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골렘 깎는 노인 -->
폴룩스가 시전한 신성마법.
모든 생명체를 차단하는 알샤인의 권능이다. 여기는 알샤인 대신전 한 중간이고, 그는 마법진과 동화되어 있었다. 그래서일까, 교주가 부리는 마법의 위력을 실로 가공할 힘을 뿌리고 있었다.
“물러나!”
예드프리어가 당황하며 소리쳤다. 전신이 화상을 입은 것처럼 후끈거린다. 알샤인의 신성 마법은 잘 모르지만, 이게 가까이 있어도 될 마법은 아니라는 게 확실했다.
예드프리어는 부하들과 함께 뒤로 물러났다. 안개에 쩔쩔 매던 기사단장까지 전부. 폴룩스가 마법을 사용하는 순간 안개가 확 사라졌지만, 뮬리펜을 꺼내기 전에 도망칠 수 밖에 없었다. 무시하기에는 마법이 너무나 강력한 수준이었다.
빠르게 대처한 덕분에, 아무도 큰 부상을 당하지 않았다. 그가 황급히 소리쳤다.
“잠시 방어마법을 걸어주게! 일단 성녀라고 빼와야겠어!”
마법진부터 멈춰야 한다. 과연 뮬리펜을 빼낸다고 마법진이 멈출지는 모르겠지만, 세상에 확실한 일이 얼마나 있겠는가.
때로는 불확실한 것에도 목숨을 거는 과감함이 필요했다. 그것을 전사 예드프리어는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얼른 주변을 둘러봤다. 다행히 알샤인의 사도들은 병사들과 서로 싸우고 있고, 기사들은 거의 전멸했다. 알샤인의 사제들도 많이 없는 상황.
일단 뮬리펜이라도 빼 오면 잠깐이라도 의식을 저지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제장은 절망적인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안됩니다! 저 마법은 방어가 불가능해요.”
방어를 할 수 있으면 진작 했다. 그게 불가능하니까 기사들과 함께 물러난 것이다.
폴룩스가 전력을 다해 펼친 마법이다. 게다가 범위도 마법진 안쪽이 전부. 그만큼 화력이 집중되어 있다는 뜻이다.
한마디로 저 마법진 안쪽으로는 접근이 불가능하다. 어거지로 밀어 붙인다면, 온 몸이 타올라 즉석 바베큐가 될 것이다.
“파훼법은?”
“없습니다. 다만.”
사제장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원거리 공격은 통할 것입니다. 저 주문을 보니까 접근한 ‘생명체’ 만을 파괴하는 것 같은데.”
실제로 주문을 외우는 마법진과 제단 등은 아무런 손상이 없었다. 또한 안에 있는 뮬리펜도. 고통스러워하고 있기는 하지만, 마법에 의한 피해를 입는 것 같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폴룩스가 멍청이가 아니라면, 스스로 뮬리펜에게 피해를 줄 리는 없을것이다.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라이가 얼른 석궁을 겨누었다. 그리고 마법진 속에서 흐물거리는 폴룩스를 향해 발사했다.
“아쉽게 되었군.”
폴룩스는 그런 라이를 비웃었다. 볼트에는 신성력이 서려있지만, 유체로 변한 교주에게는 별 피해를 주지 못했다. 볼트는 그를 허무하게 지나치며 벽 뒤에 박혔다.
“그러면 이것도 막아봐라!”
예드프리에가 다시 한 번 오러를 날렸다. 검에 폭발할 듯한 신성력이 모이고, 당장 폴룩스를 찢어버릴 것처럼 날아갔다.
하지만 그 오러는 폴룩스의 몸에 닿기도 전에 증발해 버렸다. 깜짝 놀란 예드프리어가 눈을 껌뻑였다.
“아니, 이게 왜 저러지?”
마법진에 연결된 폴룩스. 그는 평소보다 능력이 강화된 상태였다. 거기에 방어에 집중까지 하고 있다. 마법사도 아닌 검사 예드프리어. 그가 원거리에서 폴룩스에게 피해를 줄 방법은 없었다.
