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골렘 깎는 노인 -->
다음날 아침. 치프는 바로 연구를 시작했다. 목표는 알샤인의 사도에 전투회로를 새기는 것이다. 인간의 몸과 사도의 몸. 그 차이부터 알아야했다.
“음.”
당장 필요한 것은 사도의 몸에 대한 이해. 그것을 알아야 자신의 기술을 적용할 수 있다.
“골렘에도 성공했고, 인간에도 성공했으니까.”
치프는 자신이 있었다. 이놈들의 지능이 떨어지는 게 애로사항이기는 했다. 하지만 전투회로를 골렘에도 새겨보고 사람에게도 새겨봤는데, 괴물이라고 못하겠는가.
치프는 괴물의 시체를 해부하고, 신경에 마법진을 적용시키며 실험을 했다. 그리고 다른 연금술사들은 전부 그의 근처에도 오지 못하게 했다.
교주의 확답이 올 때까지, 뮬리펜을 구하기 전까지는 그의 기술을 밝힐 수가 없다. 그게 치프의 가장 큰 무기였으니까. 그는 철저히 전투회로의 기술을 숨겼다. 오직 사도의 구조와 특성만 연구했다.
지금 이렇게 연금술사들을 오지 못하게 한 것은, 교주 폴룩스에게 보내는 일종의 시위이기도 했다. 뮬리펜을 희생에서 벗어나게 하기 전까지는 기술을 보여주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폴룩스가 현명하다면 그 정도 의미는 파악할 것이다.
‘뮬리펜이 큰 잘못을 저지른 게 아니라면, 교주가 내 말을 거절할 리가 없지.’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조금 놓였다. 매사에 순진하고 착한 뮬리펜이다. 남에게 폐를 끼칠 것 같지도 않았다. 교주가 그녀를 싫어할 이유가 있기는 할까.
치프는 공부를 계속했다. 시간은 아침에서 점심으로, 점심에서 저녁으로 흘러갔다. 한참이 지난 후에야, 누군가 치프의 등을 두드렸다. 치프가 짜증스럽게 말했다.
“내가 접근하지 말라고........”
“연금술사님. 이제 저녁입니다.”
“뭐?”
치프가 눈썹을 찌푸렸다. 벌써 저녁이라는 말인가. 시간이 얼마 지난 것 같지도 않는데. 연구에 몰두하느라 시간이 가는지도 몰랐다.
이곳의 특수한 환경도 문제였다. 지하에있어 마법석의 불빛만 의존하다 보니 밤낮 구분이 안 된다. 해가 없고 시계도 없다. 시간의 흐름이 감도 잡히지 않는 것이다.
“알겠네.”
치프는 아침만 간단하게 먹고, 점심 저녁 모두 건너뛰었다. 하루 종일 괴물의 시체를 해부하고 있었으니, 식사 생각도 들지 않았던 것이다.
치프가 몸을 일으켰다. 주변의 연금술사들은 일을 끝냈는지, 하나 둘 짐을 챙기고 있었다.
“나도 올라가 봐야겠군.”
“제가 호위해 드리겠습니다.”
“괜찮네.”
치프는 기사의 호위를 거절했다. 호위라니, 여기 위험한 것도 없는데 뭐 하러 호위를 받는다는 말인가. 그는 계단으로 향했다.
기사가 호위를 해주는 것만 봐도, 지금 치프가 귀한 손님 취급을 받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물론 그것도 기술을 전부 보여주고 나면 사라지겠지만.
밖에 올라오자 해가 완전히 사라진 후였다. 들어갈 때는 이른 아침이었는데, 나오니까 밤이 되어있다. 묘한 기분이 들었다.
치프는 바로 숙소를 향해 걸어갔다. 저녁 생각은 없었다. 설령 나중에 배가 고파고, 그때 나가서 먹으면 그만이다. 몇 분 정도 걸어서, 치프는 그에게 제공된 숙소로 들어갔다.
