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포션으로 무한성장 (86)화 (86/124)
  • <-- 골렘 깎는 노인 -->

    “실수했어.”

    예드프리어가 쓰러진 치프를 보며 한숨을 쉬었다. 적어도 한명 정도의 호위는 붙여 뒀어야 했다. 단지 주변에 아무도 없었고, 폴룩스를 빨리 제압해야한다는 조급함이 치프를 죽게 만들었다.

    치프에 대해 아는 것은 카르안에게 사전에 들었던 것, 뮬리펜 성녀의 조부모라는 것 뿐이다. 하지만 어찌되었던 치프는 그들을 도와준 연금술사다. 아군이 죽었는데 아무렇지도 않을수는 없는 것. 피를 보니 숙연해 질 수밖에 없었다.

    “이런.......”

    카르안도 말을 흐렸다. 이번 전투에서 처음으로 아군이 죽었다. 그것도 전사자는 그와 함께 지냈던 치프. 이런 전투에서 아무도 죽지 않는 게 이상할 정도였지만, 첫 전사자가 치프가 되리라는 것은 예상치 못했다.

    뮬리펜에게는 큰 상처가 되리라. 자신을 구하려다가, 하나뿐인 가족이 죽었다. 그 사실을 안다면.......

    “시간이 없어요.”

    라이가 카르안에게 말했다. 지금은 감상에 빠져있을 때가 아니다. 벌써 수백 명의 병사들이 카르안 일행을 포위하고 있다.

    ‘유물부터 빼가야겠군.’

    정신을 차린 카르안. 예드프리어가 뮬리펜을 구하는 사이, 카르안의 골렘 두기가 작업을 시작했다. 손을 쫙 펴서 땅에 깊숙이 박은 뒤, 손을 굽히며 땅을 파낸다. 마법진이 그려진 돌바닥이 부서지고, 시커먼 땅이 속살을 드러내었다.

    그 과정에서 커다란 굉음이 터져 나왔지만, 병사들은 쉽사리 달려들지 못했다. 그들을 지시할 수뇌부가 전부 죽거나 전투 불능의 상태가 되었기 때문이다.

    교주는 치명상을 입고 모습을 감추었고, 기사단장은 죽었다. 그나마 장교 계급인 기사들도 대부분 죽거나 큰 부상을 당했다. 마지막 남은 사제들은 이런 상황에 익숙지 않았다. 그들은 허둥거릴 뿐, 제대로 된 명령을 내리지 못했다.

    부사관들이 병사들에게 돌격을 명령했지만, 이미 유물이 땅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뒤였다. 작업을 끝낸 카르안이 말했다.

    “텔레포트를 준비해주세요!”

    “마법진은?”

    “어차피 유물을 뺐으니까 별 수 없을 겁니다.”

    카르안이 엄지 손가락만한 보석을 들어올렸다. 마법진 지하에 박혀있던 것이다. 마법진에 계속 마나를 공급해주고 있었는지, 엄청난 마나가 흘러나오고 있다.

    사제장이 고개를 끄덕인 뒤 텔레포트를 준비했다. 원래 이곳은 알샤인 교단의 성지. 텔레포트 스크롤에 의한 텔레포트는 기본적으로 차단된다. 혹시 모를 도굴꾼이나 스파이 등의 도주를 1차적으로 차단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사제장급 성직자의 신성마법이라면 사정이 다르다. 사제장이 모든 신성력을 짜내어 텔레포트를 시전하자, 기사단 전원이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잠깐.”

    카르안이 얼른 치프의 시체를 들었다. 사제장은 얼굴을 찌푸렸지만, 예드프리어는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텔레포트 인원이 많아질수록 시전자에게는 부담이 된다. 살아있는 생명체가 아니더라도, 이동하는 물체 자체에 따라서 신성력이나 마나의 소모량이 달라지는 법이니까.

    이미 죽은 치프의 시체를 가져가 봐야 도움이 되지가 않는다. 사제장 입장에서는 처음 보는 사람의 시체를 안고 가는 셈이다. 하지만 예드프리어는 치프의 시신 수습을 허락했다.

    “잠깐이나마 함께 싸운 전우일세.”

