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포션으로 무한성장 (99)화 (99/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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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둠마저 짓누르는 압도적인 힘!

    마족의 제국에서, 검은 드래곤이 눈을 떴다. 그러자 기괴하며, 오묘한 안광이 빛을 내기 시작했다. 눈에 다른 무언가가 비치는 게 아니라, 눈 자체가 광원인 것이다.

    어둠의 지배자가 눈을 뜨자, 주변을 모든 것들이 몸을 떨었다. 생물이건 무생물이건, 그의 압도적인 힘 앞에서는 공포를 느끼는 것일까.

    거대한 크기의 드래곤이다. 그의 눈알 하나만해도 평범한 인간의 모습을 한 노인보다 훨씬 거대할 만큼.

    주변이 떨린다. 흔들거리는 공간을 보자 보스가 깜짝 놀라 소리쳤다.

    “악! 내 눈!”

    “.......”

    “미친놈이 껌껌한 곳에서 갑자기 눈뽕을 때려?!”

    드래곤은 말없이 노인을 내려 봤다. 감히 오펜바흐의 지배자, 마족의 황제에게 그런 막말을 하다니. 당장 목이 달아나도 이상할게 없다. 아마 황제 옆에 충실한 신하가 있었다면, 당장 노인에게 달려들었겠지.

    하지만 그들 옆에는 아무도 없었다. 황제와 단둘이 이야기를 나눈다. 이 검은 드래곤과의 독대는 어지간한 왕국의 국왕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다만, 그의 오랜 친구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오랜 친우, 흑룡회의 보스가 욕을 해도, 드래곤은 화를 내기는커녕 덤덤하게 보고만 있었다. 드래곤이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무슨 일로 찾아온 거지.”

    “너도 알고 있을 텐데.”

    보스가 눈을 비비며 중얼거렸다. 알샤인 교단의 추락. 몰락할 정도로 심한 타격을 입은 것은 아니지만, 도저히 작은 피해라고 할 수 없었다. 드래곤과 노인 모두 그 사실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고, 서로 의견을 나누기 위해 일부러 이곳까지 왔다.

    황제가 잠시 침묵했다. 생각을 정리한 후에야, 드래곤은 입을 열었다. 앉고 웅장한 목소리가 거대한 공간 안에 울려 퍼졌다.

    “알샤인 교단에 침투할 때, 너의 수하도 있었다고 들었다.”

    “그래. 카르안이란 녀석이지.”

    “그놈에 대해 알고 있나?”

    “얼굴까지 봤는데 뭐. 똘똘한 녀석이야. 유능하고.”

    일개 조직원까지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지부장과 부 지부장정도는 알고 있다. 노인은 몇 달 전에 봤던 카르안이란 남자를 떠올렸다.

    자신을 놀라게 한 몇 안 되는 사람. 까다롭던 카라나리를 자기 사람으로 만들고. 대담하게도 그의 기대를 충족시켰다.

    ‘그때는 검사 아가씨더니 이번에는 교주인가. 어쩌면 연금술보다 사람 끄는 재주가 더 뛰어날지도 모르겠군.’

    노인이 생각하기에는 카르안이 그쪽으로도 재능이 있어보였다. 카라나리야 일개 용병이지만, 예드프리어는 급이 다른 거물 아닌가.

    “쓸 만한 부하인가 보군.”

    드래곤이 말했다. 뮤프리드의 기사들과 함께 라지만, 알샤인 교단을 털고도 무사하다. 어지간한 능력으론 힘들 것이다. 하지만 보스는 부정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냥 업혀간 거겠지.”

    카르안을 과소평가할 생각은 없지만. 그것과 이것은 다른 이야기.

    일단 카르안과 예드프리어는 그 급이 너무 차이가 난다. 예드프리어는 악마의 왕좌에 앉은 그에게도 유효타를 입힐 수 있는 강자다.

    반면 카르안은 지부장도 아닌 부 지부장에 불과하다. 둘의 차이는 고양이와 호랑이만큼 벌어져 있는 것이다.

    ‘게다가 전사도 아니고 말이야.’

    카르안의 직업적 한계. 연금술사는 마법사보다 전투력이 떨어진다. 사이프카르에게 근황을 들어보니 요즘 골렘을 만들기는 한다는데. 그조차도 한계가 있지 않은가.

