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포션으로 무한성장 (85)화 (85/124)

<-- 골렘 깎는 노인 -->

뮬리펜은 감았던 눈을 떴다. 석궁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하지만, 지금쯤이면 날아오던 화살이 도착하기에는 충분한 시간이라는 것은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몸을 한 벌 훑어봤다.

아무런 상처도 없다. 그러니까, 결국 살아남았다. 뮬리펜은 깊은 숨을 내쉬었다.

생존에 대한 기쁨보다는, 절망감이 더욱 컸으니까.

뮬리펜은 눈을 올려 그에게 석궁을 발사한 남자에게 시선을 돌렸다. 왜 빗나간 것일까. 억울한 마음까지 들었다.

“어?”

하지만 남자는 보이지 않았다. 무언가 그들 사이를 가로막고 있었다. 골렘. 뮬리펜과 라이 사이에는, 골렘 한기가 서 있었다.

“젊은 것들은 너무 극단적이란 말이야. 조금 더 유연한 사고를 하게나.”

치프가 눈을 찌푸리고 있었다. 그가 황급히 만들어 낸 골렘이 라이의 화살을 튕겨낸 것이다.

시간이 부족했기에 완전히 막지는 못했다. 하지만 원거리 무기라는 게 살짝만 궤도가 틀어져도 빗나가는 법이다. 볼트는 뮬리펜을 스쳐 엉뚱한 곳으로 날아갔다.

카르안을 제외한 골렘술사는 치프밖에 남지 않았다. 노인은 머리를 벅벅 긁으면서, 예드프리어를 노려보았다.

“볼일 보시오. 이 아이는 내가 꺼내올 테니.”

예드프리어의 반대 방향. 제법 떨어진 곳에서 치프가 소리쳤다. 그들은 빠르게 카르안을 지원해야 한다. 이제 방해할 것들도 없으니, 뮬리펜을 꺼내오기만 하면 그만이다. 치프는 능숙한 솜씨로 골렘을 조작했다.

“알겠소!”

예드프리어는 망설임 없이 폴룩스에게 달려갔다. 치프에 대해서는 카르안에게 설명을 들었다. 순교자가 뮬리펜이 됬다는 것을 알고 난 뒤, 카르안은 혹시나 해서 그녀와 피가 이어진 관계라고 말해둔 것이다.

예드프리어는 빠르게 치프의 정체를 파악했다. 손녀를 구하기 위해 온 연금술사. 그렇다면 이제 목표는 명확하다. 폴룩스를 치고, 저 마법진을 최대한 망가뜨린 후 도망친다.

점점 병사들의 수가 불어나고 있다. 지금까지는 사도들이 방패막이 되어 주었지만. 그것도 얼마 안가 한계가 오리라.

“자, 이제 슬슬 마침표를 찍을 때다!”

폴룩스에게 수십 명의 기사들이 달려들었다. 그 사이를 남은 알샤인 기사단이 가로막았지만, 그들은 추풍낙엽처럼 쓸려 버렸다. 그것을 본 폴룩스의 몸이 공중으로 떠올랐다.

‘미치겠군.’

홈그라운드, 거기에 마법진과 동화되었다는 이점을 가지고서도, 저들 모두를 상대하기는 벅차다. 단순히 예드프리어 한명이라면 이길 수 있겠지만. 저들 또한 일당백의 용사들뿐이다.

무엇보다 늙은 연금술사가 그의 세례식을 망치려한다. 이제 몇 분만 더 버틴다면 의식이 모두 끝나는데. 이 꼴이 날줄은 상상도 못했다.

뮬리펜은 단순한 에너지원이 아니다. 그녀가 없으면 다른 사람을 투입하면 되기는 하지만, 그 과정이 상당히 복잡해진다. 적어도 일주일 가까운 시간이 필요하다.

‘마법진만 멀쩡하면 된다.’

다행히도 마법진 속 유물. 그것까지만 무사하면 세례식은 다시 준비할 수 있다. 폴룩스는 예드프리어에게 돌격하며, 안절부절 못하는 기사단장에게 눈짓했다.

“그래도 쉽게 끝낼 수는 없지.”

2.

“이제야 제대로 싸울 만 하겠군!”

예드프리어가 눈을 빛냈다. 그는 달려드는 폴룩스에게 힘껏 검을 휘둘렀다.