    결정했으니 망설임은 없다. 사제장이 텔레포트를 시작하자, 빛과 함께 예드프리어 일행이 전부 사라졌다.

    2.

    “허억.”

    사제장이 숨을 헐떡였다. 온 힘을 퍼부었지만, 인원이 많아 멀리 이동하지는 못했다. 아직도 그들은 알샤인 대신전 한가운데에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사람들에 눈에 띄지 않는 뒷골목으로 온 것.

    보는 사람이라고는 놀란 눈의 노숙자 2명 뿐이었다. 뜬금없이 피투성이의 남자들과 성녀까지 등장했으니, 당황할 만도 했다. 예드프리어가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사제장. 여긴 어디지?”

    “예상했던 좌표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사제장이 손짓하며 기사들을 이끌었다. 꾸불거리는 골목을 몇 분 정도 헤매자, 그들은 곧 한 남자를 만날 수 있었다.

    “교주님. 여기입니다.”

    로브를 둘러쓴 남자가 손을 흔들었다. 도주를 담당한 기사였다. 그는 노예로 보이는 남자들과 함께 말들을 붙잡고 있었다. 탈출에 이용할 것들이다.

    “작전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건........”

    성공이라고 말하려던 예드프리어는, 지친 표정의 뮬리펜과 치프의 시신을 보고 말끝을 흐렸다.

    “반쯤 성공이라고 해두지.”

    남자도 더 이상 이야기하지 않았다. 기사들과 카르안은 각자 말을 골라서 탔다.

    카르안은 뮬리펜까지 말에 태웠다. 유일하게 갑옷을 입지 않은 게 카르안 뿐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치프의 시신을 챙긴 것은 예드프리어. 카르안과 기사들은 한번 말을 점검한 후, 그의 말을 몰기 시작했다.

    타닥- 타닥-

    힘찬 울음소리와 함께 말들이 질주했다. 요란한 말발굽소리가 알샤인 대신전 한가운데를 울렸다. 펄럭이는 바람이 옷 사이를 파고든다. 카르안은 그 바람의 감촉을 느끼며 고삐를 풀었다.

    시간이 있을 때 승마를 배워둔 게 큰 도움이 되었다. 그는 조금 어색하게나마 말을 힘껏 몰았다.

    “저게 뭐야?”

    “기사들인가?”

    골목길을 나서자, 사람들이 눈을 크게 뜨며 기사들을 쳐다봤다. 대낮에 백마를 탄 기사들이 길거리를 질주하다니. 흔한 광경은 아니었다.

    “전부 비켜!”

    기사들이 소리쳤으나, 굳이 그들이 말하지 않더라도 이미 시민들은 산지사방으로 흩어진 후였다. 돌진하는 기사단과 부딪혀 봐야 좋을 게 없다는 것을, 몸으로 확인할 만큼 멍청한 사람은 없었으니까.

    하지만 그 끔찍한 일을 실제로 해야 하는 사람도 있었다. 성벽을 지키던 병사들이 그들을 막아섰다. 그들은 돌진이 예상되는 진로를 향해서, 창을 세우고 스크럼을 짰다. 카르안이 소리쳤다.

    “우회합니까?”

    “아니! 그러면 놈들에게 놀아날 뿐이다.”

    만약 방향을 틀어서 다른 곳에 간다고 해도, 다른 창병들이 기다릴 뿐이리라. 그렇게 계속 피하다 보면 기마병의 생명, 속도가 자꾸 줄어든다. 돌격해야 될 때 한 번에 찌르는 것. 기마병은 머리털과 기세만큼은 잃지 말아야 한다는 게 예드프리어의 지론이었다.

    “단숨에 돌파한다!”

    카르안이 눈을 찌푸렸다. 말은 좋지만, 창을 세운 창병에게 정면 돌진은 결코 좋은 선택이 아니었다.

    게다가 지금 그들은 도주하는 입장이다. 이대로 다른 도시의 마법사길드까지 달려야하는데, 말이 다치기라도 하면 큰일이 난다.

    “멈춰! 멈춰라!”

    보초를 서던 병사들도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일단 기마병들에게 타격을 주더라도, 그것은 자기가 저기에 밟혀서 걸레짝이 된 다음이다. 서로가 피를 보는 것이다.

