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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션으로 무한성장 (92)화 (9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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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의 검술을 복제하는 기술.”

    카르안은 치프에게 전수받은 연금술을 설명했다. 비록 완벽하게 익히지는 못했지만, 며칠 사이 핵심적인 부분은 전부 암기해 두었다.

    마음만 먹는다면 치프가 사용하던 기계. 그것과 똑같은 기계를 만들어낼 수 있다. 아니, 단점을 개선하여 그것보다 뛰어난 물건을 만들 수 있으리라.

    치프가 만든 기계의 경우, 재정난에 시달리며 만들어진 물건이다. 오죽했으면 고장 난 오븐을 개조해서 만들었을까. 물론 껍데기만 이용했겠지만, 눈물이 나올 만큼 궁핍한 환경이었다.

    반면 카르안에게는 넘치는 금화가 있다. 그 덕분에 새로운 물건을 만드는데 가장 중요한 게 2가지, 인력과 좋은 재료를 넉넉히 준비할 수 있다.

    이제 필요한 것은 복사할 만한 가치를 지닌 협력자. 카르안은 자신이 얻은 연금술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그러니까 제가 지금까지 익혔던 모든 것들을, 카르안씨도 익힐 수 있다는 것이군요.”

    “전부는 아니고. 7할 정도 수준이지만.”

    카르안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치프의 장비는 절반 수준밖에 복사해내지 못했지만, 카르안이 자본의 힘으로 장비를 개선한다면 그 수치를 70퍼센트 정도까지는 끌어올릴 수 있다.

    검술을 베껴낸다는 게 사실 터무니없을 만큼 황당한 기술이지만, 카라나리는 의심하지 않았다. 그 기술이 실제로 가능한지에 대해서는 고민할 것도 없다. 카르안이 가능하다고 하면, 그것은 가능한 것이다.

    불가능해 보였던 아르나의 치유. 그것도 마술처럼 해내지 않았는가. 그녀가 고민하는 것은 다른 부분이었다.

    ‘쉽게 결정하기는 힘들겠지.’

    평생 쌓아온 기술을 남에게 넘긴다. 비록 전부는 아니라 해도 꺼림칙한 일은 분명하다. 카르안은 쉽게 대답하지 못하는 카라나리를 보며, 그녀의 고민을 예측했다.

    “조금만, 시간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천천히 생각해. 그리고 정 싫다면 거절해도 괜찮고.”

    여기서 더 밀어붙여봐야 역효과가 난다. 오히려 생각할 시간을 주는 편이 낫다.

    카라나리는 단순히 검술을 전해주는 검술서적이 아니다. 앞으로 함께할 파트너. 그녀의 검술을 얻는다 하더라도, 관계가 틀어져 버린다면 득보다 실이 많게 된다. 설령 그녀의 검술을 얻지 못한다 하더라도, 지금과 같은 관계를 유지하는 편이 이득이었다.

    “그런 뜻이 아닙니다.”

    카르안의 대답에, 카라나리는 이상하다는 듯 말했다.

    “아직 제 검술은 미완성입니다. 아직 수련 시간이 부족해서........ 아직 많은 부분이 비어있어요.”

    “나는 그 정도면 충분해.”

    “아닙니다. 제가 검술을 한번 정리할 테니, 그 뒤에 제 검을 받아주세요.”

    카르안의 예상과 다르게, 검술을 주냐 안주냐는 처음부터 고려할 대상이 아니었다. 십여 년간 쌓아온 검술이지만, 카르안에게는 아낌없이 건네줄 수 있다.

    복제니 뭐니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검술을 전수하는 것과 아무 차이도 없다. 단지 그 과정이 다를 뿐이다. 그렇다면 망설일 필요는 없었다.

    다만 유일한 걱정은, 자신의 미숙한 검술 때문에 카르안이 위험에 빠지는 것이다. 그것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복제 전 자신의 검술을 최대한 끌어올려야 했다.

    완벽한 동작, 완벽한 초식을 전한다. 카르안의 설명에 따르면, 전해지는 것은 7할 밖에 없다. 3할은 사라지는 것. 그만큼 더 정교하게 준비해야 한다.

    “앞으로 한 달 정도는 걸릴 겁니다.”

