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포션으로 무한성장 (76)화 (76/124)

<-- 골렘 깎는 노인 -->

“치프씨 말씀이신가요?”

소녀는 잠시 고민에 빠진 듯 했다. 치프. 마을에서는 유명한 괴짜. 그저 연금술에 푹 빠져 사는 노인이었다.

“일단 돈 욕심은 별로 없는 분 같았어요. 뭔가를 끊임없이 연구하시긴 했지만.”

소녀는 최대한 기억을 긁어모았다. 가능하면 카르안과 길게 대화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녀가 치프와 직접 이야기를 나누거나 한 적은 없었다. 다만 그녀와 치프 모두, 수도 아르페리움 토박이다. 같은 곳에 지낸 기간이 긴 만큼, 서로에 대해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다.

무엇보다 여관을 찾는 최고의 정보통, 마을의 술주정뱅이 용병들에게 들은 게 많이 있다. 용병들에게 괴짜는 술자리의 좋은 이야깃거리였으니까.

“옛날에는 군에서 몇 번 모시러 갔었나 봐요. 요즘은 모르겠지만.”

“군대에 가기를 거부한 것이군. 연구를 방해받고 싶지 않았나본데.”

골렘술사가 군에 들어가게 되면, 장교 직위를 받을 수 있다. 그러니까 어디 가서 밥 굶을 일은 없다.

단점이라면 개인적인 연구를 할 수 없게 된다는 것. 국가에서 원하는 것은 전장에서 쓸 전투력이고, 골렘술사는 오직 마나 량을 늘리는 수련과 더 강력한 골렘을 조작하는 기교. 이런 것밖에 연습할 수 없다.

새로운 것의 창조라는, 지금까지 치프가 연구한 것과는 정 반대다. 만약 치프에게 카르안 정도의 재능이 있었다면, 국가에 연구원으로 들어갈 수도 있었겠지만. 아무래도 그 정도 재능은 없었겠지.

“그러면 연구할 돈은 어디서 구한거지?”

“가끔 용병 일을 하시기도 했다고 들었어요. 수도 근처의 탄광 개척이나, 몬스터 토벌 같은 것을 했다는데. 정확히는 모르겠어요.”

‘특이한 것은 없군.’

물론 사고방식이 조금 특이하긴 했다. 하지만 그뿐. 그냥 연구에 푹 빠져서 평생을 골렘에 바친 노인이었다.

더 들을게 없다. 카르안은 이야기를 마무리하려 했다. 그때, 소녀가 손뼉을 치며 말했다.

“아, 참. 이건 확실한지 모르겠는데, 치프씨 가족이 마차 사고로 돌아가셨대요. 아내부터 한명 있던 아들하고, 손자들까지.

“가족이 있었군.”

카르안이 혀를 찼다. 독신주의자처럼 보였는데, 그런 씁쓸한 사정이 있는 줄은 몰랐다. 여자랑 질펀하게 놀아대던 것도, 어쩌면 그 고독을 이기기 위한 것이었을까.

“그리고.......”

소녀가 이어서 뭔가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카르안이 수건을 떨어뜨렸다. 지금 자신이 무슨 소리를 들은 것인가. 카르안이 놀라자, 소녀도 당황했다.

“왜 그러세요?”

“잠깐만. 다시, 다시말해봐.”

2.

“급하게 움직여서 미안하네. 한시가 급한지라.”

“저는 괜찮습니다.”

알샤인 대신전. 치프는 바로 교주인 폴룩스를 만날 수 있었다. 그는 떨떠름한 얼굴로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오늘 점심. 카르안이 나간 지 얼마 안가서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처음에는 카르안이 돌아온줄 알았으나, 문은 연 순간 몸이 얼어붙는 것 같았다.

알샤인 교단의 기사. 건장한 기사가 치프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 자리에서 죽는 줄 알았다. 뮬리펜을 숨겨준 게 들켰고, 지금 저 기사가 자신을 잡으러 왔다고 생각했다.

