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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션으로 무한성장 (111)화 (111/124)

<-- 어둡지만, 그래도, 그렇기에 -->

“개 같은 새끼.”

붉은 입술에서 천박한 욕설이 흘러나온다. 달각 거리는 마차 안. 루베아이라가 신경질적으로 비녀를 뽑았다. 붉은 머리가 아래로 축 늘어졌다.

그녀는 죽은 백작을 떠올렸다. 슬프지는 않다. 눈물을 흘리기에는 그다지 훌륭한 인물이 아니었으므로. 단지 아쉬울 뿐이다.

루베아이라는 주머니 안을 살펴봤다. 금화 서너 개가 마차의 흔들림에 맞춰 작게 춤추고 있다. 결국 늙은이에게 몸을 팔고 아양일 떨어서 얻은 것은 이게 전부.

아니, 이것도 카르안이 그녀에게 동정어린 눈으로 던져준 동전이다. 결국 그녀가 백작에게 얻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어디 불편하신 곳이라도?”

그녀의 상념을 깨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유리처럼 맑은 목소리. 루베아이라는 소리의 근원지로 시선을 돌렸다. 앞에서 말을 몰던 카라나리가 루베아이라를 보고 있다. 그녀의 우울한 표정을 눈치 챈 것일까.

“별일 아니에요.”

루베아이라는 반사적으로 웃음을 지었다. 우울한 기분이었지만, 그것과 별개로 습관적인 미소가 입가에 걸린다. 카라나리가 한손으로 고삐를 쥔 채 말했다.

거친 길을 가는지, 계속 마차가 흔들렸기 때문이다.

“길이 안 좋아서 조금 흔들거릴 겁니다.”

반사적으로 미소를 짓는 루베아이라와 다르게, 카라나리는 항상 무표정. 웃는 얼굴로 말했는데, 저런 얼굴로 말하면 듣는 입장에서는 영 껄끄러울 것이다.

하지만 루베아이라는 그렇지 않았다. 카라나리가 건네준 친절 때문이다.

근처 도시로의 장거리 텔레포트. 그 비용이 부담되는 루베아이라에게 마차를 태워주었다. 루베아이라가 당황해서 거절하려 했지만, 카라나리는 자기도 근처 도시로 가봐야 한다면서 그녀와 함께 움직여 주었다.

비록 마차도 둘이 타기도 힘들만큼 작고 허름했지만, 루베아이라는 그런 것에 신경 쓰지 않았다. 그녀도 평민 출신. 편하게 살아온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수도에서 오셨다고 들었습니다. 저는 가장 가까운 루오스 백작령까지만 가는데, 괜찮겠습니까?”

“예. 다시 수도에 갈 생각은 없어요.”

루베아이라가 고개를 저었다. 붉은 머리가 따라서 찰랑거린다. 그녀는 작은 마차 밖을 바라봤다. 이제 산길에 들어섰는지, 울창한 나무숲이 보인다.

카라나리가 이상한 듯 말했다.

“하지만 수도 아르페리움이 더 지낼 만 할 텐데요. 거기에서 지내다 오신 분이면.”

카라나리의 말대로, 루베아이라는 수도에서 일하다 알페라츠 백작령까지 온 것이다. 지금까지 수도에서 일하지 않았는가. 그곳에 정착했던 만큼, 뭘 하든 수도에서 하는 편이 익숙하리라.

유흥업에 관련해서도 아르페리움이 다른 영지보다 훨씬 발달했다. 부유한 귀족들이 전부 모여 있기에 돈 벌기도 좋다. 당장 알페라츠 백작령의 전 주인, 모룬 백작도 유흥을 즐기러 수도까지 간 것 아닌가.

그런 이유로 아름다운 아가씨들은 아르페리움에서 일하기를 원했고, 루베아이라 정도라면 수도에서도 먹힐만한 미모였다.

그런데 그런 메리트를 전부 버리고 작은 백작령으로 가다니.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카라나리의 물음에, 루베아이라는 잠시 고민했다.

