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폭풍전야 -->
“아, 그거 다행이야. 나는 이게 엄청 비싼 물건인줄 알았지 뭔가.”
카르안이 밝게 웃으며 말했다. 마법사도 그를 따라 어색하게 웃었다.
“사실 아주 무서운 사람에게 이것의 가격만큼 돈을 주기로 했어. 그런데 고작 금화 50닢이라니. 별 문제 없겠군.”
“하하. 그거 정말 다행이군요.”
마법사가 보석을 다시 한 번 살펴봤다. 확실하게 확인했다. 이건 그가 생각한 물건이 맞다. 마법사는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그런데 손님. 혹시 이 물건......”
“음?”
“저한테 파실 생각 없으십니까. 마침 연구에 필요한 물건이라.”
“미안하지만 나한테도 중요한 물건이네.”
“값은 후하게 쳐 드리겠습니다. 금화 50닢에 20닢을 더 드리지요.”
“금화를 20장이나 더? 그건 너무 미안한데.”
카르안이 보석을 찬찬히 살펴봤다. 아름다운 보석에서는 여전히 마나가 넘쳐흐르고 있었다.
“그런데 나에게 금화 20닢이나 더 들이는 것보다, 그냥 다른 곳에서 사면 될 일 아닌가.”
“저기, 그게 급한 연구 때문에....... 빨리 연구하고 싶어서요.”
“연구에 대한 열정이 엄청난데. 그러면 내가 자네에게 팔면, 나는 금화 20닢을 그냥 버는 것이군.”
“그렇습니다! 나쁜 거래는 아닐 텐데요?”
마법사는 크게 웃었다. 필요한 연구재료를 봐서 흥분한 것 같다. 카르안도 꽁돈을 얻는 게 기쁜 듯한 얼굴. 양쪽 모두 행복해 보였다.
카르안은 품속에 손을 넣었다. 거기는 금화를 담을 주머니가 있는 곳이다.
또한 그가 단검을 숨겨두는 곳이기도 했다.
파악-!
“어?”
마법사가 얼빠진 소리를 냈다. 그의 눈동자가 천천히 자신의 손등을 향했다. 피가 줄줄 흘러나오는 손등. 마법사가 입을 있는대로 벌렸다.
“흐아아아아악!”
그는 한 템포 늦게 비명을 질렀다. 비명이 연구실 안을 가득 채웠다. 그는 반사적으로 남은 손을 이용해 단검을 잡으려 했지만, 카르안은 검을 살짝 비틀어 버렸다. 피가 더욱 거세게 쏟아져 나왔다. 고통에 찬 소리가 더욱 커졌다.
“왜, 왜 이러는 거예요.......!”
“몰라서 묻는 건가?”
카르안이 고저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마법사가 천천히 시선을 올렸다. 카르안이 차갑게 식은 눈으로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렇게 벌벌 떨면서 거짓말을 하면 원숭이도 안 속을걸. 너는 사기 치는데 영 소질이 없어.”
“거, 거짓말이 아닙니다!”
“정말로?”
카르안이 다시 한 번 물었다. 마법사는 그 질문에, 입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아니라고 해야 하는데, 도저히 입이 떨어지질 않는다.
거짓말을 계속 해야 하나, 저놈이 내 생각을 읽고 있는 게 아닐까. 그런 초능력 같은 것은 세상에 없다. 지금 이런 생각을 하는 동안에도 저놈의 의심은 커져만 갈 텐데. 이미 늦었나.
수십 가지 생각이 동시에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리고 그것들은 형태를 이루지 못한 체, 혼란만 가중시킬 뿐이었다.
“내가 이 보석을 어디서 얻었는지 모르는가보군. 이건 알샤인 교단의 보물로 취급받던 물건이다. 그런데 그게 금화 50닢이라고?”
“크후흡! 후흡!”