“혹시 연금술사 치프님 맞으십니까.”

하지만 예상과 다르게, 그는 치프에게 정중히 인사를 했다. 당장 도망쳐야 하나 싸워야 하나를 고민하던 치프도, 뭔가 지금 상황이 예상과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얼마 안가서, 치프는 그들이 자신의 연구를 얻기 위해 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전투회로를 인간에게도 삽입한다는 그 기술. 교주님께서 큰 관심을 보이셨습니다. 백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 한 아이디어라고 극찬을 하시더군요.”

“어흠. 그런가. 허허허. 교주님께서 보는 눈이 있으시구만.”

치프가 자꾸 올라가는 입 꼬리를 감추며 말했다. 드디어 자신의 진가를 찾아줄 사람이 왔는가.

알샤인 교단의 교주가 관심을 보인다. 이것만 해도 엄청난 기회다. 그 정도 사람이면 거물 중에서도 특급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도 티를 낼 수는 없지.’

치프는 열심히 얼굴에서 웃음을 지웠다. 이쪽에서 너무 좋아하는 티를 내면, 협상에서 불리하다. 이것도 하나의 비즈니스. 기술을 돈을 주고 파는 것이다. 한 푼이라도 더 뜯어내야 했다.

평생을 바친 연구다. 그만한 가격을 받아야 한다. 치프는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기사양반이 알지 모르겠다만, 이게 보통 연구가 아니네. 물론 나는 돈을 위해 연구를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정당한 대가는 받아야 한다. 이 말이지.”

“일단 교주님께서 이 정도를 생각하고 계십니다.”

기사가 주머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냈다. 몇 가지 계약 조건이 적힌 종이. 거기에는 치프가 교단에 협력해 줬을 시, 그에게 돌아갈 보수도 적혀있었다.

“으냐아아?!”

“예?”

“아 ,아닐세.”

치프는 자기도 모르게 깜찍한 비명을 질렀다. 거기에는 눈이 튀어나올만한 가격이 적혀있었다. 이 돈을 평생 다 쓸 수나 있을까. 그는 떨리는 눈으로 기사를 쳐다봤다.

“이, 이거 정말이지? 뒤에 공 몇 개 더 붙인 거 아니지?”

“물론입니다. 교주님은 이런 일로 장난을 치실 분이 아닙니다.”

“그런가. 그렇겠지.......”

치프는 중얼거렸다. 쥐구멍에도 볕들 날이 있다더니. 외길인생에도 드디어 금덩이가 굴러오기 시작했다. 치프는 덩실덩실 춤이라고 추고 싶었다.

연구가 좋아서 시작했지만, 나이가 들다보니 돈이 최고라는 진리를 뒤늦게 깨달았다. 너무 늙어서 군에서도 안 받아주고, 용병일도 체력이 영 따라주질 않았다. 이대로 쓸쓸하게 죽는구나 싶었는데, 역시 카드게임이나 인생이나 마지막 카드까지 까봐야 아는 것이다.

너무 터무니없는 금액에 사기같이 느껴지기도 했지만, 알샤인 교단의 교주쯤 되는 사람이 그 하나를 속이려 사기를 칠 것 같지도 않았다. 만약 들키기라도 하면 개망신 아닌가.

사칭일 가능성도 없었다. 저렇게 기사까지 동원해 교주를 사칭하다가, 들키기라도 하면 그날로 대신전에 끌려간 다음 교수형이다. 그런 대담한 놈은 없으리라.

“협력하지 않을수가 없겠군. 물론 돈 때문이 아니라, 알샤인 교단에 내 힘을 보탤수 있다는 기쁨 때문이지만.”

“네? 혹시 알샤인 님을......”

“그럼! 나도 알샤인교야. 연구 때문에 바빠서, 종교 활동은 못했지만. 그분을 섬긴지 이제 5년쯤 되었나.”