차라리 공격적으로 마법을 운용했다면 빈틈이라도 찾아보겠는데, 작정하고 방어만 하는 상대에게는 모든 공격이 무효화되는 것이다.
“젠장. 조금만 빨리 왔더라면.......”
“아직 안 끝났습니다.”
뮤프리드의 기사단장. 그가 뒤를 돌아보며 소리쳤다. 카르안이 열심히 달려오고 있다. 예드프리어도 순식간에 상황을 이해했다.
생명체가 못 들어간다면, 골렘이 들어가면 그만이다. 폴룩스를 직접 타격해도 괜찮았고, 뭣하면 뮬리펜만 꺼내와도 큰 이득을 볼 수 있다.
“사도들은 뭘 하는가!”
폴룩스도 그들의 생각을 파악하고, 크게 소리쳤다. 이제 조금만 버티면 된다. 비록 교단은 개판이 되었지만, 그것은 나중에 생각할 문제. 일단 카르안이라는 변수만 차단한다면 그의 승리는 확실해보였다.
문제는 불완전한 1세대 사도들이 말을 못 알아먹었다는 것이다. 놈들은 피에 취해 교단의 사병들을 잡아먹었다. 폴룩스가 이를 벅벅 갈았다.
카르안이 점점 가까워진다. 폴룩스는 결심한 듯 제단을 내버려두고 카르안에게 돌격했다.
“마지막까지 귀찮게 하는군!”
어차피 폴룩스가 없더라도 마법은 유지된다. 얼른 카르안의 숨통을 끊어버리고 다시 돌아오면 그만이다.........
카르안과 폴룩스가 다시 한 번 격돌했다. 영체화된 폴룩스는 카르안을 향해 미친 듯이 마법을 쏟아 부었고, 폴룩스는 오만상을 찌푸리며 그 마법을 피하고 막았다.
빛의 신 답게, 폴룩스의 양 손에서는 계속 뭔가가 번쩍거렸다. 카르안은 골렘을 소환과 해제를 반복하며 거의 방패처럼 사용했다.
끼이이익-
소름끼치는 소리와 함께 골렘이 우그러졌다. 카르안은 속으로 욕설을 내뱉었다. 골렘이 손상된 것은 문제가 아니다. 마나, 마나가 계속 소모되고 있다.
카르안은 마나가 증가하고, 골렘을 공부하며 효율을 올렸다. 하지만 그게 무한히 마나가 넘쳐난다는 뜻은 아니었다. 특히 골렘의 소환과 해제에는 막대한 마나가 소비되었다.
“빌어먹을 것.”
그는 이를 악물로 폴룩스를 노려봤다. 그 시간. 예드프리어는 고민에 빠져 있었다.
“저희가 결정해야 합니다.”
사제장이 작게 속삭였다. 카르안이 강력한 골렘술사이자 전사인 것은 확실했지만, 폴룩스를 상대로 오래 버틸 것 같지는 않다.
예드프리어에게는 세 가지 선택지가 있었다. 하나는 카르안을 도와 폴룩스를 처단하는 것. 다른 하나는 저 뮬리펜을 죽이는 것. 마지막은 둘 다 하는 것.
저 마법진 안쪽으로는 들어갈 수 없다. 그리고 뮬리펜을 보호할 폴룩스도 멀리서 카르안과 싸우고 있다. 사도들은 병사들과 싸우느라 정신이 없었고.
상황은 나쁘지 않다. 폴룩스가 마법진을 이탈했으니, 원거리 공격을 막을 상대는 더 이상 없다. 무엇보다 기사단장과 볼트를 막았던 검은 안개. 그것들이 많이 사라져있다.
아마도 폴룩스의 마법을 유지하느라, 많은 마나가 소모된 탓이리라. 저 안개가 없다면 라이의 석궁으로도 뮬리펜을 저격할 수 있다.
최선의 선택은 빠르게 뮬리펜을 죽인 후, 카르안을 돕는 것이다. 예드프리어는 깊은 한숨을 쉬었다.
“오늘 꿈자리가 사납겠군.”
예드프리어도 뮬리펜을 죽이고 싶지 않았다. 무엇보다 일주일 정도지만, 서로의 교류가 있었다. 그가 봐도 뮬리펜은 죽기 아까운 선인이었다.