“거기서 백날 일 해봐야 아무것도 남지 않으니까요.”

“........?”

“그곳 사람들에게 찍혔거든.”

루베아이라의 삶은 카라나리 못지않게 불행했다. 태어나자마자 버려졌고, 유년기 전부를 허름한 고아원에서 보냈다. 그마저도 12살 이상이 되면 나와야 했다. 재정적인 이유. 고아원에 대한 국가의 지원이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카라나리는 타고난 검술, 빼어난 미모가 있었다. 반면 루베아이라는 아름다운 외모 외에는 가진 게 없었다. 나이도 어린데 타고난 체력이 약해서 고된 일을 견디지 못했다.

그나마 그녀가 할 수 있던 일은 술집에서 술을 나르는 것. 역시 힘들기는 마찬가지였으나, 작고 아름다운 소녀가 열심히 일하는 모습은 사람들의 동정을 사기에 충분했다.

거기에 사람들은 술집에 들어가면, 알코올 때문에 주머니를 조이는 끈이 헐렁해진다. 루베아이라는 제법 괜찮은 돈을 팁으로 받을 수 있었다.

나이가 너무 어려서 (몇몇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사람들이 몸에 손을 대지 않은 것도 행운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점점 나이를 먹을수록, 그런 사람들의 시선도 변해갔다. 조금 더 깊고 어두운 쪽으로,

좀 더 많은 돈을 벌고 싶지 않니?

그녀가 성인이 되던 날. 한 남자가 한 말이었다. 루베아이라는 생각했다. 팁을 많이 받아봐야 어차피 술집 손님은 모두 서민들. 죽기 살기로 일 해봐야, 먹고 살 만은 해도 큰돈이 모이지는 않는다.

결국 루베아이라는 어리석은 남자와 어리석은 계약을 맺었다. 터무니없는 불공정 계약을. 닳고 닳은 범죄조직의 브로커에게, 소녀는 아주 쉬운 먹잇감.

미소로 위장한 승냥이에게, 루베아이라는 목이 물려버렸다. 그리고 피도 눈물도 없는 범죄 조직에서 그녀에게 고작 술집 종업원이나 시켰을 리는 없었다.

그 덕분에, 루베아이라는 범죄조직에 대해 끔찍한 증오를 가지게 되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에게는 친절한 척이라도 하지만, 도저히 조직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분노를 참을 수가 없었다.

“아무튼 수도로는 안가.”

루베아이라는 미소를 지우지 않은 채로 말했다. 그녀의 맨 얼굴을 숨기는 가면. 숙련된 검사가 칼날이 날아오면 반사적으로 방어하듯, 그녀는 자신의 진심이 새어나갈 것 같으면 자기도 모르기 웃음을 지었다.

“하아.”

기껏 몸을 팔아 번 돈은 전부 조직에 빼앗기고, 남은 돈을 금화 몇 장. 게다가 그녀는 알페라츠 백작령의 주인, 모룬 백작을 유혹했을 때부터 조직 몰래 탈출했던 것이다. 이대로 돌아가 봐야 끔찍한 꼴을 당하겠지.

물론 죽지는 않을 것이다. 아직 그녀는 아름다우니까. 다만, 죽음보다 더한 꼴을 당할 것이다....... 숨어있던 공포가 스멀스멀 기어 올라온다.

“여기.”

카라나리가 루베아이라에게 작은 주머니를 던져주었다. 루베아이라는 영문도 모른 체 그 주머니를 받았다. 물건을 던져주는 것은 무례해 보였지만, 지금 마부석에서 말을 몰고 있는 카라나리가 정중히 양 손으로 건네줄 수는 없는 것이다.

“이게 뭐죠?”

“필요할 것 같아서.”

마약. 주머니 안에는 고체로 된 알약이 들어있었다. 눈처럼 하얗지만, 그 안에는 불길한 무언가가 내포되어 있는.

“아닙니까?”

카라나리가 사무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루베아이라는 문득 자신의 몸이 떨리고 있다는 것을 눈치 챘다.

