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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션으로 무한성장 (107)화 (107/124)

<-- 길들일 수 없는 짐승 -->

사이프카르는 검을 옆으로 눕힌 다음 살짝 흔들었다. 특이한 자세. 일반적이지 않은 모습이다.

카라나리도 평소와는 다르게 검을 잡고 있었다. 평소에 양손으로 잡던 검을, 오른손 하나로만 쥐고 있다. 거기에 팔과 손에 힘을 쭉 뺏는지, 칼끝은 늘어져서 땅에 닿았다. 어찌 보면 동네 건달이 껄렁껄렁한 자세로 검을 끌고 다니는 것 같은 모습.

“저게 뭐하는 거지?”

조직원들은 전부 어리둥절했다. 비록 실력이 둘에 비해 떨어지긴 하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검 한 자루에 살아온 인생. 그동안 뛰어난 고수들의 싸움도 많이 봐 왔다.

하지만 지금 카라나리의 자세는 처음 보는 것이었다. 사이프카르 또한 특이한 자세로 검을 쥐고 있지만, 당장이라도 달려갈 것처럼 기세가 날카롭지 않은가. 그런 공격적인 자세를 보고도 저렇게 느긋하게 있다니.

“알게 뭐야.”

조직원 한명이 검을 뽑고 카라나리의 뒤로 다가갔다. 뭔지는 몰라도, 지금 그녀는 사방에 포위된 상태. 아무리 카라나리가 강하다 하더라도, 뒤를 공격하면 치명상을 입힐 수 있을 것 같았다.

“멈춰.”

“뭐하는 거냐.”

그를 막은 것은 제이크. 제이크가 팔을 올려 조직원을 막았다. 제이크는 뒤를 치려한 조직원에게 한심하다는 듯 말했다.

“지부장님의 명령이 없었다. 움직이지 마.”

만약 사이프카르가 부하들의 힘을 이용하려 했으면, 직접 명령했을 것이다. 당장 카라나리와 카르안을 치라고.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그 뜻은, 지금 이 싸움을 전투가 아닌 결투로 보고 있다는 거다. 서로의 검을 건 결투. 사이프카르는 카라나리를 스스로의 검 한 자루로 무너뜨리려 하고 있다.

그런데 거기서 끼어들다니. 그것은 일종의 불경죄였다. 원래 보스의 결투에는 하급자가 끼어들지 않는 게 암흑가의 불문율. 그것을 어긴다면, 분노한 사이프카르는 카라나리보다 멍청한 조직원을 먼저 치리라.

“.......”

카라나리는 자신을 공격하려던 조직원과 제이크를 곁눈질로 볼 뿐이었다. 그녀의 유리알 같은 눈동자는 순식간에 사이프카르로 돌아갔다. 검은 움직이지 않았다.

“장난하는 건가?”

사이프카르의 얼굴에 그림자가 졌다. 산전수전 다 겪을 사이프카르도 저런 검술은 처음 본다. 심지어 카라나리의 스승이었던 화룡검황(火龍劍皇)도 저런 자세는 취하지 않았다.

뭐가 되었던, 그녀의 답은 하나. 오지 않으면 직접 들어간다. 사이프카르의 몸이 기울면서, 무게중심이 앞으로 쏠렸다.

발끝에 무게와 힘이 실린다. 부드럽게 기울어지던 몸이, 순식간에 긴장된다. 발끝부터 발목, 종아리, 허벅지에서 허리와 목 근육까지, 모든 근육이 팽팽하게 당겨진다. 목적은 단 하나. 최고의 속도로 돌격. 그녀의 전신의 근육은, 그 하나를 위해 움직였다.

“잘라주마.”

카르안에게 돌격할 때와 비슷하지만, 내용이 전혀 다르다. 마치 그때가 장난이었던 것처럼. 공기가 폭발했다.

그녀의 힘을 견디지 못한 바닥이 갈라진다. 공기가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사이프카르는 악마적일 정도의 속도로 질주했다.

