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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션으로 무한성장 (103)화 (103/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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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단 한쪽을 뚫어야.......”

    레이아라가 다급하게 말했다. 사방에서 암살자들이 달려온다. 이대로 있다가는 완벽하게 포위당해서 불리한 싸움을 하게 된다.

    암살자들은 카르안 일행을 빙 둘러싼 채로, 빠르게 접근했다. 그들은 속으로 승리를 예감했다. 비록 엘프의 예민한 청각에 들키기는 했지만, 지금 이렇게 카르안과 일행들을 포위하는데 성공했다.

    ‘뚫기는. 어림없는 소리.’

    암살자들이 생각했다. 이 포위망은 절대로 부술 수 없다. 그들은 완벽한 연계를 이루어내며, 포위섬멸진(包圍殲滅陣)을 완성하고 있었으니까.

    포위섬멸진이란 동방의 병법으로, 적은 병력으로 많은 적들을 포위해 격파하는 신묘한 용병술이다. 전설에 따르면 300의 병력으로 5000의 적을 포위해 완벽하게 제압하였다고 한다.

    물론 말도 안 되는 개소리였지만, 암살자들은 그 병법을 철석같이 믿었다. 게다가 그 병법을 응용하여 그들만의 포위 법까지 만들어 버렸다.

    “포위섬멸진의 공포를 느껴봐라!”

    가장 먼저 도착한 한명이, 카르안에게 소리치며 달려들었다. 그의 앞을 골렘이 가로막자, 암살자는 호기롭게 오러가 실린 검을 휘둘렀다. 그리고 암살자의 의식이 끊어졌다.

    발밑에서 마법진이 생기더니, 골렘의 주먹이 튀어나온 것이다. 예상치 못한 공격으로, 쇳덩이에 치인 남자는 공중으로 붕 떠올랐다가 다시 땅으로 쳐 박혔다.

    “흐음.”

    카르안이 쓰러진 암살자를 무관심하게 바라보았다. 아래에서의 공격을 예측하지 못한 것을 봐서, 1류 암살자는 아니었다.

    시시하게 쓰러진 암살자보다, 골렘의 소한속도가 빨라진 게 더 신경이 쓰인다.

    뛰어난 암살자들도 반응하지 못할 만큼 빠르게 마법진을 완성한다. 엄청난 속도. 어지간한 공격 마법과는 비교 할 수조차 없는 속도다.

    사실 이건 카르안의 아이디어로 만들어진, 새로운 방식의 소환법이다. 골렘 전체를 소환하는 게 아니라, 주먹이나 발 같은 일부분만 먼저 소환한다.

    골렘도 큰 놈을 소환하는 것보다, 작은 골렘의 소환하는 속도가 더욱 빠르다. 이렇게 부분적으로 소환을 하면, 소환되는 물질의 크기가 전체를 소환한때보다 작아지는 법. 그 덕에 보다 빠르게 골렘의 일부분을 소환할 수 있다.

    골렘의 주먹을 소환한 다음, 그 주먹만으로 상대를 공격한다. 생각보다 쓸 만한 기술이다. 실제로 카르안은 이런 방식을 이용해 싸울 때마다 재미를 보고 있었다.

    “으윽!”

    암살자들이 잠깐 주춤했다. 원래 지금 달려든 암살자가 카르안의 시선을 끌어야 하는데, 한 번에 전투불능이 되어버렸다.

    “뭐하나?”

    카르안이 살짝 빈정거렸다. 하지만 암살자들은 달려드는 대신, 서로의 거리를 벌렸다. 빈 동료의 자리를 채우기 위해서.

    얼굴이 가려져있어 보이지는 않지만, 그들의 등 뒤에는 식은땀이 흐르고 있었다. 암살자중 한명이 속으로 생각했다.

    ‘저걸 어떻게 피하지?’

    그들은 동료가 당한 순간을 눈에 담았다. 허공에 빛이 팍 하고 터지더니, 밑에서 거대한 주먹이 나와 동료를 후려쳤다.