조직에서는 루베아이라가 도망치지 못하도록, 반항심을 꺾기 위해서 마약에 중독 시켰다. 그것도 아주 의존성 강한 마약을. 덕분에 루베아이라는 일정 기간 동안 약을 맞지 않으면 끔찍한 금단증상이 찾아왔다.

손이 떨리는 것은 그 예비신호. 끊으려고 노력도 해 봤지만, 그게 가능했으면 세상에 마약 중독자 따위는 없었을 것이다. 다행이 모룬백작은 마약에 관대했다. 아니, 오히려 약에 취해 지냈다. 덕분에 금단증상 걱정 없이 지낼 수 있었다.

“고마워요.”

루베아이라는 조심스럽게 알약을 반 토막 낸 뒤, 물도 없이 입으로 삼켰다. 울적한 쾌락이 몸에 퍼지기 시작했다.

“아아.”

“제법 비싼 물건입니다. 카르안 백작님께서 직접 만드신 물건이니까.”

“카르안.......”

루베아이라가 중얼거렸다. 뜻을 이해했다기보다는, 앵무새가 사람의 말을 따라 하는 것처럼 반사적인 것이었다. 정신이 점점 멍해졌기 때문이다.

“그래. 나는 그 사람 때문에....... 내 재산을.......”

“그래서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복수해야지. 귀족들과 인연을 만든 다음........”

루베아이라의 눈에 초점이 사라졌다. 뇌와 입 사이의 뭔가가 사라진 것처럼, 생각이 곧장 입을 통해 나와 버린다. 그래서 더욱 마음에 들었다. 마치 몸속에 쌓아둔 더러운 것을 빼내는 것처럼. 개운한 기분이 들었다.

달칵-

“그렇군요.”

마차가 자리에 멈춰 섰다. 인적 없는 산길 한중간. 여름의 풀벌레들이 발악하듯 소리치고 있었다.

왜 마차가 멈춰 섰는가. 뭔가 위화감을 느껴야 정상이지만, 루베아이라의 사고는 이미 정상이 아니었다. 고밀도로 압축된 마약은 여자의 정신을 반쯤 부숴놓기 충분했다.

“제가 당신에게 준 약은 원래 자백제로 쓰이던 물건입니다. 비록 얼마 안가 쾌락을 주기 위한 용도로 바뀌었지만요.”

자백제로써의 효과는 뛰어났지만, 정보의 정밀도가 너무 떨어졌다. 사로잡은 적 병사에게 적진의 위치를 불게 만들어야 하는데, 마약에 취하면 깨기 전까지는 그 사로잡힌 병사가 자기 집도 잊어버렸기 때문.

다만 굵직한 정보는 정확도 있게 술술 뱉어낸다. 지금처럼 말이다. 루베아이라의 속뜻을 파악하자, 카라나리는 장검을 뽑았다.

“부디 다음 생에는 행복하시길.”

“헤?”

후덥지근한 여름의 숲에서, 홀로 서늘하게 빛나는 칼날. 루베아이라는 무의식적으로 뭔가 이상함을 느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바람이 한번 분 것 같았다. 주변의 꽃들이 잠깐 휘청였다. 카라나리의 검은 다시 검집 속으로 들어갔다. 피는 묻어있지 않았다.

툭.

루베아이라의 머리가 마차 위로 떨어졌다. 뒤늦게 없어진 머리를 대신해서 피가 솟아올랐다. 언 듯 보면 가벼워 보였지만, 그 정체는 카라나리가 온 힘을 다한 일격. 맨 정신인 사람이 당해도, 자신이 죽은지도 모를 만큼 빠르다.

“당신은 너무 위험합니다. 모룬 백작을 며칠 만에 유혹했고, 다른 귀족이라고 그렇지 않으라는 법은 없어요.”

루베아이라의 재능. 타고난 미모와 그것을 활용하는 능력이다. 그 두 가지는 너무 위험했다. 단순한 무력보다는, 그런 정치적으로 응용 가능한 힘이 가장 무서운 법이다.

