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포션으로 무한성장 (109)화 (109/124)
  • <-- 길들일 수 없는 짐승 -->

    “계, 계약이 완료되었습니다.”

    마법사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의 앞에는 살기등등한 사이프카르와 별일 없다는 표정의 카르안. 두 사람이 앉아있다.

    마법사는 타라카르의 계약서를 꼼꼼히 확인했다. 흑룡회의 지부장과 부 지부장(마법사는 아직 카르안이 백작이라는 사실을 모른다). 두 사람이 그에게 계약을 의뢰한 것이다.

    ‘왜 하필 내가 있을 때!’

    마법사는 속으로 울부짖었다. 이런 거물들을 상대하는데, 계약서에 실수라도 했다가는......... 목이 달아나도 이상하지 않다. 그는 자신의 모든 힘을 다해 계약서를 완성시켰다.

    “좋아.”

    사이프카르가 내용을 확인했다. 계약 자체는 길게 하지 않았다. 그저 카르안과 사이프카르가 의도적으로 서로를 공격하지 않을 것. 먼저 공격하는 자는 심장과 머리가 모두 파괴된다.

    ‘완벽하지는 않군.’

    카르안이 속으로 생각했다. 계약 내용은 오히려 카르안이 좋은 편이다. 아직 카르안이 사이프카르를 이길 수는 없으니까. 중요한 것은 계약 위반 시 얻는 페널티.

    카르안은 심장과 머리. 둘 중 하나만 파괴 되도 죽는다. 하지만 사이프카르는 그 둘이 동시에 폭발한다고 해도, 잔해만 남아있다면 회복이 가능하다.

    농담 같지만 진짜였다. 오우거나 라이칸스로프도 저 정도 회복력은 없을 것이다. 물론 그 회복력이 그녀의 안전을 책임져주는 것은 아니지만.

    선제공격을 해서 심장과 머리가 파괴되면, 당연히 회복에는 긴 시간이 걸린다. 그 동안은 카르안도 사이프카르에게 일방적인 공격을 할 수 있다. 그것은 곧 회복 불가능한 죽음을 의미한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그래. 카르안, 아니 카르안 폰 알페라츠 백작.”

    사이프카르가 비꼬듯 말했다. 아직도 카르안에게 느껴지는 배신감은 사라지지 않았다.

    ‘다 멍청한 내 탓이지.’

    하지만 어쩌랴. 일단 둘은 한 배를 탔다.

    “그 이름은 어색하군요. 그냥 편하게 불러주시면 됩니다.”

    “계약이나 제대로 따르라고.”

    타라카르의 계약과 별개의 약속. 카르안은 아직 흑룡회 부 지부장의 자리를 유지하고 싶어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 가지 편의를 봐줘야 했다.

    흑룡회를 제외한 다른 조직들을 분쇄한다. 지금까지는 흑룡회 외에도 여러 조직들이 백작령 구석구석 남아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오늘까지. 카르안은 그 조직들을 천천히 말려죽일 셈이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흑룡회가 백작령 전부를 장악한다. 다른 소규모 조직들에게 남은 선택지는, 흑룡회에 가입하느냐, 아니면 백작령에서 쫓겨나느냐. 둘 중 하나였다. 어느 쪽이든 흑룡회의 조직 규모는 불어날 것이다.

    그 외에도, 카르안의 존재 자체가 흑룡회에 큰 힘이 될 것이다. 백작이 흑룡회의 부 지부장. 그런데 과연 누가 사이프카르의 말을 거역하겠는가.

    흑룡회가 잃는 것은 카르안이라는 인재 하나였다. 마약 제조에는 차질이 생기겠지만, 다른 조직들이 전부 사라진다면 결코 손해가 아니다. 앞으로 알페라츠 백작령의 모든 유흥은 흑룡회가 독점하게 된다.

    게다가 세상에서 마약을 만들 사람이 카르안밖에 없는 것은 아니니까. 사이프카르는 수도나 연금술길드에 가서 적당한 연금술사를 구해오리라. 그러면 전만은 못하지만, 그럭저럭 괜찮은 약을 만들어 팔 수 있다.

