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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션으로 무한성장 (104)화 (104/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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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보스에게 알리는 게 좋을까요?”

레이카가 말했다. 그녀가 말하는 보스는 사이프카르. 역시 이런 문제가 생기면, 위에 보고하는 게 정상이었다.

사이프카르라면 냉정하게 상황을 정리해줄 것이다. 하지만 카르안은 예상과 다른 말을 했다.

“아니, 이번일은 내가 처리한다.”

“예?”

레이카가 되물었다. 하지만 카르안은 거기에 대해 더 말하지 않았다. 대신 눈살을 찌푸리며 서큐버스를 바라볼 뿐.

“그나저나 정말 잘 되고 있는 것 맞나?”

알페라츠 백작가에서 암살자를 보냈다. 정확히 누구를 노리는지는 모르겠지만, 레이아라는 백작가와 별 관계가 없었다. 남은 것은 레이카와 카르안.

그게 문제였다. 아무리 루베아이라가 백작가에서 큰 힘을 과시하고 있다지만, 알페라츠 기사단의 기사들에게 명령을 내리는 것은 오로지 백작. 본인만 가능하다. 일개 첩이 기사에게 명령을 내릴 수도 없고, 또 기사들이 그런 첩의 명령을 들을 필요도 없었으니까.

“혹시 백작을 속였을 수도........”

레이아라가 중얼거렸지만, 카르안은 고개를 저었다. 기사단이 무슨 멍청이 집합소도 아니고, 백작에게 보고도 안한 채 임무를 수행할 리가 없지 않은가. 레이아라도 한번 해본 말일 뿐이었기에, 더 이상 이야기하지 않았다.

기사의 말처럼 부탁을 한 것은 루베아이라지만, 결국 백작이 직접 레이카, 혹은 카르안을 암살하라고 명령한 것이다. 만약 정말로 레이카가 백작의 마음을 빼앗는데 성공했다면 그런 명령이 떨어질 리가 없었다.

“아, 이상하네.”

레이카가 작은 머리를 귀엽게 긁었다. 그런 모습을 보며, 카르안은 머리가 지끈거림을 느꼈다.

“일단 흑룡회로 돌아가요.”

아무리 실패라지만, 백작가에서 기사를 보낸 이상 몸을 보호해야 했다. 따지러 가도 흑룡회의 부하들과 함께 갈 것이지. 이대로 쳐들어갈 수는 없다.

레이카의 말에, 카르안은 기절한 기사를 다시 노려보았다.

2.

같은 시간. 루베아이라는 침실에 가만히 앉아있었다. 달빛이 말없이 빛나고 있다. 루베아이라는 멍하니 그 빛을 보다가, 조각난 달을 향해 손을 뻗었다.

달빛은 잡히지 않았다.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움켜쥐려 해도, 어느새 스르륵 사라져 버린다.

어쩐지 쓸쓸한 기분이 들었다.

“아.”

그 달빛을 잡으려던 손끝이 미세하게 떨려온다. 그리고 작은 떨림이 점점 커진다. 얼마안가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진폭이 커져갔다.

마치 금단증상에 몸을 떨던 백작의 모습과 흡사했다.

꾸욱-

루베아이라는 떨리는 손을 잡았다. 이렇게 허공에 손을 놔두면, 손이 미친 듯이 요동친다. 얼른 반대편 손으로 잡고 나서야, 그 아련한 고통이 사라졌다.

“아파.”

루베아이라가 말했다. 진심을 담은 한마디. 하지만 그 단어는 허공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아무도 대답해 주는 사람은 없었다. 세상 한 가운데 남겨진 듯한 고독감. 루베아이라는 양 무릎에 고개를 파묻었다. 어쩐지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그때, 루베아이라의 방문이 벌컥 열렸다. 노크조차 없었다. 무례하기 짝이 없는 행동. 하지만 그 문을 갑자기 열어버린 사람은 그런 것에 별로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

“루베아이라씨.”

검은 옷으로 몸을 도배한 기사였다. 카르안과 싸우다가, 못 버티고 도주한 한명. 그는 땀범벅이 되어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숨을 고른 기사는, 루베아이라를 노려보았다. 예 같은 것은 차리지 않았다.

이게 기사들이 루베아이라를 대하는 태도였다. 평소 백작 앞에서는 항상 루베아이라‘님’이라고 부르며 정중히 대하지만, 백작이 없는 자리에서는 정 반대.

기사들 입장에서는, 뜬금없이 백작가에서 한자리를 차지한 루베아이라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말이 백작의 첩이지, 어차피 백작에게 꼬리를 친 술집 여자에 불과하지 않은가.

그렇게 백작을 반쯤 홀려놓고, 백작가를 다 잡은 것처럼 행동한다. 게다가 이런 상황을 처리할 타브도 죽고 없었다. 백작을 사로잡은 저 불여우는, 언젠가 백작가 전체를 집어삼킬 것만 같았다.

“후우.”