지금 카르안은 막 백작의 자리에 오른, 어떻게 보면 애송이에 불과했다. 게다가 모룬 백작과 피로 이어진 관계도 아니다. 그 입지가 외줄타기처럼 불안정하다.

그런데 다른 귀족들에게 공격을 당한다면. 당연히 좋게 끝날 리가 없다. 적어도 카르안이 입지를 갖추기 전까지는, 적을 만들면 안 된다.

카라나리는 회계사 커로스에게 이야기를 전부 들었다. 그리고 루베아이라가 카르안에게 굉장한 증오를 품고 있다는 것도 눈치 챘다. 그래서 한번 떠봤고, 그녀의 예상은 적중했다.

“당신을 죽이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거기까지 말한 카라나리는 말을 멈추었다. 이미 루베아이라는 죽어있다. 그녀에게 무슨 말을 하더라도, 그건 의미 없는 행위. 애초부터 죽여 놓고 변명을 하는 것 자체가 잘못되었다.

카라나리는 타고 있던 말에 다가갔다. 말안장에는 커다란 주머니가 있었다. 언 듯 보면 물주머니처럼 보였지만, 뚜껑을 열자 강렬한 휘발성 향이 올라온다.

발화성 강한 기름. 카라나리는 말과 마차를 분리한 후, 마차 위, 특히 루베아이라의 시체 위에 집중적으로 기름을 부었다.

카라나리의 손에 불이 붙었다. 화(火)속성 무공을 일정 수준 이상 배웠기에, 그녀는 의지만으로도 불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안녕히.”

카라나리가 손가락 끝을 마차에 댔다. 나무로 된 마차는 순식간에 거대한 장작으로 변했고, 기름 덕분에 금세 타오르기 시작했다.

히히히힝-

갑작스러운 화제에 말이 펄쩍 뛰어올랐다. 하지만 카라나리가 갈기를 쓰다듬어주자 천천히 진정했다.

“돌아갈까.”

카라나리는 천천히 고삐를 당겼다. 여기는 백작령에서 한참 떨어진 숲 한중간. 근처의 도시로 가는 길도 아니었다.

마차가 비정상적으로 흔들린 것도 그런 이유였다. 만약 사람들이 자주 가는 길이었으면, 땅이 이정도로 험하지는 않았겠지.

목격자도 없고, 설령 나중에 누가 찾는다고 해도 타버린 시체를 알아볼 수 없다.

카라나리는 말을 고삐를 당겼다. 무언가 에게 분노한 듯 타오르는 마차를 뒤로하고.

2.

“무슨 일이라도 있었어?”

백작가에 돌아가자, 카르안이 카라나리를 맞아주었다. 그는 지금쯤 루베아이라가 수도로 떠난 줄 알겠지. 물론 마법사 길드에 가서 자세히 물어본다면, 루베아이라가 장거리 텔레포트를 사용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겠지만.

애초부터 루베아이라는 카르안이 그 정도로 신경 쓸 사람이 아니다. 안 그래도 카르안은 신경 쓸 것이 한둘이 아닌데, 루베아이라에 관한 일은 벌써 잊었겠지. 카라나리가 깊게 고개를 숙였다.

“잠깐 집에 볼 일이 있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여동생이 아프기라도 한 거야?”

카르안이 걱정스럽게 말했다. 그 상냥한 질문에, 카라나리는 살짝 눈을 감았다.

“그런 일은 아닙니다. 그냥 개인적인 용무라서.”

“음. 혹시 도움이 필요하면 망설이지 말고 말해. 어지간하면 다 도와줄 테니까.”

카라나리의 심장이 두근거렸다. 수십의 적과 싸울 때도, 수백의 마족과 대치할 때도 이정도로 떨리지는 않았는데.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를 억누른채 겨우 말했다.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게 사랑인지는 모르겠다. 설령 사랑이라 하더라도 이런 방식이 정상적인지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뒤틀린 채로도 좋다. 이미 피와 죄를 몸에 뒤집어쓴 그녀에게 허락된 방법은, 오직 이것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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