    “그러면....... 우리가 좋은 거 아닌가?”

    조직원들도 이제는 카르안에게 긍정적인 반응이다. 처음 배신했다고 들었을 때는, 백작가에 들어가 기사단을 몰고 와서, 흑룡회와 한판 붙기라도 할 것 같았는데.

    생각해보니 이제는 자기들의 세상이 되어있다. 백작이 형님인데! 누가 그들을 막을 수 있으랴. 그들은 카르안이 정말로 흑룡회를 위해 백작이 되었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수고하셨습니다!”

    계약이 끝나고 나가는 길. 조직원들은 전부 카르안에게 고개를 숙였다. 이제 백작령에 들어가면 한동안 보기 힘들 것이다. 그들은 흑룡회의 시대를 열어준 카르안에게 감사를 표했다.

    “고맙다. 다들 몸 조심하고.”

    카르안은 이번에도 짧게 인사하고 떠나갔다. 생각보다 심심한 반응에, 조직원들은 고개를 갸웃했다. 혹시 자신들이 의심한 것 때문에 기분이 상한 것일까.

    “걱정이군.”

    “왜?”

    “백작이 하는 일은 엄청나게 많으니까.”

    제이크가 안타깝다는 듯이 말했다. 그는 카르안이 저렇게만 말하고 떠난 이유도 예상할 수 있었다.

    “이제 카르안 형님도 누님처럼 하루 종일 서류와 씨름해야 할 거다. 그래도 누님은 워낙 체력이 좋아서 심심하면 밤을 샜지만, 형님은 그렇지도 않잖아.”

    카르안에게는 사이프카르 같은 초인적인 체력이 없었다. 거기에 가끔씩 숨이 차면 쿨럭 거리기까지 하는데, 밤새 무리를 하면 얼마 못가 골병에 걸릴 것이다........

    “우리는 그것도 모르고 형님을 의심했다. 어리석었어.”

    “그렇군.”

    러슬라이가 멍한 표정으로 맞장구쳐줬다. 잘은 모르겠지만, 생각해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주변 조직원들도 백작가로 돌아가는 카르안을 안쓰럽게 바라봤다. 당연히 앞으로의 일을 생각하면, 인사를 길게 받아줄 여유도 없었을 것이다.

    “이제 얼마나 바쁘게 지내실까. 상상만 해도 끔찍하군.”

    “그냥 부 지부장으로 계셨으면 편하셨을 텐데........”

    부하들의 안타까운 탄식. 카르안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2.

    “수도로 가자.”

    “예?”

    “똘똘한 회계사랑, 이것저것 관리할 사람들을 구해와야지.”

    백작가에 도착한 카르안. 그는 새로운 백작을 기다리고 있던 회계사, 커로스에게 말했다. 커로스는 백작가의 전반을 관리하는 회계사로, 카르안이 처음 백작가에 마약을 팔 때 만났던 사람이었다.

    평민 출신이면서 백작가의 중심이 된 인물. 그만큼 머리도 출중했다. 커로스는 백작이 후계자 없이 죽을 때부터, 흑룡회가 백작가를 차지할지도 모른다는 것을 예상했다. 그리고 그 백작의 옥좌위에 카르안이 앉는 것도. 그의 예상 안.

    하지만 이렇게 막 나갈지는 생각도 못했다. 커로스가 얼떨떨한 얼굴로 말했다.

    “아니, 영지는 카르안 백작님께서 직접 관리하시는 게........”

    “내가 그걸 어떻게 해?”

    카르안이 어처구니없다는 듯 서류를 펄럭였다. 종이 위에는 빽빽하게 숫자와 활자가 도배되어 있다. 당연히 카르안은 그 종이를 보자마자 심각한 두통을 느꼈다.

    “백작님. 하지만 아랫사람에게 대부분을 맡기는 것. 그건 전통에 어긋납니다. 원래는.......”

    “자네는 아직 전통의 진정한 의미를 모르는군.”