    놀라운 속도였다. 게다가 과연 저 마법진이 땅에서만 나오는지, 혹은 허공에서도 나오는 지 도 알 수 없었다. 만약 사방에서 튀어나온다면, 바닥뿐만 아니라 사방을 경계해야 했다.

    ‘쉽게 안 들어오는군.’

    카르안이 생각했다. 동료가 허무하게 당하는 것을 보자마자, 저들은 제법 당황한 것 같다.

    카르안은 다시 한 번 쇠주먹을 소환하려 했지만, 이내 생각을 접었다. 처음 일격은 상대가 몰랐기에 당한거지, 저렇게 대비하고 있는데 공격이 먹힐 것 같지는 않다.

    “와.........”

    레이카가 입을 헤 벌렸다. 분명 카르안은 연금술사. 그런데 암살자 하나를 순식간에 골로 보냈다.

    ‘역시, 소문은 진짜?’

    그녀의 상상대로, 소문은 과장이 아니었을까. 카르안이 싸우는 모습은 처음 보는데, 결코 평범한 수준이 아니었다. 암살자들도 쉽게 달려들지 못하고 있다.

    역시 사인 받아두길 잘했지. 서큐버스가 속으로 생각했다.

    “활만 있었어도.........”

    이런 상황에서도 철없는 상상을 하는 레이카와 다르게, 레이아라는 이를 악 물었다. 그녀는 지금 술집에서 일하다가 오는 길이다. 당연히 평소에 애용하던 대형 활 같은 것은 안 들고 있다.

    하다못해 단궁이라도 있었다면, 이런 대치 상황에서 두 명 정도는 묶어둘 수 있을 것이다. 저들은 근거리 무기를 든 암살자지만, 레이아라는 엘프. 도시의 복잡한 지형을 이용해, 거리를 벌리며 단궁만 쏴도 상대하기 까다롭다.

    그런데 지금 그런 무기는 없다. 공격할 수 있는 것은 배워둔 공격마법 몇 개 뿐. 주특기인 활에 비해 공격력이 현저히 떨어진다.

    “찢어 죽일 놈!”

    암살자 한명이 어정쩡한 흐름을 깨려는 듯 소리쳤다. 그의 사자후에 태세를 정비한 암살자들은, 다시 사방에서 달려들었다.

    “제가 시간을 끌 테니까!”

    레이아라가 모든 마나를 퍼부어서 큰 공격마법을 쏟아냈다. 허공에서 생성된 마나의 화살 40여발이 사방으로 펴져나간다.

    그 화살들은 마치 생명이 깃든 것처럼 암살자의 심장을 향해 달려갔다. 일직선으로 움직이는 게 아니라, 레이아라의 의지에 따라 적들에게 유도되는 화살이다.

    과연 모든 마나를 퍼부은 만큼 효과는 강렬했다. 5명에게 골고루 날아간 화살이 암살자를 강타했고, 그들은 검을 세워 버티려했지만 충격파에 밀리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검과 화살이 부딪혔고, 충격에 의해 그들의 몸이 위로 떠올랐다.

    “으윽!”

    그들의 공중에 붕 뜬 순간, 카르안의 골렘이 전부 소환되었다. 지금까지 레이카와 레이아라를 지키기 위해 방어적인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거리가 벌어진 지금은 과감하게 움직인다. 땅을 울리는 굉음과 함께 총 4기의 골렘이 암살자들을 하나씩 물었다.

    “이런!”

    한명은 달려오는 골렘을 향해 오러를 휘둘렀지만, 골렘의 팔이 조금 우그러들었을 뿐 돌격은 멈추지 않았다.

    ‘으어어!’

    암살자들이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골렘을 상대하려면, 날렵하게 움직이며 치고 빠져야 한다. 일단 힘싸움이 되면 도저히 이길 방도가 없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피할 수가 없다. 몸이 공중에 붕 떠있는데, 대체 무슨 수로 움직인다는 말인가. 그들은 물에 빠진 맥주병처럼 허공에서 발을 붕붕 굴렸지만, 위치는 변하지 않았다.

    “버텨!”