“녹슬었군.”

폴룩스는 미끄러지듯 유연하게 그의 공격을 피했다. 동시에 예드프리어의 등 쪽으로 흐르듯 이동하며, 있는 대로 마법을 쏟아내었다.

쾅! 쾅!

연달아 폭발음이 터져올랐다. 엄청난 속도의 돌격이였다. 하지만 예드프리어는 그 공격을 피하지도, 막지도 않았다. 단순히 갑옷의 내구도와 체력으로 버텨내었다.

예드프리어가 순식간에 피투성이가 되었다. 옆에 있던 기사들은 교주가 부상을 입자 당황한 듯 했으니, 정작 당사자인 예드프리어는 즐겁다는 듯 웃고 있었다.

“너무 가볍다!”

예드프리어는 폴룩스가 뒤를 잡을 것을 예상했다는 듯이, 힘껏 몸을 돌리며 검을 휘둘렀다.

온 몸의 무게를 실은 공격이었다. 엄청나게 큰 공격이었지만, 폴룩스는 피하지 못했다. 타오를 듯한 오러가 그의 몸을 갈랐다.

유체로 된 몸이 두 동강 났다. 호쾌한 일격! 단지 한 번의 공격일 뿐인데, 공간이 찢겨진 듯 강풍이 몰아쳤다.

예드프리어의 처음 공격 자체가 허초에 가까웠다. 정면으로 달려들 때 큰 공격을 하면 피할 수도 있으니, 일부러 살짝 휘두른 후, 진짜 공격을 준비했다.

그는 폴룩스의 모든 수를 예측했다. 전사인 자신에게 사제인 폴룩스가 달려들 때부터, 폴룩스가 자신의 빈틈을 노리려 한다는 것을 눈치 챘다. 그러기 위해서 폴룩스는 눈속임으로 마법을 몇 개 날려준 다음, 진짜 공격을 시작할 것이다.

그래서 일부터 처음 몇 방은 맞아주었다. 예상대로 약한 마법. 그는 방어 대신 더욱 검에 신성력을 응집시켰다.

예드프리어의 생각대로였다. 폴룩스는 마나소비를 줄이기 위해, 일부러 약한 마법들을 날리며 예드프리어의 뒤를 잡으려했다. 그리고 큰 마법을 그의 빈 틈으로 날리려했다.

예드프리어의 체력의 상상 이상이다. 멀리서 깔짝거려봐야 택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폴룩스는 과감한 수를 던졌다. 하지만

“크아아악!”

예드프리어의 일격에, 준비했던 신성마법이 전부 역류했다. 섬세한 마법진이 박살나고, 혈관을 피처럼 타고 흐르던 신성력이 전부 엉켜버렸다. 유지하고 있던 유체화가 잠시 풀려버렸다.

마법사나 사제나 마법 준비 중이 가장 취약한 법이다. 그 준비하던 마법이 크면 클수록 피해는 배가되는 법. 폴룩스의 전신의 혈관이 부풀러 올랐다.

“이제 시작인데, 벌써부터 항복인가!”

예드프리어의 공격은 한번이 끝이 아니었다. 첫 공격이 깔끔하게 박히자, 그는 폭풍처럼 거세게 연타를 날렸다.

검이 폴룩스의 허리를 자르고, 다음을 세로로 쪼갰다. 횡으로 베고, 심장, 머리를 찔렀다.

“와.........”

카르안이 말을 잇지 못했다. 그렇게 강력하던 폴룩스가, 순식간에 다진 고기가 되고 있었다. 이게 뮤프리드의 교주, 예드프리어의 본 실력일까. 실로 무시무시한 경지였다.

“하압!”

마지막으로 예드프리어는 검을 땅에 박은 후, 폴룩스를 향해 장(掌)을 뻗었다. 마치 동방의 권법 같은 기술이다. 그 공격을 받자, 간신히 형체를 유지하던 폴룩스가 폭발해버렸다.

“제가 나설 것도 없었군요.”

카르안이 허탈하게 말했다. 전부 달려들어서 치고 박고 싸울 것을 예상했는데, 의외로 폴룩스가 김빠지게 죽어버렸다. 함께 달려왔던 기사들과 사제장도 비슷한 표정. 예드프리어는 만족스럽게 웃었다.

“뒤에서 염불이나 외우던 늙은이가 전투를 알겠어?”

