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포션으로 무한성장 (79)화 (79/124)

<-- 골렘 깎는 노인 -->

치프는 곧바로 집을 향해 뛰어갔다. 교주는 자신의 도주를 눈치 채지 못했다. 적어도 지금은 말이다. 게다가 여기는 알샤인 대신전이 아닌 알펜 왕국. 지금 당장 잡힐 일은 없다.

얼마 안가 치프는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는 천천히 집 문을 열었다.

“허억!”

집 안에 누군가 있다. 작은 램프 하나를 들고 있는 남자. 그는 작은 불빛에 의지해서 집 안을 살피고 있었다. 그도 치프를 눈치 챈 것 같았다.

“치프씨?”

“아, 카르안. 자네로군.”

그 남자는 카르안이었다. 하루 종일 교단의 눈을 피하느라, 또 몸을 회복하느라 치프의 집에 바로 찾아올 수 없었다.

사람이 없는 저녁에 돼서야 조심스럽게 찾아온 것. 기척을 줄이기 위해 작은 촛불이 들어있는 램프를 이용했다.

집에는 아무도 없었고, 그가 남긴 쪽지를 읽고 있던 카르안에게 치프가 나타난 것이다.

카르안이 치프에게 다가갔다. 그들의 눈이 마주쳤다. 깜짝 놀란 치프가 입을 벌렸다.

“레이츠 성녀가 말한 용병이 자네인가.”

“레이츠? 그게 누굽니까?”

레이츠는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다. 게다가 카르안은 누군가에게 의뢰 같은 것을 받은 기억도 없다.

“그보다 대체 무슨 일입니까.”

카르안이 책상 위의 쪽지를 흔들었다. 거기에는 치프가 알샤인 교단에서 일하게 됐다는 내용. 그러니 한 달쯤 후에 이곳에 다시 와 달리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그때 다 못 나눈 연금술에 대한 토론을 하자는 말과 함께.

그런데 이런 야밤에 집으로 돌아오다니. 앞뒤가 안 맞았다. 치프가 다급하게 말했다.

“알샤인 교주 놈에게 배신을 당했다. 그놈은 내 기술만 받아 처먹고 나를 죽일 생각이었어.”

“정말입니까?”

“어쩐지 처음부터 너무 큰돈을 준다고 하더군. 의심부터 했어야 했는데.”

치프는 카르안에게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폴룩스가 자신의 연구를 거금에 산다고 한 것. 뮬리펜이 자신의 손녀라는 것. 그 뮬리펜이 죽을 위기고, 그녀를 위해 폴룩스와 협상한 일. 그리고 마지막으로 배신당할 뻔한 것까지.

계약서 때문에 알샤인 교단의 연구에 대해서는 말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 외의 것들에 대해서는 전부 털어놨다.

그 이야기를 모두 들은 카르안. 카르안은 그런 치프에게 안타까움을 느끼기보다, 먼저 떠오른 감정이 있었다. 바로 의구심이었다.

‘교주가 그렇게 허술한 놈이었나.’

치프를 속이고 그를 죽인다. 단순한 방법이다. 그것도 범죄 조직의 방법.

단순하게 생각하면 굉장히 그럴싸한 방법이지만, 길게 보면 득보다 실이 많다. 만약 그런 짓을 하다 거리기라도 하면, 모든 사람들에게 조롱거리가 될 것이다.

아무리 뒤에서 더러운 짓을 많이 한다 해도 알샤인 교단은 종교단체다. 그것도 빛과 선의 신. 고작 가난한 서민 한명 털어먹으려고 그런 짓을 한다는 것은, 대범하기보다는 조잡해 보인다.

신뢰라는 게 그렇게 중요한 것이다. 단체에 헌신한 자를 보상은커녕 죽여 버린다. 그런 조직을 누가 신뢰하겠는가.

배신하고 등쳐먹는 짓은 범죄조직인 흑룡회도 많이 사용하지 않는다. 그것은 일을 길게 볼 줄 모르는 삼류 조직의 애송이나 할 짓이다.

