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포션으로 무한성장 (91)화 (9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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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향한 곳은 카라나리의 집. 카르안이 돈을 모으고 연금술을 익히는 사이, 그녀는 용병일을 하며 번 돈으로 이사를 갔다.

타브가 죽고 아르나에게 드는 약값이 뚝 떨어지면서, 목돈을 모아 작은 집을 산 것이다.

“그래도 대단하긴 하네.”

카르안이 그녀의 집 앞에 서서 중얼거렸다. 분명 큰 집은 아니지만, 그 짧은 시간에 집을 새로 살 돈까지 모으다니, 보통 서민은 꿈도 못 꿀 속도다. 과연 3급 용병쯤 되면 돈벌이가 다른 것일까.

카르안은 문을 똑똑 두드렸다. 나무로 된 문이 특유의 소리를 내며 살짝 흔들렸다.

“누구.......아. 카르안씨.”

문이 열리고, 긴 흑발을 단정히 내린 소녀가 나타났다. 카라나리. 그녀는 카르안을 보자 고개를 살짝 숙였다.

그녀는 용병 복장이 아닌 편한 옷을 입고 있다. 이제 여름이 가까워져서 그런지 셔츠와 바지를 입고 있었는데, 헐렁해 보이는 게 상당히 시원해 보인다. 카르안은 그녀의 뒤, 집 안쪽을 살짝 살펴보며 말했다.

“집 좋은데? 깔끔하고. 용병 길드도 가깝고.”

“감사합니다.”

카라나리는 (언제나 그렇듯이) 무표정으로 대답했다. 하지만 쌀쌀맞아 보이는 표정사이에는, 희미하게 반가움이 서려있었다. 그것은 눈치 챈 카르안은 살짝 웃어주었다.

아주 오랜 기간은 아니지만, 그래도 제법 가까운 사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덕에 이제 카르안은 그녀의 표정 읽기에 제법 익숙해졌다. 비록 소믈리에가 와인 원산지 맞추는 것처럼 모호하고 난해하기는 했지만. 작은 표정변화을 잡아내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어서 들어오세요.”

“아, 그러면.”

카르안은 그녀가 권한 자리에 앉았다. 확실히 좋은 집이다. 지금까지 그녀가 살던 무너지기 직전의 집과는 비교하기도 민망할 정도로. 그 오두막집의 장점이라고 해 봐야 자연친화적이라는 것 밖에는 없지 않은가.

다만 그다지 큰 집은 아니었다. 아무리 카라나리가 잘 나가는 용병이 되었다 해도, 순식간에 큰 집을 살 만큼 돈을 모으지는 못한다.

그래도 두 자매가 살기에는 충분한 공간. 카르안은 아늑한 기분을 느끼며 카라나리가 권한 자리에 앉았다.

“아르나는?”

“지금 방에서 자고 있어요.”

카라나리는 방 하나를 가리켰다.

“가끔 늦게까지 깨어있기도 하지만요. 아직 철이 덜 들어서.”

그러면서 카라나리는 자신의 여동생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한탄하듯 말했지만, 얼마 안가 이야기의 내용이 칭찬으로 바뀐 것을 보면 그녀도 어지간히 동생을 아끼는 것 같았다.

“......그래서 머리는 아주 좋아요. 벌써 행정학 관련된 책을 읽고 있으니까. 요령 안피우고 조금만 더 열심히 하면 좋을 텐데.”

“너무 무리하게는 시키지 마.”

사실 아르나의 나이라면 이곳 평민을 기준으로, 사칙연산이나 잘 하면 똑똑한 편이다. 저명한 학자들에게 과외를 받으며 자라는 귀족도 아니고, 아르나는 거의 독학에 가까운 방식으로 공부하고 있으니까.

카라나리는 아르나를 학교에 보내고 싶어 했지만, 이곳에는 학교 자체가 없다. 백작가 귀족은 과외 선생을 모셔오기 때문에 딱히 학교를 세울 필요가 없는 것이다. 평민들은 공부를 배울 수단이 책 하나밖에 없다.

“아무튼 아르나의 몸은 좀 괜찮아?”

카르안이 들고 온 가방을 열었다. 그 안에는 열흘 치 약이 들어있다. 전부 아르나의 것이다. 카라나리는 그 약병들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당장 이 정도는 필요 없어요.”

“음? 이제 치료제가 다 떨어질 때쯤 되었는데?”

“사실은.........”

아르나의 몸 상태가 많이 좋아져서, 이제는 약을 줄였다는 것이다. 상태가 호전되면 약을 줄이라고 한 것은 카르안이 미리 말해둔 것이었기에, 딱히 문제될 것도 없었다.

몸이 나아지고 있다. 완치는 하지 못했지만, 이제 일반인과 비슷한 수준까지 완화가 되었다.

“생각해보면 카르안씨 덕분이네요.”

“뭐가?”

“전부.”

카라나리가 눈을 살짝 감았다. 그리고 노래하듯 말을 이었다.