스르륵-

그때 뒤에서 섬뜩한 소리가 울렸다. 터져나간 폴룩스의 시체 근처에서, 빛나는 실지렁이 같은 것들이 올라왔기 때문이다. 그것들은 다시 형체를 만들기 시작했다.

죽은 폴룩스가 다시 부활하려 한다. 하지만 예드프리어는 그를 보지도 않고 검을 휘둘렀다. 오러가 퍼져나가며 빛이 흩어졌다.

“이제 마법진을 파괴하고 돌아갑시다.”

“저게 파괴 가능한 것인가?”

“저 정도 규모의 마법진이라면, 특수한 유물이나 성물 등의 도움이 있어야 유지가 됩니다. 유물만 꺼내오면 쉽게 파괴할 수 있어요.”

이번에는 카르안이 나설 차례였다. 연금술을 기반으로 한 마법진. 유물의 위치는 대충 예상이 가능했다.

아마 지하 깊숙한 곳에 숨겨 놨으리라. 손으로 파려면 한세월이지만, 카르안의 골렘은 쉽게 땅을 파헤칠 수 있다. 그때였다. 사제장이 중얼거렸다.

“근데 주변이 조금 조용해진 것 같은데.”

카르안이 황급히 주변을 둘러봤다. 주변에서 날뛰던 사도들이 전부 사라져버렸다.

폴룩스가 치명상을 입자 사도들의 소환이 해제된 것이다. 덕분에 병사들이 정신을 차리고 있었다.

“생각보다 시간이 없어 보이는데요.”

“빨리 움직이자고.”

예드프리어가 황급히 소리쳤다. 생각보다 폴룩스를 쉽게 잡았지만, 더 큰 문제가 생겨버렸다. 그들은 다시 마법진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카르안이 주먹을 꽉 쥐었다.

3.

“어려서부터 맹하더니.”

치프는 제단에 쓰려진 뮬리펜을 조심스럽게 안아 올렸다. 그녀의 생명을 빨아먹던 연기들은 방어 기능을 잃었는지, 너무나 쉽게 뚫려버렸다.

치프가 주변을 확인했다. 예드프리어가 폴룩스에게 미친 듯이 칼질을 하고 있었다. 과연 저 예드프리어란 남자가 폴룩스를 쓰러뜨릴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상황이 썩 나빠 보이지는 않았다.

앞으로가 문제였다. 이제 뮬리펜은 알샤인 교단에서 제명당할 것이고, 돈도 신성력도 남아있지 않을 것이다. 평범한 소녀가 살아가기에는, 세상이 그렇게 만만한 곳은 아니었으니까.

“삶이 고통의 바다라고 했던가.”

살아도 고통. 죽어도 고통. 어쩐지 씁쓸했다. 그래도 죽는 것보다는 사는 편이 나으리라.

“너 같은 불신자에게는 온 세상이 고통이겠지.”

누군가 치프의 귀에 속삭였다. 노인은 황급히 뒤를 돌아보려 했으나, 멈춰 설 수 밖에 없었다.

“으음.”

치프가 신음을 흘렸다. 장검 하나가 그의 심장의 뚫고 있었다. 언제부터 뒤에 서 있던 것일까.

알샤인 기사단의 단장. 그가 잔인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전부 교주님에게 정신이 팔려있더군. 이것도 알샤인님의 뜻이겠지.”

“네놈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비겁하구나.”

치프가 검을 뽑으려 몸을 비틀었다. 피가 터져 나왔지만, 일단 도망쳐야한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기사단장이 재미있다는 듯 검을 뽑았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치프에게 휘둘렀다. 노인은 이를 알 물고 피하려 했으나, 그에게는 어떠한 기적도 일어나지 않았다. 치프의 몸이 허무하게 두 동강 나 버렸다.

“커억!”

치프가 눈을 부릅뜨고 쓰러졌다. 그는 상처를 막으려 했으나, 반으로 잘린 몸뚱이에서는 피만 철철 쏟아져 나왔다.

얼마 안가 치프의 동공의 풀렸다. 그는 마지막까지 뮬리펜을 바라보고 있었다.

간헐적으로 터져 나오는 피가 아직 심장이 뛰고 있음을 알렸지만, 이미 그의 생명은 끊어져 버렸다. 연금술사의 죽음을 확인한 기사단장이 중얼거렸다.