마법사가 미친 듯이 몸을 떨었다. 머리가 터질 듯이 아프고, 호흡이 고삐 풀린 망아지마냥 날뛴다.
고통 사이로 한 가지 소문이 떠올랐다. 최근 사람들 사이로 유령처럼 퍼진 소문이다. 흑룡회의 간부 한명이 부하들과 알샤인 교단을 습격했다. 그리고 그 곳의 온갖 보물을 약탈하고, 막는 자는 전부 죽여 버렸다........
전부 과장된 소문이었지만, 그것을 마법사가 알 턱이 없었다. 그의 눈에 카르안은, 악마가 인간의 몸을 빌려 강림한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너 덕분에 한 가지 알아낸 것은 있어. 이게 네가 목숨 걸고 구라를 칠 만큼의 가치가 있다는 것. 젠장. 더럽게 비싸겠군.”
카르안은 더 이상 마법사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의 시선은 보석에 고정되어 있다.
“그러면 비싼 건 알겠으니까. 이 보석에 대해 아는 거 전부 털어놔.”
“제발 이, 이것부터 빼주세요........”
마법사가 하얗게 질린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지독한 고통으로 얼굴에는 핏줄이 섰고, 몸은 땀범벅이 되어있었다. 마치 바늘에 찔린 벌레처럼, 온 몸을 계속 경련하고 있다.
카르안은 어깨를 한번 으쓱하고 단검에 힘을 주었다. 손등을 파고든 쇳덩어리는 다시 한 번 방향을 틀며 살과 뼈를 헤집어 버렸다.
으드득-
소름끼치는 소리와 함께, 비명이 터져 나온다. 카르안이 단검을 빼기는커녕 옆으로 비틀어 버린 것이다. 이미 충분히 흘린 줄 알았던 피가, 다시 쏟아지기 시작했다.
“혀가 잘린 것도 아닌데 뭐가 문제야? 설마 손바닥에 입이 달린 것은 아니잖아.”
‘이, 이 새끼는 악마다!’
마법사가 경악했다. 이놈은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지 못하는 정신병자가 분명했다. 만약 더 이상 다른 말을 한다면, 정말 죽을지도 모른다. 마법사는 코통 속에서도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다.
“그, 그 보석의 이름은 ‘악마의 진주’입니다. 바다 깊은 곳에 사는 레비아탄이 품고 다니는 보석이라 해서....... 그런 별명이........”
마법사가 자신이 아는 정부를 줄줄이 설명했다. 이것은 세계에서 몇 개 없는 진귀한 보배이고, 강대국의 중요 마법시설에나 하나 있을까 말까할 정도로 희귀하다. 몇 십 년에 한번 볼 수 있다는 레비아탄을 사냥해야하기 때문에, 수많은 희생과 시간을 들여야 얻을 수 있다.
그의 상세한 설명에도 카르안은 시큰둥한 표정이었다. 그제야 마법사는 카르안이 알고 싶은 게 보석의 유래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보시다시피 이 보석은 안에서 무한한 마나를 내뿜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 지니고만 있어도 순식간에 소모된 마나를, 으윽. 회복시켜 주는....... 아주 귀한 보물입니다!”
“잠깐. 나는 아직 마나가 회복되는 것을 느끼지 못했어.”
분명 넘치는 마나가 느껴지기는 하는데, 그게 자기 몸에 들어오는 것은 느끼지 못했다. 만약 이 마법사의 말이 사실이라면, 소모된 마나가 바로바로 회복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적응기간! 적응 기간이 필요합니다! 일주일 정도 계속 품고 있으면 분명 효과가 나타날 거예요! 마나, 마나 통로를 만드는데 시간이........”
“나 참. 까다로운 놈이로군.”
카르안은 느긋하게 보석을 살폈다. 그러니까 일주일 정도 후면, 무한대에 가까울만큼의 회복력을 얻을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실제로 마나를 끝없이 사용하면 몸에 무리가 가지만,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점은 틀림이 없다.