    대체 왜 그가 예드프리어와 함께 싸웠는지는 모르겠지만. 중요한 전투에서 큰 역할을 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골렘들로 잡병들을 막아 준다던가. 그 정도에 그쳤겠지.

    “나의 백성들은 아주 즐거워하던데.”

    “착각한 거야. 그는 그렇게 대단한 놈이 아니다.”

    황제와 보스. 그들도 마족사회의 이야기는 알고 있다. 예드프리어와 그의 정예병들이 흑룡회의 인간과 알샤인을 공격한 사실. 평소에 원수처럼 여기던 알샤인이 크게 한방 먹자, 이야기는 날개를 타고 도시 전체를 술렁이게 만들었다.

    뮤프리드 교단이야 워낙 강력했으니 활약해도 특이할게 없다. 반면 이름 모를 사나이는 궁금증을 증폭시키기 충분. 그들은 그 흑룡회의 사나이가 실은 힘을 숨긴 실력자가 아닐까, 하며 멋대로 상상하고 있었다.

    “재능은 있지만 그만한 실력자는 아니야. 몇 년쯤 지나면 크게 될지도 모르겠지만.”

    아쉽게도 보스는 카르안의 전력을 자세히 알고있지 않았다. 그가 어느 정도의 골렘술사인지, 또한 이미 연금술사의 약점을 해결하고 있다는 것도. 그저 아이언 골렘을 만진다. 이 정도밖에 모르고 있다.

    황제는 노인의 의견을 받아들였다. 카르안. 그는 별 영향력이 없다. 드래곤은 다시 생각을 정리했다.

    “그런데 말이야. 알샤인이 당한 것. 그게 꼭 좋은 것 인지는 모르겠군.”

    “무슨 소리야.”

    “너도 알다시피, 알샤인은 그 어떤 신보다 ‘안식’을 막는데 힘을 쏟았다. 그리고 그의 교단은, 알샤인의 영향력을 행사하게 만들어주는 도구라고 할 수 있지.”

    “하고 싶은 말이 뭐야.”

    “알샤인의 팔을 자른 게. 과연 좋은 일인가 하는 거다.”

    그 밀에 노인의 얼굴이 씰룩였다. 대놓고 화를 내지는 않았지만. 분노를 참는 기색이 역력하다.

    “지금 그놈들을 긍정하는 것인가.”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한다. 너는 노인의 탈을 쓰고 있으면서. 쓸데없이 감정적이야. 조금 냉정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네.”

    노인은 입가를 이죽거렸지만, 드래곤은 태산처럼 굳건한 기세로 서 있을 뿐이었다. 보스는 잠시 화를 누르고, 침착하게 말했다.

    “그놈들의 힘으로 막을 수 있는 멸망이었으면, 애초부터 우리가 겁먹을 필요도 없었다. 알샤인 놈들은 우리에게 피해만 끼치는 해충에 불과하지.”

    “그건 대화를 해봐야 안다. 손 하나가 아쉬운 상황이야.”

    “하, 알샤인 교단이 우리를 도울 것 같나? 드래곤도 오래 살다보니 노망이 나는가보군.”

    처음부터 알샤인과 마족은 섞일 수 없는 존재. 다가올 멸망을 막는다는 공통된 목적이 있더라도, 서로 힘을 합칠 일은 없을 것이다.

    보스는 그 사실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마족들이 빛을 증오하듯, 알샤인의 종놈들은 어둠을 거부한다. 정말 당장 눈앞에 멸망이 닥치면 모르겠지만.

    ‘아직 시간이 남았지.’

    몇 년의 유예기간. 그 시간동안 알샤인은 마족들을 제거하려 할 것이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백번 양보해서 알샤인이 ‘안식’을 저지할 힘을 가진다해도, 어차피 그 뒤는 자신들과 싸우게 된다. 멸망과 별개로, 둘 중 하나는 끝을 봐야하니까. 세상이 망하건 마족이 망하건, 당하는 입장에서는 똑같은 것 아닌가.

    “이번 공격은 아마 알샤인의 인간병기들, 그들과 관련이 있을 거다.”

