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포션으로 무한성장 (80)화 (80/124)

<-- 골렘 깎는 노인 -->

“잠깐, 말한다니까........”

“그래. 알겠다.”

그렇게 말하면서도, 카르안은 애꾸눈을 있는 대로 밟아 놨다. 단순한 화풀이는 아니었다. 이렇게 협박 비슷한 일을 할 때는, 일단 상대방의 넋을 빼 놓아야 한다.

카르안의 생각대로였다. 과연 애꾸눈은 순순히 불 생각이 없었다. 대신 거짓말을 몇 개 섞어서 진짜인 것처럼 포장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그 화려한 계획도 몇 대 맞고 나니 깔끔하게 사라진다. 그는 벌벌 떨며 입을 열었다.

“알샤인 교단에서 저희를 고용했습니다!”

“그렇겠지. 그런데 누가?”

“그것까지는 잘.......”

“모르면 맞아야지.”

“여자! 여자였습니다!”

“세상에 여자가 한둘인가.”

카르안은 몇 대 더 때리려 했다. 하지만 여자라는 말을 듣는 순간, 치프가 카르안을 막아섰다. 그는 레이츠를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다. 그런데 저 애꾸눈이 정답을 확인까지 시켜줬다.

치프를 여기로 보낸 무녀. 그녀가 치프를 속였다. 카르안이 치프를 쳐다봤다.

“누군지 아시겠습니까?”

“레이츠라는 성녀일세. 그녀가 이들을 고용해 나를 죽이려 한 것이야.”

이유는 알 수 없다. 대체 왜 자신을 해코지했는지. 하지만 정답은 하나. 그녀가 자신을 암살하려한 주범이라는 것이다.

‘내부에 복잡한 사정이 있는 것일까.’

치프는 머리를 굴려봤다. 하지만 뮬리펜이 죽지 않으면 레이츠가 죽는다는, 그런 깊은 사정까지는 눈치 채지 못했다. 잠깐 사이에 너무 많은 일이 일어났다. 머리가 정상적으로 돌아가질 않는다.

“이제 어떻게 하실 겁니까?”

“돌아가야지. 일단 폴룩스 교주가 날 죽이려 한 건 아니야.”

차라리 알샤인 교단으로 달려가는 편이 더 안전했다. 아직 폴룩스는 치프의 기술을 탐내고 있다. 만약 그가 도움을 청한다면, 나름대로 조치를 취해주리라.

카르안이 애꾸눈을 놓아주었다. 카르안의 특별 처방 덕분에, 놈도 거짓말을 하지는 않았다.

“좋아. 솔직하게 이야기 해 주었으니 목숨만은 살려주지.”

애꾸눈은 눈치를 보며 슬금슬금 물러났다.

“저, 저는 어떻게 되나요?”

“죽을 것이다.”

“그게 무슨 개소리.......”

말이 끝나기 무섭게 카르안이 검을 휘둘렀다. 칼이 번쩍이며 애꾸의 목을 후려쳤다. 철썩 소리와 함께 애꾸가 거품을 물고 쓰러졌다.

칼의 옆 부분으로 목 뒤를 후려친 것이다. 정말 죽을 정도는 아니지만 한동안 정신은 차릴 수 없을 것이다. 카르안이 검을 뒤로 휙 던졌다.

“그보다 왜 골렘은 사용하지 않았나?”

“집이 박살날까봐 그랬죠.”

이런 작은 집에서 2미터 크기의 아이언 골렘이 난동을 부린다면, 집이 지하까지 무너져 내려도 이상할 게 없다. 그나마 치프의 골렘은 인간 크기의 스톤골렘이라 괜찮았던 것이다.

그리고 전투 회로를 한번 확인해보고 싶은 욕심도 있었고. 그의 생각대로 전투 회로는 쓸 만한 성능을 보여주었다.

“아무튼 고맙네. 자네 덕분에 큰 위기를 넘겼어.”

“괜찮습니다.”