완벽한 공세. 방어 따윈 하지 않는다. 압도적인 재생력을 가진 그녀만이 할 수 있는 공격이다. 살을 주고 뼈를 취하는 공격. 검술과 검술로 겨루기보다는, 일단 육체적 피지컬로 한방에 찍어 누르겠다는 뜻.

물론 단순히 힘으로 누른다기에는 그녀의 검술이 너무 정교하다. 마치 면도칼 같은 날카로움. 단순히 힘과 스피드만 앞세운 공격이었다면 막기라도 해 보겠지만, 사이프카르의 경험이 집약된 검술은 그것조차 허용하지 않는다.

화륵-

“어.”

조직원들은, 심지어 검술에 일가견이 있는 러슬라이와 제이크조차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몰랐다. 마지막으로 사이프카르의 검이 한번 흔들렸고, 공격이 시작되나 해서 입을 벌렸는데, 무슨 말이 나오기도 전에 상황은 끝나있었다.

두 개의 화염이 서로를 교차했다. 카라나리는 여전히 평온한 표정이었고, 사이프카르의 얼굴은 분노와 굴욕으로 일그러져 있었다.

“더 하시겠습니까?”

카라나리가 검을 휙 털었다. 그러자 불꽃 사이로 증발되지 못한 피 몇 방울이 떨어져 나왔다.

“언제 그 정도 수준까지.”

사이프카르가 중얼거렸다. 어깨에서 피가 쏟아 올랐다. 동맥까지 끊어졌는지 심장이 뛸 때마다 피가 분수처럼 철철 넘쳐난다. 사이프카르가 어깨를 손으로 감싸 안았지만, 피는 쉽게 멈추지 않았다.

조직원들은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건 아니었다. 사이프카르가 저 정도로 깊은 상처를 입다니.

무엇보다 상대는 털끝하나 다치지 않았다. 어쩌면 부상보다 그게 더 충격적이었을지도 모른다.

사이프카르의 공격이 완전히 무력화되었다.

“그것도 동방의 검술인가?”

사이프카르가 상처를 억누르며 말했다. 카라나리는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그러면 스스로 만든 기술이란 말인가. 너무 어이가 없어서, 사이프카르는 헛웃음이 나왔다. 그녀는 방금 전 상황을 다시 떠올렸다.

분명 그녀는 검을 몸 앞으로 세우고, 카라나리의 팔을 베려고 했다. 모든 힘을 다한 일격.

사이프카르는 온몸의 근육을 틀어가며 검을 휘둘렀다.

속도와 힘. 두 개를 모두 갖춘 공격이기에, 막기도 피하기도 애매했다. 막는다 하더라도 심한 상처를 입고, 피한다 해도 마찬가지. 무시하고 공격한다면, 몸이 두 동강 나리라.

하지만 카라나리는 검으로 검을 맞대고, 한 바퀴 돌며 그 공격을 흘려내었다. 사이프카르가 느끼기에는 검과 검이 맞닿았는데, 뭔가 쑥 빨려들어가는 느낌이 들더니, 검로가 이상하게 휘어버린 것이다. 그 사이로 카라나리의 검은 사이프카르의 어깨근육을 휘저어놓고 빠져나갔다.

폭풍 같은 공격을, 물처럼 유연하게 흘려내었다.

“공격과 방어를 단 한 동작으로 완성하다니.”

사이프카르가 허탈한 한숨을 내쉬었다. 분명 자신이 더 빠르고, 더 묵직했다. 또한 육체적인 베이스도 뛰어났다.

부족했던 것은 단 하나. 효율성이다. 반대로 카라나리는 부족한 모든 것을 효율성 하나로 압도했다. 최소의 움직임. 최소한의 힘으로 강한 힘을 제압한다.

이게 천재라는 것일까.

사이프카르는 문득 고개를 들어올렸다. 주변에는 경악한 표정의 조직원들이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보스가 부상을 당했는데, 어찌해야 될지 모르겠다는 표정.

“참.”

사이프카르는 그제야 자신이 결투중이라는 사실을 떠올렸다. 상대의 뛰어난 한 수를 본 바둑 광이 이런 기분일까. 카라나리의 대범한 기술을 본 사이프카르는, 그 상황을 복기하느라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도 깜빡했다.

