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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션으로 무한성장 (101)화 (10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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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주 그냥 난리도 아니었죠.”

    대장간의 주인, 로어스는 아련한 눈빛으로 과거를 회상했다. 어제 저녁 있었던 일이다. 그는 대장간 문을 닫고, 술을 조금 마신 다음 길거리를 걷고 있었다.

    집으로 향하는 길. 맥주를 몇 잔 마셨는데도, 평소 같은 기분 좋은 피로가 찾아오질 않는다. 지나치게 좋은 체력 덕분이다. 술 몇 잔으로는 끄떡도 없다.

    “젠장. 너무 빈둥거렸나.”

    그는 괜히 단단한 근육이 붙은 팔뚝을 만지작거렸다. 대장장이 외길인생 40년. 어린 시절부터 계속 이 일만 해왔다.

    하루 종일 뜨거운 곳에서 망치질을 한 덕분에, 체력 하나는 용병 못지않게 강하다. 그런 성실한 생활에 익숙해진 탓일까.

    일을 해서 땀을 좀 빼지 않으면, 잠이 올 생각을 안 한다. 오늘처럼 말이다. 로어스는 오늘 오전부터 피곤하다는 핑계로 부하들만 부려먹었다.

    “꿈자리가 사나워서 영.”

    어제 잠을 설친 게 문제였다. 평소였다면 성실한 대장장이답게 부하이자 제자들을 지휘했겠지만, 몸을 짓누르는 피로가 그 속에 잠들어있던 게으름을 깨워내었다.

    어차피 대장간의 주인은 로어스고, 그 밑에 일하는 대장장이를 키워낸 것도 로어스다. 스승이 농땡이 좀 피운다고 뭐라고 할 간 큰 제자는 없는 것이다.

    그 덕분에 로어스는 하루 종일 대장간 구석에서 낮잠만 자다가왔다. 그렇게 늘어지게 지내고 나니, 밤이 되도 도무지 피로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술이 좀 약한가.”

    그는 괜스레 투덜거렸다. 술을 더 마시려고 해도, 입에 딱 당기지가 않는다. 술을 또 마시려 해도 혼자 먹어야하기 때문. 평생을 장인으로 살아온 대장장이에게는 가족도, 친구도 없었다. 강철을 친구삼고 화롯불을 연인삼아 대장장이라는 고독한 길을 걸어왔다.

    ‘에휴. 개뿔이.’

    그는 한숨을 푹 쉬었다. 제자들은 전부 피로에 절어 집으로 갔고, 마을에는 함께 술을 마실 만큼 친한 사람도 없다. 그는 씁쓸한 공기를 마시며 집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그런 로어스 옆으로, 한 무리의 술 취한 사내들이 지나갔다.

    그들은 술에 얼큰하게 취했는지, 어깨동무를 한 채 크게 떠들어댔다.

    “야. 이건 흑룡회에서 일하는 친구에게 들은 건데, 지금 90번 길에 유곽알지? 거기 굉장한 신인이 나타났대.”

    “뭐! 엄청 예쁜가보지?”

    “그냥 예쁜 정도가 아니야. 무려 서큐버스란다. 서큐버스.”

    “에이. 구라를 쳐도 말이 되게 쳐야지. 마족이 여기에 왜와?”

    “진짜라니까.”

    “그럼 가보지 그래? 우리가 언제 한번 서큐버스를 안아보겠냐.”

    “비싸니까 못가지.........”

    남자들은 로어스를 지나쳐 어디론가 가 버렸다. 하지만 로어스는,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멈춰 섰다.

    “서큐버스?”

    그의 침이 꼴깍 넘어간다. 알페라츠 백작령 토박이인 로어스는 생전 마족을 본 적도 없었다. 오직 이야기를 통해 들었을 뿐이다.

    강인한 전사 라이칸스로프. 마법종족 뱀파이어. 그 외에도 괴력을 가진 오우거등 여러 마족들을 알았지만, 그가 가장 보고 싶은 것은 몽마 서큐버스였다.

    ‘대체 서큐버스와 하면....... 무슨 느낌이 들까?’