“아무튼 뮬리펜, 그리고 레이츠라는 성녀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곧 집으로 나를 경호해줄 사람들이 온다는군.”

“흠........”

그렇다고 무작정 의심만 할 수는 없었다. 어쩌면 정말로 치프를 도와줄 사람들일지도 모르니까. 그때 치프의 집 문이 거칠게 열렸다.

“응? 분명히 노인 한명이라고 들었는데.”

험악한 인상의 남자 열 명 정도가 들어왔다. 전원이 검과 가죽갑옷을 입은 용병들이었다. 그들은 카르안을 보자 눈을 찌푸렸다. 성녀에게 전해들은 것과 이야기가 달랐다.

노인 한명만 처리하면 된다는데, 웬 남자까지 한명 덤으로 껴있다. 용병들은 상품에 사은품이 달려있는것은 좋아했지만, 일거리에 저런 보너스가 달려있는것은 싫어했다.

뒤에 있던 용병 한명이 한걸음 나섰다. 그가 리더인 듯, 다른 용병들이 길을 비켜주었다. 그는 한쪽 눈을 다쳤는지, 검은색 안대를 차고 있었다. 그 애꾸눈이 말했다.

“상관없잖아. 자, 노인장. 어서 가시죠. 은신처를 준비해 놨습니다.”

“알겠네.”

치프도 말없이 따르려했다. 인상이 좋지는 않아도, 레이츠가 처음부터 용병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치프도 용병 일을 제법 해 봤고, 요병들 중에는 평범한 사람보다 미친놈이 많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잠깐.”

카르안이 말하자, 용병들이 단체로 얼굴을 구겼다. 그들 중 한명이 짜증난다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넌 또 뭐야?”

“은신처는 어디에 있지?”

“그걸 너한테 왜 알려줘? 이상한 소리 하지 말고 썩 꺼져라.”

그들이 성녀에게 받은 의뢰는, 치프 한명만 포함되어 있었다. 카르안까지 신경 쓸 필요는 없었다. 그들은 그냥 빨리 일을 처리하고 싶어했다.

“나는 물어봐도 괜찮겠지.”

그때 치프가 입을 열었다. 성이 나서 떠들던 용병도 이번에는 멍하니 입을 다물었다. 치프가 용병들과 갈 곳이다. 카르안에게는 말할 필요가 없지만, 치프에게는 알려주는 게 당연했다. 숨긴다는 게 더 부자연스럽다.

“산 속에 있소. 오두막집인데, 튼튼하고 창고에 식량도 잔득 있지. 몇 달쯤은 숨어 살아도 끄떡없을 거요.”

애꾸눈 용병이 대답했다. 그는 서둘러 치프를 안내하려 했다. 카르안이 팔짱을 끼었다.

“구라도 그럴싸하게 쳐야지.”

“뭐?”

용병들이 눈을 찌푸렸다. 카르안이 이어서 말했다.

“이 근처의 산에는, 벌목꾼들 때문에 건물을 지을 수 없지. 그게 수도 아르페리움의 정책이다. 멍청한 놈들.”

“그게 무슨 소리야!”

“무슨 소리기는. 네놈들이 사기 치다 걸렸다. 이거지.”

카르안이 한심하다는 듯이 말했다.

“산 속으로 가는 건 너무 뻔하지 않나? 사람 묻기에는 거기만한 곳이 없거든. 주변에 보는 사람도 없고 말이야.”

용병들이 침을 꿀꺽 삼켰다. 당연히 그들은 용병이고, 수도의 정책 따위는 알지도 못했다. 그들이 최근 한 달간 읽어본 것이라고는 술집 창부의 명단밖에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정확히 알 수 있었다. 저놈에게 들켰다. 애꾸는 용병은 슬쩍 시선을 돌렸다. 카르안의 말에 처리해야할 노인, 치프도 의심에 찬 눈이었다. 그는 한숨을 깊게 내쉬더니, 용병들에게 눈짓했다.

“생각보다 똘똘한 양반이군. 근데 그런 너도 모르는 게 있는 것 같은데.”

“그게 뭐지?”