거기까지는 견딜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일은 도가 지나치다. 멋대로 백작을 꼬셔낸 다음, 멋대로 자기들에게 명령을 내린 것이다. 이 이유도 유치하기 짝이 없었다. 흑룡회에서 던져준 서큐버스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게 그 이유.

그 덕에 부 지부장 카르안과 싸우면서, 소중한 동료 5명을 잃었다. 애초부터 카르안 같은 괴물을 치는 게 아니었는데. 엉뚱한 적과 싸우다가 개죽음을 당한 동료들이 떠오르자, 가슴이 울컥했다.

영광스럽게 싸우다 죽은 것도 아니었다. 그저 천한 여자의 손에 놀아난 것이다. 기사로써 이만한 수치가 어디 있겠는가.

“무슨 일인가요.”

살짝 달아오른 눈가를 비비며, 루베아이라가 표독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방금 전까지 보여주던 처연한 여자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녀는 순식간에 냉정한 여자라는 가면을 썼다.

“암살에 실패했습니다.”

“뭐라고요?”

루베아이라도 입을 살짝 벌렸다. 믿을 수 없다. 고작 해봐야 서큐버스 한명. 흑룡회의 경호가 있다지만, 기사 6명을 보내지 않았는가. 그런데 암살에 실패했다고? 농담으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루베아이라가 눈을 가늘게 떴다. 그녀는 기사를 타는 눈으로 노려보았다. 자기가 마음에 안 든다고 해서, 임무까지 내 던진 것인가. 기사들이 일부러 임무를 실패했다고 볼 수밖에 없었다.

“지금. 임무를 거절한 건가요. 아무리 제가......”

“닥쳐! 당신 때문에 몇 명이 죽었는지 알아?”

기사가 격양된 목소리로 소리쳤다. 동료가 줄초상을 치른 덕분에, 마음이 진정되질 않았다. 피는 사람을 흥분시키는 법이었다.

“서큐버스 년을 경호하던 게 누군 줄 알아? 카르안이었어. 젠장. 너 때문에 우리는........”

“죽었다고요?”

“그래! 동료 5명이 죽고 나 혼자 살아왔다.”

기사가 몸을 떨었다. 동료들이 죽은 비참함. 또 거기서 겁먹고 도망쳤다는 죄책감이 몸을 조인다.

“그, 그러면 다음 날로 미뤘으면 됐잖아요.”

루베아이라가 고개를 푹 숙였다. 저 모습이 거짓말 같지는 않다. 그러면 정말로 기사들은 그 연금술사와 싸우다 죽은 것이다.

‘왜 하필 카르안과 싸웠던 것인가요!’

루베아이라의 속이 탔다. 물론 레이카를 카르안이 경호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백작가에 들릴 때마다, 카르안은 레이카와 함께 다녔으니까. 하지만 항상 함께 붙어있지는 않을 텐데. 다른 조직원이 경호할 때를 노리면 그만 아닐까.

“너는 아무것도 모르는군. 카르안은 서큐버스가 여기로 올 때도, 그리고 갈 때도 함께 이동한다. 그게 낮이든 밤이든.”

기사의 말대로, 처음 몇 번을 제외하고 레이카의 경호는 카르안의 자리였다. 게다가 백작과 보통 밤을 지내는 서큐버스답게, 아침에 흑룡회로 돌아가는 일도 잦았다.

“더 미룰 수도 없었다! 얼마 안가서, 그 여자는 백작가 안에서 지낼지도 모른다고. 바로 지금 네년처럼. 그러면 암살은 물 건너 가는 거야.”

“잠깐. 백작님도 허락하셨으니, 백작가 안에서 죽이면.......”

“누구한테 이래라저래라 명령질이야! 우리에게는 우리의 방식이 있어! 너 같은 아마추어는 모르겠지.”

기사는 그렇게 소리치면서도 잠깐 뜨끔했다. 그녀의 말이 맞았다. 정말 레이카를 죽일 생각이었으면, 그냥 백작가 안에서 포위한 다음 죽이면 그만이다. 뭐 하러 경호가 붙을 때까지 기다리겠는가.

루베아이라는 전혀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지만, 백작은 처음부터 기사들에게 살짝 귀띔했다. 경호원만 죽이고, 레이카는 살려두라고. 그리고 루베아이라에게는 적당히 핑계를 대라는 말도.

루베아이라의 부탁을 거절할 수는 없고, 레이카도 죽이기 싫으니 선택한 방법이다. 백작 스스로도 괜찮다고 생각할 만큼. 밑의 기사들은 죽을 맛이었지만 말이다.

아무튼 명령은 지켜야 하니, 그들은 교대로 서큐버스를 주시했다. 관찰결과 그녀는 항상 카르안과 함께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외의 사적 외출은 흑룡회의 세력권 안.

처음에는 카르안이라는 사람이 무섭기도 하고, 소문이 흉흉한 덕에 공격을 참았다. 카르안을 죽여야 했는데, 그게 말처럼 쉽겠는가.