“되었다.”
예드프리어는 검을 잡았다. 그리고 괴로워하는 뮬리펜을 노려봤다. 이제 생명력까지 소모되고 있는지, 그녀의 커다란 눈은 생기를 잃어가고 있다.
‘어쩌면, 지금 목숨을 끊어주는 게 그녀에게는 축복일지도.’
예드프리어의 검에 신성력이 모였다. 예의 그 오러. 이것이라면 단칼에 뮬리펜을 죽일 수 있다.
“여기는 제가 맡겠습니다.”
예드프리어를 말린 것은 라이였다. 그는 한발이 남아있는 석궁을 꺼내들었다. 그리고 뮬리펜을 조준했다.
그 뜻은 하나였다. 예드프리어의 손을 더럽히지 않겠다는 것.
선한 자를 죽이는 것은, 당연히 뮤프리드의 교리에 어긋난다. 물론 교리라는 게 잘 지켜지지 않는 법이기는 했지만.
교리 이전에 당연히 갖춰야 할 덕목이었다. 예드프리어가 부하들 앞에서 뮬리펜을 죽인다면, 그의 권위에 금이 가지 않겠는가.
물론 여기 있는 기사단과 사제들은 전부 현명한 엘리트들이다. 지금 상황을 이해했고, 죽이지 않으면 죽는다는 사실에 익숙해져 있다. 하지만 다른 문제.
여기에 뮤프리드 기사단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알샤인 교단, 그리고 여러 잡병들. 전부 정신이 없어 보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혹시라도 틈을 보일 수는 없다.
예드프리어의 이미지를 손상시킬 필요는 없으니까. 라이가 끝내도 되는 일을, 굳이 예드프리어가 할 필요는 없었다.
“후우.”
라이는 망설임 없이 석궁을 조준했다. 이번에는 거리도 훨씬 가까웠다. 표적은 몸을 꿈틀거릴 뿐, 많은 움직임이 있는 것도 아니다.
빗나갈 이유는 없다. 라이는 짧은 사죄의 한마디를 중얼거리고, 뮬리펜에게 석궁을 격발했다.
화살은 직선을 그리며 뮬리펜의 심장을 향해 날아갔다. 카르안과 싸우던 폴룩스가 괴성을 질렀다.
“안돼!”
0.
의식이 흐릿하다.
처음에는 고통스러웠다. 난생 처음 격어 보는 고통. 수십 명의 사람들이 단검으로 온 몸을 난도질하는 기분이다.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고, 눈앞에서는 이상한 빛이 번쩍거린다. 코에서는 비릿한 혈향이 느껴졌다.
한 몇 초정도는 너무 아파서 죽을 것 같다가도, 그 후에는 빨리 죽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나는 나의 정신력이 이렇게 무력하다는 것을, 초겨울 강가의 살얼음판같이 얄팍하다는 것을 처음으로 깨달았다.
그 뒤에는 조금 편해졌다. 놀랍게도 나의 뇌는 무의식중에 그 고통을 이겨낼 방법을 찾아낸 것이다. 의식이 없으면 고통을 느낄 필요도 없다.
나는 통증 때문에 기절하듯 쓰러졌고, 다시 고통 때문에 각성하기를 수십, 수백 번. 아마 그 정도 반복했을 것이다.
세어보지 못했으니까, 정확하지는 않다.
정확하지 않다.
그런데, 세상에 과연 정확한 것이라는 게 있기는 할까.
선과 악. 나는 지금까지 선한 쪽으로 살아왔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과연 내가 지금까지 한 것은 선한 일이었을까? 악행이 아니었을까.
배고픈 소년을 구했다. 굶어 죽을 뻔한 소년. 그는 나에게 고개 숙여 인사하고, 나는 소년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따뜻했고, 기뻤다.
그런데 그 소년은 1년 후 5명의 시민을 살해했다. 여행을 떠나던 가족을, 마차해서 살해하고 금화를 훔쳐 달아났다.
