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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션으로 무한성장 (112)화 (112/124)

<-- 이너리움 광산 -->

전대 백작, 모룬 백작의 장례식은 빠르게 끝났다. 알펜 왕국에서 귀족의 장례식은 지루할 만큼 길게 늘어지지만, 이번 경우는 예외였다. 가문을 이어받은 카르안이 간단하게 말하고 명했으니까.

딱히 반발은 없었다. 카르안 백작은 귀족출신이 아니라 품위가 없다. 혹은 가식이 없기에 편하지 않느냐 같은 이야기가 뒤에서 들려오긴 했지만. 결국 그것으로 끝. 평소 모룬 백작이 보여준 인품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2일간 이어진 장례식이 끝났다. 카르안은 그를 양지바른 곳에 묻어줬다. 이런 거대한 성과 영지를 물려줬는데 그 정도는 해 줄 수 있었다. 덤으로 예쁘장한 비석도 세워줬다.

“이거 참 어렵구나.”

카르안이 영지에 대한 각종 서류를 읽고, 영지 전체를 시찰했다. 딱히 특산물이라고 할 것은 없고, 바다랑 떨어져있어 소금이 귀하다. 다만 장거리 텔레포트 덕분인지, 말도 안 되는 가격은 아니다. 주변에는 크고 작은 강이 있어 물을 부족하지 않다.

대부분의 영지가 그렇듯 알페라츠 백작령도 농업을 중심으로 발전해왔다. 씨만 뿌리면 작물이 쑥쑥 자라는 땅이라서가 발전한 게 아니라, 그 외에 딱히 뭘 할 만한 게 없기 때문이다.

쉽게 망할만한 영지는 아니다. 그렇다고 쑥쑥 발전시킬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무난한 영지. 카르안은 커로스를 불렀다.

커로스는 단숨에 달려왔다. 이제 전대 백작의 장례식이 끝나고, 카르안의 명을 받아 수도로 떠나려던 참이었다.

“부르셨습니까!”

“별건 아니고, 수도 갈 때 말이야. 회계사 말고 고용할 사람이 좀 더 필요하다.”

카르안의 계획은 간단했다. 일단 작물이 쑥쑥 자라면 시민들이 배부를 것이고, 수출할 물건이 있으면 백작가에 금화가 차오르지 않겠는가. 그 두 가지를 해결하려면 전문가가 필요했다.

“농업 전문가와 지질 관련 전문가. 몇 명 구해와봐.”

일단 비료라도 좀 개발하고, 쓸만한 광산이 있으면 좀 파헤쳐봐야 하지 않겠는가. 지금까지 서류를 보면, 광산에 관해서 주변 탐사가 전혀 되어있지 않았다.

혹시 철 같은 돈 되는 금속이 있는 광산이라도 개발한다면, 꽤나 큰돈을 만질 수 있을 것이다.하지만 비료에 대한 커로스의 반응은 부정적이었다.

“비료는 그냥 똥 퍼다가 뿌리면 그만 아닙니까? 쑥쑥 잘 자라던데.”

그렇게 말하던 커로스가 서둘러 입을 닫았다. 백작 앞에서 너무 천박한 말을 하고 말했다. 하지만 카르안은 별로 신경 쓰지 않는 표정.

“그러니까 더 좋은 비료를 개발해야지.”

“죄송하지만, 그건 조금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도 평민 출신. 주변에서 농사짓는 것을 숱하게 봐왔다. 그리고 백작가의 회계사가 되었을 때, 카르안과 같은 생각을 했었다. 만약 새로운 비료를 개발하면 어떨까.

하지만 그게 생각처럼 쉽지가 않았다. 일단 비료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사람도 없다. 지식인인 마법사들도 그런 곳에는 신경을 쓰지 않았다.

정 안되면 직접 전문가를 육성해 키우거나 마법사를 고용할 수도 있지만, 연구라는 게 항상 커다란 예산이 드는 법이다. 성공할지 안할지도 모르고. 거기에 엄청난 시간이 걸리는 것은 덤이었다.

커로스의 설명에 카르안도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나 했는데, 이렇게 농업이 발달되지 않았을 줄은 몰랐다.

‘마법 때문인가.’

마법. 양날의 검이었다. 마법사들이 가뭄일 때 비구름을 부르고, 홍수때 물길을 쉽게 만들어 주지만 오히려 그게 농업의 발전을 막았다.

어지간하면 농사가 망하지 않기 때문이다. 덕분에 식량 생산에도 큰 문제가 없다. 그렇기에, 거기서 더 나아가려 하지 않는 것이다.

“하긴. 연구가 긴 시간을 잡아먹는다는 것은 맞는 말이지. 그래도 지질 쪽은?”

“그쪽은 제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다행이 광산을 찾는 것은 마법으로도 힘든 일. 거기에 큰돈도 되기 때문에, 국가에서 전문가를 양산하고 있었다.

현장에서 뛰는 험한 일이기에 대부분 학비를 댈 여력이 있는 평민들이 간다. 그들의 몸값은 꽤나 비쌌지만 그것은 평민 기준이고, 카르안 입장에서는 조금 비싼 사병 1명 정도. 신경 쓸 것조차 아니다.