하지만 시간이 가도 틈이 보이질 않으니까. 어쩔 수 없이 습격한 것이다. 설마 기사 6명이 연금술사 한명을 못 당해낼까 하며.

‘씨발. 그런데 그게 현실로 일어났지.’

정말로 그들은 카르안에게 상처하나 입히지 못했다. 엘프의 도움이 있었다지만 실로 압도적인 전력 차. 몸이 떨릴만한 힘이었다.

“아무튼 암살은 실패했다.”

기사는 그렇게 말하고 침을 탁 뱉었다. 끈적한 가래침이 루베아이라의 방을 더럽혔다.

“.......”

루베아이라는 뭔가 할 말이 많이 있었지만, 이내 입을 다물었다. 일단 기사들이 죽었다. 그것 때문에 루베아이라가 뭔가 말할 입장이 아니게 되었으니까.

쾅!

기사가 밖으로 나가버렸다. 문이 거칠게 닫혔다. 남은 것은 묘한 정적. 루베아이라는 기사가 나간 자리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정말, 뜻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어.”

루베아이라가 긴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로 기사들이 죽을 줄은 몰랐다.

‘그래도........’

기사들이 죽었다는 것은 , 적어도 생포된 사람은 없다는 뜻 아닌가. 아무튼 뒤를 밟히지는 않을 확률이 높다........

하지만 루베아이라의 낙천적인 생각도, 급히 달려온 시녀에 의해 무산되었다. 카르안이 찾아올 때마다 미리 알려달라고 부탁해 놓았던 시녀. 그녀는 루베아이라에게 달려와 급하게 허리를 숙였다.

“루베아이라님.”

시녀가 다급하게 말했다.

“카르안님과 레이카 씨가 저택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3.

놀랍게도 카르안은 흑룡회에 가지 않았다. 대신 백작가 정문을 열고 들어왔다. 물론 품 안에는 텔레포트 스크롤 한 장이 들어있었지만.

“저,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카르안은 백작의 침실을 향해 가려고 했다. 그 사이를 시종이 가로막았지만, 카르안은 거침이 없었다.

“저리 비켜.”

카르안은 무력을 내세우는 대신, 기절한 기사를 보여주었다. 백작가의 기사. 시종도 잘 아는 얼굴이다. 시종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네가 끼어들 일이 아니다.”

기절한 기사를 끌고 여기까지 오다니. 암살에 대해 알지 못하는 시종은 무슨 일인지 감도 안 잡혔다. 다만 한 가지 정확한 게 있었다. 무슨 일이 터졌고, 지금 끼어봐야 좋은 꼴 못 본다는 것이다. 이런 복잡한 일에 휘말리는 것은 피해야 한다.

카르안은 레이카의 안내를 받아, 백작의 침실로 향했다. 중간 중간 사람들을 만났지만, 카르안을 아는 그들이었기에, 아무도 그들을 막지 못했다.

백작의 침실 앞. 레이카는 조용히 그 앞에 섰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문을 두드렸다.

“누, 누군가?”

긴장된 듯한, 백작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레이카가 말했다.

“백작님. 들어가도 괜찮겠습니까?”

“.......”

잠깐의 정적. 백작에게는 이미 익숙한 목소리다. 굳이 이름을 말하지 않더라도, 레이카가 직접 찾아온 것임을 알 수 있었다.

“하하, 이 야심한 밤에 무슨 일인고? 어서 들어오게.”

문이 열리고, 백작과 카르안이 눈을 마주쳤다. 설마 카르안까지 찾아올 것은 예상 못했을까. 백작이 눈에 띄게 당황했다.

거기에 카르안에 묶여있는 기사를 바닥에 던지자, 안 그래도 커진 백작의 눈이 두 배로 확장되었다. 거의 눈알이 튀어나올 것처럼. 그의 심장소리가 방을 울리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카르안 아닌가. 그리고 이건.......”

백작이 어색하게 말했지만, 카르안은 침묵으로 대응했다. 때로는 백 마디 말보다 일분의 침묵이 더 위협적인 것이다.

과연 백작도 아무 말 하지 못했다. 암살을 성공하기는커녕, 실패한 것도 모자라 정체까지 들켰다. 백작은 서둘러 변명해보려 했지만, 이런 상황해서 뭐라고 해야 될지 떠오르질 않는다.

거기에 레이카. 그녀가 알 수 없는 눈으로 백작을 보고 있다. 카르안만 없었다면 최소한의 변명이라도 해 보겠지만, 카르안이 떡하니 버티고 있는데 ‘사실 카르안만 죽이라고 했어. 너한테는 손도 대지 말라고 명령했단다.’ 라고 말할 수도 없었다.

백작 입장에서는 절체절명의 순간.

털썩

“어?”

레이카가 무릎을 꿇었다. 백작은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인가 싶어 헛숨을 들이켰다. 잘못은 자신이 했는데, 왜 레이카가 무릎을 꿇는다는 말인가.

“백작님.”

레이카가 땅에 머리가 닿도록 고개를 숙였다.

“소녀가 잘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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