실은 5년이 아니라 5분이었지만. 이정도 돈을 보니 알샤인을 믿고 싶은 마음이 절로 생겨났다.

치프는 자신에게 조금 더 친절해진 기사에게 방긋 웃어주고, 문 밖으로 나섰다. 카르안에게 줄 쪽지를 책상 위에 올려둔 체. 문을 잠그기는 했지만, 카르안 정도의 연금술사라면 별 문제 없이 열 것이다.

“마차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그 뒤로는 일사천리. 수도에 있는 알샤인 교단으로 이동한 뒤, 저녁쯤에 대신전으로 텔레포트 했다. 이 모든 게 하루도 안 돼서 벌어진 일.

알샤인 교단은 알펜 왕국에서 제법 떨어져있다. 처음에는 느긋하게 마차 같은 것으로 이동할 줄 알았는데, 비싼 돈 들여가며 장거리 텔레포트까지 시켜준다.

치프가 교주를 만난 것은 그로부터 1시간 뒤. 바로 지금이다. 치프는 교주의 방에서 함께 차를 나눠마셨다.

“우선, 내 부탁에 응해줘서 고맙네.”

“당연한 일입니다.”

돈이 얼만데. 치프는 긴장하면서도 뜨거운 차를 삼켰다. 교주 폴룩스는 그런 치프를 한번 보더니, 조심스럽게 말했다.

“보수는 기억하고 있겠지?”

“예.”

“우리가 그 정도 돈을 주는 이유는, 자네에게 보안을 지켜 달라. 이런 이유가 가장 크네. 뭐, 자네도 계약서를 읽어봤으면 알겠지만 말이야.”

“아.......예.”

치프가 잠깐 말을 흐렸다. 돈만 보고 계약 내용은 잘 보지도 않았다. 사실 그 정도 돈을 준다고 하는데, 뭘 못하겠는가.

“그러면 제 연구는 어디에 쓰실 계획이십니까.”

“그전에.”

폴룩스가 손짓하자, 마법사 한명이 종이를 들고 왔다. 그 종이 안에는 신성력이 흐르고 있었다.

약속과 계약의 신. 타라카르의 계약서였다. 한번 맹세를 하면, 무슨 수를 써도 벗어날 수 없게 되는 물건. 치프의 눈이 커졌다.

“너무 겁먹지 말게. 단순히 보안을 지켜야 한다는 뜻이야. 이제부터 보게 될 것은, 아무한테도 말하면 안 되는 것이니까.”

“아무한테도........말씀이십니까.”

폴룩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부터 치프에게 보여줄 것은, 고위 성직자 중에서도 소수만 알고 있는 진실이다.

가능하면 외부인인 치프에게 숨기고 싶었지만, 그러면 치프의 특수한 연금술을 전수받는 의미가 없어지니까.

“음.”

치프는 신중하게 계약서를 읽어봤다. 내용은 간단했다. 알샤인 교단의 지하에서 보게 되는 모든 것들에 대해, 교주 폴룩스를 제외한 어떠한 사람들에게도 발설하지 않을 것. 단, 연구를 위해 교단 지하에서는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한마디로 지하의 비밀스러운 공간을 제외하면, 교주를 제외한 그 누구에게도 이 이야기를 할 수 없다. 이게 계약의 조건이다.

“괜찮겠지?”

“이정도 쯤이야 상관없습니다.”

치프는 내용을 확인하자마자 계약을 수락했다. 계약 기간은 목숨이 끊어질 때까지, 계약을 위반할 시에는 심장이 터져 죽는다.

하지만 이쯤이야 예상하지 않았나. 어차피 이번 계약만 성사하면, 평생 쓰지도 못할 돈을 벌게 된다. 살면서 비밀 한 개쯤은 가지고 지내도 괜찮겠지.

치프는 앞으로 얻게 될 돈들을 떠올렸다. 그 돈만 있으면 커다란 집에서, 평생 돈 걱정 없이 연구를 할 수 있다. 인간으로써도, 학자로써도 모두 행복해질 수 있다.

