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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션으로 무한성장 (106)화 (106/124)

<-- 길들일 수 없는 짐승 -->

“농담할 기분 아니야.”

사이프카르가 주먹을 꽉 쥐었다. 그녀의 분노에 반응한 듯, 손아귀에서 붉은빛의 마나가 일렁거렸다.

그녀도 알고 있었다. 부하들이 이런 상황에서 농담이나 던질 놈들은 아니라는 것을. 다만, 도저히 믿을만한 내용이 아니었기에,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대체, 왜?, 그놈이.......”

단어가 문장을 이루지 못하고, 뚝뚝 끊어져 나왔다. 그녀의 억눌러진 분노에도, 부하들은 묵묵부답. 그들도 지금 상황을 알 수 있었다.

카르안이 배신했다.

물론 무슨 수를 써서, 백작가의 후계자가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왜 사이프카르에게까지 비밀로 했을까. 아무 말도 없이 백작 자리를 낚아채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좋게 해석할 수가 없었다.

“분명 형님도 말 못할 사정이.......”

러슬라이가 어렵게 입을 열었지만, 얼마 안 가서 말을 흐릴 수밖에 없었다. 카르안을 변호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설령 무슨 보안상의 이유로 숨겨야 했다 쳐도, 최소한 사이프카르에게는 미리 말해두었어야 했다. 러슬라이가 입을 굳게 다물었다.

“그래서, 카르안은 어디에 있지?”

“아마 백작가 안쪽에 있지 않을까요.”

“알기 쉬워서 좋군.”

사이프카르가 벽에 걸린 검을 꺼내들었다. 그녀가 애용하는 붉은 검. 그 뜻을 알아들은 부하들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카르안을 치겠다는 뜻이다. 그리고 사이프카르의 뜻은 곧 부하들 전부의 뜻. 당장 백작가와 전면전을 하게 될 수도 있다.

“누님. 안됩니다.”

“안되긴 뭐가 안 돼!”

부하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렸다. 당장 배신자 카르안을 치자는 쪽과, 일단 카르안의 이야기를 들어보자는 쪽으로. 평소에 카르안의 인망이 두터웠기 때문에, 뻔한 배신에도 망설이는 부하들이 생겨났다.

“비록 백작이 후계자라고 했지만, 카르안은 백작과 아무 연도 없지 않은가! 그가 자리 잡기 전에, 한시라도 빨리 쳐야한다!”

누군가 크게 소리쳤다. 처음부터 카르안을 공격하자고 고함치던 조직원이었다. 그 나름대로 제법 머리를 굴려서, 그럴싸한 말을 해 내었다.

그 말에 다른 조직원들의 얼굴에도 조급함이 서렸다. 그의 말이 맞다. 카르안은 귀족도 아니고, 백작의 양자도 아니다. 흑룡회의 부 지부장이라는 위치는 분명 대단했지만, 그것은 음지의 일. 양지에서 카르안은 출신성분조차 명확하지 않은 평민에 불과하다.

백작이 인정했다고 해도, 백작가의 사병들, 무엇보다 기사들이 반대할 것이다. 그들이 카르안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면. 백작이란 자리는 얇은 종이 한 장 위에 서 있는 것처럼 위태롭다.

“네놈은 아직 형님을 몰라.”

반대의견도 나왔다. 평소에 카르안과 가까이 지내던 부하들이다. 카르안도 그 사실을 알았을 텐데, 그런 뻔한 문제점을 해결하지 않았을까.

지금 치자고 하는 무투파놈들은 잘 모르고 있다. 이미 카르안은 마술처럼 백작이 되었다. 그런 복잡한 준비를 하고서 집안의 민심조차 잡지 못했겠는가. 분명 카르안도 군대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었고, 가장 먼저 기사와 사병들을 회유했을 것이다.

“이미 형님이 군권을 장악했다면, 무턱대고 공격했다가 우리가 위험해질 수도 있다!”

“그런 놈을 아직도 형님이라고 부르는군.”

“카르안님은 배신자가 아니야. 적어도 지금까지는.”

제이크의 눈이 차갑게 번득였다. 그는 카르안과 둘이 술을 마셨던 때가 떠올랐다. 그때 서로 엉망이 되도록 마시고, 완전히 망가진 채로 돌아갔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눈 대화가 생각났다. 한참 전 일인데, 이상하게도 몇 분 전 일처럼 생생하게 느껴졌다.

넌 내가 뭘 하든 따라올 수 있겠나?

‘이런 뜻이었습니까.’

제이크가 눈을 살짝 감았다. 평소의 양아치처럼 가볍던 모습은 볼 수 없었다. 그는 카르안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었다.

물론입니다. 조직에 반하지만 않는다면.

‘그 약속. 지키겠습니다.’

제이크가 한 말은, 그냥 되는대로 뱉은 게 아니었다. 그는 진심으로 카르안을 따를 생각이다. 말한 대로 그게 조직을 배신하는 행위만 아니라면 말이다.