카르안이 흥미롭다는 듯 말했다. 그러자 용병들이 전부 무기를 뽑았다. 달빛에 검과 철퇴 등이 서늘하게 빛났다. 애꾸눈이 즐거운 듯 웃었다.

“산만큼은 아니지만, 여기도 보는 눈은 별로 없다는거 말이야.”

“이놈들!”

치프가 카르안 쪽으로 뛰어갔다. 반면 용병들은 서두르지 않았다. 어차피 문 쪽은 그들이 선점했다. 도망칠 수가 없다. 용병들은 그들을 향해 거리를 좁혔다.

“흐흐. 그냥 모른 척 했으면 넘어갈 수 있었는데, 혀를 잘못 놀렸구나.”

카르안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구석에 들린 목검 하나를 주워들었다. 카르안이 전투회로를 이식받은 날, 치프와 함께 목검으로 회로를 시험했다. 그때의 목검.

치프는 카르안이 당장 골렘을 소환할 줄 알았는데, 목검을 집자 당황한 듯 했다.

“지금 장난할 시간 없네! 어서 골렘을.......”

말이 끝나기도 전에 용병들이 달려들었다. 카르안은 등 쪽의 전투회로를 돌렸다. 어제의 상처는 회복 포션으로 완전히 치료했다.  그의 몸이 빠르게 움직였다.

처음 달려드는 놈의 머리를 목검으로 후려쳤다. 쩌억 소리와 함께 목검은 박살이 나버렸다. 그러니까 맞은 놈 머리와 함께.

“어억?!”

머리를 맞은 용병의 눈알이 돌아갔다. 그와 동시에 그의 검도 붕 떠올랐다. 카르안은 공중에서 놈의 철검을 낚아채었다.

“잡아! 아니, 잡지말고 죽여!”

애꾸눈이 고래고래 소리쳤다. 그러자 뒤의 용병이 단창을 찔러 넣었다. 하지만

“으윽!”

카르안은 단창을 피한 다음 용병의 다리를 베었다. 그가 고꾸라졌다. 그 뒤로 다른 용병 둘이 각자 검을 찔러 넣었다.

카르안은 검을 휘둘러 그 둘의 검을 쳐내었다. 분명 둘이 공격했는데, 카르안이 검을 휘두르니 두 명 모두 검을 놓쳤다. 실로 무시무시한 힘이었다.

카르안은 검을 잃은 용병 둘을 한칼에 베었다. 그들 뒤로 거한 한명이 뛰어들었다.

“우아아악!”

놈은 괴상한 기합을 지르며 카르안에게 철퇴를 휘두르려했다. 그냥 소리만 크고 기술같은건 전혀 없다. 덩치는 러슬라이랑 비슷한데, 실력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떨어진다.

부웅-

카르안은 철퇴를 피했다. 검으로 막았다가는 검이 산산조각 나버린다. 철퇴는 바람을 가르고 섬뜩한 소리를 내었다.

그 거인 놈은 철퇴가 빗나갔어도, 몸으로 카르안을 덮쳤다. 아무리 카르안이 힘이 좋아도 무게는 어쩔 수 없다. 카르안이 쭈욱 밀려갔다.

“잘했다!”

애꾸눈은 한호성을 질렀지만, 곧 그 채로 굳어버렸다. 그 거한이 부웅 소리와 함께 날아가서 그의 옆에 처박혔기 때문이다.

‘저 새끼는 오크인가?’

애꾸눈이 헛웃음을 흘렸다. 오크도 저 정도 힘은 없다. 그냥 부하들을 보냈는데, 붕붕거리며 날아간다. 마치 거대한 오우거와 맨손으로 싸우는 기분. 검술이 정교하다거나, 오러를 사용한다거나 하지는 않는데.

그냥 힘이 무식하게 강하다. 애꾸눈은 인상을 쓰면서도 정답을 찾으려했다.

‘어차피 노인만 죽이면!’

애초에 그들의 목표는 카르안이 아닌 치프다. 애꾸눈은 마음을 바꾸고 노인만 공격하려 했다. 하지만 그마저도 녹록치 않았다.