“그래. 남자다운 결단력이 보기 좋소.”

폴룩스도 치프의 태도에 웃음을 보였다. 마법사는 다시 계약서를 들고 밖으로 나갔다.

“자, 이제 지하로 가 보지.”

교주가 앞장서서 방 밖으로 나갔다. 치프는 얼른 그 뒤를 따랐다.

‘근데.’

대체 지하에 뭐가 있다는 말인가. 치프는 자신이 연구하기는 했지만, 이 연금술의 응용 가능성에 대해서는 회의적이었다.

그런 자신의 연금술을 거금을 주고서라도 얻으려한다. 그리고 남들에게 말하면 안 되는 비밀. 감도 잡히지 않았다.

한참을 걷던 교주는 신전의 작은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교주가 벽에 손을 대자, 바닥이

갈라지며 작은 계단이 나왔다.

“여기는.......”

“조금 더 가야하네.”

일종의 비밀공간이다.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 치프와 폴룩스는 함께 지하로 걸어갔다.

“흐음!”

치프의 눈이 커졌다. 계단이 끝나자, 거대한 공간이 모습을 드러냈다. 무슨 지하에 이런 큰 공간이 있는가. 위에 있는 신전이 빙산의 일각처럼 느껴질 정도다.

계단 앞에는 기사 두 명이 지키고 있었다. 그들은 교주를 보자마자 경례를 했다.

“자, 안쪽으로 들어가지.”

폴룩스는 기사들의 경례를 받아주고, 거대한 지하 안쪽으로 들어갔다. 지하였지만 천장에 있는 수많은 마법석이 빛을 비춰서, 마치 대낮처럼 환했다.

얼마 안가서 그 둘은 이 지하의 중추에 도달할 수 있었다. 치프의 입이 벌어졌다.

“이건........”

마치 거대한 군대가 집결한 것 같다. 수백, 아니 수천이 넘는 괴물들이 눈을 감고 깊은 잠에 빠져있었다.

어찌 보면 침울하며, 웅장하기까지 한 광경이다. 치프가 떨리는 입으로 말했다.

“전부 살아있는 생명체입니까?”

“그래. 알샤인 교단의 검. 그 검이 되어줄 병사들이네.”

치프는 폴룩스와 잠시 눈이 마주쳤다. 저 괴물들을 보는 폴룩스의 눈이 기묘하게 빛났다.

“교주님. 오셨습니까!”

“그래. 고생이 많네.”

그 괴물들을 관리하던 연금술사. 그중 한명이 교주에게 다가왔다. 그는 서류 몇장을 들고 있었다.

폴룩스는 그의 어깨를 친근하게 두드려 주었다.

“일의 진행은?”

“모든 그릇은 준비되었습니다. 이제 ‘순교자’의 피만 있다면........”

순교자. 불길한 단어다. 치프는 얼른 정신을 차렸다.

그의 눈이 빠르게 움직였다. 지금 멍하니 저 괴물들을 보고 있을 때가 아니다. 일단 정보를 얻어야 한다.

그의 시선은 재빠르게 연금술사가 들고 있는 서류 위로 향했다. 그 종이의 맨 윗 페이지. 거기에는 복잡한 수식과 함께 한 사람의 이름이 적혀있었다.

3.

마구간 안. 소녀가 카르안에게 천천히 말해주었다.

“그러니까 그 사고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사람이, 치프씨의 손녀였다고요. 이름이 그 애

이름이 뮬리펜이었다는데.”

소녀가 태연하게 말했다. 별거 아니라는 듯이. 하지만 카르안은 아무 말도 할수 없었다.

같은 시각. 치프의 눈동자가 커졌다. 종이에 적힌 것. 새하얀 종이에는 딱딱한 글씨로 이렇게 적혀있었다.

...... 이번 세례식의 순교자는. 성녀 뮬리펜.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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