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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션으로 무한성장 (81)화 (8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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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뮬리펜은 다른 고위 성직자들에 비해 정보가 상당히 부족했다. 그리고 그것은 교주 폴룩스가 의도한 것이기도 했다.

    사도의 제작방법. 그리고 그들의 목적. 또한 알샤인 교단이 엘프들의 나라, 르네키르다에 저지른 일들. 뮬리펜은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레이츠는 바로 그 비밀들, 교단의 핵심 정보들을 뮬리펜에게 풀어놓았다. 레이츠의 예상이 맞는다면, 뮬리펜은 당장 교주에게 달려갈 것이다. 그리고 그녀를 속인 교주에게 분노를 토해내겠지. 그거면 충분했다.

    뮬리펜은 처음에는 레이츠의 말을 믿지 않았다. 터무니없는 소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가 건네준 문서를 읽는 순간, 그녀도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지하실에서 일하는 연금술사들이 레이츠에게 건네준 문서였다. 사도의 양산. 그리고 그 사도의 뼈대가 되는 것은 살아있는 인간들. 그렇게 만들어진 알샤인의 사도들이 르네키르다를 공격한 일.

    뮬리펜은 단순히 이 사도들을, 교단을 지킬 수호자라고만 알고 있었다. 그리고 살아있는 인간을 희생한다는 것도 모르고 있다. 만약 그것들을 전부 알고 있었다면, 순교 따위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세세하게 기록된 문서들. 뮬리펜은 도저히 그것들을 거짓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웠다. 당연했다. 왜냐하면 처음부터 그 문서들에 적힌 것들은 모두 진실이었으니까.

    레이츠의 생각대로, 뮬리펜은 교주의 방을 향했다. 만약 교주가 뮬리펜에게 반감을 갖는다면, 그녀의 생존확률도 조금이나마 올라간다.

    물론 그 작은 확률에 기댈 생각은 없었다. 그저 교주의 신경을 조금이나마 돌려주길 바랄 뿐이다.

    폴룩스에게 향하는 뮬리펜을 바라보며, 레이츠는 얼른 발걸음을 옮겼다.

    2.

    폴룩스는 새로운 알샤인 기사단의 단장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전 기사단장은 무르짐에게 살해당했다.

    교단의 검과 방패인 기사단의 우두머리. 그 자리를 공백으로 둘 수는 없었기에 폴룩스는 서둘러 새 기사단장을 뽑았다.

    폴룩스는 그를 영 미덥잖은 눈으로 쳐다봤다. 그래도 남은 기사 중에서 가장 쓸 만한 기사였다. 하지만 폴룩스의 눈에는 부족해 보였다.

    전대 기사단장은 그야말로 강철같이 굳건한 신앙심. 불타는 충성심을 모두 갖춘 사나이였다. 검술 또한 누구에게도 뒤처지지 않았고. 반면 눈앞의 기사는 그를 한 다섯 배쯤 약화시켜놓은 것 같다.

    그래도 폴룩스는 딱히 내색하지 않았다. 어차피 남은 놈들중에는, 이놈 이상 가는 기사도 없었다. 그는 방긋 웃으며 새로운 기사단장에게 차를 권했다.

    “그래. 기사단장은 할 만한가.”

    “물론입니다! 이런 영광스러운 자리를 맡을 수 있어서.........”

    기사단장은 주저리주저리 떠들어대었다. 길기는 한데 실속은 없는 이야기였다. 폴룩스는 손을 저으며 그의 말을 끊었다.

    “자네 말은 잘 알겠네. 결국 알샤인 님을 위해 일해서 영광스럽다. 이거 아닌가.”

    “그, 그렇습니다.”

    “그거면 충분하네. 내가 오늘 자네를 부른 이유 말이야.”

    레이츠의 처분에 관해서다. 그렇게 폴룩스가 말하려는 순간, 방 문이 벌컥 열렸다. 뮬리펜이었다.

    “교주님.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뮬리펜 성녀. 노크하는 법을 잊어버린 것이오?”