여기는 치프의 집 안이다. 안 그래도 작은집, 그 안에 자잘한 가구와 잡동사니가 가득했다. 결국 그게 용병들을 가로막는 바리게이트가 되었다. 도저히 카르안을 무시하고 갈만한 게 아니다.

게다가 치프도 골렘술사다. 10여명의 용병을 전부 상대하기는 힘들어도, 덤벼드는 한두 명 정도는 쉽게 상대할 수 있다. 어느새 치프의 앞에는 골렘 한기가 서 있었다.

“커억!”

그렇게 머리를 굴리는 사이. 애꾸눈의 하나 남은 용병이 쓰러졌다. 카르안은 어느새 부러진 검을 쓰러진 용병의 것으로 바꾸고, 애꾸눈에게 다가왔다.

“이제야 좀 조용해졌군. 너와 할 이야기가 있었는데 말이야.”

“씨발.”

애꾸눈이 조용히 읊조렸다. 지금까지는 어두워서 잘 안 보였는데, 가까이서 보니 카르안의 옷에 검은 용이 새겨져있다.

“흑룡회였군.”

“알아봐주니 기쁜데. 네가 순순히 협력해 주면 더 기쁠 것 같고.”

“젠장. 요즘 깡패 놈들도 법률 공부를 했었나.”

딴 거는 몰라도, 대체 저런 놈이 어떻게 왕국의 산림보호정책까지 알고 있는가. 카르안은 뭐가 그렇게 재밌는지 웃음을 터뜨렸다.

“푸흡! 너 설마 그거 진짜로 믿은 거냐?”

“뭐?”

“그냥 한번 찔러본 거지. 벌목꾼들이 산속에 오두막을 짓든 술집을 짓든 알게 뭐야.”

산속에 집을 지으면 안 된다는 법률 같은 것은 없다. 하필 산속으로 데려간다니, 카르안은 의심스러워서 살짝 미끼를 풀었다. 그런데 용병들은 보기 좋게 걸려들었다.

멍한 표정의 용병에게 카르안이 한마디 더 했다.

“내가 너희를 처음 봤을 때 말하지 않았나? 구라를 쳐도 그럴싸하게 쳐야 된다고. 지금 나처럼 말이야.”

“오늘은 잘못 걸렸군. 좋아. 내가졌다.”

애꾸는 포기한 듯 칼을 바닥에 던졌다. 그리고 몸을 일으키는 순간, 그의 몸에서 사슬추가 튀어나왔다.

비록 회전 없이 던졌지만, 사슬 추는 충분한 속도로 카르안에게 날아갔다. 이렇게 방심한 틈을 찌르는 게 애꾸눈의 특기. 이런 어두운 곳에서, 검게 칠한 사슬추가 날아오면 당황하기 마련이다.

“한심하다.”

카르안은 그 추를 공중에서 낚아채 버렸다. 애꾸가 눈을 번쩍 떴다. 아무리 그래도 사슬에 달린 무거운 추를 맨손으로 막다니. 보통 악력으로는 엄두도 낼 수 없는 묘기였다.

“역시 내가 상대할 사람은 아니었군.”

애꾸눈은 피식 웃으며 양 팔을 들어올렸다. 깔끔하게 포기하는 분위기. 그는 무능한 용병이 아니었다. 자기 주제를 알 만큼은 똑똑했다. 그는 더 이상 까불어댈 생각이 없었다.

“이제야 항복하는 거냐?”

“물론. 나도 너 같은 강자는 인정한다. 의뢰자가 알고 싶나? 물어보는 것은 모두 알려주지.”

애꾸눈은 과연 베테랑답게, 여유로우면서 카르안이 듣고 싶은 말만 골라했다. 카르안이 고개를 한번 끄덕였다.

퍼억-!

“어억!”

“이 새끼가 선빵치더니 뭘 다 끝난 것처럼 입을 털어? 일단 물어봐야 하니까 살려주긴 할 건데.”

카르안이 주먹을 꺾으며 다가왔다.

“일단 좀 쳐 맞고 시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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