“좋아. 그러면 잘 다녀오게. 맛있는 것도 사먹고.”

카르안은 커로스에게 금화 네 개를 선물로 주었다. 커로스의 눈이 커졌다. 한 달 봉급 수준의 돈을 장난처럼 주다니.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먼 길 떠나는데. 요긴하게 쓰고 부족하면 더 말해.”

“아닙니다. 하하하하.......”

커로스는 간신배마냥 손을 싹싹 빌며 물러났다. 돈 앞에서는 제법 의연하기로 다짐했는데, 금화가 몇 개씩 떨어지니 반사적으로 몸이 움직인다.

‘혹시 이거, 괜찮은 상황 아닐까.’

커로스가 생각했다. 실수해도 화도 잘 안내고, 충심에서 나온 말은 전부 수용해준다. 거기에 부하를 이렇게나 사랑해주지 않는가. 흑룡회 부 지부장이라고 해서 조금 불편했는데, 약에 취해 몸도 잘 못 가누던 모룬 백작보다 훨씬 훌륭했다.

‘나름 영지도 발전시키려는 것 같고.’

비료 개발은 조금 오버였어도 광산 개척은 쓸만한 아이디어. 운 좋게 금광이라도 찾는다면 그야 말로 대박이었다. 그 규모에 따라 영지에 금칠을 하게 될지도 모르는 것이다. 한번 알아볼 만한 가치가 충분했다.

그런 생각을 하며 커로스가 마법사 길드를 향했다. 카르안을 대신할 회계사들, 거기에 유능한 지질 전문가까지. 할 일이 많았다.

2.

“역시 이 일은 잘 안 맞아.”

카르안이 옆에 컵에 냉수를 담아 마셨다. 가능하면 이 일도 전부 영지 관리 전문가에게 맡기고 싶었지만, 당연히 그런 직업이 있을 리 없었다. 영지를 지배하는 것은 오직 귀족에게만 허락된 일이니까.

그래도 머리 좋은 비서와 참모진을 만든다면, 영지를 발전시키는 것도 어렵지 않을 것이다. 어차피 머리 쥐나게 고생은 그들이 할 것이고. 카르안은 커로스가 떠난 문을 쳐다봤다.

“슬슬 올 때가 됐는데.”

안락한 집무실, 편안한 의자가 부드럽게 몸을 감싼다. 카르안이 기다리는 것은 그가 정찰 보낸 기사.

장례가 시작하기도 전에, 전문가인 광부와 기사들, 그리고 소수의 사병으로 이루어진 병력을 정찰 보냈다. 바로 몬스터가 가득한 이너리움 광산을 향해서.

깊게 갈 것도 아니다. 지금 어느 정도 규모의 몬스터가 있는지, 그것만 확인하라고 했다. 그에 따라서 병력을 재편성해야 하니까.

광산이 멀리 떨어진 곳도 아니었기에, 지금쯤 돌아올 때가 되었다. 안전하고 빠르게 다녀오라고 전원에게 말까지 태웠다.

얼마나 지났을까, 카르안의 예상대로 기사가 벌컥 들어왔다. 카르안이 감았던 눈을 떴다.

거기에는 피투성이가 된 기사가 있었다.

“송구하옵니다. 백작님!”

기사가 한쪽 무릎을 꿇었다. 카르안은 어안이 벙벙해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무슨 전쟁이라도 한바탕 치룬 몰골이다.

“아니 대체 무슨 일인가?”

“저희가 당했습니다!”

3.

“뭐?”

기사가 면목 없다는 얼굴로 말했다. 진심으로 죄송스러운 표정. 아직은 어색했지만, 그들은 카르안을 후계자로 인정하고 있다. 그들 또한 평민이었으니까.

가끔 귀족출신 기사들도 있었지만, 대부분 기사들은 평민 출신이다. 그리고 알페라츠 백작령의 기사들도 전부 평민들.

귀족 출신 기사들은 대부분 수도, 왕궁 근처에서 일한다. 인맥을 쌓기 편하기 때문이다. 혹은 국경 근처 변경백의 밑으로 들어가는데, 그들은 공을 세우는데 욕심이 많은 자들이었다.

아무튼 그렇게 좋은 자리를 찾아가는 것이다. 이런 시골 변두리 영지에 일부로 지원할 귀족 기사는 없다.

결국 그들이나 카르안이나 평민 출신 아닌가. 이탈한 5명의 기사를 제외하면, 그들은 제법 그 변화를 유연하게 받아들였다.

카르안은 나름대로 충성스러운 기사에게 다가갔다.

“그럼 사상자는 없나.”

“병사 4명이 부상을 당했습니다. 다행히 전사자는 없습니다.”

“광부는 다치지 않았고?”

“일이 터지자마자 가장 먼저 도망갔습니다.”

카르안은 지끈거리는 이마를 잡았다.

“.......그래. 장수하겠군.”

“처, 처음부터 비전투원 이었으니........”