    기사단장이 눈을 찌푸렸다. 지금 뮬리펜의 행동은, 예의라고는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 없었다. 뮬리펜은 자신에게 호통 치는 기사단장을 무시했다. 평소에는 보이지 않을 무례한 행동이었다.

    “하하, 레이츠도 그렇고 자네도 그렇고. 미녀들이 나를 가만히 두질 않는군. 무슨 일인가?”

    폴룩스는 뮬리펜을 보자마나 넉살 좋게 농을 던졌다. 여유가 있어 보이는 얼굴. 레이츠를 상대할 때의 냉정한 모습과는 정 반대였다.

    하지만 그런 교주를 보는 뮬리펜은 전혀 좋아 보이지 않았다. 그녀가 분노를 삭이며 말했다.

    “교주님. 알샤인의 사도들을 사용해 타국을 공격한다는 게 사실입니까.”

    “그게 무슨 소리인가. 전에 말했을 텐데.”

    폴룩스는 고개를 갸웃했다. 뮬리펜에게는 일반 신도들처럼, 사도에 관한 사실들을 숨겼다. 다른 고위 성직자들에게도 일러 두었을 텐데. 갑자기 진실을 눈치 챌 리가 없었다.

    물을 한잔 삼켰다. 평범한 물이었지만, 어쩐지 쓰게 느껴진다. 그가 입을 열었다.

    “알샤인의 사도들은 교단의 방어를 위한 것일세. 최근 타락한 무리들이 우리 교단을 침범하고 있어. 그들을 막으려면 강력한 군대는 필수적이네. 그래서 알샤인님이 대려주신 대책이 바로 사도들이고.”

    뮬리펜은 교단이 엘프들을 공격한 사실을 알지 못했다. 아니, 못했었다. 폴룩스가 그녀에게 정보를 차단한 탓이다. 조금 특이한 경우이기는 했다. 그 작전 자체가 극비이기는 했지만, 고위 성직자들 중 그 사실을 모르는 자는 드물었다.

    폴룩스는 뮬리펜을 어린 시절부터 보아왔다. 그녀는 너무 옳고 정직하다. 세상에는 더 큰 선을 펼치기 위해서는, 위선이라는 것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했다.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신수와 같다. 도무지 세상의 더러운 공기에 숨을 쉬지 못하는. 그런 새하얀 천조각.

    그렇기에 폴룩스는 뮬리펜을 이런 일에서 배제했다. 대신전에 머물며 더러운 일을 처리하기에는 도저히 어울리지 않았다.

    그녀에게 모든 진실을 밝힌다면, 당장 뮬리펜은 교단을 떠날 것이다. 신성력을 가진 성녀. 그런 인재를 그렇게 허무하게 보낼 수는 없었다.

    그래서 나온 대책. 폴룩스는 뮬리펜이 어느 정도 성장하자, 알펜 왕국의 알페라츠 백작령으로 보내버렸다.

    그녀가 어쩌면 촌구석이라고도 할 수 있는, 알페라츠 백작령에 보내진 것은 그런 까닭이었다. 뮬리펜의 타고난 신성력이 아깝기는 했지만, 무릇 군주라면 부하의 적성을 잘 알아야 했다.

    교단 내에서 출세할 수는 없지만, 처음부터 뮬리펜은 출세 같은 것에 관심도 없었으니까. 어차피 백작령은 교단이 신선을 세울 계획 이였고, 그 곳을 관리할 관리자가 필요했으니 손해 볼 것도 없었다.

    그런 사정 덕에 뮬리펜은 교단 내의 일, 복잡한 정세에 어두웠다. 지금 레이츠가 건네준 진실을 알기 전까지는.

    “그 전 이야기도 모두 들었습니다. 사도를 만든 게 이번이 두 번째라고. 무엇보다.......”

    뮬리펜이 불길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 사도들이 살아있는 인간으로 만들어졌다는 것. 그게 사실입니까.”

    “뮬리펜 성녀! 그게 무슨 소리인가!”