    병사들의 경고에도, 예드프리어는 멈추기는커녕 질주에 더욱 박차를 가했다. 동시에 그는 거대한 장검을 꺼내들었다.

    “이럇!”

    허벅지 힘만으로 중심을 잡고, 왼손으로 고삐를 쥐었다. 그리고 남은 오른손으로 장검에 오러를 불어넣었다.

    거의 서커스에 가까운 묘기. 그제야 병사들은 비명을 질러대며 도망쳐 버렸다. 저 오러에 맞으면 뼈도 못 추린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예드프리어가 방긋 웃었다.

    “좋은 선택이다!”

    그가 힘껏 검을 휘두르자, 오러가 날아가며 막혀있던 성문을 박살냈다. 조각난 나무와 돌 등에서 뿌연 먼지가 올라왔다.

    시야가 가려졌지만, 예드프리어는 겁 없이 스스로 뚫은 성문을 돌파했다. 뒤의 기사들도 조각난 잔해를 뛰어넘어, 주군의 뒤를 따랐다.

    그들은 성벽을 돌파하고도 한참을 질주했다. 추적을 따돌려야 했다. 카르안은 모든 신경을 집중하며 말을 몰았다. 주변이 휙휙 돌아갈 정도의 속도다.

    한참 후, 뒤따라오는 병력이 없는 것을 확인한 예드프리어가 손을 들어올렸다.

    “속도를 줄여!”

    카르안이 고삐를 당기자, 말이 푸드덕대며 발을 늦췄다. 앞으로 마을까지 제법 거리가 있다. 벌써부터 말들이 지치면 곤란하다.

    주변의 기사들도 전부 말의 속도를 줄였다. 그들은 적당한 속도를 유지하며 말을 몰았다.

    “카르안씨.”

    이제 조금 힘이 돌아왔는지, 뮬리펜이 카르안에게 속삭였다. 카르안은 살짝 뒤를 돌아봤다.

    “저는.......”

    “지금은 쉬어 두세요. 피곤할 텐데.”

    “........”

    “나중에 이야기 합시다.”

    뮬리펜은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대신 카르안의 허리를 붙잡았다. 그녀는 나름대로 힘껏 잡은 것이지만, 어쩐지 손아귀에 힘이 없었다.

    ‘젠장.’

    지하에 있을때는 몰랐는데, 밖에서 보니 뮬리펜의 금발이 하얗게 탈색되었다. 이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는 카르안은 마음 한구석이 무거워졌다.

    끝없이 질주한 끝에, 그들은 근처 도시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알샤인 대신전으로 처음 이동할때도 이 도시를 이용했다.

    시간은 올 때보다 갈 때가 더 걸렸다. 원래 휴식 없이 달리려 했으나, 뮬리펜의 상태가 좋지 않아서 중간 중간 쉬어야 했기 때문이다.

    예드프리어는 그 휴식시간도 알차게 이용했다. 쉴 때마다 흔적을 지우고, 완만한 개울가가 보이면 그쪽을 이용해 말발굽을 남기지 않았다. 그 덕분에 뒤따라오는 추적대는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곧장 마법사 길드를 향했다. 그리고 바로 장거리 텔레포트를 신청했다. 마법사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며 마법을 준비했다.

    “자, 이제 어떻게 할 텐가. 잠시 교단에 들렸다 가겠나?”

    “괜찮습니다. 안 그래도 무단결근인데.”

    카르안이 한숨을 쉬며 머리를 긁적였다. 이미 신청한 휴가기간은 한참 지나버렸다. 게다가 바빠서 사이프카르에게 통보도 하지 못했다.

    ‘한 소리 듣겠군.’

    잘릴 걱정은 없다. 다만 사이프카르의 불같은 성격을 감안한다면, 욕은 배터지게 먹을 각오를 해야할 것이다.

    “그나저나 저 유물은 어떻게 합니까?”

    기사단장이 복잡한 표정으로 카르안을 쳐다봤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의 주머니. 일단 함께 일하다 얻은 것이니 나누기는 해야겠는데, 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것도 문제로군.”

    예드프리어도 턱수염을 쓰다듬었다. 일단 알샤인 교단 한중간에 박혀있던 것이니 보통 귀한 물건은 아닐 것이다. 한눈에 봐도 엄청난 마나가 흘러나오지 않는가.