도주는 얼마가지 못했다. 그 소년은 광장 한 가운데에서 공개 처형을 당했다. 나는 처형식에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소년과 눈이 마주쳤다. 그의 눈동자는 공허했다. 소년은 결국 불에 타서 비명을 질러대며 죽었다.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그런데 누군가 억울한 표정으로 나의 목을 붙잡았다. 한사람이 아니었다. 5명이 사방에서 나의 목을 잡아 뜯었다. 주변에서는 아무도 나를 도와주지 않았다.
나는 그 손을 풀려 했지만, 손가락은 마치 쇠로 만들어진 갈고리처럼 단단했다. 나를 붙잡은 사람들은 눈에서 검을 피를 눈물 대신 흘리고 있었다.
네가 우리를 죽인거야.
“아.”
의식이 돌아왔다. 그러니까 나는 의식을 잠시 잃었고, 환각을 보다가 다시 깨어난 것이다. 몇 초, 몇 분, 몇 시간이 지난 것일까. 알 수가 없었다. 선과 악의 경계처럼. 모든 게 너무나 어색하고 불분명했다.
느릿한 시간.
이제 나로 인해 태어날 사도들은, 얼마나 많은 피를 대지에 뿌릴까. 5명. 그 정도가 아닐 것이다. 수백, 수천. 아니 그 정도는 우습다. 수만 명이 될 수도 있다.
이제 죽어서도 그들의 원망을 들어야겠지.
과거의 죄책감. 거기로부터 도망치려 했는데, 오히려 더 큰 죄를 짓게 생겼다. 세상이라는 게 상상 이상으로 부조리했다.
나는 눈을 깜빡였다. 시야 가득하던 안개들이 조금 옅어진 기분이다. 주변은 불이라도 난 것처럼 이글거리고 있었고, 몸에서 점점 힘이 빠지는 것을 느껴졌다.
시야를 가로막던 안개들이 사라진 덕분에, 나는 누군가 나에게 석궁을 겨누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진중한 표정으로, 내 심장을 뚫으려 하고 있다.
나는 그 남자를 쳐다봤다. 날카로운 눈을 가진 남자였다. 어쩐지 낮이 익은데. 그의 입이 작게 움직였다.
제법 떨어진 거리였지만, 나는 이상하게고 그 입모양을 읽어낼 수 있었다. 그는 나를 보며 뭔가 중얼거렸다.
죄송합니다.
나는 그를 향해 한번 웃어주었다. 죄송할 필요는 전혀 없어요. 오히려 제가 감사한걸요. 당신은 이 고통과 죄의 사슬을 끊어주는 거니까요. 그 과정에서 제가 죽더라도, 그건 사소한 것입니다.
“하아.”
깊은 숨을 내쉬었다. 죽기 전 마지막 축복일까. 더 이상 고통은 느껴지지 않았다. 대신 플래시 백. 과거의 기억이 빠르게 재생되었다. 삶의 단편들이 머릿속에 번쩍인다. 그 중 마지막에 떠오른 것은.
카르안
마음에 안 드는 남자다. 직업부터 마약상 아닌가. 항상 나를 어린애처럼 놀려대고, 혼자 있는 폼 없는 폼 다 잡는 멍청이.
더 나쁜 것은 자기가 하는 일에 죄책감도 별로 없어 보인다는 것이다. 그 전까지 착실하더니, 몇 달 전부터 악마라도 씌인것처럼 변하고. 결국 지금은 건실한 악당의 표본이 되었다.
그런데
그런데 왜 자꾸 눈앞에서 사라지지 않는 것일까.
“그래도, 마지막에 즐겁기는 했어요.”
갑작스러운 후회가 몰려왔다. 만약 시간을 돌릴 수 있다면, 그와 조금 더 시간을 보내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약장수나 하기에는 너무 아까운 재능 아닌가. 조금만 시간이 더 있더라면, 그를 설득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하지만 차가운 시간은 결코 나를 기다려주지 않았다.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려온다. 나는 마지막으로 숨을 내쉬었다.
부디 저 화살이 내 심장을 뚫어주길 기도하며.
========== 작품 후기 ==========
조금 복잡한 일이 있었습니다만. 에피소드가 끝난 후에 풀도록 하겠습니다. 지금 말하기는 조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