    옆에 서 있던 기사단장이 그녀에게 소리쳤다. 어쩐지 허둥대는 눈치였다. 그도 기사단장이 되면서 폴룩스에게 진실을 들었고, 그 것을 뮬리펜에게 숨겨야 한다는 것도 들었다. 하지만 연기가 영 어색하다.

    과거 기사단장이라면 능숙하게 넘겼을 테지만, 그런 인재들은 대부분 죽었다. 이번에 새로 들어온 기사단장은, 기사단장의 가장 중요한 미덕. 그러니까 뻔뻔함과 눈치가 영 부족했다. 폴룩스가 그녀에게 말했다.

    “누구에게 그런 이야기를 들었지?”

    “그것은 중요하지 않아요. 중요한 것은, 그게 사실이냐는 겁니다!”

    “사실이라.”

    사실이었다. 뮬리펜에게는 그냥 신이 내려준 병사라 얼버무렸지만, 사실 전부 인간들을 ‘개량’해서 만들어진 괴물들.

    더욱 잔인한 것은, 그 희생된 사람들이 알샤인 교단도 뭣도 아니라는 것이다. 그들 대부분 잃을 것 없는 노숙자들, 부모 없는 고아들을 납치해서 괴물로 개조했다. 물론 동의 따위는 받지도 않았다.

    교단에 깊게 관여하던 레이츠는 그 사실을 뮬리펜에게 전부 털어놨다. 그리고 그 레이츠의 계획대로 뮬리펜은 움직여주고 있다.

    뮬리펜은 배신감에 몸을 떨었다. 이럴 줄은 몰랐다. 그녀의 희생이 교단을 세워줄 기둥이 될 거라 생각했는데. 현실은 희생자를 부를 검을 제련할 뿐이었다.

    “자네가 솔직하게 말하니, 나도 이 자리에서는 솔직해져야겠지. 그 말은 전부 사실이네.”

    “........!”

    “나는 더 큰 힘을 위해, 교단의 성직자 뿐 아니라, 길거리의 떨거지들까지 전부 소비했다.”

    “교주님!”

    뮬리펜은 진심으로 분노했다. 그녀의 삶에 있어서, 가장 뜨겁게 타오르는 증오였다.

    작은 일이 아니었다. 그녀가 지금까지 믿었던 모든것이 부정되었다.

    이게 옳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죽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런데 전부 거짓말이었다.

    뮬리펜의 분노에도 폴룩스는 태연했다.

    “하지만 그게 무슨 상관인가? 모든 조직들은 힘이 있어야 된다. 그래야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어.”

    “아니, 그렇지 않아요.”

    “후후. 뮬리펜 성녀. 자네는 참 단순해.”

    폴룩스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어쩐지 어두운 표정이었다.

    “사실 나도 이런 짓은 하고싶지 않아.”

    “그러면 멈추면 되잖아요! 지금이라도, 비록 늦었지만 더 늦기 전에........”

    “멈출 수 없네. 절대로. 그리고 자네가 큰 오해를 하는 것 같은데, 강한 군사력 같은것은 내 욕심 때문이 아니야.”

    폴룩스는 눈을 찌푸렸다. 뭔가 다른 것을 생각할 때 나오는 버릇이다. 그가 씁쓸하게 말했다.

    “뮬리펜. 나는 차라리 네가 부럽구나.”

    “지금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참 슬픈 일이지. 정상에 서면 많은 것들을 볼 수 있네. 아름다운 풍경도, 더러운 풍경도. 또한 보고 싶지 않은 것도. 차라리 아무것도 몰랐다면, 이런 짐 따위는 짊어지지 않았을 텐데.”

    도무지 알 수 없는, 아리송한 소리를 계속하는 폴룩스. 뭔가 달라진 분위기에 뮬리펜도 교주에게 시선을 돌렸다.

    옆에 서 있던 신입 기사단장. 그도 지금 폴룩스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폴룩스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안식과 평온의신. 이제 예고된 멸망이 10년도 남지 않았어. 그놈을 막으려면, 희생은 꼭 필요하네.”

