가 주저앉아 있었다.

“아아......”

괴로운 듯한 신음. 이제 은발이 된 뮬리펜이, 피투성이가 된 채로 앉아있다. 그녀의 눈동자가 카르안의 눈과 마주쳤다. 그 순간.

뮬리펜이 붉은 피를 토했다. 한눈에 봐도 정상이 아니었다. 그녀는 괴로운 듯 콜록거리며 기침을 했다. 카르안도 그 모습은 안쓰럽게 바라보았다.

“저, 저는......”

“말하시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카르안이 암담한 눈으로 소녀를 바라봤다. 그리고 작게 중얼거렸다.

“피 좀 몰래 먹지 말라니까........”

4.

뮬리펜이 물수건으로 입과 바닥을 닦았다. 보기만 해도 끔찍할 정도의 양을 뱉어낸지라, 손수건 정도로는 감당이 안 된다.

“뱀파이어가 피를 먹는 것은 부끄러운 게 아닙니다.”“그건 아는데에........”

뮬리펜이 우물거리며 말했다. 그건 자신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 전에 한 말이 떠올랐다.

“내, 내가 이런걸 먹을 줄 알고!”

카르안이 준비해준 피를 보자마자 뮬리펜이 한 말이다. 그래도 (전직) 성녀인데, 비릿한 사람의 피를 마시는 짓을 할 수 없었다.

그녀의 단식투쟁은 일주일을 넘어 이주 가깝게 지속되었다. 실로 대단한 정신력. 뱀파이어에게 피 없이 살라고 하는 것은, 인간에게 물 없이 살라고 하는 것과 똑같았다.

뱀파이어도 식사 없이는 살 수 있어도, 피 없이는 살 수 없다. 사실 오펜바흐에서 뱀파이어가 된 뒤 돌아온 뮬리펜의 안색이 안 좋았던 것은, 심적인 우울함 이런 게 아니라 그냥 피를 못 먹어서 그런 거였다.

피 대신 식사를 많이 해보기도 하고, 비슷한 것을 먹기도 하였다. 하지만 배와 허벅지가 조금 더 통통해진 것 외에는 별 효과가 없었다.

결국 그녀가 항복 선언을 한 것은 피를 안마신지 2주쯤 지나서. 파계 수녀는 한 달쯤 사막을 헤매다 오아시스를 찾은 여행자처럼, 피를 벌컥벌컥 마셨다.

그 뒤로도 지금처럼 피를 가져다주면, 어느새 전부 비워져 있었다. 그래도 피를 마시는 모습이 부끄러웠는지, 다른 사람 앞에서는 마시지 않았지만. 지금처럼 걸리면 한바탕 피바람이 불었다.

사태가 어느 정도 정리되자, 뮬리펜이 찌릿하고 카르안을 노려봤다.

“무슨 일로 여기까지 오신 거예요.”

“뮬리펜씨. 혹시 몇 가지 언어를 알고 계십니까.”

카르안은 백작가 안에 있던 마법사들에게도 같은 질문을 던졌다. 몇 개의 언어를 알고 있느냐.

답변은 실망스러웠다. 백마법사는 마법 공부를 위해 엘프의 언어를 알고 있었으나, 그 외에는 몰랐다.

반면 원소술사는 공격적인 마법을 위해 마족의 언어를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외에 다른 언어까지는 알지 못한다.

기사는 그 언어가 제국어도, 마족어도, 그렇다고 엘프어도 아니라고 하였다. 마법사들은 이번 일에 큰 도움이 안 된다.

카르안은 뮬리펜에게 그 비석에 대해서까지 전부 말해주었다. 이야기를 전부 들은 뮬리펜이 잠시 턱을 괴더니 말했다.

“제가…….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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