    황제가 말했다. 그의 눈동자가 깊게 빛나기 시작한다. 이미 그는 엘프들을 공격한 게 알샤인 교단이라는 것도, 그 괴물들의 정체가 교단에서 인체실험으로 양산해낸 괴생명체라는 것도 알고 있다.

    그 정보를 바탕으로 생각했을 때, 결국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사도들을 더욱 강화시키는 것 뿐이다. 물론 이 이성적인 블랙 드래곤도 세상 모든 것을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라, 정확히 교단 안에 뭐가 일어났는지는 알 도리가 없었지만.

    그래도 알샤인의 사도들이 몇 백 년에 한번 나올법한 걸작이라는 것은 알고 있다. 우연과 노력, 자금이 모두 합쳐져서 완성된 작품. 그런 걸작을 알샤인 교단이 한순간에 개발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남은 것은 이미 있는 사도를 강화시키는 것.

    세상 일이라는 게 항상 예상대로 굴러가는 건 아니지만, 대부분은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미래를 알 수 있는 법이다.

    아직 뮤프리드 교단은 침묵하고 있지만, 그 둘은 평소에 적대적인 관계가 아니었다. 마치 소 닭보듯 무심한 관계.

    그런데 갑자기 예드프리어가 최측근들을 전부 끌고 쳐들어간다? 이성적인 판단이 아니다. 드래곤의 안목으로 예드프리어는 싸움에 미친 전쟁광이 아니고, 어지간하면 평화적인 해결책을 앞세우는 냉정한 남자다.

    또한 결단력이 아주 뛰어난 기사라는 것도 알고 있다. 드래곤은 깊은 숨을 들이쉬었다. 주변의 공기가 잔잔히 빨려 들어갔다.

    “예드프리어가 판단하기에도 문제가 될 만한 일이 있었던 거다. 그리고 그런 위급한 일은 교단의 사도와 관련된 일뿐. 마지막으로 자네 부하가 그와 함께한 이유는 그 교단의 정보를 얻은 것이겠지.”

    “어떻게?”

    “수단은 중요하지 않다. 세상에는 변수가 너무 많아. 결과만 보고 판단해라.”

    카르안이 그 귀한 정보를 얻은 것. 정말 말 그대로 우연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게 뭐가 중요한가?

    이미 황제는 카르안에 대한 가능성을 최소화했다. 그 앞의 노인이 한 말 때문이다. 별로 영향력 없는 변수. 그게 황제가 생각하는 카르안이었다.

    “그래. 자네가 그렇다면 뭐. 그런 거겠지.”

    황제의 진중한 분위기에 끌린 것일까. 보스의 화도 어느새 가라앉았다.

    저 드래곤은, 항상은 아니라도 대부분 정답을 내 놓았다. 사고의 깊이라고 해야 하나, 세상에 극소수만 존재하는 드래곤답게, 그의 사고는 항상 깊고 무거웠다.

    “결과적으로 우리가 신경 쓸 일은 없다. 알샤인 교단이 피해를 입은 것은 변수지만, 앞으로의 일에 큰 지장을 주지는 않아.”

    “흥. 어차피 그놈들은 상대도 안 되었다.”

    보스는 별거 아니라는 듯 말했다. 알샤인을 두려워하지 않는 마족. 그게 황제와 보스였다.

    원래 빛은 어둠에 압도적으로 강한 모습을 보여주지만, 가끔은 그 상황이 바뀌기도 하는 법.

    제 아무리 알샤인 교단이 발버둥 친다 하더라도, 황제와 노인. 그 둘 중 한명만 움직여도 교단 전원을 ‘처분’해 버릴 수 있다.

    설령 그게 알샤인의 사도들이 모두 포함된 병력이더라도. 다만 그 과정에서 만만치 않은 피해를 입을 것을 알기에 자제할 뿐.

    “아무튼 그런 잡놈들한테 국토가 절반 가까이 날아가다니, 엘프들도 많이 쇠락했군.”

    “꼭 그렇지만도 않다네.”

    드래곤이 모호한 대답을 하며 눈을 감았다. 방을 비추던 광원이 사라지자, 순식간에 사방이 어두워졌다.