    “교주님. 안식과 평온의 신?”

    “백 명을 희생해서 만 명을 살릴 수 있다면, 나는 그렇게 하겠다는 말이네.”

    “그, 그렇군요.”

    기사단장은 이야기를 이해하지 못했다. 안식과 평온의 신. 처음 들어보는 것이다. 하지만 폴룩스는 거기서 말을 끊었다. 이 이야기는 더 할 필요가 없다.

    “뮬리펜. 방금 말한 대로 나는 너를 속였다. 그리고 앞으로도 이 빌어먹을 짓을 멈출 생각이 없어.”

    “......”

    “어떻게 할 텐가.”

    뮬리펜은 조용히 폴룩스를 쳐다봤다. 그녀는 폴룩스를 존경했다. 어린 시절부터 알샤인의 윤리, 희생과 배려의 의미를 처음 알려준 것도 폴룩스였다. 그 누구보다 사리사욕 없는 삶의 태도를 알려준 것도 바로 그였다.

    하지만 이제 모든 게 변해버렸다.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뮬리펜은 폴룩스에게서 한걸음 물러났다.

    “지금까지 감사했습니다.”

    “결국 떠날 생각인가.”

    “예.”

    뮬리펜은 마음을 다잡았다. 이런 기괴한 일에 목숨을 바칠 생각은 없다. 그녀의 피는, 피를 씻는 게 아니라 더 많은 피를 부를 것이다. 그녀가 문 쪽으로 걸어가며 말했다.

    “하지만 가기 전에 한 가지 묻고 싶어요. 교주님은 백 명을 희생해서 만 명을 살리신다고 하셨습니다.”

    “물론이다.”

    “그 희생될 백 명을 정하는 것은 누구입니까?”

    교주는 답하지 못했다. 뮬리펜도 대답을 기대하지 않았다. 만약 그 질문에 답할 수 있다면, 저런 짓을 저지르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저 깊게 실망할 뿐이었다. 뮬리펜은 문 밖을 나서려했고.

    그 순간 의식이 끊어졌다.

    기사단장이 무너지는 뮬리펜의 몸을 잡아주었다. 그가 뮬리펜을 제압한 것이다. 폴룩스는 눈을 감은 뮬리펜을 보며 중얼거렸다.

    “레이츠는 운이 좋군. 이번 순교자는 뮬리펜 성녀일세.”

    “연금술사에게는 뭐라고 말합니까?”

    “치프에게는 레이츠가 순교할거라고 해. 대충 이유도 설명하고. 세례식은 그에게 연금술을 모두 얻어낸 뒤로 한다.”

    레이츠야 살려만 두면 교단을 떠나지 않겠지만, 뮬리펜은 망설임 없이 이곳을 떠날 것이다. 이런 신성력을 품은 재물을 그냥 보내줄 수는 없었다. 앞으로도 사도는 더 양산할 것이고, 거기에 성직자는 꼭 필요한 부품이니까.

    어차피 순교자에게 동의는 필요 없다. 기사단장은 의식이 없는 뮬리펜을 들고 밖으로 향했다.

    단장이 나가고, 폴룩스는 의자에 몸을 기댔다. 피로가 몰려왔다.

    “나도 죽어서 천국가기는 글렀군. 하긴, 그딴게 있을지도 의문이지만.”

    문득 나른한 느낌이 들었다. 그는 가슴을 압박하는 죄책감으로부터 도망치듯 눈을 감았다. 자신도 원하지 않았다고 변명하고 싶었지만, 죄의 무게는 사라지지 않고 그를 짓누르고 있었다.

    ========== 작품 후기 ==========

    이제 이 에피소드도 3편 정도 남았습니다. 아마 내일 안으로 끝날것 같네요.

    이번 에피소드의 결말은, 분위기가 지금과는 조금 다를것 같습니다. 그래도 끝까지 즐겨 주셨으면 합니다. 항상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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