카르안도 대충 상황이 정리되었다. 그런데

“대체 왜 알샤인 교단이 영감님의 연금술을 배우고 싶어 하는 것입니까?”

“음. 그건........”

치프는 말할 수 없었다. 일부로 숨기려는 게 아니라, 타라카르의 계약 때문이다. 지금 카르안에게 큰 도움을 받았는데 뭘 숨기겠는가.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심장이 터져 죽을 수는 없었다. 교단의 실험에 관해서, 아무 이야기도 할 수 없었다.

“계약이네. 교주와 타라카르의 계약을 했어. 그래서 자네의 질문에는 답해줄 수 없네.”

“음.”

치프의 연금술. 인간에게 전투회로를 새겨 넣는 기술. 그것을 알샤인 교단에서 원한다.

머릿속에서 몇 조각 퍼즐들이 자리를 찾았다. 그리고 커다란 그림이 얼핏 보이는듯했다.

“알샤인의 사도겠군.”

무르짐의 시점으로 보기는 했지만, 그 사도들의 전투방식은 짐승의 것과 같았다. 그 단점을 보안하기 위해서 치프를 찾은 게 아닐까.

그것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그런 괴물들이 뛰어난 검술까지 얻는다면. 실로 무시무시한 전력이 될 것이니까.

“왜 그러냐?”

카르안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의 머릿속에는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치프를 죽일까.’

이대로 치프를 보내버리면, 그와 적대하는 알샤인의 세력만 강해진다. 이미 카르안과 알샤인 교단은 돌이킬 수 없는 강은 건넜다. 화해 따위는 불가능했다. 그런 상대의 힘이 강해지면, 앞으로 무슨 일을 하던 걸림돌이 될 것이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동시에, 뮬리펜의 얼굴도 떠올랐다. 치프가 돌아가는 이유. 뮬리펜이 희생을 막기 위함이다. 만약 여기서 카르안이 치프를 죽인다면, 뮬리펜도 희생되겠지.

사사로운 정. 그런 것 때문에 미래의 적이 강해진다. 지금 최선의 판단은, 아무도 없을 때 치프를 죽이고 연금술 서적을 강탈한 뒤 도주하는 것이다. 비록 이해하는 데에 시간이 더 걸리기는 하겠지만, 카르안 정도의 재능이면 얼마 안가 치프의 연금술을 모두 습득하리라.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카르안은 손에 힘을 뺐다. 당장 힘만 주면 저 노인의 목을 부러트릴 수 있지만. 도저히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카르안은 그냥 웃어버렸다. 그는 자신을 한 번도 선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사람이었다. 그에게 나름대로 친절하게 대해준 노인, 그리고 바보같이 착한 여자를 자기 손으로 죽일 수는 없었다.

적에게는 냉정하지만, 한번 정을 주고받은 사이에게는 제법 무르다. 그게 카르안의 약점이라면 약점이었다.

“음. 아무튼 잘 해 보세요.”

“싱거운 놈.”

치프는 중얼거리며 밖으로 나섰다. 카르안은 따라 나서지 않았다. 마법사 길드까지 따라가 줄 의리는 없었다. 치프도 카르안에게 더 이상 경호를 부탁하지 않았다.

“꼭 더럽게 갈 필요는 없지.”

치프를 죽이는 방법 말고도 차선책이 있다. 성공할지는 미지수지만, 그래도 만약 성공한다면 폴룩스 교주를 완벽하게 견제할 수 있다.

“내일 움직여야겠다.”

카르안은 느긋하게 집 밖으로 나갔다. 계획에는 통신 마법을 걸어줄 마법사가 필요하다. 마법사 길드로 간다면 좋겠지만, 아직 알샤인 교단의 잔당들이 남아있을 수 있다.

개인으로 일하는 마법사를 찾아야한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이 야밤에 돌아다닐 거 같지도 않다. 지금 서두를 필요는 없었다. 카르안은 인파들 사이로 사라져가는 노인을 바라보며, 발길을 돌렸다.