한가한 카르안과 다르게, 마법사는 죽을 맛이었다.
“이, 이제 부디 회복을........”
“사기 치려고 한 주제에 회복까지 시켜달라고? 아주 뻔뻔한 놈이었네.”
“그러면 검이라도 빼 주세요. 제발!”
“마지막으로 이 물건 가격. 가격만 정확히 알려주면.”
“으흐흑........”
마법사가 눈물을 뚝뚝 흘렸다. 하지만 입을 열 생각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카르안은 눈을 찌푸리며 단검에 힘을 줬다. 다시 한 번 칼날이 회전하려 하자, 마법사는 있는 대로 고함을 질러댔다.
“아아아아아악! 잠시만, 정확한 가격은 몰라요! 엄청 비쌀 거예요! 제, 제가 우연히 듣기로는 성 한 채, 아니 부르는 게 값이라고.......”
마법사가 실성한 듯 횡설수설했다. 눈물 콧물을 질질 짜며 소리치는데, 이제 와서 가격을 숨길 리도 없으니 정말 모르는 것 같았다.
여기서 더 나가면 정말 미칠지도 모른다. 카르안은 단검을 힘껏 뽑았다. 나무로 된 책상에서 날붙이가 쑥 뽑혔다.
마법사는 단검을 뽑자마자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급소가 찔린 것은 아니지만, 실컷 헤집어 놓은 덕분에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카르안은 머리를 긁적이며 액체가 든 투명한 병 한 개를 꺼냈다.
퐁-
귀여운 소리와 함께 뚜껑이 열리고, 마법사의 손을 향해 붉은 액체가 떨어졌다. 마법사는 그것을 보자마자 눈이 뒤집어졌다.
“도, 독약!”
상처가 찌릿찌릿 울린다. 마치 타들어가는 것처럼. 마법사는 배신감과 두려움, 고통을 함께 느꼈다. 그는 소금을 맞은 지렁이마냥 꿈틀거렸다.
‘역시 저놈은 악마였어.’
말만 하면 살려줄 것같이 해놓고, 입막음을 하려 하지 않는가. 그 꼴을 보던 카르안이 혀를 찼다.
“마법사라는 놈이 이게 뭔지도 모르냐.”
마법사의 상상과 다르게, 이건 A급 회복포션이다. 외상치료용으로 바르는 물건. 과연 포션이 닿자마자 너덜거리던 손바닥이 아물기 시작했다.
“허억.”
마법사는 헐떡이며 책상에 몸을 기댔다. 정말 죽는 줄 알았는데, 예상 외로 카르안은 그를 해치지 않았다.
“너무 쑤셔서 미안하기는 한데, 너도 사기 치다 걸린 거니까. 잘한 거 하나도 없어. 인마.”
“네, 네.......”
마법사가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도 손이 욱신거리기는 했지만, 못 견딜 정도는 아니다.
고통이 사라지자 온 몸이 이완되었다. 마치 힘을 다 짜내 전력질주를 한 것처럼, 체력이 방전되었다. 그리고 통증 때문에 사라졌던 이성이 느릿하게 돌아오고 있다.
‘정말 죽지 않는 건가?’
무시무시한 소문 이전에, 카르안은 흑룡회의 간부였다. 그리고 자신은 암흑가의 거물에게 사기를 치려다 걸린 것이다.
작은 보석도 아니다. 보배중의 보배라는 ‘악마의 진주’를 가지고 그런 짓을 했다. 사실 처음부터 거짓말을 할 생각은 없었는데, 워낙 귀한 물건을 보다보니 눈이 돌아간 것이다.
막상 칼에 찔릴 때는 몰랐는데, 상처까지 치료해 준다는 것은 굉장히 관대한 처사다. 저 흑룡회의 간부가 카르안이 아닌 다른 사람이었으면, 손이 아니라 머리통에 칼이 박혀도 이상하지 않았으니까.