    암살자중 하나가 소리쳤다. 어차피 피하지 못하면, 온 몸에 기력을 모아 버티는 수밖에 없다. 방어 대신 검을 휘두른 암살자를 제외하고, 3명의 암살자는 검과 창을 몸 앞에 세워둔 채 충격에 대비했다.

    “멍청이.”

    카르안이 가소롭다는 듯 웃었다. 저들에게는 최선의 선택이지만, 애초부터 골렘 앞에서 틈을 보이면 안 되었다. 골렘의 돌격이란 불가항력 앞에서는, 최선의 선택은 의미가 없어진다!

    퍼어어억!

    망치로 고기를 힘껏 치면 이런 소리가 날까. 거대한 쇳덩이에 정면충돌한 암살자들은, 깜짝 놀랄 속도로 튕겨나가 건물에 쳐 박혀 버렸다.

    아이언 골렘과 정면충돌. 최강의 근력을 자랑하는 오우거도 못할 짓이다. 용기 있게 골렘들과 몸통박치기를 한 암살자들은, 인간에서 ‘형체를 알 수 없는 고깃덩이’로 변하는 기염을 토했다.

    “어어?”

    반면 골렘의 공격을 받지 않은 한명의 암살자. 그의 천 위로 드러난 눈이 껌뻑거렸다. 엘프의 공격을 받고, 막고 나서 땅에 착지하니 동료들이 전부 사라져있다.

    그는 빠르게 상황을 파악했다. 지금 당장 돌격해야 한다. 골렘들은 카르안 일행으로부터 떨어져있고, 엘프는 강한 공격으로 힘이 빠져서 숨만 헐떡이고 있다. 저 골렘들이 돌아온다면 정말 답도 없는 상황이 펼쳐질 것이다.

    하지만, 머리로는 알고 있는데 몸이 안 움직인다. 저 골렘 4기가 전부인지도 모르겠고, 또다시 허공에서 뭔가 나타날 수도 있다. 약간의 고민. 결단은 빨랐다.

    “두, 두고 보자!”

    암살자는 악당의 전용 멘트를 한번 던져준 다음 후다닥 도망쳤다. 과연 발 하나는 빨랐다. 순식간에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으니까.

    “안 잡아요?”

    “저걸 어떻게 잡아.”

    레이아라의 말에, 카르안이 김빠지는 목소리로 말했다. 생각이 좀 모자라기는 해도, 육체적 능력만큼은 만만치가 않다. 작정하고 도망치면 그로서는 따라잡을 방도가 없는 것.

    근력을 믿고 뛰려해도, 몸에 걸린 불치병 때문에 길게 뛸 수가 없다. 레이아라는 힘을 전부 소비한데다가, 따라간다해도 무기가 없지 않은가. 오히려 역으로 당할 수가 있다. 레이카는........ 말할 것도 없었고.

    “어차피 한 놈 남았으니.”

    카르안은 처음 주먹에 맞은 암살자에게 다가갔다. 완전히 박살난 동료들과 다르게, 그는 다리가 부러지고 의식을 잃은 정도에 그쳤다. 숨은 잘 쉬고 있기에, 죽거나 하지는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야. 일어나라.”

    카르안이 암살자의 검은 복면을 쑤욱 벗겼다. 그 안에 있는 것은 중년 남자. 의식을 잃은 듯 눈을 까뒤집고 있다. 레이아라가 심각하게 중얼거렸다.

    “저들은 암살자가 아니에요.”

    “어? 왜요?”

    레이카가 이상하다는 듯 말했다. 검은 복면에 무기를 들고 습격한다. 이게 암살자가 아니라고?

    “전문적인 암살자가 아니라는 뜻이에요.”

    레이아라는 긴 용병생활을 하며 여러 암살자를 만났다. 그 중 오러를 사용할 정도로 뛰어난 암살자도 있었다.

    그들은 결코 지금의 암살자들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사기를 돋우기 위해 고함을 지르는 일은 하지 않고, 동료 한명이 당했다고 주춤하거나 하지 않는다.