    이제 그만 물러가라는 뜻이다. 자기 할 말만 하고 스윽 잠들어 버리다니, 노인은 기가 막혀서 욕을 뱉어댔지만, 드래곤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예전부터 저런 놈이었지.’

    보스는 화를 내봐야 자기만 손해라는 것을 깨달았다. 저렇게 깊은 사고에 빠지게 되면, 그의 방어에 손상을 줄만한 피해가 오기 전까지는 절대로 깨어나지 않는다.

    노인은 잠시 이 방을 통째로 날려버릴까 하고 잠시 고민했지만, 곧 포기해버렸다. 저놈 성질을 건드려봐야 좋을 게 없기 때문이다.

    “그럼 계속 방구석에 처박혀 있어라. 음침한 놈아.”

    노인은 뒤를 돌아 방문을 향해 걸어갔다. 그가 문을 열자, 왜곡된 공간이 일렁거렸다.

    그는 망설임 없이 문에 발을 내딛었다. 잠시 흐물거리던 공간이 순식간에 보스를 흑룡회 본부로 전송시켜 주었다.

    보스가 사라지자, 방 안은 고요로 가득 찼다. 공기도 가라앉은 공간. 그 속에서 드래곤은 사색에 빠졌다.

    얼마나 긴 시간이 지났을까.

    블랙 드래곤은 잠깐 눈을 떴다. 희미한 빛이 번뜩였다. 간만에 이야기 상대를 만난 덕분일까. 쉽게 명상에 집중할 수 없었다.

    그의 시선은 노인이 사라진 문을 향하고 있었다. 마족의 지배자는, 속으로 보스를 떠올렸다.

    ‘다음에 또 보세. 이름 없는 친우여.’

    2.

    “오호, 눈 위를 걷는 것 같아요!”

    “좀 조용히.......”

    카르안이 머리를 싸맸다. 백작의 저택. 마약이 잔득 든 가방을 들고 있는 카르안과, 날개를 파닥이는 서큐버스. 둘이 긴 복도를 걷고 있다.

    이런 카펫이 마냥 신기한지, 서큐버스 레이카는 행복한 표정으로 폴짝거린다. 마치 첫눈을 본 소녀가 이런 모습일까. 상당히 귀여운 모습이지만, 카르안의 마음은 차가워져만 간다.

    ‘하, 다 틀려먹은 거 아닐까.’

    백작을 꼬셔낼 비밀병기를 구해오라고 했더니, 무슨 10대 초반의 정신연령을 가진 꼬마를 데려왔다.

    ‘좀 그냥 무난하게. 어?’

    당장 흑룡회의 요정, 몽로만 가 봐도 고혹적이고 남자 후리는데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여자들이 가득하다. 눈치 백단에 말솜씨 백단. 도합 이백단의 절정 고수들.

    남자의 기분을 정확히 캐치해서, 상황마다 적당한 말을 던져준다. 또한 예절부터 지식까지 모두 갖춰, 이야깃거리도 마를 새가 없게끔 한다.

    "앗! 나비다!"

    반면 이 서큐버스는 그냥 천진난만한 어린애 아닌가. 외모가 예쁘장한 것은 맞지만, 당장 백작이 마음에 안 들면 휙 돌아 나올 것 같다.

    '아니, 처음에는 안 이랬잖아.'

    잠깐 본게 전부지만, 그래도 첫인상은 이런 백치가 아니었다. 카르안은 잠시 이 여자가 몹쓸 병이라도 걸린게 아닌가 하고 진지하게 고민했다.

    서큐버스라는 메리트. 남은 것은 그것뿐인데, 과연 그 망할 루베아이라와 눈치싸움에서 이겨낼 수 있을지. 솔직히 절망적이다.

    그때였다. 서큐버스가 눈앞에 들어온 나비에 정신팔린 사이, 누군가 그들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오호! 일찍 오셨구려!"

    백작이었다. 게다가 그의 옆에는 익숙한 얼굴이 서 있었다.

    루베아이라가 백작과 팔짱을 끼고 있었다. 그녀는 잠깐 카르안을보고 입꼬리를 살짝 올리더니, 작은 서큐버스로 시선을 돌렸다. 둘의 눈이 마주쳤다.

    서큐버스 레이카가 루베아이라를 보며 싱긋 웃어주었다. 대담하고 귀여운 미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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