카라나리는 더 움직이지 않았다. 빈틈을 노려 공격하는 대신, 차분히 사이프카르를 바라보고 있다. 그녀의 생각을 방해하고 싶지 않다는 뜻일까. 혹은 섣불리 공격하지 않겠다는 뜻일까.

사이프카르는 잠시 주변을 둘러보더니, 검을 던졌다.

푸욱-

검은 공중에서 한 바퀴 돌더니, 카라나리 앞에 꽂혔다. 공격이 아니었다. 사이프카르가 말했다.

“내가졌다.”

“누님!”

“아아........”

비명과 탄식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그래도 사이프카르의 마음은 상쾌했다. 카라나리가 고개를 갸웃했다.

“더 싸우시지 않습니까?”

“이미 졌는데 뭘 더 싸워.”

사이프카르가 피식 웃었다. 비록 카르안이 지금 만든 상황은 더럽게 기분 나빴지만, 카라나리와의 결투가 그 답답한 감정까지 풀어주었다.

이렇게 호쾌한 패배도 오랜만이다. 자신의 전력을 완벽하게 제압한 카라나리.

‘더 싸우고 싶기도 하지만.’

물론 끝까지 간다면 카라나리는 사이프카르를 이길 수 없다. 지금 한방 먹기는 했어도, 그 상황이 언제까지나 계속되지는 않을 테니까.

카라나리의 공격이 완벽하게 먹혔음에도, 사이프카르의 상처는 벌써 대부분 회복되었다. 검기에 베인 것이라 조금 회복이 더디기는 하지만, 사이프카르는 평범한 마족이 아니었다. 폭포처럼 흐르던 피도, 어느새 작은 물줄기 정도로 줄어들어 있다.

이처럼 사이프카르는 금방 회복되지만, 카라나리는 이정도 상처를 입는 순간 전투력이 반쪽, 아니 그 이상 떨어진다. 한쪽 어깨를 못 쓰게 되는 것은 기본이고, 출혈 때문에 움직임에 시간제한이 생겨버린다.

거기에 아직 사이프카르는 진짜 힘을 쓰지도 않았다. 하지만.......

‘됐어. 이정도면.’

지부장으로써 사이프카르는 카라나리를 끝장내기를 원했지만, 검사로써 사이프카르의 의견은 반대였다. 이미 진 경기를, 어거지로 이겨봐야 전혀 기쁘지 않다.

사이프카르가 검을 던지자, 카라나리도 자신의 긴 검을 검집에 넣었다. 사이프카르가 맨손으로 공격할 수도 있지만, 항복 선언을 한 사이프카르를 믿어준다는 뜻이었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보는 내내 조마조마했습니다.”

“너만 없었다면 정말 좋았을 텐데.”

카르안의 능청스러운 말에, 사이프카르가 얼굴을 찌푸렸다. 그렇다고 이미 카라나리에게 항복 선언까지 한 마당에 카르안을 공격할 수도 없는 노릇. 사이프카르는 엉망이 되어버린 흑룡회 건물을 둘러보았다. 그녀가 부하들에게 손짓했다.

“전부 치워놔.”

“예, 예.......”

“너는 안쪽으로 따라오고.”

사이프카르는 카르안에게 손짓했다. 카라나리로 카르안과 함께 가려 했지만, 카르안이 손을 저었다.

카르안은 사이프카르의 사무실에 들어갔다. 사이프카르는 먼저 의자에 앉고, 카르안에게 자리를 권했다.

“자, 한번 말해봐. 변명 정도는 들어주지.”

“변명이라니. 억울합니다. 저는 지부장님이 하지 못한 선택을, 제 의지로 했을 뿐이니까.”

“무슨 헛소리야.”

사이프카르가 짜증스럽게 말했다. 하지 못한 선택? 갑자기 무슨 뜬구름 잡는 소리인가.

“알페라츠 백작령의 완벽한 장악. 제가 하고 싶던 것입니다. 지금처럼 반쪽짜리 지배가 아닌.”