2.

‘왜 대답이 없어?’

레이츠가 입술을 물어뜯었다. 벌써 새벽이다. 분명 치프를 처리하면 용병들이 통신 마법으로 연락을 주기로 했는데.

아직도 아무런 소식이 없다. 큰 돈 주고 고용한 용병들이, 설마 통신마법 한번을 잊어먹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답은 둘 중 하나였다.

‘의뢰가 늦어졌거나, 혹은 실패했거나.’

그 둘 중 가능성이 높은 것은 실패 쪽이다. 노인 한명 죽이는 일이다.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오래 걸릴 이유가 없었다........

그녀는 방 안에 있는 수정구 앞에서 발만 동동 굴렸다. 머리가 아파왔다. 역시 용병들을 급히 구한 게 잘못이었나.

아무래도 하루 만에 일을 처리하다보니, 상급 용병들은 구할 수 가 없었다. 그냥 닥치는 대로 수만 불려놨을 뿐이다.

조금 허술해 보이지만, 사실 그 정도면 충분했다. 치프가 연금술사라 해도 그저 그런 실력의 노인에 불과하다. 혼자서는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연금술사의 특성상, 용병 열 명쯤 고용하면 충분할거라 생각했다.

그녀의 계산은 틀리지 않았다. 단지 카르안이라는 예측 못한 변수가 출현했다. 덕분에 그녀의 계산은 한참 어긋나 버리고 말았다.

그렇게 밤을 꼬박 샌 다음날 아침, 레이츠는 답을 들을 수 있었다. 전혀 원하지 않던 대답이었지만.

“치프가 돌아왔다고.”

“그래. 바로 연구실에 들어갔다. 기사들의 호위까지 받으면서.”

“하.”

교단의 연금술사가 레이츠에게 말해주었다. 상당히 안 좋은 소식이지만, 그녀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이미 예상했던 결과다.

그녀는 졸린 눈을 비볐다. 밤새 잠을 못 자서 얼굴이 말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 말만 전해주러 온 건 아니겠지.”

“........교주님이 너를 보자고 하시는군.”

이것 또한 예상했다. 치프가 교주에게 전부 털어놨을 것이다. 분노한 교주가 레이츠를 부르는 것은 당연한 순서였다.

“어떻게 할 거야.”

“뭘 어떻게 해? 교주님이 부르면 가야지.”

레이츠는 까칠하게 답하며 일어섰다. 잠깐 도주를 생각하기도 했지만, 그녀는 누구보다 알샤인 교단의 힘을 잘 알고 있다.

얼마 못가 잡히고, 자신이 순교자가 될 것이다. 일단 교주와 한번 부딪혀 보는 게 낫다. 도주를 한다 해도 그 다음이었다.

교주의 방은 가깝다. 그 덕분에 레이츠는 얼마 가지 않아 폴룩스를 만날 수 있었다. 그는 무심한 표정으로 무릎을 꿇은 성녀를 내려 봤다.

“내가 너를 왜 불렀는지 알겠지?”

“........”

레이츠는 잠시 고민했다.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 솔직하게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빌어야 하는가. 아니면 끝까지 시치미를 때는 게 좋을까.

“죄송합니다. 교주님.”

레이츠는 두 무릎을 꿇고 절하듯 엎드렸다. 이미 폴룩스는 그녀의 생각을 읽고 있다. 그런 교주에게 반항적인 태도는 독이나 다름없다.

최대한 비굴하게. 그게 지금 살 수 있는 활로였다. 레이츠는 얼굴을 들지도 못했다. 과연 폴룩스가 그녀를 살려줄지는 미지수지만. 그래도 어쩌겠는가.

승률이 있어보여서 베팅을 했는데, 그 판에서 크게 잃었다. 그렇다면 그 책임을 질 때다. 그녀는 머리를 숙이면서도, 생각을 계속했다.