“카르안씨가 오신 뒤부터, 전부 변했습니다. 타브가 죽었고, 아르나가 활기를 찾았어요. 전부, 전부 당신덕분입니다.”

“타브가 죽은 것은 자업자득이지.”

“하지만 저를 구해준 것은 카르안씨입니다.”

부상을 입고 쓰러져가는 그녀를 치료해 준 것은 카르안이었다. 물론 전부 이용하려고 했던 것이지만. 그녀는 진심으로 고마워하고 있다.

좋기는 한데, 조금 양심에 찔리기도 한다. 카르안은 깊은 한숨을 쉬었다.

“너도 알겠지만, 그때는 널 이용하려 했을 뿐이다. 가짜로 된 선의(善意)야. 감사받을 일이 아니지.”

“상관없습니다.”

카라나리는 감았던 눈을 떴다. 촉촉하게 젖은 눈동자가 빛에 반짝였다.

“그때 그 온기, 그것은 진짜였으니까요.”

잠시 침묵이 흘렀다. 어색한 고요함에 카르안이 멋쩍게 웃었지만, 카라나리는 한없이 진지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다.

‘뭐지? 키스라도 해달라는 뜻인가?’

카르안은 속으로 열심히 머리를 굴렸다. 작은 집. 야심한 밤. 두 사람을 비추는 것은 은은한 촛불들. 분위기는 어지간히 좋은 상태였지만, 이번만큼은 그녀가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먼저 침묵을 깬 것은 카라나리. 그녀는 눈을 피하며 의자에서 일어났다.

“죄송해요. 이상한 소리를 해서.”

“아니야. 괜찮아.”

“잠시 기다려 주세요. 마실 것을 내오겠습니다.”

카라나리의 목소리, 거기에는 아쉬움이 살짝 섞여있었다. 대체 뭐가 아쉬웠던 것일까.

카르안은 주방으로 향하는 소녀의 손목을 잡았다. 가느다란 손목이 한손에 잡혔다. 그는 그대로 카라나리의 팔을 끌었다.

“아?”

카라나리가 당황한 듯 얼굴을 붉혔다. 순식간에 두 사람의 거리가 좁혀졌기 때문이다. 그녀가 눈을 피하며 속삭였다.

“카르안씨?”

“응?”

“저, 놔주시지 않으시면, 마실 것을........”

카라나리가 애써 냉정한 표정을 유지하려했다. 하지만 자꾸 얼굴이 달아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녀의 부탁에도 카르안은 손목을 놓지 않았다.

“저기........”

“.........”

“저.......”

두 사람 사이의 말이 점점 줄어들었다. 카르안은 말없이 입술과 입술 사이의 거리를 좁혔다. 이제 입맞춤까지 한걸음.

카르안은 품 안에서 작은 저항감을 느꼈다. 카라나리가 손으로 그를 살짝 밀친 것이다. 하지만 그 힘은, 산들바람처럼 미약하기 그지없었다. 카르안은 물러서지 않았다.

저항이 완전히 사라졌다.

평소의 육체적인 능력이라면, 카라나리가 한참이나 앞선다. 마음만 먹는다면 언제든 제압할 수 있다. 하지만 그녀는 카르안에게 저항하지 않았다.

입술이 닿기 직전. 카라나리가 속삭였다.

“무서워요.”

“뭐가?”

“행복해지는 게.”

제로가 되기 직전이었던 거리가, 잠깐 다시 벌어졌다. 카르안이 말없이 그녀를 쳐다보자, 카라나리의 입술이 움직였다.

“행복해지면, 또 다시 불행해 질 테니까.”

행복을 얻을 때마다, 항상 사라져 버린다. 비눗방울처럼. 다가가 손을 대는 순간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다.

카르안은 그런 소녀를 내려 보았다. 어떻게 보면 무책임한 행동이다. 순간적인 충동에 이끌려 입을 맞춘다는 건. 하지만.

“내가 사라질 일은 없어. 절대로.”

카르안의 말에, 카라나리는 눈을 감았다. 여전히 표정은 없었지만, 굉장히 따뜻하다고 느껴졌다. 소녀가 키스를 허락하자, 카르안은 그녀의 어깨를 잡고 입을 맞추려했다.

벌컥-!

어디선가 문이 거칠게 열리기 전까지는. 두 사람은 난데없는 소리에 깜짝 놀랐다. 카르안은 소리의 진원지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곳은 카라나리가 처음 가리킨 곳. 아르나가 자고 있다던 방이었다.

2.

“으으. 미남, 미남의 냄새가 난다아.......”

어둠 사이로, 잠옷을 입은 무언가가 흐느적거리며 다가왔다.

카라나리를 작은 사이즈로 줄여놓은 듯한 소녀. 큰 눈망울에 작은 얼굴, 새하얀 피부는 귀여운 인형 같았다. 그런 소녀가 산발이 된 머리를 하고 비틀거리며 걸어오자 상당히 괴리감이 느껴졌다.

“으으으어엇? 의사 선생님! 오랜만이에요!”