    그녀는 스승이 전수해준 검법, 화룡검에 대해 떠올렸다. 한 달의 수련으로 경지를 높이기는 힘들었지만, 적어도 검술의 녹슨 부분을 닦아내는 정도는 할 수 있을 것이다.

    카르안은 고민에 빠졌다. 한 달이면 장비를 완성하고도 남을 시간이다. 하지만, 못 기다릴 시간도 아니었다.

    “어차피 장비를 만들어야 하니까. 그 정도는 괜찮아. 조금 시간이 비긴 하겠지만.”

    “기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카라나리가 고개를 숙였다. 마치 예를 표하는 기사처럼. 카르안은 멍하니 그녀를 볼 수밖에 없었다.

    너무나 쉽게 자신의 모든 것을 넘겨준다. 그것도 모자라서, 그 전부를 받아주는 카르안에게 감사를 표한다. 미숙한 자신의 검이, 카르안에게 해가 될까 걱정하면서.

    오히려 고개를 숙여야 하는 것은 카르안인데. 정 반대의 상황이 되어버렸다.

    “카라나리.”

    가슴속에서, 알 수 없는 감정이 뒤섞여 요동친다. 그게 사랑이라는 이름의 애정인지, 혹은 무한한 신뢰를 받는다는 안정감인지. 모든 것을 맡길 수 있는 동료를 만난 기쁨인지.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어느 쪽이든, 그가 할 수 있는 선택은 하나로 귀결되었다. 카르안은 자석에 이끌린 것처럼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카라나리의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아무런 예고도 없었고, 저항도 없었다. 그저 자연스럽게, 봄에 꽃이 피듯 당연한 일처럼.

    카라나리의 눈이 잠깐 커졌으나, 곧 조용히 눈을 감았다.

    촉촉하고 말랑말랑한 감촉, 달빛과 섞인 촛불의 기묘한 색체. 여름을 알리는 풀벌레의 흥얼거림. 향수를 뿌리지 않은, 소녀의 향기.

    잠깐 멈춰있던 시계바늘이 흘러간다. 카르안이 입술을 때자, 첫 키스의 여운을 즐기는 듯한 소녀가 스르륵 눈을 떴다. 비록 여전히 표정은 없었지만, 얼굴은 화롯불 앞에 있는 것처럼 상기되어 있었다.

    “앞으로도 잘 부탁해.”

    카라나리는 말없이 그를 올려봤다. 말을 할 필요도, 고개를 끄덕인다는 동작도 필요 없었다. 이미 그녀의 모든 움직임에는, 카르안에 대한 긍정이 내포되어 있었다.

    “이만 가볼게.”

    카르안은 의자에서 일어나 소녀의 머리를 한번 쓰다듬어주었다. 따뜻하고 포근한 느낌. 잠시 망설이던 카르안은 현관을 향해 걸어갔다.

    카르안은 그녀의 작은 보금자리를 등지고 밤거리를 향했다. 그런 카르안의 등을 쳐다보며, 카라나리가 작게 속삭였다.

    “저도 잘 부탁드립니다. 카르안님.”

    2.

    마을의 술집. 카르안은 적당한 곳을 잡고 적당한 술을 시켰다. 카르안을 (정확히는 흑룡회의 상징을) 알아본 술집 주인은 얼른 시원한 밀 맥주를 대령했다.

    “조금 더 있을걸 그랬나.”

    조금 아쉬운 마음도 있었다. 만약 카르안이 원했다면, 카라나리와 조금 더 깊은 관계를 맺을 수도 있다. 만약에 그가 원했다면, 카라나리는 절대 그를 거부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카르안은 적당한 선에서 브레이크를 걸었다. 과유불급이라고 하지 않았나. 뭐든 과하면 문제가 생기는 법이다. 키스도 처음 해보는 소녀에게는 그 정도가 적당했다.

    “나머지 문제도 있으니까.”

    카르안은 간단하게 목을 축이면서 생각을 정리했다. 마음이 쉽게 진정되지 않았다. 이럴 때는 오히려 냉정하게 생각하기 위해서, 약간의 알코올이 필요한 법이다.

    맥주를 한잔 비우자, 이제야 제법 과열된 머릿속이 식어갔다. 그는 맥주를 한잔 더 시키면서, 오늘 있었던 일을 정리했다.