카르안은 매사에 염세적인 제이크의 마음에 든 몇 안 되는 사람이다. 지금까지 살아온 뒷골목 인생. 타고난 검술 재능으로 이곳까지 왔지만, 그 삶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당연히 범죄조직에는 정상인보다 미친놈이 많았다. 인간성을 상실한 쓰레기들. 더욱 슬픈 것은 그 자신도 그 쓰레기 중 하나라는 것이다. 돈을 위해 사람을 죽인 사람이 누구를 욕하겠는가.

그런 점에서 카르안도 그들의 동지였다. 다른 사람의 피로 살아가는 흡혈귀. 본질적으로는 카르안도 그가 전에 모시던 질 나쁜 상사들과 아무 차이도 없으리라.

‘그래도.’

그래도, 카르안은 자기 사람 하나는 잘 챙겨주었다. 어찌 보면 조금 무른 것 같지만, 또 그 모습이 인간적으로 느껴질 때도 있었다. 쓰레기지만, 그래도 같은 쓰레기는 살펴주는 쓰레기.

그러니까 지금은 기다린다. 그의 형님이 확실히 배신했는지, 혹은 뭔가 다른 뜻이 있었는지 파악할 수 있을 때까지는. 만약 정말로 흑룡회를 버린 것이라면, 망설임 없이 카르안의 목을 베리라.

쳐야한다. 기다려보자. 서로의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당연하지만, 의견이 조율될 것 같아 보이지는 않는다. 도저히 타협을 볼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으니까.

쾅!

무언가 폭발하는 소리. 땅이 잠깐 흔들렸다. 서로 삿대질을 하던 조직원들은 깜짝 놀라 말을 멈췄다.

사이프카르가 검으로 땅을 찍었던 것이다. 그녀는 냉정한 눈으로 부하들을 노려봤다.

“싸울 필요 없어. 나 혼자 해결할 테니까.”

“혼자가시면 위험합니다.”

“위험?”

사이프카르가 가사롭다는 듯 말했다.

“설령 백작의 기사 전원이 덤벼도, 내 상대는 되지 않아.”

그것은 아주 근거 없는 자신감이 아니었다. 실제로 그는 기사단장 타브를 압살했다. 그것도 힘을 모두 개방하는 악마화조차 하지 않고.

마지막에 퍼포먼스처럼 보여준 악마의 팔은, 실로 괴랄한 파괴력을 보여주었다. 그런데 만약 전신을 악마화 한다면? 도대체 그 힘이 어느 정도일지, 조직원들은 감도 잡을 수 없었다. 실제로 본 적도 없었으니까.

지금까지 백작가가 흑룡회를 건드리지 못한 이유들 중 하나가, 바로 사이프카르의 존재였다. 분명 기사단과 사병의 힘을 합치면 흑룡회 조직원의 힘을 압도하지만, 거기에 사이프카르가 포함되면....... 승리를 장담할 수 없게 되니까.

“따르겠습니다!”

사이프카르가 나가려하자, 몇몇 조직원들이 그녀의 뒤를 쫒았다. 함께 백작가로 가겠다는 말이다.

사이프카르는 말리지 않았다. 제이크와 러슬라이 모두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말리고 싶지만, 저런 사이프카르는 절대로 멈출 수 없다.

지금 그녀는 분노하고 있다. 카르안의 배신에 대해. 그녀는 누구보다 배신을 증오했다.

“자! 가자!”

사이프카르를 대신해서, 뒤를 따르는 조직원들이 소리쳤다. 그들이 주변의 동료들을 부추긴다. 조직원들도 갈팡질팡한 표정. 설령 카르안을 치지 않다고 하더라도, 일단 사이프카르는 보호해야 하지 않겠는가.

“아니, 거기 그대로 있어.”

누군가 말했다. 그 불경한 말에 선동하던 조직원은 오만상을 찌푸렸지만, 곧 그 말이 문 밖에서 들렸다는 것을 눈치 챘다.

게다가 묘하게 익숙한 목소리.

카르안이었다. 그는 태연한 표정으로, 문 앞에 서 있었다.

아무런 경호도 없이.

2.

“겁도 없나보네.”

사이프카르가 검을 쥐었다. 하지만 카르안은 위축되지 않았다. 그 모습이 더욱 사이프카르의 신경을 긁었다.

“나는 네놈이 기사단이라도 끌고 올 줄 알았는데 말이야.”

“여기는 제가 일하는 조직입니다. 뭐 하러 기사들과 함께 오겠습니까.”

“그래? 그런데....... 안 끌고 온 게 아니라 못 끌고 온 거 아닌가?”

“이미 알페라츠 기사단은 제게 충성을 맹세했습니다.”

“하하하.........”

사이프카르가 재미있다는 듯 웃었다. 반면 주변의 조직원들은 혼란스러운 기분을 느꼈다.

만약 카르안이 경호 목적으로 기사들을 잔득 끌고 왔으면, 지금보다 분위기가 험악해졌을 것이다. 하지만 카르안은 평소처럼 혼자 왔다. 백작가의 병력은 사병하나 끌고 오지 않았다.

평소와 다를 것 없는 모습에, 조직원들은 사이프카르와 카르안을 번갈아 쳐다봤다. 과연 지금 카르안을 공격해야 하나, 아니면 말아야 하나.