“피곤하군.”
하루 종일 긴장했다. 주변에서 연금술사들이 자기 연구를 노리지 않는지 살펴야했다. 또한 사도를 연구하는 것 자체도 집중력을 요구한다. 그 두 가지를 하루 종일 했으니 몸에 진이 다 빠졌다.
치프는 대충 씻고 난 뒤 침대에 몸을 던졌다. 그가 평소에 쓰던 싸구려 침대가 아니었다. 교단의 방에 있는 고급 침대. 그 푹신한 감촉이 온 몸에서 느껴졌다. 치프는 침대 위에서 눈을 감았다.
똑똑.
잠에 빠지려던 치프, 그의 눈이 다시 뜨였다. 누군가 치프의 방에 노크를 하고 있었다.
이 시간에 누가 그를 찾는다는 말인가. 그가 짜증스럽게 소리쳤다.
“누구십니까?”
“치프님. 식사를 준비해 왔습니다.”
식사까지 챙겨준 것인가. 아마 교주가 그에게 신경써준 것이리라. 치프는 별 의심 없이 문을 열었다.
“응?”
눈앞에는 한명의 여자가 서 있었다. 그녀에게 식사로 보일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맨 손으로 서서 치프를 보고 있었다.
“넌 뭐냐!”
치프가 순간 긴장했다. 대체 왜 거짓말을 한 것일까.
“쉿!”
치프의 외침에 여자가 급하게 검지를 세웠다. 그리고 치프의 방 안으로 뛰어들고 문을 닫았다.
‘젠장. 저 여자는 뭐야?’
야밤에 거짓말로 문을 열게 하고, 방으로 난입한다. 일단 암살자 같아 보이지는 않았지만, 저 여자가 대체 왜 이러는지 감도 안 잡혔다.
치프는 침착하게 생각했다. 뭔지는 몰라도 제압은 해야 한다. 멍하니 있다가는 무슨 일을 당할 수도 있다!
치프는 서둘러 골렘을 소환하려 했다. 땅에서 마법진이 떠올랐다. 그러자 여자가 다급하게 양 손을 들어올렸다.
“잠깐, 저는 뮬리펜 성녀의 부탁 때문에 온 거에요!”
“뮬리펜?”
치프가 멈칫했다. 그녀는 양 팔을 항복하듯 들고 있었다. 싸울 의사가 없다는 뜻. 치프도 골렘 소환을 멈췄다.
“그러면 처음부터 그렇게 말하지. 왜 오해를 하게 만들어?”
“설명할 시간이 없었으니까요.”
여자가 숨을 고르며 말했다. 그녀는 진지한 눈빛이었다.
“제가 치프씨한테 가는 것을, 누구한테 들키기라도 하면 곤란해요.”
“그게 무슨 뜻이지.”
치프가 여자를 침착하게 살펴봤다. 그녀도 성녀 복을 입고 있다. 알샤인 교단의 사람. 그런데 대체 왜 다른 사람 몰래 치프를 만나야 한단 말인가. 여자가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교주님이 치프씨를 죽이려 하니까요.”
“뭐?”
치프의 입이 벌어졌다.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교주가 자신을 죽이려해?
“말도 안 되는 소리. 내가 죽이면 내 기술은 어떻게 얻는단 말인가.”
“당연히 치프님의 연구를 모두 얻은 다음에 말이죠.”
“그런.......”
치프가 말을 흐렸다. 물론 폴룩스가 마음만 먹는다면, 치프를 죽이는 것은 가능했다. 하지만 치프가 폴룩스와 원수를 진 것도 아니다.
보안이 문제라면 타라카르의 계약까지 했다. 치프가 누군가에게 교단의 비밀을 말할 수도 없다.
그러니까 폴룩스가 치프를 죽일 이유가 전혀 없는 것이다. 여자는 천천히 팔을 내리고, 침대에 걸터앉았다.
“혹시 처음 계약하실 때, 의심스러운 점은 없으셨어요?”