    카르안이 갑자기 진지하게 눈에 힘을 주었다. 그의 태도가 변하자, 커로스는 침을 꿀꺽 삼켰다.

    “나는 과거의 틀에 얽매여 사는 것을 세상에서 가장 미련한 짓이라고 생각한다. 잘못된 전통을 고치는 것이라 말로 통치자의 의무. 또한 그 손길에서 살아남는 것이야 말로 제대로 된 전통이라고 할 수 있지.”

    “그러니까........”

    “내가 잘못됐다고 하는 전통은 그냥 기본부터 잘못된 거야. 넌 그냥 내 말만 믿으면 된다.”

    카르안이 당당하게 말했다. 그 기세에 밀려, 커로스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결국 일하기 싫어서 한 말이지만.’

    카르안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하루 종일 서류랑 씨름하라니. 그 짓을 미쳤다고 하겠는가?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설령 카르안에게 천재적인 업무처리 능력이 있다 하더라도, 그는 직접 일에 뛰어들지 않았을 것이다.

    ‘리더가 할 일은 아니야.’

    원래 기업의 회장도 직접 물건을 만들러 다니지는 않는다. 그저 크게 방향을 제시할 뿐. 세세한 사항은 부하들에게 맡기는 게 현명했다. 그게 속도감 있게 기업을 운영하는 비결. 이곳 영지도 마찬가지였다.

    그가 직접 뛰어봐야 공부 좀 한 사무직 한명만 못하다. 그런데 직접 서류를 작성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은, 시간낭비에 인력낭비라고 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정신을 차린 커로스는, 생각보다 완고했다.

    “허나.......”

    “아, 월급 올려줄게. 됐지?”

    “백작님 말이 옳습니다.”

    전통을 중시하던 커로스는 빛을 속도로 굴복했다. 역시 금화 앞에서는 장사 없다. 카르안은 그런 회계사를 만족스럽게 바라봤다.

    “빠르게 적응하는 모습이 보기 좋아. 그런데, 기사와 사병들은 어떻지?”

    “긴가민가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대체로 만족하는 것 같습니다.”

    커로스가 빠르게 대답했다. 카르안이 가장 먼저 준비한 것은, 사이프카르의 예상대로 군부의 장악이었다.

    기사단은 백작가의 핵심 전력. 그런 기사단을 얻지 못하고서 어찌 백작가를 평정했다 할 수 있을까. 카르안은 백작이 되기 전부터 기사들에게 좋은 이미지를 쌓으려했다.

    사실 카르안에게 기사 5명이 죽는 일이 생기면서, 기사들이 카르안을 대하는 자세는 썩 좋지 않았다.

    물론 그들도 생각이라는 게 있었다. 기사들은 카르안을 암살하기 위해 움직였다. 카르안은 암살을 당할 뻔한 피해자고, 암살자의 탈을 쓴 기사들을 죽이는 게 당연했다.

    하지만 기사들은 기계가 아니다. 카르안이 동료들을 죽일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마음 한구석이 좀 찜찜했다.

    카르안은 그 것을 기회로 역이용했다.

    “사과도 할 겸, 내가 편의를 봐주겠다.”

    카르안은 부 지부장이라는 지휘를 이용해, 기사들에게 공짜로 창관을 이용하게 해주었다. 또한 술집에서 싸게 술을 마실 수 있게 하는 등. 적지 않은 쾌락을 무료로 선물했다.

    기사들의 여론도 점점 좋아졌다. 카르안이 동료를 죽인 나쁜 놈에서, 자신을 죽이려했던 기사들. 그들의 동료들까지 챙겨주는 대인배로 진화하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그 상태로 카르안이 백작이 되었다.

    처음에는 다들 혼란스러워했지만, 대세라는 게 쉽게 뒤집어지지 않는 법이다. 기사들의 반응도 ‘그럴 수도 있지 뭐.’정도였다.

    거기에 카르안은 발 빠르게 기사들의 처우 개선을 약속했다. 봉급 상승과 숙소 개선 등. 싫어할 사람이 하나도 없는 내용이다.