“저, 저기!”
“응?”
“이건 들은 소문인데, 사실 정확하지는 않습니다만.”
마법사는 카르안을 올려다보았다. 그 보석에 대해 알고 있는 나머지 정보를 말해야했다. 고통 때문에 떠올리지 못했던 정보를. 그냥 넘어가도 그만이지만, 아무튼 잘못한 것은 자신이 맞고, 살려준 것에 대해 성의 정도는 보여야 하지 않겠는가.
“이건 소문일 뿐입니다만, 그 보석은 ‘살아있다’고 합니다.”
“뭔 헛소리야? 너무 아파서 정신이 이상해졌냐?”
카르안은 헛웃음을 쳤다. 진귀한 보물이라고는 하나, 그냥 마나를 뿜어내는 보석에 불과하다. 그런데 살아있다니, 이게 의식을 가지고 사람을 알아보기라도 한다는 말인가.
“그냥 마법사들 사이에서 도는 소문입니다. 워낙 귀한 물건이라 그것을 연구하는 사람이 별로 없어서.......”
마법사는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소문에 의하면, ‘악마의 진주’는 소유자의 마나와 정신을 오염시킨다고 합니다. 그래서 소유자는 강력한 힘을 얻지만, 얼마 못가 미쳐버린다고 합니다. 그것을 레비아탄의 저주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 그건 헛소문이지.”
카르안은 코웃음을 쳤다. 마법사는 억울한 표정을 지었지만, 카르안이 생각하기에는 말 같지도 않은 소리다.
이게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것도 아닌데, 무슨 의식이 있겠는가. 게다가 여기서 흘러나오는 것도 일반적인 마나였다. 오염된 것이 전혀 아니다.
“할 말은 그게 전부?”
“예. 이게 제가 아는 전부입니다. 정말로.”
“좋아.”
카르안은 의자를 차고 일어났다. 마법사가 순조롭게 협조해주는 덕에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문 밖으로 나가려던 카르안은 뭔가 생각난 듯 몸을 돌렸다.
“참. 내가 ‘악마의 진주’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
“여부가 있겠습니까!”
마법사가 어색하게 입가를 비틀었다. 웃어보려고 했는데 잘 되지가 않는다.
남들에게 말할 생각은 없다. 뭐 하러 그런 소리를 하겠는가. 그가 밖을 향하는 카르안을 향해 말했다.
“그런데, 이 단검은 안 가져가십니까?”
마법사의 손을 찍은 단검. 카르안은 그 단검을 회수하지 않았다. 잠시 날카로운 단검을 노려보던 카르안이 대답했다.
“그건 정보 값이다. 어디 팔지 말고 호신용으로라도 들고 다녀.”
마법사의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 정말 저 단검이 값이 나가서 정보료 대신 주는 것은 아닐 것이다.
경고. 경고의 의미다. 자신의 손바닥을 뚫은 단검. 일부러 두고 가는 이유는 그것밖에 없다. 만약 카르안이 악마의 진주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면, 저 단검은 다시 한 번 더 피맛을 볼 것이다.
“그러면 잘 있어. 다음에 또 보자고.”
카르안은 그렇게 말하며 문을 닫고 나갔다. 마법사는 카르안을 다시 보고 싶지 않았지만, 말은 못하고 속으로 끙끙거릴 뿐이었다.
2.
밖으로 나오자 이미 늦은 저녁이었다. 카르안은 한숨을 쉬며 보석을 만지작거렸다.
“레비아탄의 저주라.”
카르안은 보석을 품안에 넣기 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보석은 달빛에 반짝거리고 있다. 그리고 안에서는 고밀도의 마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딴 게 있을 리가 없지.”
카르안은 보석을 챙기고 발걸음을 땠다. 용건은 이게 끝이 아니다. 다음으로 가볼 곳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