“의심스러운 점이라.”
곰곰이 생각하던 치프. 딱히 이상한 점은 없었다. 아니, 굳이 한 가지 꼽자면 보수가 지나칠 만큼 좋다는 것.
치프의 생각을 읽은 듯, 여자가 말했다.
“교주님은 처음부터 그 큰돈을 줄 생각이 없으셨어요. 기술만 전부 빼내고, 당신을 죽일 생각이었죠.”
“하지만.......”
이제 자신은 그 돈을 받을 수 없다. 계약 내용이 바뀌었으니까. 뮬리펜을 살려주는 대신, 돈은 전부 없던 것으로 한다. 그렇게 말이다. 고민하는 치프를 향해 여자가 말했다.
“저도 알고 있어요. 치프님이 뮬리펜 성녀를 구하기 위해서, 무료로 기술제공을 하겠다고 한 것.”
“그러면 됐잖아. 폴룩스님은 내 기술을 얻으면 끝이야. 잃을 것은 아무것도 없어!”
“폴룩스님은 결정을 번복하는 것을 원치 않아요. 그것도 고작 외부인 한명에 의해서.”
폴룩스는 이미 성직자들 앞에서 뮬리펜이 순교자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보통일이 아니다. 다른 사소한 일이 아니라 고위 성직자가 희생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 결정이, 성직자도 아닌 외부의 무명 연금술사 한 명 때문에 바뀌게 되는 것이다. 여자가 말했다.
“교주님은 뮬리펜을 살려준다고만 한 뒤, 당신의 연금술을 전부 빼내고 뮬리펜을 희생 시키겠죠. 그 다음 당신이 눈치 채기도 전에 죽여 버릴 거예요.”
“.......그것을 내게 알려주는 이유가 뭐지.”
“말했잖아요. 제가 여기 온 것은 뮬리펜 성녀의 부탁이라고. 뮬리펜 성녀는 교주에게 당신에 대해 전부 들었어요. 그리고 하나뿐인 할아버지가 죽을 위기라는 것도 알아챘죠.”
“뮬리펜을 만나봐야겠어.”
“안될걸요. 뮬리펜 성녀는 지금 움직일 수 없어요. 이제, 의식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까.”
치프가 정신을 가다듬었다. 집중하고, 생각해야했다. 저 여자의 말이 맞는다면, 지금 치프는 뮬리펜과 죽을 위기에 있다. 여자가 작게 말했다.
“걱정 마세요. 뮬리펜 성녀가 여기 없어도, 치프님을 도와줄 수는 있으니까.”
“어떻게?”
“지금 바로 마법사 길드로 가야 되요. 알펜왕국의 수도, 아르페리움까지 가는 장거리 텔레포트를 준비해 놨으니까요. 일단 교주님에게서 떨어져야 해요.”
치프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저 여자를 믿어야 하는가. 고민은 짧았다. 이대로 가면 전부 위험해진다.
저 여자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교주 놈도 제정신이 아니었어.’
그의 광기에 찬 표정. 괴물들을 양산하고 거기에 성직자를 희생시킨다. 보통 사람은 하지 않을 짓이다. 그런 사람이 자신을 이용하다가 죽여 버리는 것은,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저 여자가 거짓말을 해봐야 뭘 얻는다는 말인가. 일단 집으로 가서 재정비를 해야 했다.
‘뮬리펜을 구한다.’
결국 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교주를 설득하기는 틀린 것 같다. 다른 방법을 찾아야 했다. 시간이 없었지만, 한시라도 빠르게 움직여야 한다.
“바로 출발하지.”
“알겠습니다. 이것을.”
여자는 치프에게 검은 로브를 건네주었다. 허름한 로브. 그만큼 눈에 띄지 않는다. 정체를 감추는 데에는 이만한 게 없었다.