“뭐, 좋아.”

사이프카르가 어깨를 으쓱했다.

“네가 정말 기사단을 장악한 건지, 아니면 무늬만 그럴싸한 백작가의 후계자인지. 그건 중요하지 않아. 다만.”

붉은 머리의 사이프카르, 그녀의 몸이 살짝 앞으로 기울어졌다.

“네가 혼자 여기까지 온 것은 실수야.”

사이프카르가 사라졌다. 아니, 마치 사라진 것처럼 보였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돌진. 목적지는 하나였다.

부하들은 망설였지만, 그녀는 망설이지 않았다.

언제나 그녀는 부하들을 앞에서 인도했다. 자잘한 전투부터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까지. 항상 앞장서서 뛰어갔다. 부하들은 그녀의 등만 보고 따라오면 되도록.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배신한 부 지부장을 처리한다. 그녀의 칼날이 카르안의 다리를 향해 날아갔다.

‘지금은 살려주지.’

당장 죽일 생각은 없지만, 그래도 제압 정도는 해 두어야 했다. 카르안의 위험성을 생각해보면, 다리 하나정도는 싼 편이었다.

그리고 무슨 말을 하든 다시는 배신하지 못하게 만들 것이다. 최악의 경우는 죽일 수도 있다. 흑룡회는 유능한 연금술사를 잃게 되지만, 믿을 수 없는 자를 부 지부장에 남겨둘 수는 없었다.

초침을 수백 번 나눈 것 같은 짧은 시간. 카르안이 반응한 틈도 없었다. 사이프카르의 장난기 없는 공격은 어지간한 기사들은 반응조차 할 수 없을 만큼 빠르다!

하지만, 그 이상의 존재라면.

한번 발을 내딛을 때마다 땅이 울리고 불꽃이 튀는, 강렬한 사이프카르의 보법.

“어?”

사이프카르는 다음 발을 내딛으려 했다. 마치 정지된 시간 속을 홀로 걷는 것처럼, 주변의 부하들과 카르안은 가만히 서 있었다. 오직 사이프카르만이 그 공간에서 움직이고 있다. 아니 있는 줄 알았다.

그 사이로, 그림자 하나가 끼어들었다. 바람처럼 가벼운 발소리.

사각-

“윽.”

그 그림자는 사이프카르의 발목을 베고 지나갔다. 그녀도 있는 힘껏 몸을 틀어 피했지만, 자세가 무너지는 것은 막을 수 없었다.

카르안은 처음처럼 서 있었다. 하지만 사이프카르는, 중심을 잃은 체 속도를 줄이지 못했다. 그녀의 몸이 벽과 충돌했다.

쿵!

어찌나 강렬한 돌격이었는지 벽이 거의 무너져 내릴 뻔 했다. 조직원들이 입을 쩍 벌렸다. 그들 눈에는, 사이프카르의 돌격을 카르안이 막아낸 것처럼 보였겠지. 사이프카르는 벽에 등을 대고 주저앉아있었다.

“누님!”

“지부장님!”

조직원들이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사이프카르는 손을 한번 흔들어 주었다. 그녀는 자신의 발목을 바라보았다. 깊게 베인 채로 피가 줄줄 흐르고 있다.

인간으로 치면 치명상. 하지만 그녀는 인간이 아니다. 역시 악마의 몸은, 그 상처를 빠르게 치유시켜주었다.

“방금은. 뭐였지.”

고통은 견딜만하다. 다만, 이렇게 쉽게 발목을 내주다니.

물론 모든 시선과 감각은 카르안에게 가 있었다. 머리에 피가 올라 흥분한 것도 있고. 그 덕에 돌격 중 공격에 취약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반응조차 못할 빠르기다.

그 정도 속도의 돌격에 끼어들다니. 거기에 정확히 약점인 발목을 그어, 중심을 잃게 만든 것도 대단했다.

누가 자신의 돌격을 막았는가, 그녀는 고개를 들어올렸다. 그리고 익숙한 얼굴, 또한 예상하고 있었던 얼굴과 마주쳤다.

검보다 날카로운 소녀. 카라나리가 사이프카르를 내려 보고 있었다.

“언제 들어온 거야!”

조직원들도 허깨비처럼 등장한 카라나리에게 검을 뽑았다. 눈치 채지 못했다. 사이프카르는 빨랐지만, 카라나리는 그녀보다 더욱 빨랐다.

압도적인 재능 덕분이다. 최근 검술에만 매진한 그녀는, 몰라볼 정도로 강해졌으니까.

“이제 조금 진정되셨습니까?”

카르안이 사이프카르에게 말했다. 부 지부장의 질문에, 지부장은 몸을 일으켰다. 상처는 이미 사라져 있었다.

“네가 총애하는 아가씨네. 빠르기는 해. 하지만 상대를 잘못 골랐어.”

“저는 싸우러 온 게 아닙니다.”

“좋아. 그러면 이야기정도는 들어주지.”

사이프카르의 검에 붉은 오러가 서렸다.

“당해준 만큼만 갚아주고 나서 말이지.”

========== 작품 후기 ==========

카라나리: 이거, 갑자기 뛰어들어서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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