    결혼은 안했지만, 여자와 몸을 섞은 적은 여러 번 있다. 당연히 그녀들은 전부 같은 인간. 다른 종족과 밤을 지낸다는 것은, 그에게는 한 번도 일어나지 않은 일이었다.

    “까짓것. 한번 가봐?”

    로어스는 잠깐 망설였다. 만약 저 술주정뱅이 놈이 한 말이 전부 허풍일수도 있다. 혹은 정말일수도.

    “그래. 속는 셈 치고 가보지.”

    어차피 여기서 얼마 걸리지도 않는다. 로어스는 집으로 향하는 길에서, 화려한 마법석이 빛나는 유흥가로 발걸음을 돌렸다.

    어차피 그는 결혼을 하지 않아 가족도 없다. 그리고 당장 사귀는 연인조차 없다. 생각해보니 서글펐지만, 그렇기에 유곽 좀 들린다고 큰 문제가 되겠는가.

    서큐버스의 몸값이 비싸다고 해도, 그는 백작령에서 가장 큰 대장간의 주인이다. 거기에 요즘 카르안이 많은 주문을 해줘서 일거리도 넘치는 상황. 돈은 한가득 쌓여있는데, 물려줄 자식도 없다.

    ‘가끔은 이런 일탈도 괜찮겠지.’

    평소 이런 유흥을 많이 즐기지 않는 로어스. 그는 마치 모험을 하는듯한 기분을 느꼈다, 그는 악동이 된 듯한 두근거림을 느끼며, 사내들이 떠들어대던 90번 길가로 향했다.

    2.

    “그래서?”

    카르안이 침을 꿀꺽 삼켰다. 자기도 모르게 로어스의 이야기에 몰입했다. 대장장이는 껄껄 웃으며 카르안의 두 어깨를 두드렸다.

    “아주 난리도 아니었지요. 레이카 라는 서큐버스였는데, 저는 아주 그냥.......그날 죽는 줄 알았습니다.”

    “대체 뭔 짓을 당했던 건가요?”

    “그게, 빨리고, 또 빨렸지요. 크......요~망한 것.......”

    그는 마치 무용담을 이야기하는 용병처럼 말했다. 아무래도 이 대장장이에게는, 비싼 돈을 주고라도 마족을 안아본 것이 큰 자랑거리가 된 듯 했다.

    확실히 보통 사람이 마족을 안는 일을 드문 일이다. 로어스는 지친것도 잊고 신나서 말했다.

    “처음에는 어려보이고, 하는 짓도 엄청 순진해 보였거든요. 근데 나중에 보니까 다 내숭이었어. 내숭.”

    “그게 전부 연기라고요?”

    “나도 젊은 날에는 여자들을 많이 사귀어봤는데, 이런 무시무시한 요물은 처음이외다. 아주 남자를 기사가 검 다루듯 능숙하게 다룬다니까.”

    ‘음.’

    카르안은 허둥거리던 레이카를 떠올렸다. 뜬금없이 백치미를 발산하던 소녀. 처음에는 뭔가 잘못된 줄 알았다.

    ‘전부 다 연기였다는 말인가.’

    그러니까 순진한 소녀처럼 보이기 위한 위장. 백작가로 들어가면서부터 보여준 모습이다. 그러니까 백작이 없더라도 혼자서 그런 모습을 보인 것. 실로 프로다운 모습 아닌가.

    아무래도 레이카는 어려보이는 얼굴을 이용해 청순한 여성인척을 할 생각 같았다. 과연 먹힐지는 모르겠지만, 저 로어스의 강렬한 반응을 보니 조금 희망이 피어난다.

    “아무튼 고생 많았어요.”

    카르안이 얼떨떨하게 말하자, 로어스는 뻐근한 어깨를 두들겼다. 그러더니 카르안에게 한쪽을 가리켰다.

    “저도 모르게 말이 길어졌군요. 잡담은 여기까지 하고, 일단 맡겨둔 골렘의 수리는 전부 끝났습니다.”

    “아.”

    카르안이 짧게 감탄했다. 크고 작은 파괴를 당했던 카르안의 골렘들은, 이제 완전히 자기 모습을 찾는데 성공했다.

    ‘이제 예전 전력은 되찾았군.’