    암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시간이다. 특히 이렇게 도시 한복판에서 습격할 때는 빨리 타켓을 제거하고 도망쳐야 한다. 그런데 이렇게 시간을 질질 끌다가 소리치며 돌격하다니.

    “무기도 암살자의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암살자들은 장검이나 단창보다는, 작은 독침이나 암기류를 즐겨 사용한다. 혹은 검게 칠한 화살 등. 밤에 시야가 제한된 상황에서, 극도의 효율성을 자랑하는 무기들.

    게다가 결정적으로 포위섬멸진 같은 괴랄한 기술은 사용하지 않는다. 레이아라는 이런 상황에서도 침착하게 상황을 분석하는데 성공했다. 그녀의 눈이 총명하게 빛났다.

    “지금 그들의 방식은.......”

    “기사로군.”

    카르안이 말을 끊었다. 마치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는 것처럼.

    “알고 계셨어요? 어떻게?”

    “그야.......”

    혹시 자신과 같은 생각을 한 것일까. 레이아라가 속으로 약간 놀랐다. 하지만 그녀의 기대와 다르게, 카르안은 그런 것까지는 알지 못했다. 그는 용병 생활은커녕, 아직 이곳 생활도 오래되지 않았다. 오로지 필요한 지식만 있을 뿐. 경험은 적으니까.

    다만, 레이아라가 모르는 것을 알고 있기도 했다.

    “얘 어제 백작가 안에서 만났거든.”

    “........”

    “갑옷도 입고 있던데?”

    복잡하게 생각할 것도 없었다. 복면을 벗겨보니, 그가 자주 들리던 백작가에서 만나던 기사였다. 알페라츠 백작가에 가본 적이 없는 레이아라는 알 길이 없었지만.

    “으으윽.......”

    그 순간, 정신을 잃었던 기사의 눈이 또르륵 돌아왔다. 과연 기사다운 체력. 큰 충격에 정신을 잃었지만, 금세 회복한다.

    “이, 이놈들!”

    그는 황급히 일어서려다, 자신의 양 다리가 부러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곡소리를 내며 다지 주저앉았다.

    게다가 레이카가 검도 치우고, 팔도 뒤로 묶어놓았다. 기사는 스스로 무력화된 것을 눈치 채고, 분한 듯 소리쳤다.

    “이놈들, 감히 기사를 무릎 꿇게 하다니!”

    “아니, 니 다리가 부러진 건데........”

    “이런 굴욕은 용납 못한다. 나를 죽여라!”

    기사가 벌게진 얼굴로 소리쳤다. 하지만 주변의 반응이 영 싸늘하다. 카르안이나 레이아라는 그를 한심한 표정으로 보고 있었고, 레이카도 쯧쯧 하며 혀를 찼다. 오직 흥분한건 기사 뿐.

    “네놈들이 무슨 고문을 한다고 해도, 나는 입 하나 뻥긋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자랑스러운 백작가의 기사로써.......”

    “들었지? 내 말이 맞다니까.”

    고문하지 않아도 스스로 정체를 까발린 기사는, 잠시 아차 싶은 표정을 지었다. 너무 흥분해서 안 해도 될 말까지 해버렸다.

    “다 알고 있는 거 굳이 확인시켜줘서 고맙다. 지금처럼 한번만 더 대답해 주면 더 고마울 것 같고. 백작이 보냈냐?”

    “그럴 리가 있나!”

    “그러면 역시 루베이아라가 보냈군.”

    “.......그럴 리가 있나!”

    카르안이 한숨을 푹 쉬었다. 그리고 주먹을 꽉 쥐었다.

    “너 거짓말은 안하고 살았겠구나. 정직해서 좋겠네.”

    빠직.

    기사가 인중을 맞고 다시 한 번 기절했다. 카르안은 주먹을 호호 불며 말했다.

    “루베아이라가 보냈다는데.”

    “그러면 어쩌죠?”

    “뭐긴. 저놈을 잘 굴려야지.”

    카르안은 기절한 기사를 내려다보았다. 기절한 그의 표정은, 조금 맹해 보이기도 하고 편해보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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