    똑똑한 기사들은 카르안의 뜻을 파악했다. 기사들의 민심을 잡아, 자신의 권력의 확고히 하려한다! 그들은 동료 기사들에게 진실을 알리려 했지만, 딱히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정말로 카르안이 모든 부분에서 전 백작보다 낫다. 딱히 그를 반대할 이유가 없다.

    “난 인정 못해!”

    반면 무조건 반대도 있었다. 전통성을 중시하는 몇몇 기사들은, 참지 못하고 기사단을 나갔다. 그런 기사는 5명. 50명으로 이루어진 기사단을 생각하면, 10퍼센트 정도.

    카르안도 그 정도 이탈은 예상했다. 처음부터 완벽하게 일이 풀릴 수는 없었다. 오히려 10퍼센트의 이탈은, 선방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래도 기사들을 잡아놔서 다행이야.”

    카르안은 한숨 돌렸다. 발 빠르게 대처한 덕분에, 군사력은 잃지 않았다.

    “그러면 기사들의 봉급을 올려주고, 숙소를 확장하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약속은 지켜야 하니까.”

    어차피 백작의 창고에는, 금화가 차고 넘친다. 그의 전대, 모룬 백작이 기사들과 병사들에게 박봉을 주고, 시민들에게 세금을 열심히 뜯어낸 덕분. 한동안 금화 걱정은 안 해도 될 것이다.

    “좋아. 대충 굵직한 일들은 정리 됐고.”

    이제는 내부에 신경 쓸 때다.

    일단 백작의 처와 첩. 그녀들의 입장이 조금 애매하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백작의 본처는 백작과 상태가 비슷했다. 마약 대신 술에 중독됐다는 작은 차이점만 제외하면, 카르안은 그녀에게 ‘술집 무료 이용권’을 선물했다. 그녀는 이제 흑룡회의 모든 술집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만족스러운 선물이 되겠지. 남은 것은 백작이 새로 들인 처.

    “루베아이라. 그 여자 있잖아.”

    “예.”

    “그냥 집에 보내.”

    커로스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백작가 안에서 흑룡회와 루베아이라의 싸움을 봐 왔다. 직접 본 입장에서, 카르안이 그녀의 목이라도 안 친 것을 다행으로 봐야했다.

    루베아이라에게 돌아갈 돈은 한 푼도 없었다. 당연히 모든 유언장이 카르안의 손에 쓰여 진거나 다름없는데, 뭐 하러 루베아이라에게 유산을 남기겠는가. 전부 카르안의 것이었다.

    “불쌍하니까 금화 몇 개정도는 쥐여 주고. 그 아가씨도 이곳 출신인가.”

    “아닙니다. 모룬 백작님이 수도에 가셨을 때, 그때 만나셨습니다.”

    “멀리서도 왔군. 마법사 길드에 가서, 장거리 텔레포트로 보내.”

    커로스는 카르안에게 90도로 인사했다. 그래도 마약중독 백작보다는 훨씬 괜찮아 보인다. 무엇보다 월급도 올려준다고 하지 않았나.

    백작의 집무실 밖으로 나온 커로스. 그는 카르안의 명령을 하달하기 위해 복도를 걸었다.

    “잠깐 괜찮나요.”

    그때 누군가 그를 붙잡았다. 맑고 아름다운 목소리. 커로스가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는 긴 흑발의 소녀가 있었다.

    그는 소녀를 잘 알고 있다. 카라나리. 3급 용병이며 카르안의 총애를 받고 있다. 특징은 서있기만 해도 주변 온도가 4도쯤 자동으로 내려간다는 것. 또한 그것마저 매력으로 보일 정도로 아름답다는 것.

    커로스의 입에 자동으로 스마일이 걸렸다. 혹시라도 카라나리에게 찍히면, 앞날이 불투명해진다.

    “물론이죠. 뭐 부탁하실 것 있으시면 말해주세요.”

    “루베아이라.”

    카라나리가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그 여자와 카르안 백작님 사이에서,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