아르나가 카르안을 보자마자 졸린 눈을 번쩍 떴다. 그리고 그의 다리에 고양이처럼 달라붙었다. 아르나는 그대로 카르안에게 얼굴을 파묻어버렸다.

“흡하. 흡하. 으으, 말라가던 삶의 원기가 회복되는구나.......”

“하하하.......”

“아르나. 지금까지 안자고 뭐하는 거니?”

카라나리가 동생을 찌릿 노려봤다. 살벌한 눈빛에도 아르나는 볼을 뿌우 부풀리며 대답했다.

“자려고 누웠어요. 그런데 어디선가 맛있는 냄새가 나잖아요?”

“맛있는 냄새?”

“네. 그래서 나와 보니까 글쎄, 이렇게 선생님이 짠. 하고 계시지 뭐에요. 처음에 언니가 준비한 깜짝 선물인줄 알았지.”

“카르안씨. 죄송합니다. 아르나, 어서 방으로 돌아가. 늦게 자면 키가 안 커.”

“그렇게 말하는 언니도, 키도 작고 가슴도 작잖아!”

“정말 혼날래?”

그녀의 무표정에 금이 갔다. 어쩌면 세상에서 카라나리의 표정을 바꿀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그녀의 여동생이 아닐까.

카라나리가 다가왔지만, 아르나는 카르안을 방패삼아 뒤로 쏙 숨어버렸다. 그리고 장난스럽게 웃기 시작했다.

“저번에 언니가 떠났을 때 나는 봤어요. 뮬리펜 언니야는 어마무시 하던데! 키는 비슷해도 여기는 언니의 두 배는 아니, 세 배.......”

꽈직

어디선가 카라나리의 인내심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다.  아르나도 이제는 슬슬 뒷감당이 힘들었는지, 카르안에게 매달린 체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오빠야. 언니 좀 말려줘요.”

귀엽게 눈웃음치며 말하는 아르나는, 남녀 할 것 없이 심장이 두근거리게 할 만큼 귀여웠다. 거의 새끼 고양이와 동급의 파괴력.

하지만 카르안은 흔들림 없이 소녀를 들어올려서, 그녀가 뛰어나온 방으로 걸어갔다.

‘카라나리는 나도 무서워.’

카르안이 속으로 생각했다. 사실이었다. 카르안도 화난 카라나리는 좀 무서웠다........

꺄악! 공주님안기! 라고 소리치며 좋아하는 아르나를 침대에 눕히고, 카르안은 다시 그녀에게 돌아왔다. 좀 전과는 다른 의미로, 정말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흐흠. 그, 너무 신경 쓰지 마. 나는 그런 거 신경 안 쓰니까.”

“신경 안 써요. 처음부터 신경 안 썼어요.”

“그래........”

카르안의 암호 같은 말에, 카라나리가 얼음장 같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또 다시 대화가 끊어졌다. 방금 전까지의 그럴싸한 분위기는 어디론가 사라진지 오래였다.

이제 와서

“지금 말하기는 뭣하지만, 카라나리. 부탁할게 한 가지 있다.”

“말씀해 주세요.”

카르안이 다시 분위기를 잡고 말했다. 오늘 카라나리의 집에 온 이유. 단순히 아르나의 약만 전하러 온 것이 아니다. 다른 용건이 하나 더 남아있다.

과연 카르안이 말하자 카라나리도 자세를 바로 했다. 카르안은 잠시 식탁을 톡톡 두드리다가 말했다.

“너의 검술을, 나에게 줄 수 있을까.”

“저의 검술을?”

예상 못한 대답에, 카라나리가 고개를 갸웃했다.

‘검술을 가르쳐달라는 뜻인가?’

다른 사람이라면 당연히 거절했을 것이다. 그녀가 배운 동방의 검법. 연금술사들이 자신의 연금술을 쉽게 공개하지 않는것처럼, 카라나리도 가능하면 남에게 검술을 공개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상대는 카르안. 그의 부탁은 쳐낼 수 없었다. 그것은 좋고 싫고 이전의 문제. 카라나리는 망설임 없이 그의 청을 수락했다.

“가르쳐 드리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시간은 조금 걸리겠지만, 노력하시면 어느 정도 수준까지 올라가실 수 있을거에요.”

카르안은 검사가 아닌 연금술사. 그녀처럼 정교한 검술까지 배울 필요는 없을 것이다. 높은 수준까지는 무리더라도, 간단한 검술이라면 그녀만한 선생이 없으리라.

카라나리의 대답에, 카르안은 고개를 저었다. 그는 사이프카르가 단칼에 포기할 정도로 검술에 재능이 없다. 그가 떠올린 것은 검술이나 좀 알려달라는 수준이 아니었다.

“아니, 말 그대로다. 내가 너의 검술을 배껴내도 괜찮냐. 이 뜻이지.”

치프의 연금술을 다시 떠올리며, 카르안이 말했다. 전투회로가 제 역할을 하려면, 그녀의 협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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