    보물 ‘악마의 진주’의 성능과 가격에 대해 간단하게 확인했고, 카라나리에게 검술 복제를 허락받았다.

    첫 번째로 악마의 진주. 그 가격은 감당 안 될 정도로 비싼 수준이다. 다만 가격만큼의 가치는 충분하다.

    한방에 굵직굵직한 마법을 사용하는 마법사들에게는 조금 효율이 떨어질 것이다. 일단 한번 마나를 사용하고 나면, 그것을 회복시키는데 시간이 소요되니까. 그리고 계속 마나를 쏟았다가 가득 채웠다가를 반복한다면, 그만큼 몸에 부담도 크다.

    하지만 카르안이 주로 사용하는 골렘은, 마나를 한 번에 소모하지 않는다. 지속적으로 빠져나가다 보니 소비가 심각해질 뿐.

    이 악마의 진주만 있다면 그 지속성을 무한에 가까이 증가시킬 수 있다. 소비되는 만큼 즉석에서 회복되니, 마르지 않는 샘을 얻게 된 것이다.

    물론 실제로 무한하지는 않고, 한계는 있다. 부담이 덜하기는 해도 계속 회복시키면 온 몸에 무리가 간다.

    ‘그래도 포션보다는 훨씬 낫겠지.’

    지금까지는 포션과 마약을 만들 때마다 포션을 섭취했다. 맛도 없는 것을 계속 마시는데 기분 좋을 리가 없었다. 이제 악마의 진주가 명성만큼의 능력이 있다면, 이제 지긋지긋한 마나 포션과도 이별이었다.

    두 번째는 카라나리. 카라나리의 검술을 그대로 복사할 수 있게 되었다.

    카라나리도 순순히 허락했으니, 남은 것은 기계 제작이다. 설계부터하려니 머리가 아파왔지만, 그래도 얻는 것에 비하면 어려운 것도 아니었다.

    아주 커다란 크기도 아니니, 근처에 작은 창고를 빌리면 될 것이다. 껍데기는 대장장이에게 맞기고, 주요 부품은 직접 만든다. 제작기간은 2주일 정도를 생각했지만, 카라나리의 뜻에 따라 한 달쯤으로 넉넉히 잡았다.

    이제 남은 것은 백작가의 접대.

    “쉬운 일이다.”

    백작을 실제로 본 적은 없지만, 마약 중독자들은 질리도록 봐 왔다. 그리고 카르안의 경험상 약에 찌들어있는 사람만큼 상대하기 쉬운 것도 없다.

    걸림돌이라면 그 백작의 첩 루베아이라. 카르안은 자신이 있었지만, 자신감과 무모함은 구분할 수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루베아이라가 큰 걸림돌이 될 것이라 예상되었다.

    백작가와 직접 거래하는 조직원들은 경력과 노하우가 있는 베테랑들이다. 그런 흑룡회의 에이스들도 쩔쩔 맬 정도라면, 어지간히 막 나간다는 소리였다.

    ‘뮬리펜 과인가.’

    만약 그녀와 비슷하다면, 해결방법은 간단하다. 그냥 힘으로 찍어 누르면 그만. 지금까지 조직원들이 소극적으로 대했을 수도 있다. 아무래도 강하게 나가다가 실수라도 하면, 사이프카르에게 된통 깨지게 되니까.

    하지만 카르안은 조금 달랐다. 사이프카르의 눈치 볼 것 없이 강경하게 대처할 것이다. 일단 그녀가 어떤 사람 인지부터 알아봐야겠지만.

    더 이상 생각해봐야 아무 의미도 없다. 사람은 직접 만나기 전까지는 모르는 법. 어차피 싫어도 그때 만나보면 알게 되지 않겠는가.

    그는 새로 나온 맥주를 마시면서 몸을 이완시켰다. 이정도면 충분. 일 이야기는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지금은 그저, 카라나리를 떠올리며 그녀의 여운을 즐기면 된다. 나머지는 시간이 해결해 줄 문제였다........

    3.

    카르안이 알페라츠 가문을 찾아간 것은 일주일이 지난 후였다. 저번에 구입한 마약도 제법 많았을 텐데. 벌써 대부분 동이 났다는 뜻이다. 밥 대신 마약을 먹고사는 게 아닐까. 그런 실없는 망상까지 들 정도.