    깊은 안정감이 느껴진다. 지금까지는 중형 골렘 한기만 보유하고 있었기에 상당히 불안했는데, 이제는 예전만큼 골렘을 활용할 수 있다.

    “그리고, 전에 주문한 것들은?”

    “예. 일단 중형 골렘 다섯 기는 제작중입니다. 요즘 철도 좀 부족하고 해서.”

    로어스는 그러면서 헛기침을 몇 번 했다. 재료비가 올랐다. 보수를 조금 더 달라는 무언의 시위.

    하지만 카르안은 시치미를 때며 다른 곳을 봤다. 아쉽게도 지금 카르안은, 돈쓸 곳이 많이 있었다. 예전처럼 펑펑 금화를 뿌리고 다닐 수는 없으니까. 로어스도 자신이 괜한 요구를 했다는 것을 눈치 챘다.

    “하하. 그리고 이건, 말씀하신 인간 크기의 골렘입니다.”

    로어스는 멋쩍게 웃으면서 카르안을 다음 공간으로 안내했다. 거기에는 플레이트 아머같이 생긴 갑옷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하지만 단순한 갑옷이 아니다. 치프의 연금술을 적용시킬 골렘들. 그것을 위해 인간 크기와 비슷하게 만들었다.

    거대한 골렘에 카라나리의 검술을 넣는 계획은, 아쉽게도 무위로 돌아갔다. 지금 치프의 기술로는, 비슷한 크기와 체형의 상대가 익힌 무술밖에 복제하지 못했다.

    카르안의 기술력과 치프의 연구로 어느 정도 보정이 가능하기는 하지만, 키 작은 소녀의 검술을 2미터가 넘고, 인간과 전혀 다른 체형을 가진 골렘이 구사하게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키는 그렇다 치더라도, 몸의 형태가 너무 틀리다. 만약 여기 카라나리의 검술을 새겨 넣으면, 자기 몸도 주체 못하고 버벅거릴 것이다.

    반면 이 소형 골렘은, 인간과 아주 흡사한 구조를 하고 있다.

    “카라나리의 검술을 여기에 접목시킨다. 그리고 부품을 강화해서.......”

    카르안은 작게 중얼거렸다. 카라나리의 전투력의 70퍼센트. 이 전투골렘 2기는 단순한 골렘에서 나중에는 카라나리의 그림자가 될 것이다.

    ‘완벽하진 않아.’

    단점도 있다. 카라나라가 사용하는 동방검법 화룡검(火龍劍). 그 위력은 상상을 초월할 만큼 압도적이지만, 이 골렘들이 사용할 수는 없다.

    동방 검법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내공(內功)이 필요하다. 카라나리는 독특하게도 마나를 운용하여 내공을 대신했지만, 이 골렘들에게는 그 마나조차 없다.

    정확히 말하자면 부족하다. 아무리 정교하더라도 금속과 마나회로로 이루어진 쇳덩이. 인간의 몸에 흐르는 오묘한 기운을 여기에 전부 담을 수는 없다.

    그리고 이건 카르안이 모르는 사실이지만, 마나가 있다고 초식을 소화하기 위해서는 그 기운이 통할 길이 필요하다. 설령 악마의 진주로 마나를 쑤셔 박는다 하더라도, 생명체의 몸과 비슷한 통로를 구현해낼 수 없다면, 말짱 도루묵.

    ‘그래도 나쁘지는 않지.’

    고급기술을 사용하지 않는 카라나리. 그 정도로 생각하면 된다. 그녀는 기본적인 검술만 해도 위협적이었으니, 골렘에 부족하지 않다.

    “그나저나 나으리. 이건 뭐에 쓰려고 만든 겁니까?”

    “그냥 작은 골렘입니다.”

    “아뇨. 역시 골렘은 크기가 커야 제 힘을 내지 않겠습니까. 이렇게 가느다라면.......”

    로어스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도 지금까지 여러 가지 골렘을 만들어왔고, 당연히 그에 대한 지식도 뛰어나다.

    일단 골렘이라는 건 움직임이 단순하고 둔한 대신에, 두터운 장갑과 압도적인 힘으로 그 단검을 가리는 것이다.