    비록 뮤프리드 교단의 사제장이나, 다른 사제들 모두 마나 대신 신성력을 사용하기에 당장은 쓸모가 없다. 하지만 나중에 어떤 형태로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알샤인 교단만 해도 연금술사들을 잔득 고용해서 신성력과 마나를 함께 사용하는 마법진을 완성시키지 않았는가.

    잠시 보석을 노려보던 카르안. 그가 결심한 듯 뭔가 말했다.

    “교주님. 죄송하지만 이건 제가 가져가도 되겠습니까.”

    “카르안씨. 욕심이 너무 과하지 않습니까?”

    “우리 모두 함께 싸워 얻은 것입니다! 당신 혼자 싸운 게 아니란 말입니다!”

    카르안의 말에 기사단장과 사제장 모두 반발했다. 다른 기사들도 교주 앞이라 함부로 말하지는 못했지만, 영 못마땅한 표정이다. 예드프리어가 한쪽 손을 들어 그들을 막았다.

    “카르안. 자네가 정보를 전해준 것에 대해서 우리는 모두 고마워하고 있네. 자네 덕에 알샤인 교단을 막을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덕을 본 것은 우리만이 아닐 텐데.”

    뮤프리드가 알샤인 교단의 계획을 저지했지만, 카르안도 뮤프리드 교단을 이용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니까 서로가 필요에 의해 협력했고, 그 과정에서 나온 전리품은 공평하게 나누어야했다.

    개인적으로는 카르안에게 고마운 마음이 있었지만, 이건 별개의 것이다. 교단 전체의 이익이 걸린 일. 사사로운 감정으로 결정할 일이 아니다.

    물론 유물을 넘길 수도 있다. 만약 카르안이 그만한 대가를 치른다면 말이다. 카르안이 예드프리어에게 말했다.

    “금화는 어떻습니까?”

    “하하. 모든 이들에게 금화는 매력적인 물건이지.”

    예드프리어가 웃으며 대답했다. 금화는 진리라는 게 뮤프리드의 가르침 아닌가. 그는 세상 누구보다 독실한 뮤프리드의 신자였다.

    “그러면 가격은 어떻게 할 텐가?”

    “조만간 대신전에 찾아가겠습니다.”

    “좋아. 기다리고 있겠네.”

    당장 이 보석의 가치는 감도 잡히지 않는다. 전문가를 통해 감정을 해봐야 알 수 있을 것이다. 여기도 마법사들이 있기는 했지만, 지금은 한시가 급한 상황. 여유롭게 물건이나 봐달라고 할 시간은 없다.

    거래는 짧게 끝났다. 계약서 따위는 쓸 필요도 없었다. 뮤프리드 교단을 상대로 사기를 칠 미친놈은 세상에 없기 때문이다. 돈 몇푼때문에 뮤프리드 교단을 적으로 돌린다면, 그놈은 세상에 둘도 없는 미친놈 취급을 받을것이다.

    “교주님! 텔레포트 준비가 끝났다고 합니다!”

    “그러면 이별할 시간이군. 그나저나 말이야.”

    예드프리어가 고개를 갸웃했다.

    “자네 입장에서는 그냥 돈으로 받는 게 편하지 않나? 지금 이 보석이 꼭 필요한 이유라도 있는 것인가 싶어서.”

    “이유라. 귀한 물건을 보면 연구하고 싶은 게 연금술사의 마음 아니겠습니까.”

    이 보물의 가격은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당장 카르안의 전 재산을 털어도 부족할 만큼.

    아무리 부유한 카르안이라도 이 빚을 갚으려면 한참이 걸리리라. 하지만 그것을 감안해도 이 보석은 얻을 가치가 있었다. 물론 연구 목적은 아니었다.

    이 보석이 있으면 계획에 큰 도움이 된다. 그리고 그 계획이 성공만 한다면, 당장 재력 뿐 아니라, 돈을 효율적으로 벌 수단이 잔득 생겨난다.

    ‘앞으로 한 달.’

    카르안은 속으로 생각했다.

    ‘한 달 안에 승부를 본다.’

    ========== 작품 후기 ==========

    생각보다 조금 길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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