대체 뭐가 문제였을까. 너무 급하게 움직였나. 결국 이렇게 실패했다........

“하아.”

폴룩스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레이츠의 어깨가 움찔했다. 그런 모습을 보며 폴룩스는 마음을 굳혔다.

안 그래도 뮬리펜 대신 레이츠를 죽이는 쪽으로 마음을 정했었다. 지금 그녀의 행동이 그 결정에 못을 박아주었다. 게다가 감히 교주의 계획을 방해했다는, 커다란 명분까지 만들어주었다.

‘그래도 죽을 줄 알고 미리 손을 썼군.’

치프가 어떤 수를 썼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녀의 계획을 막는데 성공했다. 교주는 제법 안타까웠다. 레이츠는 제법 머리가 돌아가는 성녀였다. 그 머리를 자신을 위해 썼다면 좋으련만. 그 반대 방향으로 사용했다. 그게 문제였다.

아무리 똑똑해도, 자신이 살기위해 주인을 물어뜯는 사냥개는 필요 없다. 폴루스는 레이츠에게 선고하듯 말했다.

“되었다. 다음부터 이런 일이 있으면, 정말로 목숨을 내놓아야 할 것이야.”

“가, 감사합니다.”

“그리고 오늘 저녁에 예배실로 와주게. 중요한 전달사항이 있을 거야.”

폴룩스가 처음 건넨 말. 용서하는 듯한 말에 레이츠의 얼굴이 잠깐 밝아졌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다음 순간 그녀의 얼굴은 절망으로 물들었다.

저녁에 예배실로 와라. 이게 뭘 의미하는지 알고 있었다. 결국 폴룩스는 그녀를 용서하지 않았다.

마치 사형수를 사형장에 끌고가듯, 예배실로 그녀를 부른다. 그리고 그 예배실에 도착하면, 중무장한 기사들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겠지.

그녀를 순교시키기 위함이다. 레이츠는 눈을 감았다. 폴룩스는 그저 사형선고를 완곡하게 돌려 말했을 뿐이다.

“내 말 알아들었나?”

“예.”

레이츠는 짧게 대답했다. 무릎에 힘이 쭉 풀렸다. 그녀는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나가봐.”

폴룩스의 차가운 말. 레이츠는 밖으로 향하기 위해 몸을 돌렸다. 그리고 문 밖으로 나가자마자, 그 자리에서 주저앉았다.

“이렇게 끝인가?”

레이츠는 멍하니 중얼거렸다. 대체 왜 자신이 죽어야 하는가. 그저 운이 없단 이유로, 교주에게 우연히, 빌어먹을 순교자로 뽑히는 바람에 이 지경까지 됐다.

“하하하........”

눈물이 흐른다. 눈앞에 문제가 있는데, 도저히 답이 없어 보이는 기분이다. 답을 모르는 게 아니라, 애초부터 답 같은 것은 없었던 것 같다.

“아니야.”

그녀는 눈물을 훔쳤다. 살고 싶다. 죽고 싶지 않다. 그리고 죽지 않으려면, 이러고 있어봐야 도움 될게 없다는 것도 알고 있다.

“가자.”

그녀가 중얼거렸다. 생각 없이 중얼거린 말이었다. 가자.

우연일까. 그 단어가 그녀에게 길을 제시해주었다. 가야한다. 어디로 가야할까.

이대로 순순히 죽을 수는 없다. 그게 인간과 짐승의 차이점이다. 농장의 소는 순순히 도축장으로 끌려가지만, 인간은 그 죽음을 감지하고 도망칠 수 있다.

그리고 도망치려면, 시간을 벌어줄 사람이 필요했다. 잠깐이라도 폴룩스의 시선을 돌려놔야 한다. 그리고 그의 시선을 돌릴 방법이 하나 있었다.

멍청한 소녀에게 간단한 진실을 속삭여주면 된다.

레이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한 곳을 향해 걸어갔다. 그 방향에는 뮬리펜의 방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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