“아무튼 아무도 안 죽어서 다행이야. 크게 다친 병사에게는 A급 회복포션을 지급해.”

“아, 알겠습니다.”

기사가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였다. 기사도 아니고, 다친 사병을 제대로 치료해주는 귀족은 많지 않았다. 싸구려 포션이나 주면 감지덕지고, 그마저도 아까워 대충 알아서 해결하라는 귀족도 넘쳐난다.

하지만 카르안은 흔쾌히 A급 회복포션을 하사했다. 실로 자비로운 백작 아닌가. 작은 행동이지만, 그런 작은 행동까지 신경 쓰는 게 진정한 군주인 것이다. 기사의 충성심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어차피 남아 도는 거.’

정작 카르안은 별 생각 없었지만 말이다. 확실히 A급 회복포션은 굉장한 물건이지만, 카르안에게는 언제든 만들 수 있는 물건에 불과하다.

무르짐의 특수한 연금술 덕분에 재료비도 얼마 들지 않는다. 얼마든지 만들 수 있는 것을 굳이 아낄 필요도 없다. 거기에 이 행동으로 작은 충성심까지 얻는다면 일석이조.

“아무튼 무슨 일이야. 몬스터들에게 습격이라도 당한건가.”

“아닙니다. 오히려 몬스터들은 저희에게 호의적이었습니다.”

“몬스터가 우리에게 호의적이었다고?”

몬스터. 야생에서 살아가는 마물이었다. 대부분 오크나 고블린처럼 지능이 낮은 놈들. 동물이나 지나가는 사람들 즐겨 사냥하며 살아간다.

마족이 인간에게 호의적일 수는 있어도, 몬스터는 그냥 짐승에 불과했다. 결국 저 기사가 정신이 나갔거나, 혹은 굉장히 드문 일을 당했거나. 둘 중 하나였다.

“자세히 말해봐.”

“놈들은 제국어를 할 수 있는 자들이었습니다. 저희를 보자마자, 잠시 경계했지만 곧 백기를 들더군요. 그리고 저항 없이 길을 열어주었습니다.”

“똑똑한 놈들이군.”

카르안은 이곳, 아케르나라에 온 날이 떠올랐다. 그때 약초를 캐러 가던 그를 습격한 것도 그런 똘똘한 오크들이었다. 그 오크는 제국어를 유창하게 해냈고, 카라나리의 검에 의해 전부 특급 비료가 되었다.

“겁먹고 길을 열어준 것일 수도 있지. 그런데 호의적이었다니, 고라니 고기라도 나눠줬어?”

“그건 아닙니다만. 저희가 이너리움 광산을 조사하는데 굉장히 적극적으로 도와주었습니다. 편히 들어갈 수 있도록 횃불까지 나눠줄 정도로.......”

“으흠.”

카르안은 머리를 굴렸다. 몬스터들이 협조적으로 나왔다라. 당연히 의심부터 하게 된다.

‘설마 광산에 몰아넣고 기습을.........’

카르안은 거기까지만 생각했다. 만약 정말 그랬으면 기사는 처음부터 뒤통수를 맞았다고 하지, 호의적이었다고는 안했을 것이다.

“그러면 병사들은 뭐에 당한건가.”

“문제는 광산 안쪽이었습니다. 그 안에 들어가자마자......”

기사는 자신이 겪은 일을 상세히 말해주었다.

몬스터의 종류는 오크와 고블린들. 비록 수가 많지는 않았지만, 전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그래도 오우거가 나온다는 소문은 거짓인 것 같았다. 그 거대한 괴물은 보이지 않았다.

원래 몬스터의 규모만 파악할 생각이었지만, 이렇게 된 거 그냥 안쪽까지 한번 살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전문가라 할 수 있는 광부도 있었고.

한때 활발했던 광산은, 이제 거미줄만 가득했다. 그 어두운 구멍 안으로 들어가자 후덥지근한 공기가 사라지고, 서늘한 느낌이 들었다.

“저희는 소수만 추려서 들어갔습니다. 몬스터를 믿지 못했으니까.”

기사도 바보가 아니었다. 이런 광산에 갇히게 되면, 죽은 목숨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혹시 몬스터들이 배신하고 공격했을 때를 대비했다. 대부분의 병력을 밖에 놔두고, 자신과 병사 4명만 골라서 안쪽으로 들어갔다.

“광부는 광산이 튼튼하다면서, 무너질 일은 없겠다고 했습니다.”

비록 오래됐지만, 광산은 더 없이 튼튼했다. 기사는 신기한 듯 벽을 툭툭 치면서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 어두웠지만, 오크들이 건네준 횃불 덕에 시야는 문제없었다.

“그때였습니다. 저희 앞에 무슨 거대한 비석이 나타났습니다. 검고 커다란 비석이었습니다. 마치 검은색 대리석처럼. 그 위에는 알 수 없는 언어로 뭐가 적혀있었습니다.”

그때 기사는, 별 생각 없이 비석에 다가갔다. 뭐라고 적혀있었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수십 개의 검은 칼날이 그들을 덮쳤다. 비명을 지를 새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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