“나도 시간이 없어서.”

폴룩스가 쓰러졌다. 동시에 제단을 달구던 불도 사라져버렸다. 기사단장은 서둘러 뮬리펜에게 뛰어갔다.

다행히 사도들이 사라졌다. 그가 시간을 버는 사이, 병사들이 합세한다면 의식을 끝낼 수 있다. 그러려면 제단의 벗어난 뮬리펜부터 제 자리로 옮겨야했다. 단장은 주인을 잃고 무너진 골렘을 치우며 뮬리펜을 꺼내려했다.

뮬리펜은 움직이지 못했다. 너무 많은 생명력을 잃었다. 의식을 유지하는게 고작이다. 단장은 뮬리펜에게 손을 뻗었다.

파악-!

“크익!”

피가 튀었다. 단장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무너진 줄 알았던 골렘이, 다시 움직이며 그의 얼굴을 찢어버렸기 때문이다.

“아직 살아있었나!”

그는 검을 뽑아 골렘을 베어냈다. 그리고 쓰러진 치프를 바라보았다. 이상했다. 수많은 전투를 치른 단장이 보기에도, 이미 치프는 죽어있다.

그런데, 골렘은 계속 움직인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미지의 공포. 본능적인 공포가 느껴졌다. 그는 뒤로 물러나려다, 이내 이를 악 물고 달려들었다. 겁을 먹기에는 지금 시간이 너무 부족하다.

“죽어!”

기사단장을 있는 대로 골렘을 베었다. 알샤인의 신성력이 걸려있는 검이다. 저럼 싸구려 골렘 따위는, 단숨에 벨 수 있는 무기.

하지만, 골렘은 팔이 잘리고 몸이 박살나도, 심지어 골렘의 핵에 검이 박혔지만 쓰러지지 않았다. 오히려 방어도 하지 않고 기사단장에게 주먹을 휘둘렀다.

“이, 이게 뭐야!”

그는 덜컥 겁이 났다. 기사단장의 자리까지 오면서, 다른 강력한 몬스터들과 싸워왔다. 하지만 그들은 전부 공격하면 상처를 입었고, 치명상을 입히면 쓰러지는 것들이었다.

그런데 대체 이건 뭐란 말인가. 왜 계속 움직이며 그를 공격하는가. 이건 그의 상식과 달랐다. 상식 외의 존재였다.

단장은 황급히 시선을 돌렸다. 저 멀리서 카르안과 예드프리어가 달려오고 있다. 그들도 상황을 파악했으리라. 그는 떨리는 손을 부여잡고, 다시 골렘에게 달려들었다.

“저, 저에게 용기를 주소서!”

그는 있는 신성력을 전부 모아 골렘의 다리를 후려쳤다. 이번에는 제대로 먹혔는지, 골렘은 한쪽 무릎을 꿇었다. 신은 아직 자신을 버리지 않았다! 단장은 알샤인의 이름을 외치고, 뮬리펜의 한쪽 팔을 잡은 체 제단으로 가려했다.

꽈악-!

“아아악!”

발목이 우그러지는 고통이 느껴졌다. 쓰러진 골렘이 그의 발목을 움쳐 쥔 것이다. 아무리 스톤 골렘이라지만, 그 악력은 굉장한 수준이었다. 순식간에 피가 튀고 뼈가 박살나 버렸다.

“놔라! 괴물같은놈!”

단장이 공포에 질린 눈으로 골렘을 내려 봤다. 그런 단장을, 골렘은 묵묵히 쳐다보고 있었다. 이미 핵도 박살나고, 몸도 대부분 파손되었지만, 지금 단장에게 그 고장 난 골렘이 무엇보다 두려운 존재였다.

단장의 눈에 오러를 모은 예드프리어가 들어왔다. 그리고 머리 위가 환하게 빛나는 것도 느껴졌다. 마법진이다. 이제 카르안이 골렘을 소환할 수 있는 거리까지 접근한 것이다.

단장은 괴성을 지르며 발버둥 쳤다. 하지만 골렘은 그런 단장을 놔주지 않았다. 묵묵히 단장을 노려볼 뿐.

곧 단장은 눈앞이 환하게 빛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다음 순간. 예드프리어의 오러와, 카르안의 골렘이 동시에 그의 몸통과 머리통을 박살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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