    그렇기에 지금까지 만들어진 카르안의 골렘들도 최소한 높이 2미터, 몸통은 두껍게 만들어졌다. 몸통 안에 골렘을 움직이게 할 내용물을 넉넉히 넣을 수 있도록.

    하지만 지금 카르안이 주문 제작한 골렘은 파워와 묵직함 모두를 상실했다. 그렇다면 장점이 있어야 하는데, 이 골렘은 기동성이 좋을 것 같지도 않다.

    그건 그냥 골렘의 한계. 고급 재료 이더리움을 넣으면 되겠지만, 아직까지 카르안은 이더리움을 다를 정도의 경지에 오르지 못했다.

    “다 이유가 있지요.”

    카르안은 알 듯 말 듯한 미소를 지었다.

    “이제 이 골렘은, 인간처럼 움직일 겁니다.”

    카라나리의 검술을 익힌 이 골렘은, 움직임은 느려도 최대한 효율적인 움직임을 보여줄 것이다. 검을 든 채로 말이다.

    마치 강철로 이루어진 기사 같다. 중형과 대형 골렘이 큰 게 전장을 흔든다면, 이 인간형 골렘들은 날쌘 적들을 막는 용도로 사용될 것이다.

    거기에 한때 작은 조각 하나에 100골드가 넘어갔던 전설적인 금속, 이더리움이 추가한다면 정말로 카라나리와 유사한 움직임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거....... 대단하군요.”

    로어스는 감탄해야한지 빈정대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 확실히 지금까지 카르안이 보여준 모습들이 놀랍기는 했다.

    젊은 나리로 대형 골렘과 중형 골렘을 동시에 움직인다. 이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는 골렘을 만들어온 로어스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인간처럼 움직이는 골렘이 가능할까. 거기까지는 잘 모르겠다. 상상도 하기 어려웠으니까.

    “뭐, 나으리가 그렇다면 맞는 거겠죠.”

    로어스는 속 편하게 말했다. 어차피 그는 철을 두들기는 대장장이. 골렘을 만들기는 하지만, 연금술사만큼 골렘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한다. 역시 모르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 카르안이 로어스에게 말했다.

    “아무튼 수고했어요.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살펴가세요. 허허허허.......”

    로어스는 아직도 피곤한지 길게 하품을 했다. 카르안은 수리비를 낸 후, 골렘들을 아공간으로 이동시켰다.

    “그나저나 저 커다란 골렘이 없어지다니, 혹시 다른 것은 그렇게 못 합니까?”

    “그러면 가방을 들고 다닐 필요도 없겠죠.”

    골렘을 아공간에 보관하는 마법. 무르짐이 만들고 벨트리가 쉽게 풀어쓴 것이다. 골렘술사들이 혼자 거대한 골렘을 들고 나닐 수가 없기에, 그 거대한 결점을 막은 위대한 발명이었다.

    단점은 전투회로를 새기고 특수한 연금술적 처리를 한 물건들만 가능 하다는 것. 그래서 연금술사들은 보통 골렘에 그 작업을 해 둔다.

    이 마법이 나오기 전에는, 군부대에 골렘을 보관해놓거나, 병사들이 수레에 싣고 이동했다. 그러다 전투가 시작되면 골렘을 다루는 방식. 엄청나게 비효율적이었다.

    이 마법이 생긴 뒤로, 골렘술사들의 전술적 활용도가 더욱 올라가게 되었다.

    카르안은 인간형 골렘들을 다시 한 번 점검한 후, 대장간을 나왔다. 해가 깜깜하게 진 저녁. 일은 이미 끝났으니, 집에 갈 시간이다.

    오늘 할 일은 모두 마쳤다. 카르안은 달빛을 보며 중얼거렸다.

    “레이카가 잘 해줬으면 좋겠군.”

    카르안의 계획에서, 레이카는 폭풍의 눈이었다. 한없이 작고 고요하지만, 모든 것을 집어삼킬 태풍의 중심에 있는.

    이제 곧, 거대한 폭풍이 불 것이다. 그러면 많은 것들이 바뀌겠지. 과연 어떻게 바뀔지. 카르안도 완벽하게 예측할 수는 없었다…….

    ========== 작품 후기 ==========

    이더리움......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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