치프는 여자의 안내를 받아가며 마법사 길드로 향했다. 다행히 중간에 누군가와 마주치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둘은 얼마 안가 마법사 길드에 도착했다.
여자가 말한 그대로다. 장거리 텔레포트는 이미 준비가 완료되었다. 치프가 안쪽으로 들어가자, 마법진이 빛을 뿜기 시작했다.
“고맙네. 아가씨.”
“감사는 제가 아니라 뮬리펜 성녀에게 해주세요. 저는 그녀의 부탁을 받아준 것밖에 없으니까.”
여자가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치프의 가슴이 타들어갔다. 뮬리펜. 이번에도 손녀에게 빚을 지게 되었다. 그녀가 계속해서 말했다.
“일단 저택으로 돌아가세요. 그러면 제가 보낸 용병들이 치프씨를 은신처로 안내해 줄 거예요.”
“알겠네. 그나저나 아가씨 이름은 뭐지?”
치프의 몸이 점점 흐릿해졌다. 텔레포트가 끝나가고 있었다. 치프의 질문에, 여자는 잠시 고민하다가 대답했다.
“성녀 레이츠. 뮬리펜의 친구에요.”
다음 순간 치프가 마법진 안으로 완전히 사라졌다. 그 빛이 완전히 사라진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여자는 깊은 숨을 내쉬었다.
“의심은 많아가지고.”
레이츠는 짜증스럽게 투덜거렸다. 힘들었지만, 결과적으로 저 방해되는 영감을 치울 수 있었다.
“거짓말하기도 힘들어.”
교주 폴룩스가 치프를 죽이려 한다는 것. 전부 거짓말이었다. 폴룩스가 선해 보이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치프 같은 사람 하나에게 사기를 치는 졸렬한 놈은 아니었다.
폴룩스가 처음부터 큰 보수를 준다는 것도 모두 진심이었다.
폴룩스는 그냥 안정적으로 기술을 얻고 싶어 했다. 순교자 선택을 번복하면 그의 평판이 떨어지겠지만, 그것보다는 치프의 기술이 중요했다.
그게 문제였다. 뮬리펜이 순교하지 않게 되면, 다음 타자는 순교자 후보 1순위 레이츠다.
‘누구를 죽이려고.’
레이츠 속으로 생각했다. 뮬리펜이 살면 자신이 죽게 된다. 레이츠는 뮬리펜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그 자리를 대신할 성녀였으니까.
레이츠는 처음부터 교단의 연금술사들과 친분이 있었다. 종교든 어디든, 조직에서 장수하는 비결은 튼튼한 인맥이었으니까. 치프가 교주 앞에서 무릎을 꿇었을 때, 옆에 서 있던 연금술사도 그녀와 아는 사이었다.
그 덕분에 뮬리펜의 할아버지가 왔다는 사실. 그리고 그 노인이 뮬리펜의 희생을 막으려 한다는 것까지. 전부 알아냈다.
자신이 죽을 수도 있다. 그 정보를 얻자마자, 레이츠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고, 간단한 결론을 내었다.
치프의 요구사항이 문제라면, 그 치프란 사람 자체를 속이면 된다. 그녀는 치프가 지하실에 박혀있는 하루 동안, 발 빠르게 계획을 세우고 또 실행했다.
치프의 집을 알아내고, 그 집이 있는 알펜 왕국의 수도, 아르페리움에서 용병을 고용했다. 장거리 텔레포트를 하도 해서 주머니가 가벼워 졌지만, 일단 사는 게 먼저였다.
그 결과 치프를 교단 밖으로 쫓아내는 데에 성공했다.
하지만 진짜 중요한 것은 다음이다. 혹시라도 도망친 치프가 잡히고, 교주와 말을 섞는다면. 지금까지 그녀가 했던 모든 거짓말이 들통 난다.
“하하하.”
레이츠가 공허하게 웃었다. 거짓말을 숨기는 방법이 하나 있다. 치프가 영원히 입을 다물어주면 된다. 자고로 죽은 자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