    카르안은 저택 앞에 멈춰 섰다. 흑룡회에서 경호원은 따로 데려오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초라해 보이기도 했지만, 다르게 생각하면 그만큼 무력에 자신감이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정작 카르안은 그 둘과는 다른 이유로 경호를 거절했지만.

    “어서 오십시오.”

    정문을 지키는 문지기가 카르안을 보자마자 고개를 숙였다. 카르안은 가볍게 인사를 받아주며 담장 너머를 둘러봤다. 쇠로 된 담장 사이로 넓은 정원이 보였으며, 그 곳에서 음악과 웃음소리가 간간히 들려왔다.

    아마 야외에서 파티를 하는 것 같다. 문지기도 처음에는 카르안을 손님으로 생각했으나, 그가 입고 있는 옷을 보고 눈빛이 달라졌다. 한여름에도 얇은 코트를 입고 있는 사람은 흑룡회의 간부뿐이니까.

    “흑룡회에서 오신 분이군요. 안쪽에서 들어가시면 시종이 안내해 드릴 겁니다.”

    카르안이 안에 들어가자, 정장을 입은 시종 한명이 그에게 90도로 인사했다. 그리고 카르안은 저택으로 안내하기 시작했다.

    카르안은 정원을 둘러보며 느긋하게 걸었다. 중요한 거래지만, 그다지 긴장은 되지 않았다.

    “오늘 파티라도 하나보군.”

    “예. 백작님께서 지인 분들을 불러 작게.........”

    시종의 말이 끝나기 전에, 카르안은 정원에 있는 한 무리의 사람들을 발견했다. 화려한 옷을 입은 남녀들. 수는 약 서른 명 정도. 그들은 수십 가지 음식이 차려진 식탁 앞에서 술과 만찬을 즐기고 있었다.

    아마 저 무리가 오늘 연회에 참석한 사람들이리라. 그들은 뭐가 즐거운지 연신 웃음을 터뜨리고 있었다. 그 손님들과 비슷한 수의 시종들이 손님들을 접대하고 있다. 그나저나 광대가 있는 것도 아닌데, 뭐가 저렇게 즐거운 것일까.

    “윽.”

    그들과 가까워지자, 카르안은 왜 저 웃음의 근원지를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어떻게 백작이 수많은 마약을 소비하는지도. 저들은 전부 약에 취해있었다.

    멀리서 볼 때는 몰랐지만, 그들의 눈동자가 풀려있다. 움직임도 뭔가 흐느적 거리는 게, 만취한 사람들 같다. 그들의 입에서 연기를 뿜는 파이프만 없었다면, 카르안도 그냥 저들이 술에 취해 저러는 줄 알았을 것이다.

    그 가운데에는 늙은 노인이 흥얼거리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뒤의 악사들이 최선을 다해 악기를 연주했지만, 그의 형편없는 노래실력은 도저히 커버할 수가 없는 것 같았다.

    “오늘 백작님은 조금 바쁘셔서, 회계사분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시종이 카르안에게 대답해 주었다. 아마 저 노인이 알페라츠가의 백작이겠지. 카르안은 혀를 한번 차려다가, 시종을 보며 방긋 웃었다.

    “건전한 소비활동에 힘쓰느라 바쁘시군. 잘 알겠네.”

    그나저나 이번 일은 쉬울 것 같다. 아마 그 첩이라는 여자도 저 파티 안에 있을 테니까.

    카르안이 파티에서 눈을 때려는 순간, 한 여자와 눈이 마주쳤다. 검은 드레스를 입은, 화려한 적발의 여자였다. 모두 몽롱하게 약에 취한 가운데서, 유일하게 또렷한 눈동자를 하고 있다.

    “저 여자는?”

    카르안은 시종에게 눈짓했다. 카르안의 질문을 받은 시종은, 조심스럽게 대답해 주었다.

    “아, 저분은 루베아이라님입니다.”

    루베아이라. 사이프카르와 조직원들이 이를 박박 갈게 만든 여자였다.

    ‘그래도 파티 중이니 오늘 마주칠 일은 없겠지.’

    카르안이 속 편하게 생각하며 시선을 돌렸다. 하지만 그의 생각과 다르게, 루베아이라는 살짝 눈웃음을 지으며 카르안쪽으로 걸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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