“그건 내가 결정할 일이야. 굳이 백작가를 차지하지 않더라도 이미 백작령은 우리 손으로 움직이니까.”

“하지만 결국 뒤에서 조정하는 일입니다. 분명 한계가 있죠.”

카르안이 의자에 몸을 앉혔다.

“제가 알페라츠의 백작이 되면, 이 작은 백작령이 아니라 왕국 전체에 영향을 끼칠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거대한 물줄기가 트이는 셈입니다.”

알펜 왕국을 흑룡회가 잡고 있더라도, 그건 흑룡회의 보스의 영향력이다. 사이프카르의 힘은 이 작은 백작령 안에 갇혀있었다.

하지만 백작이 된다면 그 힘은 왕궁까지 뻗어나간다. 사교계에 손을 대며 인맥을 넓힐 수도 있다. 또한 기사단과 사병들을 이용한, 공격적인 영지 확장도 가능해진다. 또 국가에 공을 세운다면, 그만한 상을 받을 수도 있으리라.

“결국 백작 자리가 탐난다는 말을, 참 복잡하게 돌려서 하는구나.”

“더 높게 올라가고 싶지 않습니까?”

카르안이 살짝 웃으며 말했다.

“이 작은 영지는 저희가 살기에는 너무 좁습니다. 마치 거대한 고래를 작은 수족관에 담아두는 격이에요.”

“그래. 네 말이 다 맞다고 치자. 하지만 말이야.”

사이프카르가 한숨을 내쉬었다.

“최소한, 나한테는 말했어야 했어.”

카르안의 말대로 흑룡회가 백작가를 차지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다만, 왜 그것을 숨겼는가.

“그 이유는 지부장님이 더 잘 알고 계실 텐데요.”

“.......”

그녀는 말을 삼켰다. 맞다. 그것을 알면서도 하지 않은 이유. 바로 ‘사이프카르는 백작이 될 수 없다.’는 걸림돌 때문이다.

거기에 카르안이 백작 자리를 얻고 싶다고 한다면, 당장 거절했을 것이다. 백작의 자리는, 부하가 가지기에는 너무 큰 힘이다.

“전통적으로 마족은 알펜 왕국의 귀족이 될 수 없습니다. 뭐, 영생과 힘이 탐나서, 몰래 마족이 된 사람도 있는 것 같지만. 아무튼 원칙은 원칙이지요.”

인간이었던 귀족이 몰래 마족이 될 수도 있기는 하다. 다만 들키면 그 순간 왕의 명령에 거역한 죄로 목이 잘리겠지만.

“이미 사이프카르님이 평범한 인간이 아니라는 사실은, 모두가 알고 있죠. 하지만 저는, 그저 인간입니다.”

“하아.”

사이프카르가 서랍을 뒤졌다. 안에는 고급스러운 상자가 들어있었다. 그곳을 열자, 담뱃잎으로 싸여진 담배 몇 개가 나왔다.

그녀가 잎에 물고 불을 댕기자, 독한 연기가 몸을 채웠다. 눈앞에 뿌연 연기가 펴져나간다.

카르안의 말이 전부 맞는 말이었다. 언제든지 백작을 암살하고, 백작가를 장악할 힘이 있으면서도, 사이프카르는 움직이지 않았다. 아니, 움직일 수 없었다. 그녀가 백작이 될 수 없었으니까.

그렇다고 꼭두각시 부하를 앉혀두자니, 그것은 너무 불안하다. 백작가라는 자리. 그 자리 자체가 너무나도 큰 위치. 만약 그 부하가 배신한다면, 사이프카르는 너무 큰 타격을 입게 된다.

‘결국 불신 때문일까.’

사이프카르는 카르안을 노려보았다. 그의 눈동자에서는, 아무것도 읽어낼 수 없었다.

사이프카르가 반도 타지 않은 담배를 꾹 눌러 꺼버렸다. 담배는 소리없는 비명을 지르며 질식사해버렸다.......

사이프카르가 말했다.

“난 너를 믿을 수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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